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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삼중주 조선소리는 어디로 가나―명창 이동백 씨 방문기―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방문 삼중주 조선소리는 어디로 가나―명창 이동백 씨 방문기― 訪問三重奏 朝鮮소리는어디로가나―名唱李東伯氏訪問記―
종    류 대담 對談
필    자 +++ +++
출처정보 중앙 中央
연    도 1936-04 昭和十一年四月
면    수 174 174
기사
『소리를 배우신지는 몇해나되십니까?』
명창 이동백(李東伯)씨를 관훈동(寬勛洞)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로 찾아가 씨에게서 조선소리의 오늘과 내일을 묻기로하엿다.
씨는 세상이 다아는 조선유일의 명창이다. 그성량의 웅혼함과 태도의 장중함은 당대의제일인자요 신수의 청수함과 기개가있음은 너나없이 칭찬해바뜨는 그다. 금년에七十. 고향은 충청도 서천(舒川)이요 소리는 창원(昌原)에 있을때 배우기 시작하였다하니 그가 창원에가기는 아홉살때라한다.
『소리를 배운지가 몇해가 되었느냐 말슴이 오니까 글세요 그럭저럭 六十년이나 되었소이다』
『소리를 배우자면 몇년이나 적공을해야 합니까?』
『글세올시다. 사람딿아서 다르겠지오마는 명창이되겠다하고서 소리를 배운다면 재주있는사람이라야 한二十년 적공해야 됩니다.』
앉어있는 좌중□는 역시 명창이요 동지들인 정정렬(丁貞烈) 송만갑(宋萬甲)양씨가있다. 그들도 이씨의 말에 동의를 하면서
『二十년공부를 했다드라도 재주가 있어야 되지요』
한다. 기자는
『그러면 어째서 소리를 배우섰습니까?』
하고 질문을하여보았다.
『명창이되려고 배웠소이다. 그때시절에 있어서 한번 명창으로뽑히면 서울로 올라가서 재상대가에 불림을받고 그고임을 받는날에는 다들벼슬아치하는데 비할것이아니었지요 그나 그뿐입니까 더나아가서 어전에 나아가게되면 그영광은 말할것도없고 그대우받는것도 구사(求仕)十년한데다 댈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선생은 소리배우신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까?』
『후회할것은 조곰도 없습니다』
『그럼 어전에나가서 노래를 하신일은 있습니까?』
『창원서 그때 진주감찰로있던 이지용(李址鎔)씨에게불리어가서 서울로온뒤 고종황제앞에까지 나가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옥관자까지 받았습니다. 시방은 아무 소용이없지만 정三품(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란말이여요. 그것도 작난감투가아니고 첩지까지 받은진짜벼슬이지요』
『지금의 소회는 어떠십니까!』
『아주 나쁩니다. 인제는 개화문명을해서 양반상놈이없고 모두평등이래지만 그래도 세상은 하소―하우 하우―해라하고 상하분등이 있는세상이라야 좋단말이여요. 그게 칭하요 언잖다고들 하는이도 있지만 그게 별게아니라 상하분등이니께실루 나쁠게 조곰도 없는것이란 말이여요』
『선생득의의노래는?』
『내하는소리중에 내가 생각하기에도 잘하는상싶은건 심청가렸다 그건 천번백번 부를수록 심곡하고 간절하고 미상불 좋은소리지요』
『그런데 선생은 이미 연로하시었으니 이제 선생의 뒤를이을 명창을 길러놓으서야 하지않겠습니까?』
『그럼요 해마다 세상하고 멀어저가는 이소리를 우리는 그래도붓들고 가꾸고 전해야 마땅할일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연구회를만들고 소리배고 싶은이한테다 가리키고하지만 지성으로 배우는사람이 없구료. 글세 죽을심력을다드려서 소리를 배운댓자 무슨효과가 있어야하잖겠소 말하자면 한심한일입니다』
『그러면 연구회에 다니는분이 많지않습니까?』
『다니는이야 끊지지않고있지만 근기있게 배우는사람은 없습넨다. 웬만큼배워서 소리를 알만큼되면 갑바저버리니께요.』
백발이성성한 이노인은 눈물을씿는다. 가슴속에 하고픈말이많으나 다못하는상싶다. 안채에서는 젊은 시악씨들의 맧풀린노래소리가 새어들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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