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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극의 기원과 그 발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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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표준화 정보 |
원문정보 |
기사제목 |
가극의 기원과 그 발달 |
歌劇의起源과그發達 |
종 류 |
논문 |
論文 |
필 자 |
홍난파 |
洪蘭坡 |
출처정보 |
개벽 |
開闢 |
연 도 |
1923-02 |
大正十二年二月 |
면 수 |
9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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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號「歌劇」의이약이의繼續으로本號에完結햇다)
二, 歌劇의起源과밋發達
前月에歌劇이란大體로어한것임을말하엿습니다 다음으로는歌劇의起源과밋그發達에對하야簡單히말하랴합니다.
本是人間이란것은感情動物이된以上에는 무엇에던지느이잇는는 울고도십고웃고도십고, 는노래하고도십고 춤추고도십흔것이외다. 이것은 곳人間의本能인同時에 歌劇이란 人間本能의聲이라고도할것이외다.
現代人의嚴重한解釋下에서볼진대, 歌劇이라할는지 아니할는지는疑問이지마는 何如間往昔希臘의音樂이란것은 詩歌와音樂과舞蹈의總括物이엇습니다 그리하야 한사람이歌詞를作하고唱하고 는舞踊하엿섯습니다. 그리고보면希臘의音樂은곳原始的歌劇이라고할것이외다. 中世에도神秘劇中에音樂을加한일이잇섯지마는 그方法이化合이아니오 混合이엇던닭에 劇의効果를助하기는姑舍하고 돌이어破壤하기에이르럿던것이외다. 그리다가十六世紀에이르러서 文藝復興運動이일어나매 온갓學問과藝術이 改造되랴할즈음에 音樂도亦是希臘時代로歸復하야 古典的精神下에 純一한融合物을作出하랴는 運動이일어낫섯습니다. 如斯히하야 音樂革新의第一聲은 伊太利에서勃發하얏습니다.
이의新運動은곳 「音樂은詩歌를助하는것이아니되면아니된다」는方針이엇습니다. 다시말하면歌詞가表現하는情緖를 音樂이助力하지아흐면 아니되겟다는말이엇습니다.
歌劇은實로文藝復興의花이외다. 「카치니」란樂人은合唱을附한希臘의悲劇을硏究하야 거긔다다 中世의神秘劇의形式을加味하야 歌劇에近似한것을 作出햇습니다. 그아니라 一種의咏嘆調를 編出한것도 亦是이사람이외다. 그에 「피렌체」市에는 「페리」라는作曲家가나서 「리느치니」란사람의 歌詞에依하야 「「유리체」 라는을作한後 그것에다가 비롯오 「오페라」라는이름을부텻습니다. 그부터 비롯하야 多數人에게는合唱, 一人에게는咏嘆調, 對話에는宣敍調란形式으로 처음으로 歌劇이생긴것이외다.
그後에歌劇作家로偉大한 「몬트벨듸」와 「스칼라틔」 라는作曲家가續出하야 드듸어 十七世紀頃에는正歌劇이非常히發達되어 今日에 現存되어잇는것과 거의同一한境地에지이르럿습니다. 이가티하야 十八世紀에는 伊太利가歌劇의覇權을 掌握하얏스나 그지도喜歌劇이란것은 그다지 發達되지못하야 獨立한境地에는 이르지못하고 다만幕間에演出됨에 不過하얏습니다.
그런데歌劇이伊太利로부터國外에輸出되기始作한것은 十七世紀末頃의獨逸이엇습니다. 그러고는 佛, 英諸國에傳布되야 漸次로 世界共有의物이되엇습니다. 그런데十七世紀末의獨逸에는 「함부륵그」 等地에歌劇이盛하어 舞臺藝術로서의美花를 피게햇스며 喜歌劇의類도接踵하야盛行되엇습니다. 그러나十八世紀末에이르기지 獨逸의各州는 다못歌劇의華美만歡迎하고 旋律의技巧만重視햇슬이오 大作이라할만한것은 하나도나지안핫습니다.
그러나 十七世紀에在하야 歌劇發達의가장顯著한 現象은 咏嘆調의出現이라하겟습니다. 宣敍調가비록音樂的이라하지마는 畢竟은 普通對話의調子와相距가멀지아니한닭으로 眞正한音樂的効果를 發揮할可能性이僅少함에反하야 咏嘆調는 歌劇의音樂的効果를充分히發揮하게되엇습니다. 그닭에咏嘆調가出現하기前의歌劇의發達史는 恰然히 宣敍調發達史의觀이不無하얏습니다.
