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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미기 양상비곡·고별의 노래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나의 도미기 양상비곡·고별의 노래 나의渡米記 洋上悲曲·告別의노래
종    류 수기 手記
필    자 홍난파 洪蘭坡
출처정보 중앙 中央
연    도 1936-07 昭和十一年七月
면    수 150 150
기사
[사진]홍난파
傷處를안고
나는 내가 米國留學의길을떠나던 前後의 日記를 더듬어가며눈물겨운追憶의 이글을쓴다
三一運動이 일어나던 바로뒤에 나는 米國留學을 해보겠다고 섯불리 旅券請求를했다가 失敗를하고, 二年後에 다시獨逸旅券을 周施하다가 또한 失敗를했다 이러한 經驗을가진나로서는 洋行이란것은 斷念하지않을수없었던것이며, 또或時 이다음에 四柱八字가좋아서 百萬長者나된다면 그때에는 別問題려니와, 그렇지도못한나로서는 부질없이 洋行이란허울좋은 이름아래에서 八字에도없는 客苦를하고싶지도않었던것만은 事實이다
이같이斷念하고지나기를 十年가까히 한五年전봄三月十二日에, 나의마음에는 뜻하지않은커-다란變動이생겼던것이다 그때의 心的變動이란, 거이잊어버리게된 지금에있어서 새삼스럽게 回顧하고싶지도않고 또여기에 다말할必要도없지마는, 何如턴그때의나로서는 平靜한生活을 해갈수 없었던것만은 至今에도 잘 記憶되는 事實이있다
그때에나는 마치 精神病患者가 轉地療養하듯이, 失戀을當한사람이 새愛人의품에서 前날의傷■을씻어보랴듯이, 이江山을떠나서 山설고물설은 萬里他鄕에서 放浪의生活을 해보고 싶은생각이났다 그리하야나는 때를 머물지않고 곧, 나의 가장信賴하는벗 D氏에게 나의心中을 吐露했던것이다. 그때에 萬一 D氏가 「글세……」하기만했드래도, 나는 그냥주저앉었을지도모른다 그러나 D氏는 내말이 채끝나기도前에, 自己가 마치 나와꼭같은 心境에있는것처럼, 아니다 오히려 自己自身이 當한것以上으로 몹시昻奮하야, 나의洋行說에 共鳴해준것이다 그날밤이다 나는 곧 米國있는친구에게 글을썼다 아무리 海外放浪이라고하지마는 터문이없이 無謀한짓을할수는없어서, 그래도 좀 安全地帶가 되리라고생각한米國으로 放浪의첫걸음을 내어놓기로決心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米國에入國하랴면 나중에는 어찌되었던間에, 于先 그나라勞動長官이 承認한學校의 入學承諾書가없이는 旅券手續을 할道理가없는것이다 그理由아래에서 나는入學承諾書를 얻어보내라도 부탁했던것이다.

