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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악의 권위 함화진 씨와의 문답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조선 아악의 권위 함화진 씨와의 문답 朝鮮雅樂의權威咸和鎭氏와의問答
종    류 대담 對談
필    자 일기자 一記者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36-11 昭和十一年十一月
면    수 401 401
기사
[사진] 咸和鎭氏
[사진] 雅樂隊

맑은우물같이 산듯해뵈는 가을하늘에도 아직지리한 더위의 마즈막자최가 남어있는 九月二十一日年後 비가안오면 沙漠같이 몬지나는 서울長安에 약타안인 電車와뻐쓰를타고 朝鮮古藝術探訪의 第一步를 敦化門앞 李王職雅樂部에 드려노았다. 콩크리트담장의 正門을드러서니 어듸선가 귀에익은 音律과함께 丹靑으로彩色한 朝鮮式모던建物이 맑은가을 해볓에 端麗하게 눈을쏜다. 뜰과 周圍의솔과잔듸가뵈여 構內가넓었다. 樂生五十餘名은 五年間이라는 긴歲月每日이곳에서意味깊은 古典樂의 修鍊을받고있다. 李朝時代는 最高八百名의 多數한 樂師가 있었다고하는데 現在中國에서는 오히려 斷絶된 貴重한雅樂이 縷千餘年以上 이땅에서 興盛하야 아직도 남어있음은 그價値를 뭇기보다먼저 그 奇蹟的存在임에 놀나지않을수없다. 그러나 古典的宮中樂임으로 古來로 民間과는 何等 接觸이 없었으며 今日에 누구나 西洋音樂의 趣味와 硏究를 가지여 民謠의 한句節은 다즐겨 부르는몸으로 이貴重한 音樂은 알기쫓아못하며 新羅磚丸의 조각에서 時代文化 찻는 篤學者는 一般에많으면서도 典雅優美한 이音律속에 完全히남어있는 朝鮮的情緖의 深奧를찻는이는 없게되니 遺憾이라기보다도 원망스럽고 痛嘆할 일이 아니고 무었이랴 事務室에 들어가 李鍾泰氏의紹介로 樂師長咸和鎭氏를뵈니 五十갓가와보이는 갈냥한몸에 藝術家的溫情을 얼골에띄운氏는 記者에뭇는말에 一一히 親切하게對答하여주셨다. 左는記者와의 一問一答
記者「雅樂의 創初와 沿革을 말슴하여주십시요」
咸樂師長 朝鮮의 音樂은 四千餘年前檀君時代에 始作된것인바 原始音樂의 發生한 事情은다같으나 古代의音樂은 勿論 土俗的임니다. 唐虞三代에나 朝鮮三國時代의 隋唐과는 民族間交通으로 彼此影響을 가지고 交換的으로 發達한것임니다 高麗朝에 宋나라로 雅樂이 傳入하였다는 古錄이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周時代로붙어 傳해온것임니다. 李朝에는 世宗朝에 이르러 禮樂이 完備되고 樂曲의創作 樂器의整理 改造된 新造로 大革新을 하였으며 世宗大王을 도와 蘭溪朴堧先生의 功蹟이많아서 後世樂聖이라고합니다. 李朝太宗朝에는 樂人의 數八百餘名이 있었으나 其後數次의 改革으로 現在는五十八名임니다. 樂員中 特殊한技能을 가진사람도 老齡其他로 年々 零衰하여 一時는 存廢의 危機까지 臨하였으나 大正八年李王職에서 學生을 募集하고 樂師를養成하야 至今第五回의 樂生이卒業하였읍니다.
記者「功蹟있는作曲家는 어떤이임니까」
咸樂師長 이는古來로 宮中樂이기때문에 作曲한이나 樂師나 高貴한이가많아서 例하면 世宗朝께서 創作한 樂曲이 無數하며 其他臣下가 樂曲을짓고樂器를만드렀읍니다. 高句麗朝宰相王山岳이라는이가 玄琴을製作하고作曲도 百餘種이요 新羅伽倻國嘉實王때 于勒이라는이가 伽倻琴을 案製한바 이이를第二樂聖 王山岳氏를 第一樂聖이라고 우리는부름니다. 그러나 可惜한일은이들의 樂曲이 傳하지못하고있음니다. 李朝에와서 世宗朝에 補弼朴堧先生을 第三樂聖이라고 부르는이인데 作曲과 樂器改革으로 큰功蹟을 남겼읍니다.