말하자면 「룩크」以前의音樂은 그形式上아즉劇的變化를表現하기不可能하얏슴으로 演劇과密接한 關係를形作하기가困難햇지마는 마츰 「룩크」時代에至하야 「쏘나타」-(後日에樂式이약이할에말하랴합니다)--形式이생기게되자 이新形式은歌劇上에新生命을興하야 그의歌劇의序曲은 總히單純한 「쏘나타」形式으로作成되엇습니다.
獨逸에는 「렛싱」等의國民文學運動이 일어난後로부터 歌劇에도」 一人의大家가出하야 伊太利風의華美한音樂을棄하고 全然히面目을一新하야 眞正한劇的 表現을하기에努力햇습니다.
그二人이람은 「룩크」와 「모싸트」이외다. 「룩크」는 巴里를改新의根成으로하야 浮華한伊太利樂을排斥하는一方으로眞實한. 純一한 簡素한表情的의歌劇을일으켯스니 그의大作 「오포이스」三幕은 旋律의簡素함과 宣敍調의自然함으로 當時의樂壇에 淸新한空氣를大吹하얏습니다. 그는 「陰影이色彩를 助함과가티音樂은詩歌를助하지안흐면아니된다」고하야 이精神을樂曲上에實現햇습니다. 그리고 「모싸트」는 「룩크」 의影響을바다서 從來의伊太利式歌劇에比하야 劇的內容을만히가진 作品을發表하얏스나 「룩크」와가티詩歌的이아니오 又一層音樂的이엇습니다. 「모싸트」가國民的音樂의範圍를脫出하야 各國의音樂을自家의所有로맨들어서 世界的 歌劇을作成한것은 實로그의偉大함을 證明하는바이외다. 그의愛와美의音樂은 이윽고 獨逸音樂으로하야곰 「룩크」와가튼自然的形式을失하고 技巧의極端으로走하게햇습니다.
그後十九世紀初에 獨逸에는 「웹베르」라는樂家가 出하야 當時의 「로만틱」한思想을包容한淸新한歌劇을作하얏습니다. 「웹베르」 의歌劇은 알기쉬운材料를擇하야 熱烈한情感을盛하고 民謠와가튼旋律과力强한樂器의힘으로表現한一種의民衆歌劇이외다.
그러나 此等의影響이伊太利에入하자 그것은돌이어 可恐할惡結果를釀出하얏스니 「모싸트」의聲樂形式의發達은 伊太利歌劇作者에게對하야서는 唱歌者의能力을發揚케할만한絶好의機會를與하얏습니다 이가티하야 그들은唱歌者에게好感을주기爲하야 그보다도 聽衆의好感을惹引하기爲하야 劇으로서의歌劇의効果를得하럅보다도 한갓音樂-特히 聲樂으로서의効果를收하기에汲汲하얏습니다. 하서그咏嘆調는 한갓唱法의困難함을자랑하게되매 歌劇全體는 聲樂의大曲을數多히運續해노핫슴에 不過한感이 잇게되엇습니다. 다시말하자면唱歌者의聲의體操가 되어버렷습니다. 「로시니」의作品 「세비리아의理髮師」 와가튼것은 그의好例일것이외다.
이惡風潮는 伊太利만아니라 獨逸에서도非常히 勞力을占有햇섯습니다. 그리하야 「모싸트」 以後의歌劇의 藝術的發達은 伊太利에서나 獨逸에서나 얼마동안은볼수가업게되엿습니다. 그러나多幸히佛蘭西에는 伊太利風의歌劇은 歡迎되지아니하고 오로지 劇的効果를收得함에努力하얏슴으로써 그結果 「로시니」가튼作家로서도 그의滯佛中에는 이影響을 만히바다서 比較的劇的作品을 作出하기에이르럿습니다.
「모싸트」 의後續者를佛蘭西에서 차지랴할진대 「케루니」를말하지안흘수업습니다. 그의이름은今日에는거의忘失되엇지마는 그當時의 佛蘭西樂壇에는唯一의巨匠이라고도할것이외다.
上述한「웹베르」와共히初期의 「왁네르」 에게大影響을준이는 「마이어-어」라할수잇스니 그는 「로시니」의樂風을繼承하야 佛蘭西風의大歌劇을完成한 樂家이외다. 그는一方으론浪漫主義의精神을軆하야 興味잇는臺詞를材料로하는同時에 他方으론 伊太利歌劇의豐麗한樂風을採하야 聲樂에나 管絃樂에나將又「란드오페라」의形式的要素되는舞踊에나, 縱橫으로 그의樂才를發揮하얏습니다. 그러나 그는自己의 樂才를過信하고 는名을求하기에急히한結果, 그의作品은徒然히熱狂的合唱이나 大規模의舞臺面에만 用力햇슬이엇습니다. 浪漫主義의精神과伊太利歌劇의形式이 両者의不相容하는것이 表面的妥協을遂하야 그果實로獲得한것이곳 「마이어-어」의歌劇이라할것이외다.
