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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한 딸의 수기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배반한 딸의 수기 背叛한딸의手記
종    류 편지 片紙
필    자 강덕자 姜德子
출처정보 중앙 中央
연    도 1936-06 昭和十一年六月
면    수 244 244
기사
[사진] 六年前의姜德子
六年前―집과父母와兄弟와벗과學校를다 내버리고오직 참다운藝術에서 잃어버린自己를찾고저裵龜子門下로들어간 舞姬·姜德子孃의 그아버지 姜■(前培材高普學監)씨에게올리는글월.

裵龜子樂劇團 姜德子

양당의슬하를 떠난지도 어언간여섯해가 흘러갔나봅니다. 오래간만에 옛땅을 다시 밟게되오니 눈에 부디치는모든것이 어식의감회만 자아나게 할뿐이로소이다.
오늘저녁은 유난히도 낙화를 재촉하는 궂은 비소리가 며칠 안남은 공연에 초조한맘을 여러갈래로 흩어주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러한밤 지난간날에 맺히고 맺힌실마리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보려고 아버님을 향하와 붓을 들었사오나 무슨말슴을 들여야 좋을지 가슴이 막막하여옵니다.
아마 아홉해 전인가봅니다. 제가 배화여고를 졸업할때니까요. 선생님들은 음악에 재주가있으니 꼭 음악방면으로 나가라고 격려해주시고 집에서는 언니가 그때 이화학교음악과에재학중이므로 둘식이나 돈많이드는 음악을 배울수 없는형편이니 햇수가짧고 음악에 다소 가까운길인 보육학교에 들어가라고 하섰지요. 그리고 보육을 맞힌후에는 음악을 다시 배우라는 이를테면 보육학교는 임시로 들어가라는 식구들의 기마킨 하소였습니다.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고 남들이 천재라고 일컫는칭송을 묵히기 아깝기로서니 세살먹은 철부지 아니고서야 집안사정을 번연히 알면서 음악을 배운다고 어찌 뻗힐수있었으리까
그래 여러가지로 돌처 생각한끝에 중악보육학교로 들어갔던것이아닙니까.
아버님
보육학교서는 어린이를 상대로한 율동을 꽤많이 가르킵니다. 여덟살 일곱살때부터 예배당에 무슨때가돌아 기만하면 독차지 하다싶이 유히창가를 했었던관게로 그런지는몰라도 오히려 창가보다 유히를 좋아했던터이라 율동시간이 제게있어서는 제일반가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맞는춤이 제게 만족을 줄리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점점 무용의애착을 불타게 할뿐이었습니다. 일구월심에 어떻게해서던지 하고싶은 춤을 꼭 배우고야 말겠다는 엉뚱한욕심을 가지게되니두학기만있으면 졸업이란것도 돌아볼여념이 없었던것입니다.
그때 마침 뜻하지않던 서광이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안병소(安柄昭)라는이가 배구자(裴龜子)일해중에서 음악을 돕고 있을때 피아노 반주를 여러번해주게되어 간접으로 배구자를 알게된것입니다
그전부터 배씨의춤을 좋게 생각한데다 더욱 제무용렬을 강하게 맨들어준것은 배씨의 사근사근하고도 친절한태도 그리고 지금이라도 늦지않었으니 의식걱정은 하지말고 어서와서 배우라는 이고마운말을 들을때 그만 미칠듯이 기뻤습니다.
열아홉살먹던해 가을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직 예배당 가는것처럼 아무것도 가지지않은채 집을나와 신당리에있는 배씨의연구소로 걸음을 빨리했습니다
머리를 깎고 춤배우기를 시작한 이튼날 어머님께서와 언니가 오셔서 이런 망칙할데가 어디있느냐고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여러번 권하실때 저는 죽기를 한사하고 뺃대었던것입니다.
아버님
그때 아버님께서는 딸의 인연을 끓으셨을줄 여식은 잘알고있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은 애틋하신정까지차버리고 그처럼 대답한것을 단행한 생각을 하오면 예술욕이 얼마나 강했음을 짐작하실것이외다. 모든사람의 비웃음도 제게는 아무런 감각을 주지않었습니다. 오직배우겠다는 이마음밖에는 아무생각도 저를 침범치 못했던것입니다.