B떽 一二○號室
그後 二個月이지난五月七日아침에 米國으로부터 一封의書類郵便이떨어젔다 이것은 물어볼것도없이 入學承諾書였던것이다 民籍謄本을만든다 寫眞을찍는다, 父兄의諒解를求한다, 事實文字그대로 東奔西走한끝에, 그다음다음날인五月九日에는 旅券手續에 必要한一切書類를만들어서 京畿道廳에 내어밀었다 그러나 前年에두번이나失敗한經驗을가진 나로서는, 旅券이나오기前까지는 아무에게도 이事實을 하지않기로하고, D氏나 또는 나의兄까지도 이約束만은 굳게지키기로했다.
五日이지난後 警察署로부터 旅券이나왔으니 찾어가라는 電話가왔다 그때風說에 들리기는, 旅券下付까지에는 적어도 二三個月은 걸린다고하므로, 나는 이電話를받고도 半信半疑하지않을수없었다 同時에너무도 意外로 速히나왔다는말에, 나는 一種의落望과도같은 名狀할수없는 心的動悸까지도 깨다렀던것이다 그러나 나의聽覺에 갑자기 異狀이생기지않은限에있어서는, 旅券이나왔다는것은 分明히들은事實이다 더구나 旅券受領에必要한 拾圓印紙를 사가지고오라는말까지들었은즉, 나온것만은確實했던것이다
장란하듯이 시작한일이 여기까지 進步되고보니, 못갈때못가는恨이있드래도 이事實을 언제까지나숨길수만은없게되었다 더구나 米國領事舘에가서 査證을받느니, 郵船會社에가서船室을豫約하느니, 이러한 種類의表面的行爲가 나의 米國行을 自然히世人에게 알리우고말게되었으며, 事實上 내自身도 洋行의準備에 着手하지않을수없었던것이다 그리하야 五月二十九日에는 서울있는 柳韓洋行을通하야 日本郵船會社에船室을豫約한바, 그때로부터 二個月後인七月三十日에 橫濱을出發하는배가 二個月前인그날에 二等은 벌서 全部滿員이라는데 저윽이놀레엇지마는, 그렇다고 더늦게떠날形便도못되고, 또中途에「호놀룰루」港에 下陸하야 演奏會를 하기로交涉이되어있은즉 다른航路를 取할수도없어서, 眞所謂울며芥子먹는格으로 주저넘게一等室을 豫約했던것이다. 며칠後에 東京N·YK·本社로부터 船票가왔는데, 내가타고갈배는 「春洋凡」이오 船室番號는 「B 一二○號室」이며, 그房에는 外國손님두사람이 있다는것을알게되었다.
이같이하야 나의北米留學은 確定된事實이오. 인제는 七月三十日이란 出港期日이 오기만기다리고있게되었다.

惜別의눈물
그러나 그때의나의생각은 留學이라는것보다도 放浪이있었고, 旅券手續上便宣와 그밖에 一身上의事情으로 米國을擇하기는했지마는, 實상인즉 米洲를 거처서 歐羅巴大陸을 遍歷해보랴던것이다. 如何間情깊은故國山川을 등에지고 山설고물설고無依無親한 異族의나라로 떠나랴는나에게있어서는, 더구나 還鄕할期約조차 茫然하고보니, 어찌故國에對한 한줄기 惜別의눈물이 없었을것이랴. 六月十六日밤 京城公會堂에열렸던 告別演奏會때, 順序마지막에있던 「告別의노래」를 演奏할때에는, 事實上 나의눈에서는 눈물이흘렀던것이다.
떠날날이 차차가까워짐에따라서 여러親友들의送別의잔채도자젔고, 家具書冊等의 處理에도多忙하였을뿐아니라, 渡米以後의生活費나 學費를한푼이라도 더만들어보랴기에, 낮이되면 눈코뜰새도없었지마는, 그러나늦은밤 외로운房안에 나의寢床에 홀로누었을때에는, 까닭을모를만치 錯雜한情懷에서 솟아나는눈물이 벼개를적신적도한두때가아니었던것이다 남은外國에 가지를못해서 애를태우는일도 있는데 나는 永年의宿願을 풀게된 이때에있어서 무엇이 그다지 슬펐던가. 이것은 참아 쓸수없는눈물의 記憶이지마는, 그러나日記에歷歷히씨어있는것을 그냥黙過할수도없어서 새삼스럽게 울렁거려지는가슴을 누르고서, 그때의 나의心境을 輪廓만그리어보련다.