上述한바와가티 歐洲樂壇은 한갓形式的華美를取하기에汲汲히지내엇더니 「왁네트」라는大家가 出함에至하야 獨逸은全歐樂壇의君主가되엇습니다.
三, 新樂劇의創造와現代의歌劇
「왁네트」의出生은歌劇界에一新紀元을劃하얏습니다 一八一三年에歌劇의革命兒 「왁네트」가誕生하자 그는 「룩크」와 「웹베르」의二人의行方을合하야歌劇을그의本能의地位로歸復케하야 最高理想인「未來藝術」을創造코저하얏습니다. 그가自己의作品을말할에 歌劇이라하지안코 「樂劇」 곳 「뮤식라마」라한것은 意味深長한말이외다. 그는音樂을詩歌의 「언더라인」 (Under Line)으로使用코저하얏습니다. 即 根本을歌詞 (劇本)에置하고 音樂을그補助機關으로 使用코저하얏습니다.
그의思考는 말하자면 「룩크」의精神에基礎를두고 다시根本的으로 新眞한歌劇을作出코저함이외다 다시말하면 文藝復興의精神 即希臘의精神에逆上하야 다시한번歌劇이란것을 自然에歸復케하랴함이외다. 그래서 그는스스로神話나傳說에서 材料를求하야 極히壯大한舞臺藝術을建設하랴하얏습니다.
이와가튼생각으로 그는樂劇 「트리스탄파이솔」에 新樣式의組織을試하고 「니른겐의指環」에至하야서는 더욱더욱 그旗色을鮮明히한것이외다. 그러나 公平한눈으로볼진대 「왁네르」의理想은 그全部가樂劇中에實現된것은아니외다. 그의音樂의表現法은勿論組織的이지마는 넘우나 規則的임을늣기지안흘수업습니다.
「왁네르」 自身은當地의空虛한音樂을 地面上에附하고 自然에歸케하야써 人生의根本精神과深切한交涉을맷기에힘썻지마는그의生命은 管絃樂에用한 「씸포니-」에잇고 詩歌에는업습니다. 말하자면 그는歌詞를根本으로하고 거긔에音樂을附加하얏지마는 그가지은바歌詞는 詩로서의最高價値가잇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嚴正하게말하자면 그는新時代를 劃한人이람보다도, 차라리十九世紀中頃에在하야 「로만틱」樂風에 最後의光明을與한人이라함이適當할것이외다.
「왁네르」의影響은 國內와國外를不問하고 그勢力이至大하얏습니다. 그리하야그의死後에獨逸에는그를模倣하는歌劇만作出되엇습니다. 그러나그의後跡을밟으면서도 오히려獨創的才能을發揮한이는 그의 歿後에 오즉 「슈트라우스」一人이잇슬이외다. 歌劇 「사로메」는 그의代表作이라하겟지오.
「왁네르」의歌劇中에有名한것은 「탄호이제르」 「로헹그린」 「트리스탄과이솔」等이잇고 그의影響을바든作家로서의作品中에는 「베르듸」의 「리고레트」 「아이다」와, 「-노」의 「파우스트」와, 「제」의 「카멘」과, 「슈트라우스」의 「사로메」等이가장 名高한것이외다.
그後의作家들로말하면 그數를헤아리기 어려울만치濟濟多士입니다마는 가장重要한地位에잇섯고 偉大한樂才를가젓던 歌劇史上에 여노흘수업는作家만으로도 그이름만列擧키에도不遑합니다. 그러나 現代의歌劇을말하랴하면 반듯이 下記한三大家를내여노흘수업스니 그들은 곳獨創의天地로거러다니면서 새로운光輝의世界를創造한사람들이외다. 그들의 作品을 紹介하면 그中에도有名한것은
시作
「레아와미라산드」
「聖세바스틔안의殉敎」
슈트라우스作
「사로메」
「엘렉트라」
푸치니作
「라, 엠」
「토스카」
「胡蝶夫人」
大綱이와갓습니다. 只今이三大樂家의作品에對하야一言할진대 「시」의音樂은 前人未開의境域을 步한者니 그는形式에拘束됨이업시 全혀印象的, 詩歌的의特質을有하얏습니다. 그러고「슈트라우스」는 「사」가全然獨創的임에反하야 그는「왁네르」의 後繼者로써 自己의天才를 發揮하얏습니다. 그러나 그의音樂은革命的인同時에 「標題樂」-(後日에다시말하랴합니다)-을絶頂지 發達시킨功績은特筆할價値가잇습니다. 다음에「푸치니」의歌劇은 「시 와가티 內面的이아니오, 「슈트라우스」와가티 刺戟的이아니지마는 美麗한新趣의要素에豊富한點이돌이어前者보다도 萬人에게歡迎됩니다. 그의歌劇의樣式에는 別로이新奇할것이업지마는 그의旋律에는 獨創的의魔力이잇고 그는劇的氣分을發揮하기에極히努力하얏습니다.