집에서 나올때 평생토록 찾지말으시라는 글을 써놨기때문에 식구들은 상해같은데로 멀직이 간줄아시고 찾을생각도않으셨던터인데 제빠른 신문의뉴쓰를읽으시고 그같이 찾어오셨지요.
아버님
그때 아버님께서는 여식의 소행을 얼마나 자탄하셨으리까. 아버님의 명예 지위 이런것들이 어려서부터 마음속깊이 굳어진 무용렬을 시키기는 너무 미지근한물에 지나지않었습니다. 오히려 아버님의 완고하신 사상이 이열을 더더웁게맨들어주었는지도 모르지요.
아버님께서도 지금까지 기억이되실겁니다. 제가 열네살때일입니다. 최승히가 석정막(石井漠)을 딿아갔다는말을듣고 그때부터 아버님의양해를 얻어보려고 무한이 애를썼지만 양반의집안에 이런자식이났다고 괴변으로 생각하시는 아버님께서는 이길을 단념시키기 위해서 음악을 배우라고 권하셨지요.
조선안에서는 이화전문 음악과같은것을하고 기껏해야 선생밖에 되지못하는 그런 좁은 범위의길을밟는것만본 저는 언니처럼 음악을하고싶지 않었던것입니다. 그리고 보육학교 다닐때도 여러선생님 동무들은 무용으로 나가면 성공하리라고 많이들 격려해주었답니다.
일심정력이 무용에만 쏠린제에게는 아무것도 귀한것이없었습니다. 오즉하면 오남매중에서 제일 사랑을받던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는것도 조금도 애석한맘이 없었겠습니까. 모든잡념을 일소해버리고 오직 무용에만 충실하려던맘은 지금생각해도 끔직이 장한일이라 아니할수없습니다. 어머니와언니가 찾어오시는 도수가 잦을수록 더 굳은결심을 짓게되고 나중에는 꼭 해야할 책임감까지 느끼게되어 무용이 정말 제가해야만할 천직처럼 생각되었답니다.
아무것도없이 집을떠나 왔으니 고생인들 오즉 되었으리까마는 쓸아린고생이 엎눌을때마다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맘에서 무용에대한애착은 그반비례로 점점 높아갔습니다.
아버님
신당리로온지 반년도못되어 중앙관(中央舘)에서 첫출연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배운지 얼마되지도 않었고 무대에 나서기가 처음이되어좀 어색한점도 있었겠지만 남들이 칭찬한것은 그만두고라도 제자신으로도 챙피할지경까지는 가지 않었던것 같습니다. 그때 푸로그람에 제사진이 난것을 보시고 출연하는것을아신 어머님께서는 배씨에게 제발 출연만 하지말도록해달라고 애걸하실적에 저역시 출연은 하지않으려고 했었습니다마는 배우기만하고 출연을 하지않는다는것은 결국 부질없는 잠고대에 지나지못할뿐이었답니다. 자식으로 인정하시지 마시라고 여러번 말슴들였건만 끝끝내 간섭을끊지않으신것을보면 부모님께서 자손들을 생각하시는 정은 다함이 없다는것을 더욱깨다렀습니다. 하도 집에서 야단들을 하시니까 배씨는 집으로다시 돌아가라고 여러번 권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렇지만 한번먹은맘은 이보다더 심한일이 생겨도 움직일리 만무했습니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괫심한 계집애라고얼마나 탄식하셨으리까.
[사진] 노래하는姜德子
남선순회(南鮮巡廻)에 길을떠난지 열흘이 남짓해서입니다. 배화학교다니던 동생에게서 어머님이 다소맘이 돌아서신것같으니 집에대한염려는 추호도하지말고 연구에 게으르지말라는 감격에 넘치는 편지를읽고 얼마나 좋았던지 한참동안은 얼빠진사람처럼 멍하니 앉어있었답니다.
