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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을 구하라―소위 안기영 「사련」 사건의 변―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가인을 구하라―소위 안기영 「사련」 사건의 변― 歌人을救하라―所謂安基永「邪戀」事件의辯―
종    류 논설 論說
필    자 백철 白鐵
출처정보 중앙 中央
연    도 1936-06 昭和十一年六月
면    수 144 144
기사
事實 우리 조선에 眞實한 藝術家가 있다면 그가 自由와 情熱에 찬눈으로 주위를돌아볼때에 거기에 사는 그 점쟎은 牧師와 一部의善良한 新聞記者와 一部의 道德的市民들과 함께 살아야하는 運命에 대하야 羞耻에 가까운 커다란 失望을 느끼게 되지 않을가? 왜그러냐하면 그賢人들 그道德的분위기는 언제나 裁判官과같이 藝術人의 頭上에 臨在하야 藝術人에게 아무 獨特한自由와 地位를 許諾지않고 自己네들의 俗된 基準을 가지고 그의 一切의 行動을 監視하며 支配하며 또한 裁斷하려고 하는 까닭이다.
그러한 陳腐하고 俗된 분위기에 결국 堪忍해낼수 없을때에 藝術家는 진심으로 永遠히 이땅을 떠나서 조곰이라도 自由스럽어보이는 國外로 脫出할것을 생각할것은 當然하지 않을가? 다만 그러한 條件을두고 생각하드래도 내가 여기서 對象으로 하려고하는 音樂人 安基永이 어떤意味에서든지 自由를 求하는 藝術人이라면 自身의 告白과같이 그修道院같은 女學校의 敎鞭을 내던지고 牧師와 道德家의 분위기를 떠나서 國外로 脫出하게 된 決意를 理解할수있다. 하물며 그가熱求하는 그禁丹의 愛情앞에는 여기에 社會 그분위기가 地獄과 같이 臨在하고 있을때에 그들 兩人은 不幸한 現實앞에 戰慄하지않을수 있었으랴! 여기에 또한 그들이 이 지옥과 같은 분위기를 떠나서 國外의 땅에 放浪의 길을 떠나게된 心情을 理解못할것은 없다!
그러한 意味에서 나는 個人的으로서는 지금까지 過年의 그들의 脫出事件, 그不幸한 放浪의 旅行에 대하야 그들의 不道德을 非難하는것보다는 도리어 한편으로는 一種의 同情心을 가지고 생각해온것이 事實이었다. 이런 社會에서는 藝術家의自由는 容納되지못하고 한流形의 罪囚와같이 永遠히 放浪하여야할것을 슬퍼했던 까닭이다.
또한 그런까닭에 最近에 있어 나를가장 憤慨케하는 事實은 소위 「돌아온安基永」을 中心하고 지어지는 朝鮮社會의 俗된 분위기의 動向이다. 그것도 나와 같이 시골에 떨어져있는 사람으로서는 直接 그 분위기의 動向을 보고 들은것이아니고 순전히 最近에 某紙上에 連載된 所謂安基永의 「邪戀」事件의 記事를 遇한것이었다. 連載된 그俗된記事內容에 依하면 安基永은 朝鮮社會에 있어 容認할수없는 道德的罪人이요 이禮儀와信義를尊重하는땅의 風紀를 紊亂시키고 神聖하고 淨潔한 敎育界를 흐리게한 罪惡이 깊은 異端者이었다. 그리하야 이와같은 道德的罪人 「邪戀」의 歌人에게는 그들의 音樂會를 不許하는것이 保安關係上 當然한 處斷이었으며 그 禁止를위하야 耶蘇敎人例의 裡面活躍은 實로 神聖한것이었다는듯이 共■한후 그것은 結局 安基永의 戀愛逃避와 그의 歸國以后의 行動에 對한 全社會的 批判이었다고 斷言하며 나가서는 懺悔師와같이 罪人安基永앞에 그의 過去를 깊이 悔悟시키기 위하야 安基永과 그의 本妻의 過去를 一一히 끌어내어 長久한 說敎를하며 安基永의 背信背恩의 行爲를 屢屢히 政罪하고 있는 實로 巨大한 精力과 努力을 浪費한 記事이었다.