以上에擧한 三人의作家의大作七曲은 現代世界의 傑作歌劇이라 말할수가잇스니 歌劇을硏究하는人이 爲先이七曲의內容과 形式에就하야比較硏究하야 各作家의特徵을發見할진대 반듯이 닷는것이잇슬줄로밋습니다.
四, 歌劇硏究者를爲하야
그다음에는歌劇을 硏究하는人을爲하야 一言하랴합니다. 歌劇硏究라하면 自然히二個의方向으로 區別될것이니 一은製作即 作曲作歌를말함이오 一은 賞翫即 旣成品의吟味를意味함이외다. 그러나 나는 至今後者에就하야서만簡單히 그硏究方法을말하랴합니다.
歌劇을硏究함에는 다음의세가지方法이 잇습니다 첫재는歌詞上의硏究요 둘재는樂曲의硏究요 셋재는 舞臺의硏究이외다. 歌詞上의硏究라함은 大曲이 어한內容을가젓는지 어한歌詞로搆成되엇는지 作者는 무엇을表現하랴고努力하얏는지 이러한것을考察하랴면 不可不歌詞를解剖해보지안흘수업습니다. 그러나 歌劇의序樂이어한지 獨唱과合唱의境遇에 어한方式을取하얏는지 管絃樂의組織이 어한지 이러한方面의硏究는 直接으로樂曲其物을 考察해야할것이외다 그다음에말할것은 비록 同一한樂曲이라도 樂譜를볼와 혼자서口唱해볼와 는 舞臺上에서演奏됨을들을는 非常히相違되는感을 닷는것이외다. 두말할것업시 舞臺가훌륭할는 거긔서엇는情趣는 强烈한것이외다. 그럼으로 歌詞와樂曲을解剖考察하는以外에 直接으로 歌劇의舞臺面을 보고 거긔서 演出되는諸般現象으로부터 深切한印象을 엇지안흐면아니될것이외다.
이러한理由下에서볼진대 우리나라에는 아즉지 歌劇다운歌劇이업섯고 歌劇을硏究하랴하여도 그資料를어들수가업섯습니다. 이와가튼悲慘한現象이 以後몃해동안을 繼續하지안흘수업슴을생각할에, 나는 가슴이쓰리고 氣分이맥맥해짐을늣길밧게업습니다. 그러나 비록舞臺에對한實地硏究는 하기가어렵다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는歌劇에對한豫備知識으로歌劇의歷史的硏究라던지 作家의 人物的硏究라던지 는諸他의姊妹藝術과의關係만이라도 알아놀必要는確實이잇다고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音樂에趣味를가진讀者를爲하야 歌劇硏究上에 必要한書籍을말해두고저합니다.
가, 一般音樂에關한者
「로브」氏의 『音樂及音樂家辭典』 五卷(英文)
「레빌」氏의 『音樂은如何히聽할가?』 (英文)
「田邊尙雄」氏의 『西洋音樂講話』 (日文)
「東儀鉃笛」氏의 『音樂通解』 (日文)
「小松輔耕」氏의 『西洋音樂의知識』 (日文)
「前田三男」氏의 『音樂의常識』 (日文)
나, 歌劇史及評論書
「엘슨」氏의 『歌劇史』 (英文)
「엡솔프」氏의 『過去及現在의歌劇』 (英文)
「만」氏의 『近代歌劇瞥見』 (英文)
「太田黑元雄」氏의 『歌劇大觀』 (日文)
「柴田環」(現時의三浦環女史)의 『世界의오페라』 (日文)
「만」氏의 『明日의音樂』(英文)
「카-타」氏의 『戱曲及藝術에對한新精神』 (英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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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이글을쓰게된理由는 專門家를 爲함보다도-(나도亦是專門的硏究가업지마는)-普通人에게音樂에對한常識을普及케하기爲함에잇습니다. 그리하야何必歌劇이아니겟지마는第一着手로말하게된것이至今이 「歌劇의이약이」가된것이외다. 나는될수잇는대지는 通俗的으로쓰랴고하얏스나 及其也써노코보니 넘우煩雜하고 專門的으로치우친듯한感이不無합니다. 이글을쓸에 「小林愛雄」氏의現代의歌劇을만히 「參照햇슴도 아울러 讀者말슴해둡니다. 다음號부터는 「管絃樂의이약이」를 始作할豫定임으로 歌劇에對한이약이는 이에을마치고붓을씻습니다.
-(一九二三年一月八日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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