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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 국립극장의 대망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종합적 국립극장의 대망 綜合的國立劇場의 待望
종    류 논설 論說
필    자 박용구 朴容九
출처정보 개벽 開闢
연    도 1946-04 檀紀四二七九年四月
면    수 155 155
기사
一國의 音樂文化는 創作과 評論이 軌道가 되고 演奏가 그 軌道위를 힘차게 推進하므로서만 그 正常한 發達을 期할수있는것이라는 意味의 글을 나는 쓴일이있거니와 演奏란 언제나 空間的인 制約 卽 演奏場所에 依하여 規定을 바더왔든것이니 이로말미암아 音樂自體도 그 時代의 演奏會場의 至大한 影響밑에서 버서날수없었다는것을 우리는 音樂과 演奏會形式과의 史的考察에서 뚜렷이 알어볼수있는것이다.
二十世紀에 이르러 「라디오」라는것이 音樂演奏의 空間的 制約性을 無限大로 擴大하였으나 電波의 振幅으로 歪曲되지않은 生々한 音樂은 如前히 演奏會를 通하여 演奏會場에서 聽衆의 共感으로 비로소 그 最上의 보금자리를 찾는것이다.
더구나 演奏會라는 것이 가장 重大한 音樂現象의 하나이였든 朝鮮에 있어서 八,一五以後 서울의 唯一한 音樂殿毫이였든 府民館을 美軍이 使用하므로써 나타난 音樂界의 窒息狀態는 決코 尋常한 것이아니다.
「우리에게 演奏할 場所를 다오!」하는 音樂人들의 切々한 부르지즘은 八,一五 解放後도 如前히 劇場은 前日人經營主의 綠故者거나 極少數의 從業員과 撮影技師에게 獨占되여 演劇人들은 如前히 南祠堂패같이 劇場에서 劇場으로 流浪하면서 四․六制 甚하면 五․五制라는 卽 單純히 劇場建物을 一定期間 貸與한다는 理由뿐으로 入場收入의 四割 乃至 五割을 劇場主가 차지한다는 苛酷한 搾取條件하에서 呻吟하는 演劇人들이 「國立劇場을 세워다오!」 부르짖는 絶呌와는 一脈共通된 切迫하고 嚴肅한 現實的要求가 슴여있는 것이다.
그것은 주린者가 「빵을 다오!」 부르짖는것과 같이 물러설수없는 부르지즘인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國立劇場運動은 演劇人과 音樂人이 緊密한 共同戰線을 펴고 强力히 展開하여할것이라고 主張하고싶다.
勿論 演劇이 要求하는 舞台機構와 演奏會場으로서의 그것과는 理想的으로 符合될수없다는 것을 나는 看過하려는者 아니다.
그러나 十九世紀 佛蘭西의 사롱을 中心으로 버러진 詩壇의 象徵派, 畵壇, 樂壇의 印象派, 後期印象派等 一聯의 新運動이 姉妹藝術의 相互影響에서 비저진것을아는 우리는 바야흐로 新興하여야할 이 나라의 藝術이 演劇人, 畵家, 音樂家들의 國立劇場을 中心으로한 交流에서 씩々한 줄기를 期待도 하여볼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어잿든 綜合藝術로서의 演劇自體의 課題인 劇音樂의 問題로보드라도 時間的으로 伸縮性이없는 통조림 音樂―레코-드 로서는 그 最上의 効果를얻었다할지라도 그것은어디까지나 効果의域을 넘지못하는것이요 現在의 舞台機構와 現實的條件으로은 作曲家의 協働에 依한 眞正한 綜合的 演劇의 樹立은 바랄수없는以上, 國立劇場의 音樂적 適應性의 高度는 또한 演劇의 可能性의 擴大이기도 한 것이다.
뿐만아니라 複道를 넓게 잡아서 複道로 하여금 畵廊의 役割을 하게한다면 演劇 惑은 音樂에서 얻는 藝術的이메-지 위에 繪畵에서 感覺하는 또 하나의 이메-지가 融合하여 진실로 아름다운 藝術殿堂을 이루우리라 믿는바이다.
이 國立劇場은 반드시 劇場人, 畵家, 音樂家의손으로 運營되어야할지니 그러므로서만 演劇은 低俗과 謀利的인 商業主義를 排除하고 燦然한 演劇의 開花를 期待할수있는것이며 畵家는 不斷의 刺戟속에서 靈感과 技術을 擴張하여 갈것이며 音樂界의 當面課題인 交響樂運動, 合唱運動, 音樂劇運動도 强力히 推進될 것이다. (一九四六 , 一, 三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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