나는 여기서 資本主義社會에서 個人主義의自由의 凱施의暗號와함께 誕生한 저널리즘界에서까지 무슨 理由로 그와같이 陳腐하고 封建的인 態度를 取하고 있는가를 甚히 疑訝하는 바이며 同時에 眞心으로 그現象을 慨歎하는바이나, 그렇다고 하야서 여기 이小論을 草하는것은단순히 그新聞記事에 謾論을 쓰는것이 아니고 그記事를通하야 엿보이는 이社會의 분위기의 움직임! 그중에도 그神聖한 基督敎的분위기가 藝術人의行動을 監視하고 支配하려는 것에 대하야 眞心으로 憤慨하였던 까닭이다.
安基永 等이 音樂會를 開催한다는데 對하야 그의 舊友로서 그禁止를 위하야 實로 感歎할만한 活動을한 基督敎會金某라는者의 本町警察署에 對한 投表의 內容은 實로 훌륭하다 여기에 新聞記事대로 그것을 다시引用해보면 「안기영은 본래 이화전문 교수로있고 교회에서도 신임을받다가 자기제자를 다리고 다러나게되어 이화전문은 물론 일반교육계와 교회측에는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인물인데 이제 돌아와서 자기의 과거를 청산하랴는 성의있는 빛도 없시 장한듯이 음악회를 열음은 교육계나 기타에 영향이 좋지못하고 현재 그의 본처의 친척이며 다른 일부에서도 음악회장에서 풍파를 일으키려는 염녀가있다···」 고···
인간들이 얼마나 卑劣하면 自己知友의 音樂會禁止를위하야 投書를 하며 投書를한들 이와같은 어리석고 비열하고 추악한 內容의 것이랴! 나는 이때 이 金某의 投書를 읽으면서 安基永이 脫出后 上海어느米國系敎會에 있을때에도 亦是 그敎會에 朝鮮에서 投書를 했다는 (「朝光」四月號記事參照) 그牧師와 이金某는 同一한人間이든가, 親戚이든가 同僚든가라고 생각하며 그렇지않으면 或은 耶蘇敎牧師란어느누구를 莫論하고 大槪는 이런俗物들이아닌가 새삼스럽게 생각할때에 그들의 卑屈한 行動을 實로 憎惡하지않을수없었다.
그러면 大抵로 安基永이 그神聖한 敎會의 罪人이오, 現敎育界를 紊亂케한 把罪事實이란 大抵 어떤것을말함이냐? 이것은 내가 지금새삼스럽게 區區한 紹介를 할것도없이 온世上사람들이 누구나아는事實, 即 安基永은 本妻와 家庭과 學校를버리고 딴戀人을딿아서 國外로 脫出하였다는것, 그것도 普通의 相對가아니고 그의弟子 이던女子와 逃亡했다는事實이었다.
이것은 勿論 東方禮儀之國 善良한道德과 信義의 社會에있어서는 決코 善良한 市民다운 行動은 아니다. 이것은 確實히 新聞記事의 評言과같이 어그러진길이오 「邪戀」의 放浪임이 틀림이없다.
그러므로 이「邪戀」事件의主人公이 安基永이 아니고 그것이 牧師나 神父나 僧侶이었드면 勿論 나도 그基督敎側의 金某와 함께 그의 邪戀行動을 非難했을른지 모른다.