각지방에서 환호의기쁨을 맛보았으나 호사다마로 갑자기 몸이약해져서 반갑지않은 늑막염이란 병명의 진단을 받고나니 격렬되었던맘이 딱풀리어 탄력을잃은 맘은 고무줄처럼 늘은해진채 그래도출연에 빠지지 아니할욕심에 가는곳마다쫓아다니며 치료를하였습니다마는 너무 여러곳으로 다녀서그랬던지 좀채로 병은 낫는기맥이 보이지않어 모든것에 대범하고 꿈꿈해서 고집많은 사내같다는 별명을 듣는 저이지만 슬그머니 애가씨었습니다.
이것을알은 동생이 어서 집으로와서 치료하라는 편지를 잼처 보냈을때 별로 연연한정을 느끼지못하는 성격이지만 감사의눈물을 흘리지않을수 없었습니다. 부모형제들의 그두터운사랑을 그대로 받기가 너무 황감하여섭니다. 부모님의 말슴을 끝까지 거역한 불초한 자식을 꾸준히 보살펴 주심을 생각하올때 백번죽사와도 오히려 죄가남고 클것이외다.
집에 다시가지않기로 작정을했고 아무리 고집이센 저로서도 다시 따뜻하신 부모님의 슬하를 찾지않을수 없었습니다. 궂은일에는 동기요 좋은일에는 남이란 속담을 새삼스럽게 외이면서 꼭 이태만에 어머님께서 동생들만 데리고 거처하시던 서대문정 집으로 왔습니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내자동에 게시므로 집에까지와서도 뵈올길이 망연한듯 했습니다. 먼저 아버님을 찾어가뵈려고 했아오나 아버님의뜻을 그처럼 어기고 있으면서 무슨 염체로 다시뵈올 낯이없어 남모르게 가슴만 조리고 있었답니다. 집에와 있은지 거이 반년이 넘었을때 어느날 아버님께서 보실일이 있으신지 잠간 서대문집을 들르셨지요 그리고 저를 발견하시자 하시던 꼭 한마디 말슴
『그래 편지 한장도 없니?』
이말슴은 너무 심각하고 침통하게 들렸습니다 그말슴을 듣던순간 제가슴은 갑자기 무거운 납덩이가 솟는것처럼 뭉클 했습니다.
어머님의 살들하신 간호와 형제들의 지극한 정성으로 일년이 다가지않어 건강이 회복되고보니 앓던때심정과는 판이하게 새로운용기가 북받처 올랐습니다.
그때 어떤 극단에서는 집에서정양하고 있는것을 어떻게 알었던지 저를 끌어가려고 여러가지 수단을 다 썼습니다마는 극단같은데는 들어가기가 싫어서 거절하고 말었지요. 또 얼마있다 축음기 회사에서 취입해달라는 청이들어 왔을때 어머님께서와 언니는 이런 좋은기회를 이용해서 무용을 아주 단념해버리고 맘을 바루 잡으라고 여러번 타일르섰습니다. 아마 아버님께서도 차라리 이길을 밟는것이 나으려마고 생각하셨겠죠. 이 찬쓰로써 앞길에 무슨 광명이 올것을짐작하고 곧 취입할것을 약속한다음 현해탄을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동경을간김에 좀 톡톡이 배워볼생각으로 취입을마친후 송죽좌(松竹座)에 시험을보아 합격이되니 반성공이나 한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이곳에서는 모든것을 자비(自費)로하게되는고로 경제적 곤난은 이루말할수없었답니다. 객지로 여러해 돌아다녀도 이처럼 곤궁하게 지내기는 처음 당하는일이었습니다.
[사진] 오페라의姜德子
아버님
그러나 그까짓 물질의 고통같은 것을 못참어서야 어찌 큰성공을바랄수 있사오리까. 좋은선생을 만나 참다운 예술을 배우는것이 이모든 고생을 이기고도 남음이있으리라고 제자신을 완성케하기에만 일심정력을 다 기우려 왔습니다.
송죽은 학교제도여서 이고생의결정으로 거기서 얻은것은 많습니다 주로 음악을 배웠지요. 집에서는 또 이런소식이 날러왔습니다 이왕 동경간 길이니 학비를 보내줄게 음악공부를 시작하라구요 그렇지만본래 제뜻이 음악하는데 있지않고 또 참아여유없는 집안돈을 긁어다가호화스런 음악공부를 하기는 제양심이 허락지 않었습니다.