玉姙이와錦榮이
그때의나에게는 가장 사랑하는세사람의女性이 있었다 하나는나의親조카로 나에게 가장貴엽게굴고 따르던當年二十一의玉姙이, 하나는 나의弟子요 同時에義妹로 내일을爲하야, 特別히 나의將來를爲하야 誠心것 애써주던 當年二十一의錦榮이, 그리고 또하나는 나의唯一한異性의 동무로 나와一生을가치하겠다는 約束까지한K孃. 그런데 三月十二日이란날은 K와나사이에아무不滿, 아무猜疑, 아무不實, 아무도齟齬없이, 말하자면 서로 눈물을흘려가며 서로헤어지기를哀惜해하면서도 그러나 前날의約束을 解消하지않으면안될 運命에 부디쳤던것이다 이것은 確實히 運命의神의 惡戯였던것이다. 意外에 생긴이事實은 玉姙이와錦榮이의 어린가슴에도 적지않은 愁歎과 落望을던저주었다. 勿論이두少女도 K를잘었었고 K의사랑도많이받었으며 또내가K를알게된것도 말하자면 이두少女의아릿답고 고마운생각에서 비로소 싹이트게된것이다. 그러나 서로원망하고미워하고 辱하고 헤어진것이아니오, 울며원통해하며 헤어진일인以上 玉姙의純情도 錦榮이의至誠도, 여기에는 何等의効驗을보일수가없었다. 그러므로 이두女性은 每日每夜틈만있으면 내게찾어와서, 나의쓸아린心中을위로해주기에 애썼던 것이다. 이것이, 이 고맙고아릿다운 생각이, 後日에 나의마음에 永遠토록 사러지지못할 큰가시못을박어줄줄이야 그애들인들어찌알었으며 낸들어찌알었으랴.
偶然히한일도 어떤때는 偶然으로생각할수없이되는적이많다. 나의寫眞「알범」의어떤장에는, 세사람의 寫眞이붙어있다. 한복판에는내것, 왼쪽에는 錦榮이의것, 그리고 바른쪽에는 玉姙이의것이. 俗談에는 세사람이寫眞을박으면 中央에있는사람이 먼저世上을떠난다는 迷信의말이있지마는나의境遇는 그것과는 正反對이었던것이다. 먼저 오른쪽에있던玉姙이가 世上을떠나고, 두어달후에는 왼쪽에있던 錦榮이마저 他界의사람을 當할때에, 나는 이 俗談이 適中되지않었음을 얼마나슬퍼했으랴!
無爲의내한몸으로 피어오르는 꽃봉오리같은 이두少女를代身했던들 얼마나 기쁜일이었을지! 그러나 人事는在天이라는데 生死를 어찌 사람의맘대로할것이랴. 이것을생각하면할스룩 悲痛絶痛할뿐이다.

玉姙이의鐵道自殺
四月九日! 내가슴의피묻은傷處가오히려 鮮麗한 이날에, 나뿐만이아니라 왼집안이 愛之重之하던 玉姙이는 至極히도 악착스러운주검을 遂行했다. 제父母의 悲痛해하는情狀을참아볼수없어서, 나는 내손으로 그애의遺骸를추려가지고 生前에 처음보는 火葬場의 무시무시한紅焔속에다가 내손으로 불을살을때에, 사람이 이런때에 미치지않는다면 어느때 미칠것인가 故人의同窓되는 어린少女들의입으로부터 痛哭과함께 섞여나오는 讃頌歌의소리는, 이世上의 至悲至慘을 그대로그려놓은 最大悲劇그것이었다.
이날부터이다. 내가 밤의長安거리를 定處없이 쏘다니기시작한것은- 나는 事實로 半狂亂狀態에 빠졌던것이다. 愛人과의本意아닌別離, 至愛하던조카의絶慘한橫死, 여기에서 받은 나의마음의 傷處는, 定向없는거리로의彷徨과 새벽하늘의 陰險한寒氣에 ■■■惡化하야, 나는그날中旬에 肋膜炎이란 듣기에도 무시무시한病魔에 사로잡힌배되어 드디어 世富蘭偲病院病床에 들어눕고야만것이다. 그러나 多幸인지不幸인지 나의病은乾性이오 初期였던까닭에 十餘日後에 退院은했지마는, 그러나 起居飮食에있어서 常態를벗어난지이미오랬고, 이것이 하루이틀繼續되는동안에는 胃膓病을倂發하야, 一日三食을제대로한날이없었으며, 橫濱서 배타던前날밤까지도 미음이나 粥으로겨우 連命해가던것이었다.

