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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소개 미국의 신극운동 紹介 米國의新劇運動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유치진 柳致眞
출처정보 중앙 中央
연    도 1935-04 昭和十年四月
면    수 111 111
기사
◇米國의小劇場熱
누구나 米國人을가르처 活動的이오 野生的이라한다. 事實그들은 建國의年조가 어려서 그런지 經驗에對한 未知的憧憬이 많고 철없는 中學生과같이 冒險을즐긴다. 그리고 그들은 작란을조아하는國民이다. 大體로 「보일러」의 煙筒과 같이 頑健하고 센치멘탈하다는것이 그들에對한定評이다.
그러면 一般으로 그들(米國人)을 心醉시키는것-그것은무얼까?……『스포-쓰』『映畵』『럼스으음』『비야으음』『레뷰』『漫畵劇場』『써커스-』그리고『劇場』!
그러나 아메리카의劇場에서 손님을부르는것은 冒險을쫓는 깽式의 「에로·드라바」나 佛蘭西의寢室的笑劇이나 「오-스트리아」의 도나우·왈쓰的로맨스…… 이러케 卑近하고도달콤한것뿐이다. 이卑近하고달콤한 철없는작란꺼리는 (놀래지맙시오!) 아메리카的大규모의 投資로써 興行王國을君臨하기도 하는것이다.
그러면이와같은社會에 어디에 우리의말하는新劇이잇느냐? 新劇이發展할餘地는 어디잇느냐?……라고누구나 反問할것이다.
當然한 反問이다. 그러나 잠간게십시오! 당신을滿足시킬만한資料를 나는갖엇스니까……凡興行界가 上述한바와같이 그러케 타락되어서 演劇이 그러케 타락된娛樂, 墮落된 興味本位로만 利用되는 米國이니만큼 그反動으로 新劇運動의熱熖도 적지를않다.
그理由는 新劇이란本是演劇이 營利本位, 娛樂本位, 구경꺼리本位에 빠지는것을 餘地없이反抗하는까닭이다. 하야 演劇으로하여금人生을示現하는 一個의藝術品으로 奪還코저極히 熱心으로努力하는까닭이다.
至今 米國에잇서서의 新劇運動은 世界的으로보아서 가장活潑하고 가장젊고 가장熱心하다. 前途有望한靑年期에 處한未知數의學徒! 그것이發育過程에있는米國의 新劇이라하겟다.
「아이작스」氏의 말을빌리면 米國에는現在 數千個의小劇場이 米國國內의各都市에 散在하야잇고 거기에從業하고잇는人員은 五十萬名에達한다는것이다.
各大學부터中學 때로는小學校에까지도 演劇硏究班이 잇서서 어린子女의演劇熱을衝動시키고 滿足시킨다는것이다. 그것뿐이랴! 米國은 大學附屬의 實驗劇場이많기로는 世界의首位에處한다.
그中에서 하-바-드大學을비롯하야 노우스·칼로라이나大學, 프린스톤大學, 엘大學, 콜럼비어大學에 設置된 演劇科는일홈이 가장높다. 해마다大學演劇科를마치는 卒業生은 各都市의 그리고各시골의 小劇場, 大學의演劇科中學校의演劇班으로 就職해나간다. 就職者도 相當한모양이다.
그리고第一次의集會에서는 小劇場의競技會가開催된다. 이集會에서 시골에무처잇는人才가『부로-드·웨이』의 大興行街로紹介되기도한다. 이런意味에서는 大小地方의小劇場은商業劇場의原動力도되는것이다. 이것은一의興行劇壇淨化策도되는것이다.
米國에는 敎室을劇場으로꾸민것 倉庫를劇場으로꾸민것, 마구깐을劇場으로꾸민것……이와 같은假設的으로꾸민 劇場이많기도하다. 그러나一方으로는 商業劇場보다도 훌륭한設備優秀한建物을가진小劇場도많다. 크리브랜드劇場, 파사리나民衆劇場等이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와같은 小劇場을가지는 動機는 첫번에個人의應接室이나 食堂에서 演劇작란을하든것이 發展해서始作되는것이다. 이와같이 實로米國의小劇場熱은 굉장하다.