하나 極히 多幸한일은 安基永은 그職業이 牧師도 神父도 僧侶도 아니오 結局 平凡하고 俗된(?) 한 藝術人, 한歌人에 不過하였다는것이다. 거기에 대하야는 무엇보다도 安基永自身이 하루빈에서 뒤딿아 도착하는 사람을 맞기위하야 新京으로 떠나갈때에 그의 放浪의길을 간곡히 막는 舊友 崔XX라는 牧師에게 하는말가운데서 說明하고있다
「자네는 목사요, 나는 예술가일세…」
비록 安基永에 對한 名稱이 音樂人이라는 以外에 梨花女專의 敎授, 或은 누구누구의 男便, 또는 누구 누구의아버지라고 對稱되는일이 있다고하야도 人間으로서 그의生活을代表한말은 亦是 音樂人이었다. 基督의 垂訓을 지키고 그信仰가운대 生活하는 牧師도아니고 孔子의 五倫之道를 遵守하며 그道德에 生活하려는 道學者도 아니요 純全히 感情生活을 第一生活情熱로 삼고있는 音樂人이었다는것이다 感情生活을 하는 音樂人! 여기에 이歌人의 邪戀事件을 寬大히 理解해야할 特殊한事情이 있다고본다. 위선 여기서 一般으로 생각할때에도 한藝術家가 一個의道德律, 一個의宗敎的信條, 一個의 家庭的義務때문에 그의第一生活條件인 感情을 無理로犧牲하고 制御하리만치 道德的으로되고 善良한 理性에 滿足하려고 할때에는 事實에있어 그는 藝術家로서 그以上 發展할 아무 希望이없는 者라고 斷言하야도 過言은 아닐것이다. 勿論 여기서 나는 이藝術的情熱이라는것을 단순한 愛情문제에 歸着시키는것은 아니다. 何如튼 그感情生活이 平常生活에 있어서는 愛情生活가운데 가장 集中的으로 表現되는것은 事實이다.
藝術家의生活에 그만한 獨自性과 自由를 許諾하는것이 當然하다고하면 亦是 藝術人中의 한사람에 틀림이 없는 安基永이 藝術人으로서 自己의 藝術的情熱 安基永自身의 告白에依하면 「좀더藝術家의 감정을 자유로히 살리면서 공부해볼길이 없는가」하는 自由慾과 아울러 그의 情熱한 愛情生活을 完成하기위하야 그修女院의 敎鞭을버리고 本妻를버렸다···고한들 그의 脫出行動에 대하야 牧師와 道德家와 그他 善良한 市民들은 敢히 自己네들의 狹착한 定見과 卑俗한 基準을 가지고 그를감시하고 非難할 權利를 갖고 있음일까! 나는 決코 그런일이 있을수 다고 斷言하고싶다.

여기서 善良한 市民들은 以前의 安基永과 本妻와의 關係를 들어서 그들의 結婚은 本來부터 戀愛結婚이었다는것, 더구나 그戀愛生活이란 苦難에 찬剕路이었다는 事實을 區區히 列擧하야 問罪할른지도 모른다.
하나 가사로 그事實이 新聞記事의 內容과 같이 熱烈한 戀愛의 結婚이었으며 幸福된 結婚生活이었다고 假定한다고 하자 事實 그렇다면 그것이 安基永의 그邪戀行動에 무슨 絶對的權威를 가진 條件이냐? 熱烈한 戀愛란 果然 그것이 계속되는동안에는 當者의行爲에대한 至上命令과같은 絶對다 하나 同時에 그것이 熱烈하며 絶對的 熱이라는것은 단순히 그戀愛가 계속되는 期間에 限한 일이다. 그것이 식어버린때 더구나 딴편에 다시 熱烈한 愛情生活이 시작될때에 以前의 本妻와의 그熱烈한 戀愛란 아무 權威를 가지지못하는 無意味한것이되어버린다 이것은 人間生活에있어서 그自然形勢에依한 어길수없는 決定論이다
佛蘭西의 閨秀作家 「죠르쥬산드」는 이미 一世紀前에 說破한일이있다 「산드」는 그의作品中에서 結婚이란것이 가장 憎惡할 制度라는것을 屢屢히 說明한후에 主人公 「쟈크」의 입을通하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벌서 식어진 愛情을 蘇生시키려고 努力한일은없다. 나는 決코 戀愛를 義務로생각한일은없다. 나는 自己의 戀愛가 消滅되었다고 느낀때에는 조금도 부끄러하지않고 또한 아무 良心의 苛責이 없이 그것을 告白하였다」라고 그리고 다른作品中에서 主人公 「루크레챠아·프흐로리아니」를 通하야도 이와 類似한 말을 한다 「내가 지금까지 어린애처럼 盲目的으로 熱中한 온갖戀愛關係中에서 그戀愛가식어버린때에도 無理로 그것을 계속하려고 努力한것처럼 깊은 罪惡은 없었다!」