告別演奏會
이렇게 지나는中에서도京鄕數三處에 告別演奏會를열었으니 이것은 收入을爲하야서보다도 平素에 나와가깝게지나던 동부들을 떠나기前에 다시한번만나보기爲하야 한것에不過하였다. 六月二十七日밤에 木浦에서 演奏會를열고 그곳敎會病院에 在職하던 나의舍姪載裕君과함께 大邱로와서 二十九日밤에 大邱劇場에서 다시演奏會를열었었는데, 그가木浦로돌아갈汽車時間의關係로말미아마 演奏하다말고 劇場뒷房에서 載裕君과 分手相別할때에 우리 叔姪은無言中에도 이것이永離別이나아닌가하는생각이나서 男兒로서의悲壯한눈물을 먹음고서 앞날의 成功과再會를 心祝할뿐이었고, 아무말도 입밖에 내지를못했던것이다.
勿論 이두곳의演奏會에도 나는旅舘의 病席으로부터 몸을일쿠어가지고 出演했지마는, 京城에돌아온後에는 身體의衰弱이 더욱甚하야, 事實上 그때나의생각으로는 出航期日前에 어떠한일이생길지 豫測키어려웠던것이다. 바로 그前後해서 일어난일이다. 京城에서 告別演奏會를열던 六月十六日을二三日앞두고서, 錦榮이는 偶然히得病하야 자리에누은것이 하루이틀갈스룩 病勢는점점惡化하야 到底히 집안에서 治療를시킬수는없으므로, 畢竟은 醫專病院에入院시켰던것이다. 아아, 그러나이무슨因果일가! 그애의病은 듣기에도소름이끼치는 膓質扶斯였던것이다. 每日 看病을하러가던내가 木浦大邱地方의 演奏旅行을마치고, 또다시七月四日에 平壤에서 告別演奏會를하고 돌아온때에는, 그의病은 이미生死의分岐点에서 一進一退하야 가엷흔命脉이 看病하는親戚들의 하염없는눈물을 자아낼뿐이었다.

錦榮이마저가고
七月十二새벽! 밤새도록繼續되던 惡夢에서 눈을채뜨기前에, 錦榮의死를 알리우는놀라운 悲報는 기어히날러오고말었다. 玉姙의 慘酷한주검을본지 百日이못되어, 玉姙이보다 못하지않게사랑하고貴해하던錦榮의주검을 또當하고, 또다시 내손으로棺을 들어다가 지긋지긋한그火葬場의 같은 火口에다가집어넣어 灰色煙氣를 만들어버리고온나는, 정말로 더살고싶은각은寸分만치도없었던것이다. 世上思慮하단들 어찌 人生처럼無常할가보냐 첫새벽부터 아무것도먹지못하고 울며불며갈팡질팡하야 겨우葬式을마치고 집에돌아온때는 밤八時三十分頃이었다. 終日토록 비어둔 뱃속에서는 應當, 營養物을要求함도 甚했겠거늘, 그러나 나는 이것저것 다잊어버리고서도 무슨 精神엔지 바이올린을끄내어서 失神한사람모양으로 밤이깊어가는줄도 모르고서 한-것 켜(彈)다가 그대로자리에쓸어젔던것이다.
아무精神없이, 아무생각없이켠, 이曲調가 斷膓의悲曲이되었던것은 그이튼날에야 비로소알게되었다. 내가留하던 집옆에있는 中央保育寄宿舍의舍生들과舍監先生은 이밤에 켜던 曲調만은 어찌도슬피들렸던지, 내房밖 窓밑에와서 밤이늦도록울었다는 말을들을때에 나는 나의이曲調가 애처럽게世上을떠난 故人의靈을 慰吊하였으리라고 믿어져서 슬픈中에도 스사로마음의慰安을 얻었던것이다.

