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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의 걸어온 길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유행가의 걸어온 길 流行歌의걸어온길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양훈 楊薰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42-07 昭和十七年七月
면    수 124 124
기사
1
識者間에 「流行歌」라면 곧 大衆의低俗한 趣味에 阿諛하는 煽情的 歌謠라고 흔히 생각하고들있다. 從來流行歌란種目의 歌謠의 內容이 그러하였기때문이다.
그러나 流行歌란 低卑한 煽情的 軟調歌謠의 代名詞가아니다. 國民의 士氣를 皷舞昂揚하는 愛國歌, 軍歌라도流行歌라할수있다. 一般大衆이 너도나도다들 노래할수있는, 流行性을띠운, 歌謠가 流行歌일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圓盤界에서 流行歌란 名稱을 驅逐하고 새로히 新歌曲 新謠曲, 新歌謠, 歌曲愛唱歌等, 으로부르는 歌謠이며, 放送局의 國民歌謠 國民合唱, 家庭歌謠들을 다 流行歌로 보아도 決코 不當치않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 注目할것은, 우에말한流行歌에 關한 識者의그릇된 解釋이 그들로하여금 所謂流行歌의 排擊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레코-드의 藝術的 文化的, 價値乃至文化的, 使命을 否定케한다는것이다.
두말할것도없이 所謂流行歌는 레코-드의 産物이다. 그리고한때레코-드業者는 大衆의 嗜好에 迎合하는 卑俗한 軟調流行歌謠製作만으로 販賣成績을올린事實이있었다. 그러므로레코-드라면 流行歌, 流行歌라면곧레코-드를 聯想케한것도 無理가아니다. 그러나 流行歌가 레코-드文化의 全部가아님은 勿論이고 過去의 圓盤界의 一時的過誤를 가지고 레코-드의 藝術的文化的價値乃至使命을 全而的으로 否定한다는것은레코-드가 本來가진 影響力敎育性指導性等을 正當히認識못하기때문이다.
「音樂은 軍需品」이라하여 레코-드音樂의 效用이 强調되며 한편國民士氣昻揚에 皆唱運動이 力說되어 文化財로써의 레코-드의 힘이크로스업된오늘날 戰時下의 레코-드의 文化的價値使命은 如何한가. 이것은 本論外이므로 後日機會로 미루고 此稿에선 우선 朝鮮流行歌가 어떻게 變遷해왔는지 一瞥코저한다.
2
流行歌謠는 時代相을 날카롭게 反映하는것이다. 레코-드 業者가 流行歌盤을하나 製作하면, 組織化한 販賣綱을 通하여 巨大한 宣傳의힘으로 大衆의입에 流行되도록빈다. 流行歌搖籃期에있어서는 口傳으로流行하고있는 歌謠를 吹込하여 流行歌라고 市場에 내놓았지만 지금流行歌란 反對로 먼저 製作한후 流行시키는것이다.
하옇던 流行歌의 對象이 絶對的으로 大衆에 있음으로 우리는 流行歌를 通하여 그時代 그時代의 時代相을엿볼수 있는 것이다.
朝鮮流行歌도 現在十五年이란 歷史를갖고있음으로, 各레코-드 會社를 合하여 數千種이 세상에나왔다. 그동안 이들多數의 流行歌의 功罪는 如何間에, 좋든지 나뿌든지, 하옇던 一般大衆日當生活에 滲透해온것만은 嚴然한 事實이다.
어떤 歌謠가 大衆의 心理를 잘把握하였는가하는것을 發賣成績이 優秀한 所謂힛트盤을 通하여엿보기로 하자. 流行歌의 한句節이 四五歲의 幼兒의입에까지 오르게되는 힛트盤이出現되기까지에는, 大衆의 口味에맞지않는 凡百의 流行歌가埋葬되어오고있다.
그럼, 먼저朝鮮流行歌의 起源을살펴본다면, 처음 레코-搖籃期엔 確然한 流行歌팬을 얻지못하였다.