라고 即 「산드」는 온갖곳에서 戀愛關係中의 가장 不道德的인것은 愛情이 없어진후에도 表面的으로는 아직 그것이 있는듯이 假飾하는 點이라고 主張하려고 한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自己의 實際行動에서도 勇敢히 그眞實을 證明하려고하였다 그리하야 女性「산드」는 貴族「듀데반」에서 作家「뮷세」에게 다시 「뮷세」에게서 音樂家「쇼판」으로 愛情은 追求하야 그위採戀旅行을 不息하였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一世紀前 十九世紀의 三十年頃에있어 佛蘭西女流作家「산드」가 敢行한 일을 二十世紀의 三十年에 조선樂人 安基永이 같은 일을 敢行해서는 왜 不可한가? 그■■ ■■■것은 그當時에 있어서 그愛情問題때문에 佛蘭西社會는 作家「산드」를 無視하고 埋葬하려고 하지않었거늘 今日의 조선社會는 저널리즘까지가 合流하야 一個의 歌人을 埋葬하기위하야 汲汲하고있는 現象이 아닌가?······

愛情이 식은 結婚生活에 대하야 藝術人이 염증을 느끼는것은 容認할것이 있다고하드래도 하구많은 女子들가운대서 유독히 自己가 가르치던 弟子와 함께 脫走했다는것은 너무나 非禮儀的이고 不道德的行爲라고 사람들은 다시 非難할른지 모른다 하나 생각하면 그非難도 極히 우숩고 어리석은것이다. 愛人을 擇하는데 顔面과 交誼관계를 考慮하고 師弟之間의 사이같은것을 避하야 가리려고 蹰躊한다면 盲目인 큐피드는 永遠히 잡기 어려운 女神의 後髮을 붓잡지는 못한다.
愛情을 追求하는때 그相對者가 本妻의親友든 弟子이든 그런形式과 義理를 생각하는것은 善良한 道德家나 取할態度요 情熱의 藝術人이 가질行動은아니다. 그러므로 安基永이 그의 弟子와함께 脫出하였다고해서 그것때문에 조곰이라도 憎嫌을 느낄必要는없다 그行動에 대하야는 堂堂히-나는 藝術人이다 나는 두女子에대하야 愛情이깊은편을 擇하였다 後者가 나의 弟子인것까지 미처 생각지못했다 아니 생각지않었다 나는 藝術人이다 그런까닭에 나는 弟子를 사랑했다 弟子인까닭에 사랑을 制御하는것이 나의 義務가 아니고 愛情이 있는까닭에 누구든지 사랑할수있었다 그것은 藝術人의權利다! 義務다! 라고
그렇게 告白해서 그牧師와 道德家의社會가 더욱더욱 歌人을 憎惡하고 排斥하고 容納지않더라도 歌人은 그앞에 조곰도屈服할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여기서는 問題를돌려서 安基永의 本妻인 XXX氏의 人格을 돌아보자. 事實에 있어서 그는 實로 驚歎할만한 人格의 所有者인듯하다. 音樂會禁止와연하야 그가警察官앞에 出頭했을때에 그가점잖게 한말은 新聞記事에依하면 다음과같다. 「그가 돌아왔대도 아직 만나이야기도 못해보았는데 음악회를 연다는것은 너무 일르지않은가고 생각했소. 또 집안 어린사람들이 분개하야 음악회에 야지를 하리라는말도 들었으나 말리고있고 다른사람들도 음악회에 「야지」하겠다고하는말도 들었으나 그럴것없다고 말리었소. 음악회를 한다면 후에도 할수있는것을 지금열었다가 「야지」라도 만나 망신을당한다면 안될터이니 그만두어도 좋을듯하나 지금나로서야 무엇이라고 말할수있겠소 하기는 집의 딸애들도 아버지가 음악회를하다가 망신을당하면 어쩌느냐고하면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애태우고있어요!」라고 그리고 다른곳에서도 「그릇된일을 하야도 나의 남편은 남편이요 그애들의 아버지는 아버지니 그에게 무엇을 원망하여 무엇을 욕합니까? 다만 그가 과거의 그릇을 뉘우치고 다시 돌아올때만 기다립니다」라고
그의말은 이와같이 聖女답고 賢淑하고 점잖다. 이런境遇에 그가아직도 安基永에게 愛着이있다면 아무질투도 원망도 없다는 말은 全然 거짓말이다.