呻吟하는K
이러한不幸이 繼續되는동안에 또한便으로 나의마음을아프게한것이있었으니 그것은 다른것이아니라, 내가前날에 사랑하던K孃이, 내가病院으로부터나온지 열흘이지나지못하야 내가앓던病과꼭같은 肋膜炎으로 婦人病院에入院했다는 消息을안것이다. 내가알고 내가사랑하던 三人의女性中에서 두사람은이미 他界로가버리고 남어지한사람마저 病床에서오랫동안呻吟함을볼때에, 비록 그는나와 사랑의因緣은끊었다고하지마는, 며칠前까지도나의愛人이었었고, 또며칠後에는 그가사는이江山에서 내가떠나가리라는것을생각하매, 人情上으로도 모른척하고지날수는없었다. 가끔가끔 그러나 거이每日같이 그의病席에 찾어가서 問病을하였지마는 그러나 내가K孃을찾어다니는것을 눈치챈사람은없었던것이다.
떠날날이 가까워온七月二十日頃부터는 每日每夜親友들의 情다운作別의잔채가뒤를이어서, 그德分으로나의心痛은저윽이 가러앉은것같았지마는 그러나 그것은단지表面的에不過한것이오, 속마음에는 미칠듯이불붙듯이 일어나는슬프고아픔이 쌓이고뭉켰다가는, 밤中이면 한꺼번에 복받처올라와서 가슴이 터질듯泰山이문어지는듯하였었다
이같은心境속에파묻히어 極度로衰弱해진몸을가지고 萬里海外에 客苦의길을 떠나게된나는, 앞날의어찌될것은 생각할餘裕도없었겠지마는, 그러나 오직주검을찾어서 주검의나라로가는것과같은 흐릿한생각만이 나의心中의 거이全部를차지하고있었던것이다.

放浪의스타-트
七月二十五日밤九時五分, 多數한親■의餞送裡에 나는 京城驛을등지고 우렁차고도 몹시구슬피들리는汽笛一聲에 머나먼放浪의길의첫걸음을 내어놓은것이다. 龍山驛까지 쫓아와준 D氏와마지막으로 握手를할때까지도 나는 몹시興奮된채로 나의意識을 거이잃어버리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다시내자리에돌아와서 홀로히않게되자마자, 心眼에서 솟는눈물은 肉眼에까지 뻗혀올라와서 두뺨을 적시며 새삼스럽게도 故國에對한愛着心과 永別이나하는듯한悲愴한情懷가 나의좁은가슴을 빽이는것같았다. 그이튼날 아침, 連絡船에오른나는 떠나가는뱃머리에나와서서, 안개끼인釜山港의 희미하게사러저가는埠頭를 얼마나 오랫동안바라보고있었던지! 미워도내곳이오 싫여도내땅이다. 하물며거기에는 나를 낳고길은 父母가계시고 나와가치자라나던 동무들이있고, 나의女神같이 貴하고重하게알던 前날의愛人까지 있었음에리요!
그러나 비록一時는斷念까지도했었지마는, 그래도 心中에 恒常憧憬하던歐米의天地를 구경하게되리라는것을생각하며 故國의江山이 차차멀어질스룩 새로운勇氣와 조바심처지는 好奇心에 마음이끌리어서, 一種의痛快한맛을 느끼지않음도아니었던것이다.
船室로들어온나는 긴-한숨을내어쉬며 좁디좁은 寢臺에들어누었다. 어제저녁에D氏가손에쥐어주던 그의 名啣을다시끄내어들고 두번세번 다시읽으니, 읽을스룩 새로운勇氣와굳세인마음을 얻게되었다. 거기에는이같이씨워있었다.