그후 얼마 안있다가 배구자일행이 동경으로 왔음을 기회로 다시 옛선생을 찾어 그들과같이 순회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횡빈, 대판, 신호, 동경 이네군데만 늘 돌아다녔는데 가는곳마다 동포들의 열렬한 후원과 격려의글이 비발치듯 들어올때 그들이 원하는대로 자아를 살리는 예술가가 되려고 여러번 결심했습니다.
아버님
배씨처럼 처사에 밝은이는 드물것이외다. 지금까지 만 사년을 가치있는동안 한결같이 제앞길을 위해서 무진히 애를 써주었답니다. 그리고 제게 대한 이해를 제일잘해주는 분도 이분이시랍니다. 남들은 더욱 조선안에서는 이런 무용같은것을 한다면서 타락의 무슨 파문을 짓지나 않을가하는 색안경넘어로 보는것이 보통이지만 사실그것과는 전연 반대로 이생활이 극히 단순한데 저도 여간 감복했던바가 아닙니다. 남녀 교제의 관한 모든처리는 배씨가 맡어가지고 하므로 조금도 그릇된길을 밟지 않도록 잘지도를 해준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이곳 와있는동안 한번도 그런 불상사는 생기지 않었습니다. 이런 지도밑에서 남다른 역경의길만 걷는 여식에게는 연애나 결혼갈것은 꿈에도 생각해본적이없습니다. 어려서 말광냥이 그대로 지금도 열두서너살 기분에서 살고있답니다.
아버님
세해만 더있으면 환갑이 돌아오실 아버님을 뫼시고 있기는 제처놓고, 지금까지도 아버님 맘속에못을 밖고있는여석은 그래도 어렸을때부터 늘 직혀오던 그 신념만은 그대로 가지고 있음은 믿어주십시요 몸을삼가고 말을귀히쓰라는 그리고 몸에 보물을 지닌것처럼 늘 조심하라시던 아버님의 말슴은 깨어있을때나 잠들때나 늘 간직하고있습니다. 어린뇌에 깊이 삭여진오직 한가지 신념은 걸어온길과 장차걸어갈길에 빛이될것이외다. 저는 언제나 양심에 모순이없는 생활을 하는것으로 목표를 정하고있습니다 또 제가 입때껏 걸어온길이 구박과 구속의길이 아니고 이해 많은 생활이니만큼 이앞으로도 이것을실행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으리라고믿습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지금이라도 이길을버리고 집으로 가는것을 기뻐하시겠지만 길을돌릴생각은 손톱만치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무용을 배우려한것이 레뷰로 (배구자일행은 레뷰인까닭에) 길이 갈리게되어 다소후회가 없지않사오나 이왕 잘못한것을 자꾸 생각할필요도 없고 이앞으로는 그어히 무용을 연구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뜻을일울기회가 오리라는것을 기대하면서 꾸준히 나가렵니다. 그저 적극적으로 배우고 연구하는것이 저의 할 의무입니다. 그래서 제참다운 길을 발견하려하옵니다.
[사진] 춤추는姜德子
아버님
그러나 누구던지 저와꼭같은 환경에서 이런길을 가려는 동무가있다면 어떻게해서라도 그길을 피하게 맨들어주렵니다. 아무리 예술을 중대시하더라도 다소 환경에 순응하여야지 너무거슬려만 올라가려는 고집에 흠집을 알고보니 그것이퍽으나 슬기없는것처럼 생각되옵니다
아버님
꽃을몰던 비소리도 차차 잠들어갑니다. 오래지않어 명랑한 달빛이 구름을헤치고 기어나와 이창에 입맞훌것입니다. 지나간일을 대강이라도 끄적거리고있으려니 맘이 행결 가벼워 지는듯해서 마치 오늘저녁 하늘에 변동과 쌍을 채우는것 같습니다.
아버님
이제로부터는 더욱 이왕걸어온힘에 몇갑절 튼튼한 무기를 들고서 순결한예술을 위하야 제 미약한몸이나마 다 받혀 불효막대한 허물을 시처볼가하옵니다.
병자오월초나흘 여식덕자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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