記者「樂書와樂曲은 어떠한것이있읍니까」
咸樂師長 世祖朝에 樂譜를刊行하였고 成宗朝에는 樂學軌範을 編纂한바 東洋音樂上 特筆할 最大의 著書임니다. 樂曲의 代表될만한것은 世宗이지으신 泰平萬歲之曲一名與民樂이라하는 七章과 長春不老之曲一名步虛子라고하는亦是世宗朝의 創作인 三章인바이는 龍飛御天歌의 歌詞에 맛추어부르는曲임니다. 이것은 다宴禮樂이고 또祭樂이라고 하는것合하야 두種類의것이 至今九十一曲, 百九十二曲各々남어있읍니다. 其外歌, 詞, 調의노래가있고 宮中舞五十二種도있읍니다.」
記者「樂器는 至今몇種이나있음니까」
咸樂師長 「樂器는 옛적에는 七十五種이있으나 今日李王家에 現存한것은 六十種임니다. 이것은 다數百年或은 數千年을지난 貴重한것인바 中國에는 이樂器가다 滅失하고 따라서 雅樂이 絶滅된것임니다 그럼으로 이는古來東洋音樂의 樂的情緖를 그대로 傳하고있어價値있는것이 되여있읍니다. 樂器는 金部十種, 石部二種, 絲部十種, 竹部十三種 匏部一種 土部三種革部十八種 木部三種 計六十種임니다.」
記者「朝鮮의音樂 其外에또없읍니가」
咸樂師長「朝鮮에는 雅樂外에 俗樂이있고 支那의 音樂이 傳來한唐樂이있읍니다 지금正樂이라는것이 唐樂입니다.」
記者「樂器로 民間에서쓰는것은 없읍니까」
咸樂師長「雅樂中民間에서쓰는것은 伽倻琴類와 杖皷等몇種있음니다」.
記者「至今巷間에도는 鉦과喇叭等은어떤것입니까」
咸樂師長「그는高麗時代의 軍樂이民間에 流行함것입니까」
記者「過去에는 一般民衆과의 接觸이없었겠읍니까마는 將來에는 어떻게생각하심니까」
咸樂師長「至今樂生을 養生하는외에 樂書를알기쉽게 編纂하고 樂曲을西洋式曲譜로고치는中인데李王職에서 하는일이니까」個人으로서는무엇이나 할수없게되었으며 將來는一般에게 公開할機會도만들고 理解에힘써 여러가지 計劃을하는중임니다 어떤이는이것을 곤처서 俗化함이어떠냐고말하나 그것은 너머雅樂을 沒理解하는생각입니다. 雅樂은雅樂으로 價値가있는것이요 俗化하면 雅樂의存在는 없어질것입니다. 至今月初木曜日에 定期演奏會가있고 十日月에는 記念演奏會가있읍니다. 그러나 라디오로 中繼放送이있는 外에는 아직絶對로 公開하지않읍니다
記者「雅樂을 硏究하는이가있읍니까」
咸樂師長「現在雅樂部以外에는없읍니다. 或日本內地서音樂家가 訪問硏究하는이가있고 理解도하는이가많읍니다. 前日中國서는 우정訪問하야 自己에는없어진雅樂을 硏究하려고하였읍니다. 貴誌를通하야많이 紹介하여주십시요」
무러보고싶은것은 많었으나 其他에대한 專門的말슴은 日後에誌上으로 發表하시겠다는 快諾을받고 職員李龍淵氏의 引導로樂器室과 敎授을狀況보았다 큰掛架에검鐘과玉板, 大小數十種의북, 絃琴琵琶玉笛等古代의 내음새가 房안에가득하다. 그中編■玉板의 癸丑壬辰後에宮中엔 이것만이남고 다른것은 잃어버렸든 古物이라고한다. 얼마나保存에 애쓴것인가는 破損하는者는 벌기三百 三年間流罪에 處하였었다는것을 보아도알수있다. 敎室에는 李朝의斯界功勞人 蘭溪 朴堧先生의 寫眞이있는바講堂의講壇에서 數人이둘러앉어 練習에情神없는모양을볼때 自然히尊敬에 머리를안숙으릴수없었다 다른敎室에는 時調等歌辭의소래도들려 마치數百年前宮中속에섯는것같이 當時의모양이 눈앞에 展開되는듯하였다. 現代文明의 都市인이 京城한가운데이러한 數千年前의 壯嚴悠長한 純東洋的音律이每日끈치 않고흘러나옴은 稀貴한일이라고 아니할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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