한都市에 한個의敎會堂이잇는것과같이 웬만한都市에는 그들은 한個의小劇場을가진다 即 그들은 敎會堂에가서 天堂을 그리는代身 劇場에서 現實을批判하랴한다. 그들은 가장 眞摯한敎化的意味에서 演劇을보고 劇藝術을 支持하랴는것이다.
世界어느나라의 新劇運動을 보더라도例外가없다해도 過言이아니되리만치 거진全部의 小劇場은 經濟難으로潰滅當한다. 이結果는一方新劇이興行을떠나고 營利를無視하는데 그根本主旨가잇는탓이다. 그럼으로 하는수없는理象이기도하다.
그러나 米國의新劇運動은 다른나라의그것에比하야 그다지經濟難에 주으리지않고 發育되고잇는모양이다. 그理由는 그들間에는元來生活이豊富한者가 많은까닭도 잇겟지마는 그보다도 新劇에對한社會的理解가 다른民族에比하야 큰까닭이라보는것도 오로지망발的理由는아닐것이다.
米國의地方小劇場의建物은그地方의有志同好者의喜捨로써 設置되는것이다. 어떤地方에서는 郡廳 혹은 面事務所에서 돈을내여 小劇場을支持하기도한다. 特히「텍사스」의 덜러스小劇場에서는 씨-즌의初頭가되면「小劇場週間」이란 名目下에서 郡守가宣言書를 發表함으로써郡內의百姓들에게勸하야入場券을사게하기도한다.
이와같은 地方官廳의聲援도잇기도하지마는 그러나 一般의寄附金으로써 大部分의小劇場은 經營해나간다. 그中에는 株式會社의形式으로 돈을모우는수도잇고 會員組織의形式으로 維持會員을求하기도한다.
特히 米國新劇의頭目團體되는「시어터·길드」는 過去十年間 銀行家 옷토·H·칸氏를비롯하야 數人의男女特志者의寄附金의 도음을받은바컷다. 하야 그總額이實로 十七萬弗을넘는다는것이다. 옷토·H·칸氏는 劇團뿐만아이라 一般藝術團體에寄附잘하기로 有名한爲人이다.
「시어터·길드」外에도 米國의小劇場은 이와같은 一時的寄附金의恩德을입는 團體가많다. 그런物質的援助가잇서야 비로소 藝術的冒險도할수잇슬것이다.
小劇場이란 學校事業과같이 一個의消費事業으로봐주는것이 妥當한까닭이다.
이와같이 米國의自覺된人士는小劇場으로하여금 벌서그들의敎養을 높이는 한手段으로 혹은 그들의藝術感情의 社交機關으로안다. 그리하야 그들이 한小劇場을가지는것은 自己의 地方이 文化施設上 다른地方에 떠러지지안는 文化的자랑꺼리로 생각하는것이다.
莫大한米國의資本은 巨大한米國의 興行界를支配하야 돈만벌면 第一이란主義로 「에로·그로·넌센스」의 淺薄하고도 不道德한 演劇映畵를 大量으로産出하야 골라잡아十錢式의 薄利多賣主義가 亂散된다.
이코마샬리즘의 害毒에서 藝術은墮落하고 文化는衰退하고 道德은蹂躪되어 마츰내 한나라는 滅亡하는것이다. 여기서 米國은 自己를防禦할必要를 가진다. 그唯一한手段으로 小劇場의必要가 그러케全國的으로 促進된것이다. 이러케생각하면 이와같은米國의小劇場熱에도 一의自然的理致가 介在되는것같다.
露西亞를비롯하야 佛蘭西·獨逸·愛蘭할것없이 凡 다른나라의新劇運動의 特徵이란것은 一部의特殊한 演劇人의손으로 演劇이獨占되어 演劇의質的練磨에만 全努力이注中된것이다. 그러나 米國은 그러치않다.