그러면 最后로 或是사람들은 이렇게 나를 非難할른지 모른다 그러면 그대는 그불상하고 可憐한 本妻의 生涯에 對하야는 조곰도 同情하려고 하지않는가? 勿論 나는 그런同情같은 값싼것도 本來부터 하고싶지를않다. 나는 諸君과같이 宗敎家도 아니요, 道德家도 아니니까.
그러나 諸君은 생각해야한다. 同情이라는 값싼장막뒤에 숨어서 諸君은 얼마나 女性들을 欺瞞하고있으며 無力하고 自立性없는 것으로 墮落시키고 있음일까! 이것은 諸君이 그긴歷史를 通하야 道德과 同情가운대서 家庭的으로 社會的으로 얼마나 女子를 奴隸와같이 取扱했으며 賤待해왔는가를 意味할뿐아니라 諸君은 女子들에게 값싼同情을 말하는데서 女子들을 언제까지나 男子의 從屬物로 만들고 獨立性없는 奴隸로 만들려고 하는것을 생각하고 있는까닭이다
事實에있어서 나는 우리조선의 女性들과같이 獨立性이없고 反抗할줄모르는 女性들을 알지못한다 家庭에있어서 忠實히 勞働을하는것까지 論難할 面目은없으나 男子가 그들을 欺瞞하고 背叛하려고할때에 男子가 一步물러서면 女子편에서는 왜 二步물러서서 男子와 對立을하지못하는가? 事實에있어서 男子가 女子를 排斥할때만치 女子에게 反逆할 좋은 機會를 주는때는없다 하나 조선의 女子들은 永遠히 獨立
(150쪽 누락)
女, 「크리스리이네·브루퓨우스」와는 서로 正式結婚을하기전에 十七年동안을 同棲하였다고 하지않는가.
그當時에 있어서 이와 類似한 例는, 「카로리네」 「트로레에아」같은 女性을 中心한 「슈레젤」兄弟, 셀링等의 例를 들수있을뿐아니라 그후의 「바이어른」「셀리」等의 소위 惡魔派는 물론, 겨우「유고오」의 生涯를 除하고는 「발자크」, 「도스트업스키이」의 生涯까지라도 萬一 그들에게加任된 窮迫의 苦役과勞作의 生涯가그들에게 亨樂의 餘裕를 얼마큼이라도 許諾했든들 그들의 生涯가 亦是 不道德이었으리라는것은 그들의 作品領向으로도 容易하게 推測할수있을것이다.