오른길높곤해도 그우에도또몃층을
늦은양바쁜걸음 氣더욱못막을손
上上峯오르는길 마음모아받드네

몸부대평안하소 마음또한기쁘소서
품은뜻이뤄지고 다시더욱크사이다
그후에一長釼들고 周遊天下하옵소

나는다시感激했다. 더구나 무슨일에나 感激하기쉽던 그때의나로서는 名啣에적은 이짧은노래에 얼마나많은感激의 눈물을뿌렸던지 그러나아무리感激하고 아무리勇氣를얻었다치고라도 그때의나로서는 몸평안해지고 마음기쁘게될때가 다시올것같지는않었다.

그리운거리
二十七日밤에橫濱에 倒着하자 곧 津田屋旅舘에 投宿하고, 이튼날은 일직이東京가서 母校도찾어보고 그곳있는동무들도만나보았다. 만나는이마다祝賀를하고 부러워도했지마는 나는 그런꼴을當할때마다 故國으로 돌아오고싶은생각이 불일듯했던것이다. 이같이도 떠나기싫은길이것만도 떠나지않으면안될 이 내身勢를생각하니, 米國留學이라는 훌륭한看板을 집어치우고, 아무도모르게鬼神도모르게 北海道修道院으로가서 餘生을눈물과 한숨으로 보내고도싶었다. 그러나이것은어디까지든夢想이오 空想이다. 來日모래면山뗌이같은 크고훌륭한배에 몸을실어, 넓으나넓은太平洋上을나르는새와같이橫斷할것을 생각하매 그얼마나 痛快하였을가. 이리생각하면 눈물이요, 저리다시생각하면 기쁨이다. 이喜悲交叉된深淵에서 헤매던나는 무엇이되거나 어서바삐洋上의몸이되고싶었던것도 事實이었다. 늦은밤의東京의거리를 或은 徒步로 걷기도하고 或은 택시로달리기도하야, 前날東京留學時代에보던 그리운 거리를 삿삿치휘돌아서는, 子正이훨신지나서 다시橫濱旅舍로돌아갔다. 旅舘主人에게 乘船에必要한모든일을 咐託하고, 왼終日東京에서묻혀가지고온먼지와땀을 시원스럽게씿어버린후 몃달만에 처음으로 단잠을잤다.
이튼날은다시東京으로가서, 나와同船할布哇靑年會總務 李泰星氏夫妻와및 東京靑年會總務崔承萬氏를 찾어본後, 그분네들과함께 저녁을먹고나서는 銀座의밤거리를 다시徘徊했다. 그러나布哇, 桑港等의未知의大都市가 눈앞에보이는것같은그때에, 東京쯤이다무엇이며 銀座에서 무엇을볼것이랴는 생각이나서, 그길로 곧 旅舍로向하였다. 壹等船票를가진까닭에 檢疫이고무엇이고 다없을줄만알고 왼終日돌아다니다들어가니, 旅舘主人은 강둥강둥뛰며야단이다. 種痘를하지않고는배를타지못할터인데, 이번배의乘客들은 벌서午前中에種痘를넣었다는말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일을至今에어찌할것인가. 한일없이그이튼날아침일직이 檢疫所에가서 特請을해보기로했지마는, 그러나 心中에는 저윽이未安했었다.
七月三十日! 배떠날날은왔다. 種痘만한다면 배탄것이나다름없게된나는, 일직이일직이 서두룬것이 午前十時가지나서 種痘塲으로갔다. 그러나 거기에는醫師도아무것도없었다. 失望落膽! 事實로나는그날배를놓지는줄만 알았던것이다. 곧旅舘으로電話를걸고 主人을請해다가 그와함께 N·Y·K·會社로가서이事由를말했다. 알고보니쓸대없는걱정이었던것이다 壹等客은種痘를해도그만이오 안해도그만인것이다 또萬一必要하다면船中에서도 언제든지할수있다고말했다. 그래도 한번속아본마음이라 배를타기前에는 安心이안될것같애서, 곧짐짝을배에실리게한後, 点心먹을생각도없이 일직이배로뛰어올라갔다 米國에入國할때에는入國稅를받는法이있다고 稅金을 미리請求하므로, 經驗없는나는 그네들이 하라는대로 一一히應한後에, 水上署員의 簡單한旅券檢査를치르고 春洋丸甲板에 오르니, 때는午後一時十分이었다