米國의新劇運動의大勢는 特殊한 一個團體로써 新劇이 代表되는것을 拒否하는것같다 그러기前에 그들은 新劇의一般的浸潤을策하야 新劇熱로하여금 地方的으로 廣汎하게傳파시키랴는것이다. 여기에 米國의新劇運動의 特徵이잇다고보겟다.
實로 米國과같이 全國的으로 新劇熱이뻐쳐잇는나라도 없거니와 米國과같이 이러케 많은 小劇場이 곳곳으로 散在해잇는나라도없다. 新劇의 이量的發展은 可히 他國의따를수없는일이다.
各都市는勿論이오 그都市의郊外에도 山間의農村에도鄙邊한漁村에도 한個쯤의小劇場形態는잇는것이다. 이와같이全般的으로 小劇場運動의使命은 遂行되어가는것이니 特히아메리카西部地方에는 農民을위한小劇場이發達되어서 그들의큰자랑꺼리가 되어잇다는것이다.

◇新劇의發生過程
다른外國의新劇運動에 關하야서는 各各그方面의 篤學者諸氏의손으로 우리에게 이미 紹介된바많다. 佛蘭西에잇서서는 李軒求, 露西亞에잇서선咸大勳, 獨逸에잇서선曺喜淳, 徐恒錫, 英國에잇서선金珖燮, 中國에잇서선金光洲, 丁來東諸氏의 여태가지의功績이그것이다. 그러나 米國新劇에關해서는 그다지 具體的紹介가 過去에잇섯슴을 나는記憶치못한다. 그럼으로 나는 이機會에 좀 지리하기는하겠지마는 그發生過程을 잠깐紹介해보려한다.
우리의周知한바와같이 아메리카開發에 一大時期를招來시킨 南北戰爭으로말미암아 아메리카産業은 未曾有의 發達을하게되엿다. 그德으로 拜金思想은 天下를支配하고 따라서 文化는 黃金의以下에隸屬되엇다. 이런時期에 藝術의向上이 衰縮當함은 勿論이다. 劇도 이때에 餘地없이 타락되엇다. 그러지않어도 水準이낮어서탈인 米國의演劇이다. 그낮은水準 一層 또 타락되엇다니 그程度는 可히 짐작할수잇슬것이다. 여기에 劇場은 商人輩의 營利場이되어서 코마샬리즘에 中毒當한演劇은 갈사록卑俗으로만흘럿다. 센치멘탈한 現實生活과는 아모關係없는 테-마를 그저그들은 로맨틕하게만 꾸며노흐면 그것이 劇인줄알앗다. 그리고 그「테-마」라는것도 大部分은 佛英의作品을 幼稚하게複寫시킨것이엇다. 그럼으로 固定되어가는內容과 엉터리없는技巧은 아모生活的感情을 傳하지못하엿다.
그러나 이時代에 海外에서는「입센」의思想劇 「죠라」의리알리즘의傾向이 風痱하엿다 웨 이傾向이 米國의劇界文壇엔들 波濤처들어오지않으랴. 그들의作家中에도 平凡한日常生活에서「眞實」을 찾으려는者가나타낫다. 이 「리알리즘」의發展은 스틜·막카이(1842-1894)잼스·허-ㄴ(1799-1901)等을 거쳐서 데비드·벨라스코(1883-1931) 오가스타스·토마스(現生存)等의 作家의作品에나타낫다. 그러나 公平하게말하면 이作品들은 多少리알리즘의 影響을 形式上으로받기는하엿지마는 그內容은 依然히 로맨틕한舊式의 「멜로·드라마」에 不過하엿다. 그리고 歐洲의先進作家의 水準으로는 퍽幼稚하기도하엿다.