蓄音機普及도 시원치못하였을뿐더러 처음 레코-드가 朝鮮에 들어와, 即제비 標日東, 수리 標日畜이 吹込한것이 거의 舊歌謠요, 其外로, 獨唱 唱歌, 童謠, 映畵解說이 좀있었을뿐이였다. 當時「소리판」이라는데驚異의 눈을빛낸 一般의 期待가먼저, 傳統깊은 旣存藝術吹込에 쏠렸을것은 當然한일이다. 其時, 尹心悳孃의「死의讚美」와같은 獨唱盤이 잘나갔다하지만 一部愛好人士에 끊겼고 舊歌謠販賣에比하면 微微한 數字이였다.
이와같이 獨唱, 唱歌, 童謠等으로 流行歌의팬을 얻지못하다가비로소, 全鮮을 風靡하게된것은 金剛키네마 第一回作品落花流水의主題歌였다.
勿論이것은 지금과같이 映畵와 提携하여 製作한것이아니라, 當時映畵伴奏音樂이 盛況했을때「스크린」에字幕이나오면 或시 映畵에 歌詞揷入이없드래도밑의 뽁스에선 管絃樂伴奏로 그映畵의 主題歌를 불렀던것이다. 長恨夢, 籠中鳥, かれすゝき카주-샤, 아리랑, 風雪兒, 昏街暗路세동무 等-다이런形式에서나온 主題歌다.
昭和二年落花流水가團成社에 上映되자 이主題歌가 大流行이되여 그후昭和四年에 콜럼비아에서, 그리고 곧뒤따라빅타-에서 이落花流水(江南달)을 發賣했는데 燎原의 불과같이全鮮各地一大流行을보게된것이다.
지금世代에들어슨 靑年에겐지낸날少年시절에愛唱하던 그리운노래 푸른하늘銀河水하얀쪽배에의「반달」과함께 이 落花流水-
『江南달이 밝어서 님의놀든곳 구름속에 그의 얼골가리워 졌네 勿忘草핀언덕에 외로히서서 물에뜬이한밤을 홀로새워요』의 자장가」가 되였을것이다.
이와같이 朝鮮流行歌는 映畵小曲映畵主題歌로부터 起源하였다. 이때로말하면, 레코-드의 合理的販賣綱이完備되였고, 電氣吹込으로 레코-드의 商品價値가더욱오르기 始作한때라고하겠다.
當時歌手로말하면, 金蓮實, 姜石燕 李愛利秀, 金鮮英, 金仙草等 映畵, 演劇俳優가 大部分이며, 管絃樂伴奏는 大槪, 朝鮮唱劇이나團成社管絃樂이였다는것도 興味있는일이다.
이「落花流水」뒤미처 流行된게 姜石燕의「오동나무」李愛利秀의「메리의노래」이다.
『落花流水』『아리랑』에서 流行歌팬을얻은 레코-드 業者가 이때부터 비로소 먼저 製作한 歌曲을 活潑한宣傳에 依하여 流行케한것이 特徵이다. 「荒城옛터에 밤이되니 月色만 고요해」의「荒城의跡」이 流行한것도 이때 昭和七年頃이다.
昭和七年十月 포리도-르의 朝鮮譜第一回發賣로 李景雪의『世紀末의 노래』가發賣되자, 當時「술은눈물인가 한숨인가」를 迎合한 大衆은 이題目 그대루世紀末的 頹廢的歌謠를 歡迎했다.
「거미줄로 한허리를 얽어 거문고에 오르니 일만서름 푸른궁창아래 궂은비만나린다 서글퍼라 거문고야 내사랑거문고 까다라운 이거리가 언제나 밝어지려하는고」
旋律은 못듣드래도 歌詞만 보아 얼마나 厭世的이구 頹廢的不健全한 노래인지넉넉히 짐작할수있을것이다.
다음해 昭和八年 오-케가 第一回로 尹白丹의「長恨夢」을 내놓자, 圓盤界即콜럼비아, 빅타-, 포리도-르, 오-케, 시에론社의 流行歌亂射亂鬪期에들어섰다. 歌手爭奪戰이 始作된것도이때부터이다. 이와같이 各社競爭이 白熱化한 結果流行歌企劃의 貧困을 招來하고말았다. 이打開路로 新民謠가생겼는데, 처음 成功한것은 昭和九年末發賣姜弘植의 有名한「處女總角」이다.
