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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교양과 관객에 대한 문제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배우의 교양과 관객에 대한 문제 俳優의敎養과觀客에對한問題
종    류 논설 論說
필    자 이재현 李載玄
출처정보 개벽 開闢
연    도 1948-05 1948. 05
면    수 46 46
기사
▶俳優의敎養에對하여
외양이 반반하거나 사람이 좀 익살맞거나하면 「너 俳優나 되라」는말을 흔히 市井에서 듯게된다. 大慨 이러한 境遇에는 그人物의 敎養같은것은 度外視하는 傾向이 많아 그저 國文이나 깨친程度라도 無妨하게 여긴다. 그래서 事實 이 외양이 반반하고 사람이 익살맞으며 國文을깨우친 無敎養한 人物이 單純히「젊어 靑春 한번 놀아보자」式의 한낮 好奇心으로 劇團에投足하는 놀라운 現象이 古今을 通해 非一非再하다. 그러면 또 어떻게 그대로 容納이되어서 그러한 人物도 자연히 俳優로 行勢를 하게되는법이다. 이리하야 俳優資格者에對한 市井의 見解의 論理가 선다 (大體로 俳優란 얼골이나 반반하고 國文이나 깨치면 되는法이란 論理가) 그러기에 角帽를 벗고 얼골애「도—랑」을 발른 東京留學生들이 家族에게 義絶을 當하고 親知들에게 敬遠을 當했다는「土月會」草創期의 서글픈이야기가 於焉二十有餘의 歲月이 흘른 오늘의 劇壇에도 아즉 남아있는것이다. 그러나 이러한事實은 우리朝鮮劇壇만이 갖는 奇現象이 아닐수없다.
우리가 西歐의 演劇史를 보고 恒常 깊이 느끼는바는 무엇보다도 歷代의 名優들이 모다 높은 敎養과 豊富한 知識의 所有者였다는 점이다. 戱曲이 規定하는 各階各層의 人物을 自己肉體로서 形象化하고 表現해야하는 宿命을 가진것이 俳優일진데 그것은 當然한것이다. 그러므로 俳優처럼 높은敎養과 該博한 知識을 必要로하는 藝術家도 드물다고 나는 생각한다.
決코 誇張이아니고 俳優는 能히 百科全書를 著述할만한 程度의 知識을가저야 本格俳優라 稱해 마땅하다는것이 平素의 나의 主張이며 또한 나의 至上의 希願이다. 都是 文法을 몰으는 文人(?)이 擧頭를 못하는판에 演劇을 몰으는俳優의 行勢가 容納되는 朝鮮이 슲으다. 戱曲을 理解못하는 俳優는 文法을 몰으는 小說家보다 더 辱되고 더 妄發이 않인가!
「그는 自己가 모다 잘 아는것을 말하는俳優이다」라는 모스크바藝術劇場이 낳은 稀代의名女優『크닞펠』의 演技를 讓揚한『체—홉』의말은 戱曲의 徹底한 理解없이 登場하는 俳優들에게 絶好의 座右銘이 않일수없다.
過去 우리演劇이 그처럼 落後된 第一의原因은 勿論 日帝의暴壓이겠으나 다음에 問題돼야할것은 演劇當事者들의 知識의 貧困과 沒敎養의 所致라 해 마땅하다. 더욱이 이 얼골이나 반반하고 國文이나 깨우친 잘알지못하고 말하며 行動하는 俳優에게있다해도 過言은않이다. 오늘날 우리演劇人에게 負荷된 至嚴한 歷史的任務인 民族演劇樹立은 實로 各分野의 出血의努力에서만 遂行될수잇겠으나 보담더 舞臺의 核心인 俳優의 修學이 切實히 要請됨은 勿論이다. 高度한 敎養과 高潔한人格이 具顯된 俳優의 演技만이 偉大할수있음을 우리는 아러야한다.