그러나 重要한일은 그들이 그와같이 不道德的이었다고하야도 그點을가지고 그들의 藝術的功績을 흐리려고 하지않었다는것이다 비록 個人的으로 「괴테」의生活에 對하야 「■비■트」가 ■■한일이있고, 발자크의 作品에대하야 一部의讀者가 不道德的이라고 非難한일이 있다고하야도 그들外國의 社會에서는 決코 그것으로 그藝術家를 埋葬하려고까지는하지않었다. 말하면 外國의 社會에서는 그래도 藝術家의生活을 어느程度까지 理解할만한 常識과 共感心을가지고 있었던것이다 藝術家를 決定하는것은 그의行爲가 道德的인가 非道德的인가하는點에 있지않고 그의 藝術作品이 優秀한가못한가한대서 그들을 評價했던것이다. 그것은 外國에서만이아니고 우리조선서도 應當히 마찬가지어야 할것이아닌가? 安基永이 本妻를 버리고 自己弟子를다리고 逃走했다는邪戀事件에 依하야 그를 評價하며 그의音樂會의 禁止를위하야 비루한 暗中活躍을 할것이아니라 快히 그의音樂會를 許諾하고 그音樂會의 成果의 良否에依하야 그의音樂人의 地位를 判斷하며 또한 非難할것이 있으면 非難해야할것이다.
왜그러냐하면 藝術家를 評價하는 基準은 오직 한가지 그의藝術의 優秀한가아니한가? 하는 條件뿐이오 그밖에 무슨 다른條件을가지고 藝術家를 評價하고 裁判할수는 없는 까닭이다

둘재로 勿論 그牧師들이 安基永에게대하야 그런態度를 取한것은 根本에 있어서는 善良한 마음에서出發했을른지모른다. 될수있는대로 그를 悔過시키고싶고 그의本妻에게로 돌려보내고싶으며, 그것은 어느것이나 그들이생각하는 道德的表準에 依하야 한行動일른지모른다.
하나 結局에있어서 그들의 努力은 無意味한것이었을뿐아니라 도리어 安基永等을 위하야 더욱 더욱 害로운 影響을끼치는것이 分明하다는것을 그들은 미처 생각지못했을가? 그런 부질없는 道德的努力이 藝術人으로 보면 도리어 罪惡이 깊은 不道德의行爲이라는것을 意味하는 同時에 感情的으로는 더욱이 本妻에 對한 安基永의 感情을 惡化하는 結果에 到達하였다는것을 넉넉히 推測할수있는때문이다. 이런 관계라는것은 주위에서 接近을위하야 勸告하고 努力하면 할수록 그의反對로 차차 隔遠되는것이 人情의 常理인것이다. 이런關係를 다른例中에서 잘說明한것으로 어린學者의 「獨逸論爭」가운데 다음과같은 句節이있다. 「諸君 獨逸的인 온갖것을 排斥하는데 汲汲하고있는 諸君은 獨逸的인 온갖것을 排斥하는데依하야 도리어 獨逸의 統一을위하야 盡力하고있다는 事實을 왜 理解하지못합니까?」

何如튼 나는 最后에도 絶叫하고 싶다 社會는 좀더 藝術家를 理解하라! 陳腐한道德律을가지고 그의 行動의 自由를 꿰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愛情問題와같은 微少하고 데리케이트한 內容에까지 傍觀人이 容啄하야 是非를 論難할 權利는 조금도 우리들에게 없다. 그런문제는 다만 그들當者들만이 알고 當者들이 處理할문제다.
그리하야 藝術家는 藝術을가지고 評價해라! 그러지않고 언제까지든지 요좀의그牧師와 金某와같은 俗된 見解를가지고 藝術家를 감시하는以上 우리조선에서는 藝術은 永遠히 滅亡하는수밖에 없을것이다!
이와같은 辨明의 글을 쓴것은 내가個人으로 安基永의 知友도 아니오 그렇다고하야 音樂의 門外漢인 내가 音樂人安基永의 樂人으로서의 力量을 아는바도아니며 또한 個人的으로 그를 極히 敬愛하는者도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安基永이라는 個人을 변호하는것보다는 一般藝術人을 변명하는 意味에서 이小論은草하였으며 또한 그意味에서나중으로 다시 絶叫하려고 한다! 歌人을 救하라!藝術家를 擁護하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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