「봄은 왔네 봄이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켈어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바람
아리랑 타령이 절로난다 흥 」
一時우리는 이 구수한 牧歌的멜로디-를 全鮮坊坊谷谷에서 들을수있었다.
3
그後 鮮于一扇의 「꽃을잡고」「朝鮮八景」미스코리아의「金剛山이 좋을시고」좀뒤늦어 李花子 오-케入社第一回作品「꼴망태牧童」等의 新民謠가 大好評을 받아왔다.
「꼴망태 둘러메고 소를모는 저牧童 곱비를 툭툭채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이랴낄낄 어서가자 情든님기다릴냐」
이와같은 素朴한 牧歌的인 新民謠가 歡迎을 받아오다가 昭和十一年頃부터 째스音樂의 影響으로 朝鮮流行歌는 一大變貌를 보게되었다. 流行歌가 째스音樂을 輸入攝取한 結果, 째스音樂의 明日의 希望을 잃고 발악하는거와 같은 히스테릭한 不協和音과 시끄러운「리즘」을 그만두드래도, 煽情的, 刺戟的, 瞬間享樂主義의 淺薄한 歌詞의 影響으로, 流行歌는 더욱低落하고말았다. 이때문에 歌謠題目은 無意味하드래도 刺戟的이였었고 歌詞의 野卑함은 勿論이며 에로틱한 唱法을 가진歌手가 出世를 하였다
이時代의 圓盤界는 識者의 蔑視를받아도 異議가없을것이다. 레코-드의 文化的藝術的使命은 忘却하고, 營利追求第一主義로 大衆의 賤卑한 趣味에 阿諛한 圓盤界는 「加味夫婦湯」「情든님 上書」「알뜰한당신」「總角陳情書」等題目만봐도 眉間을 찡그릴 作品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다음 끝으로 最近 四五年間流行歌傾向을 보건대, 日本포리도-르 調라말하고「道中物」의 멜로디-가 大流行하였다.
最近數年間太平의 히트盤이 全部다「道中物」라고 하여도 過言이아니다 「流浪劇團」「一字一淚」「杜鵑花사랑」다여기 屬한다.
從來의 各社 레코-드를쭉들어보건대歌謠의 테-마가모다 港口, 埠頭, 마도로쓰, 馬車, 如娘, 따위로, 우리日常實生活에서 距離가 먼것뿐이라는것을알수가있다.
4
戰時下오늘날 레코-드歌謠, 流行歌로 一八○度의 一大轉換을 하지않으면안된다.
流行歌도 臨戰態勢下의 國民娛樂으로서의 音樂, 換言하면 戰時下에 國民의 士氣를 昻揚하고 一日勞働後慰安을주는 音樂이 되어야한다. 誤解를避하기爲하여 다시 말하지만 여기 流行歌란 너도나도 다들 부를수있는 健全明朗한 歌謠를 말한다. 두말할것없이 우리는 過去의 軟調流行歌를 排擊하지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한편 健全娛樂이란 이름아래 簇出한 時局 便乘의 歌謠도 再檢討하지않으면 안된다. 勿論眞正한 時局歌謠는 絶對로必要하다. 그러나 時局만 떠들어논 無味乾燥한 歌謠는 大衆의 反應이없다.
大衆의 反應이없다면 國策宣傳도안되려니와 貴重한 材料의 浪費에지나지않다. 차라리 標語로박힌 포스터-가效果的이고 經濟的일것이다.
또한 表面 歌詞는 時局的이나 曲調는 째스橫行時代의것이라면, 이것 亦是絶對로 排擊하여야한다.
듣건대, 各社는 昨年十二月에 自肅하여 過去軟調의 流行歌를廢盤或은 製造中止處分을하였다 한다. 그리고 今後의 製作도, 眞正한 健全明朗娛樂物을 目標로 新吹込企劃中이라니, 그成果가 期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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