그러나事實 米國의演劇을 世界的水準에까지 擡頭시킨時代는 그들의다음「제네레이슌」에서 準備되엇다. 그들의時代(十九世紀末葉)에 多少엄트기始作한 小劇場運動의 精神은 一個의새로운時代의 搖籃이되기는하엿다. 그때의作家로써 앞에말한 「벨라스코」며 俳優로써 先驅的自覺을가진 스크夫人等은 일즉이 演劇의墮落을깨닷고 뉴욕의興行劇에對陣하야 演劇을本位하랴는演劇을 上場한까닭이다. 그러나 結局그들은 그다음「제네레이슌」의 발판밖에안되엇다. 即 小劇場運動의 具體的試驗은 그들(벨라스코等)의 다음時代부터 烽火된것이다.
「윌리암·아-챠」는 꿈꿧다. ……「시카고」나「보스톤」같은데도 佛蘭西의自由劇場(世界小劇場運動의先驅)같은것이잇섯스면 조흐련만…이꿈은 그러나 좀체實現되지는않앗다 間或靑年男女의인텔리間에는 「입센」이니 「쇼-」같은作家의作品을읽는者는잇섯지마는 依然히 文化程度는어두웟다. 그러는동안에晝間興行으로 입센作의 「野鴨」같은것이 脚光을보기도하엿다. 「리챠-드·만스필드」는 「쇼-」의「惡魔의弟子」를實驗的으로 上演해보기도하엿다. 그러나그것은 別로根據잇는試驗은아니엇다.
마츰내 一九○五年에들어서는 하-바-드 大學의 베이커敎授의戱曲講座가 처음으로생겻다. 이것은 在來誤解받고잇든演劇에對하야 高級의文化的使命을附帶시킨嚆矢이다 이機會로부터 米國各大學의演劇運動熱은 이러나게되엇고 一般新劇의原動體도 여기서始作된것이다. 그後一九○八年에國大學에서 배이카敎授가創立한 實驗劇場(命名하야四十七番作業劇場)은 大學附屬의劇場으로서는 世界最初의것이엇다. 이實驗劇場에서「베이카」는 劇作家, 評家, 演出家의養成을 目的한것이다. 現米劇壇의中心人物은 大部分 여기서輩出되엇다.
그러나우리는 이때를前後해서 演出家「리빌스튼·프랫드」의손으로 보스톤劇場(後日에 캐슬·스퀘어劇場으로改名) 이創立되어서 쉑스피어戱曲이 主로 上場되엇고 一九○九年에는 「윈스로-프·에임스」라는 演出家로써 紐育에 國民劇場이 設置된것을記憶해야한다 이國民劇場은 經濟的으로 大打擊을받아서 一九一一年에는 허는수없이 劇場門을닫이기는 햇지마는 이것이 新劇과 어느程度의直接交涉을가지고일어난 小劇場의嚆矢이엇다.
以上과같이 米國의演劇活動은 조금식發芽의길을찾엇다. 그러나 그實 박고잇는뿌리는 아즉 無力할뿐이엇다.
그러는동안에 實質的으로 演劇運動의新興氣風이 卷土되기는 一九一一年부터 一九一二年間이엇다. 一九一一年末 W·B·예-쯔는 愛蘭의아베이劇場을 統率하야 巡業次로 米國으로 건너왓다. 마츰내 이巡業은 크다란旋風을 米國의가슴속에 일으켜노코말앗다.
即 아베이劇場을구경한 아메리카젊은靑年男女의藝術家는 自己들도自己손으로 아베이劇場과같은 國民的特色이잇는-自己의生活을그려서 自己의향취를담은 劇團을갖어보려하엿다. 그런創作的衝動에 가슴을불태웟든것이다. 아메리카唯一의劇作家 유진·오닐을誕生시킨 劇團「포로빈 스타운·플레이야스」의創立者인 「조-지·크람·룩크」의안해-現米國閨秀戱作인 글라스펜夫人은 그때를回顧하야 말햇다.
『……萬一 아베이劇場의 巡業이 없엇든들 우리 프로빈스타운·플테이야스도 탄생치않엇슬것이라』고.