朝鮮아잘있거라
出航時刻인 午後三時가가까워오자 굉장하게도우렁찬汽笛이 엄마찾는송아지울듯이 橫濱埠頭를 흔들어대며 뱃방석같은 銅鑼를뚜들기는소리가마치 戰時狀態를 聯想시킬적에, 埠頭에 列立한數千의餞送客과 甲板에나와선 數百의船客들사이에는, 五色이찬란한테잎을 던저주고받고하야, 검푸른물우에는 五色의紙橋를만들었다. 어떤젊은 婦人이 던진 테잎의한끝이내앞으로날러올때에 나는서슴지않고덤썩받어쥐었다. 勿論 나에게던저준것은 아니겠지마는 그러나 내것이아니라고 고지식하게 물아래떨어트리고싶지는않었던것이다. 그때에 나의머리에 電光과같이 떠오른생각은 아아, 萬一나에게愛人이있어서 그가 이테잎을던저주고, 내가그것을받어들었다면, 얼마나 기쁜일일가······할때에, 나의눈은갑자기흐리어젔었다. 그러나本是 이길이 그러한달콤한旅行의길이아니었던以上에, 비록 그것이率直한眞心의發露라한들 나에게는 可當치도않은妄想이었던것이다. 나는 쥐었던테잎의뭉치를 슬그머니힘없이놓았다. 그리고는 그것이 물우에떨어질때까지 淚眼으로 지켰다. 아아, 물우에 풍덩떨어저들어갔다가 이윽고 다시솟아나올때에, 나는얼마나後悔하였던가. 그러나 이러한女性的의 쎈치맨탈한 생각만을하고있을수는 없었다. 午後三時正刻이되자 嚠喨하게울리는 오-케스트라의演奏와 餞送客들의 아우성치는萬歲聲에, 배는徐徐히그巨體를 움직이기시작했던것이다.
한참동안 아마三十分以上이나從船에게 끌려가던 母艦春洋丸은 넓은바다밖으로나갔다가 다시한번雄壯한汽笛을불더니만 自體가航行하기를시작했다. 二三日前에連絡船에오른때는釜山港을바라보며 釜山아 잘있거라, 朝鮮아 잘있거라를 불렀지마는, 지금이때에는 橫濱아 잘있거라, 東洋아 잘있거라를 心中에 웨치게될때에悲壯하다할지 痛快하다할지, 무엇으로 名狀할수없는 無限大의感激과함께, 쏟아지는눈물은 一對의溫瀑을 이루었던것이다. 이윽고눈물을씻고서 甲板우의安樂椅子에 걸터앉어서 아물아물 나의眼界에서 사러저가는橫濱港을바라볼때, 내눈에는 오히려日本의天地가 보이지마는 내몸은 이미太平洋上에뜬몸이오 이윽고 내발이 땅에닿는때에는 그것이橫濱도아니요 釜山도아닌것을생각하매, 슬프고섭섭한中에도 이제야사는듯한삶을 맛볼것같고 自由의天地에 呼吸하는것같애서 젖은두눈이 채마르기前에 會心의微笑가 떠올랐던것이다
나는나의船室로들어갔다 서울서船票를살때에, 내가起居할船室에는 二人의外國人이 同乘하리란말을 들었으므로, 나는그二人의外國人이 어떠한사람인지 만나보고싶었다. 내가 미리짐작하기는 그外國人은 必是歐米人이려니했고, 또그렇다면航海中에 英語會話라도 練習을할수가있으려니했던것이 及其也만나보니 그들은나의豫想과는 아조딴판이었음에 나는적지않게失望했다.
(未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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