▶『년놈』과 俳優에對하여
劇場에가면 흔히 이런말을 들을수있다.「고년 참 이뿌다」「그놈 잘하는데」두말할것도없이「년놈」은 바로 俳優를 가르쳐 말함이다. 俳優의 容貌나 演技가 好惡間에「년놈」은 끼인다. 卽 讚辭든 非難이든「년놈」이란 不美한 言辭를 愛用한다. 그런데 이 不美한 言辭를 愛用하는 人士中에는 제법 禮儀를 가출줄아는人士도 있는것이 또한 恒例다. 이렇게「년놈」은 老幼男女를 莫論하고 毫末의 惡意없이 活潑히 愛用되여 放送되고있는것이 劇場의 風俗이다. 이에 번거로히 버르장머리없는 사람의 말버릇인「년놈」에對하야 그史的考察은 且置하고 寡聞한 나는 아즉 圖書館이나 美展會場이나 또는 音樂會場에서「그년 小說잘썼다」「그놈 그림잘그렸다」「쏘푸라노 아모개년 입뿌드라」等의말을 듯지못햇다. 이얼마나 多幸한 遺憾之事인가 그것은 俳優란 非藝術家인 때문이라한다면 半句의 抗辯도 않겠으나 그러면 外國 劇場에서도「년놈」은 愛用되고 있는가 反問하고싶다. 꽃과 기—쓰가 소내기처럼 퍼붓는다는 아메리카俳優의 이야기와 藝術家의 最高의 名譽인 人民勳章이 가슴에 채워진다는 쏘聯俳優의 이야기와 그박에 손바닥이 凝血이되도록 拍手와 喝采을 보낸다는 劇場의 美德속에 사는 숫한 俳優에 이야기를 나는 안다. 또한 가난한俳優에게 外上을 준 商人이 그俳優의 演技가 너머도 훌륭한데 感激한남어지 客席에서 벌떡일어나『××氏! 外上값 고만 두시오』하고 高喊을 치드란 李泰俊氏가 傳한「모스크바」劇場의 이야기도 안다. 그리고 기침소리 하나없이 演劇을鑑賞하는 習性을갖은 觀客의이야기와 숨소리까지 고스란이 傳達할수있는 幸福스러운 環境속에서 演技하는 俳優의 이야기를 수없이 나는 알고있다
무릇 劇場을 文化의 殿堂이라 일커르고 一國의 文化의 尺度가 劇的으로 表示되는곳이 劇場이라할진대 그것은 다만 上演되는 演劇水準의如何에서만이 아니라 實로 觀客水準의如何와 劇場의風俗等이包含되여 規定되는것임은 勿論이다. 그럼으로 오늘의 우리 劇場의이러한 觀客의不正한 倫理는 時急히 是正되어야 한다는것은 重言이 不要하다. 自古로 좋은觀客과 좋은演劇은 쌍둥이처럼 誼좋게커왔다. 좋은觀客을 맨드는責任이演劇에있다면 좋은演劇을 키우는 責任은 觀客에게있어야한다. 그러므로 俳優를 尊敬은커녕 辱으로써 말하는사람이 眞正한 演劇의 理解者일수없으며 또한 좋은演劇을 成長식힐수있는 觀客일수없음은 當然하다.
俳優가 굿패나 광대로서 待遇를 받든時節은 임이 지나갓었야할것이다.「년놈」이 아모런 惡意없이 나오는 말버릇이라해도 이것을 따진다면 俳優의 社會的地位의 過去史的殘滓임엔 틀림이없다. 그렇다고 決코 過分한 社會地位를 喝望하는 朝鮮의 俳優가 아니다. 꽃다발도 기—쓰도 싫다. 번쩍이는 動章도 辭讓하연다. 그代身「년놈」이란 恥辱的인 言辭가 除去된 劇場에서 演技를할수있는 幸福을 幸福으로 하련다.
(「나의俳優手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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