實際에잇서서 新劇의 眞實한熱情은 이때부터 샘솟듯 일어나기始作햇다. 一九一二年에는 시카고에 시카고劇場이 생겻고 一九一三年에는 前記「윈스로-프·에임스」가 다시 「뉴욕」에 「뉜스로-프·에임스」小劇場을 設立하엿다. 그리하야 急激的으로 新劇은 그後 發展하엿다.
一九一五年에는前後하야 세個의小劇場團體가일어낫다. 即 「네이바후드·플레이야스」「시아터·길드」及前記 「프로빈스타운·플레이야스」가그것이다. 이세團體는 量으로보든지質的으로보든지 最近二十年동안의 米國新劇의主潮를 끄을게된團體이다. 「네이바후드·플레이야스」는 「루이슨」이라는 富有한두姉妹가 出資해서 創立한것이오 「프로빈스타운·플레이야스」는「큭크」와 「글라스펜女史」(두사람은그後에結婚하엿음)의努力으로 始作된것이오「시아터·길드」는 그리닛치村에서 急進的年少藝術家-作家, 畵家, 俳優-의손으로團結된團體이다.
以上의세團體의活動으로 米國의新劇運動은 世界的으로 代表되엇다. 그中에서도 「시아터길드」는 가장健全한發展을하야 至今은 世界에서도 聲名이높으다.「프로빈스타운·플레이야스」는 創立者큭크가 죽은後에는 그다지 成績이오르니 못하고잇다가 至今에이르러서는 不幸히 옛날小劇場運動隆興期의 그盛華한姿態는 뵈지못한다. 그러나 그創立時代의主旨인 同劇場으로하여금 無名作家의作品의實驗室로奉仕하려든 目標는 아직도變함이없다. 요즘은 때때로 黑人俳優만으로 黑人劇을上場하는것으로 또 이劇場은有名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紙面關係로 由緖깊은以上의 團體의活動을 詳論치못함이 遺憾이다 特히 『프로빈스타운·플레이야스』에關해서는 「新劇運動에나타난女性의足跡」이란 題目으로 昨年봄에 「新家庭」에쓴적이잇스니 아울러參考하여주엇스면 甚幸이겟다.

◇劇 作 家
米國의小劇場運動과 應呼하야 輩出된劇作家를들면-
파-시·막카이(1875-)劇을 娛樂物로만보지아니하고 思想을表現하는 敎化機關으로본最初의作家. 그의 「思想劇」은 詩劇의形式을 取함. 그의作品中 가장卓越한것은『허수아비』란作品.
죠세·피보디(1874-1922) 女流作家. 그는 一九一○年 前쉑스피어紀念劇場開舘懸賞戱曲募集에 千五百의應募劇中에 一等으로當選하야出世하엿다. 그處女作品은『피리를부는사람』이라한다.
윌리암·무-디(1869-1910) 淸敎主義에反抗하야 아메리카西部地方의 新自由精神을高唱하는作家이다. 「大分水領」 及 「信仰治療者」두篇은 當時新劇勃興新期의 아메리카劇의權威이엇다.
유진·오닐(1888-) 今日의 米國劇壇의隆盛을 홀로代表하고잇는 作家이다. 朝鮮에도 잘紹介되엇기때문에 詳述치안는다. 至今도 이作家는 精力的으로 가장野心的作品을써서 米國劇壇을 리-드하고잇다. 最近으로는 再昨年에發表한三部曲「喪服은 엘렉트라에만는다」昨年에發表한喜劇『오 荒地여』昨年年末부터 今年봄가지上演된『끝없는날』等 每作品에 新興味를 주지안는것없다.
엘마·라이스(1893-) 이作家는米國에서 오닐의次席을차지할만한作家이다. 處女作 「計算器」를내어놓은後 그는一九二九年 「거리의光景」을 發表하야 世界的名聲을 獲得하엿다. 一九三一年-三二年의 씨-즌에는『法律顧問』及『左岸』을 上場해서 成功하고 一九三二年-三三年씨-즌에는 「귀치않은者」를 自己의演出로 上演하야 譽毁兩機의評을받엇다.
하와드·로-슨(1895-) 로-슨은 一九二三年 「로쟈·들두마」「行進曲」 及 「擴聲機」等의作品을써서 前記의 「엘마·라이스」와같은 時期에 世上에나온作家이다. 그러나「엘마라이스」가 잘알리는데比해서는 그는 그後 통發芽치않엇다. 그러다가 昨年에「成功美談」을 發表하엿다. 그러나 좋은評은어찌못했다. 그의主張은「劇作家는 반듯이그時代의 「리듬」을作品속에 發見치않으면 안된다」는것이다. 이主張밑에서 그는 主로쟈스的狂樂에휩싸인 아메리카生活의內面을 表現하려는것이다. 그는 表現主義的手法을 즐긴다.
슈산·글라스웰(1882-) 그는 未亡人-米國新劇運動의前覺者인 「큭크」의婦人-『유진·오닐』의天才를 일즉이 認定하야 世上에 紹介한분-現米國䦌秀作家의第一流에屬-處女作「抑制된慾望」 一九三○年作의 「앨리슨家」는 同年度英米劇界의最大傑作中의하나로 추천되엇음. 劇作外小說도많음.
米國에는 以上에略記한外에도 人氣잇는新進이많다. 悲劇作家로서는 「시드니·호와-드」「막스웰·안다-슨」 及 「죠나·겔」等이잇고 喜劇作家로서 「필립·바리」 及 「죠-지·켈리」等이그것이다. 特히 「막스웰·안다-슨」作의 「따오스의밤」은 再昨年의劇界를 裝飾한 가장 人氣잇는悲劇이엇더라는것이다. 그리고 「필립·바리」 作의 「動物王國」도 再昨年度의人氣잇는劇이엇다.
以上의劇作家와같이 比肩하는作家로 아메리카의 黑人劇을써서 成功한 新進이數人잇다. 卽「폴·그린」 「헤이와-드」 及 「막·코네리」 「죤·웩스리」等이 그들이다 佛蘭西劇作家「H·R·르노루만」이 今年에米國을訪問하엿슬적에 米國에서 가장注目할것은「하렘」의 黑人劇이라고 말햇다. 이것은黑人이 極度로 虐待當하고잇는 米國으로서는 特異한現象이라하겟다. 今年봄에「시아터·길드」에서 上演된 「죤·웩스리」作 「그들은 죽을놈이아니다」라는劇도 「스곳보로」의黑人의生活을그려서 一般人의黑人에對한態度에 痛烈한 非難을 加한것이다 그러나 米國人觀客은 이劇을 좋아하지않엇다. 以上의作家가쓴 黑人劇中에는 朝鮮의觀客에게보엿으면 좋을듯한作品이많다 이黑人劇에關해서는 機會잇는대로 다시 注目해보고싶다.
以上에 論한바 大部分의 劇作家는 現在活動하고잇는 自由主義的色彩를 가진作家들이다. 이外에도 米國에는 左翼的色彩를가진 劇作家의一群이잇슴은 勿論이다 언젠지 佛敎專門學校에서 上演한 「돈」의作者 「미카엘골드」며 그外 「죤·도스·패소스」等은 左翼劇作家의代表的人物이라하겟다. 그들은 左翼文藝誌 「뉴·맷세스」를 中心으로 活動하고잇다 一九三○年以來로 싱싱하게發育하고잇는 아메리카左翼劇은 直接間接으로 그들의支持를 받고잇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紙面이없어서 詳論치못한다. 다른機會에 「아메리카左翼劇」이란題目으로 具論하야보기로하고 此稿에서는 割愛해둔다.
(附記 이글과가티管原卓譯「劇場」의序文으로쓴, 月刊雜誌「劇藝術」의編輯局長 아이작스의글을竝讀하야주면 拙稿의未洽한點이 多少補充될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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