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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서 본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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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동경서 본 동경 東京서본東京
종    류 좌담 座談
필    자 심영․김신재․이난영․송영․김상진․윤석중․김희창 沈影․金信哉․李蘭影․宋影․金尙鎭․尹石重․金熙昌
출처정보 신시대 新時代
연    도 1943-04 昭和十八年四月
면    수 134 134
기사
[사진] 最近의 金信哉/ [바른편부터]尹石重,李蘭影,金尙鎭,金信哉,沈影,宋影,金熙昌/ 最近의 沈影

座談會
場所 新時代東京支社
時日 三 月 四 日 낮
【參席한분】
「望樓의決死隊」出演俳優 沈 影
「望樓의決死隊」出演俳優 金 信 哉
朝鮮樂劇團 專屬歌手 李 蘭 影
朝鮮演協理事 劇作家 宋 影
朝鮮樂劇團 企劃部長 金 尙 鎭
支 社 側 尹 石 重, 金 熙 昌

늘어선 손님에게 新聞까지파는 餘裕
宋 影 지금여기 모이신 여러분께서는劇이나 映畵나 樂劇等에關係하시는 분들로서 가장넓은 文化의 第一線을 걷는분들이므로 過去에도 勿論 許多한 內地文化에 接觸을 가지고 계시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가장 急激한 情勢속에서 다시금 大東亞의 中心인 東京에와 보시었을때 무엇을 어떻게 느끼시었는지……우선 外貌에 나타나는걸로 무엇을 눈여겨 보시었는지, 먼저 沈影氏말씀해 주십시오.
沈 影 (깜짝놀라며)제가 먼저 말을 해야합니까……글세요 東京에 最近으로는 그러께 『僕と君』를 撮影하러 왔었고 그전으로 八年前에도 왔었으므로 모두 두번입니다. 그러껜 戰爭도 그리심하게 느낄수가없었는데 이번 와보곤 얼마나 緊迫해있다는것을 發見할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朝鮮서 想像하든것과 다른것을 發見할수있는것은 戰時下답지않은 首都의 오찌쓰기(落着)가역녁히 外貌에 나타나요. 모든것이組織的인데요. 食堂에서나 술집에서나 하다못해 담배사는데도 그 늘어서는게 기리쓰다다시이(規律正しい)하드군요.
金尙鎭 京城과 東京이 현격하게 달러요. 과연 首都답든데요.
宋 影 늘어서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新聞까지 파든데요.
沈 影 자리가 잡혔어요. 沈着하고, 조용한게 그런데 서울서는 모든게느려요. 소란스럽고, 수선스러운것이. 삐아ㆍ홀 앞에 늘어섰다가 한잔 얻어먹고나니 고맙드군요. 길을 걸을젠 담배도 피우지 않는 東京사람의態度에 感激했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서울은 安逸하여요.

몸뻬이입은채로 나드리가는女性들
宋 影 信哉씨는 몇번이나 오셨나요
金信哉 昨年에오고 今年에 또왔어요
李蘭影 저는 女子이므로 女子에對해서 더욱 눈에 띄이는게 많었는데그중에도 그 옷입은거라거나 百貨店에서 거나 이분네들의 行動에 눈띈게 많습니다. 그중에는 우리 半島女性이 배울점이 여간 많지가 않아요 빠쓰속에서나 電車속에서 서로간에 親切스러운데는 참으로 마음이 기뻤습니다. 앉은 사람이 서있는사람의 짐을 자기무릎우에 놓게한다든지 서로 자리를 권한다든지 車掌들의 말씨며 태도의 고분고분함이라든지…
金信哉 여기서는 몸빼이를 무상시에도 입거니와 나드리 하는데도 입드군요. 서울선 演習할적에만 입는데요.
李蘭影 그만큼 긴장되어들있습니다.
金信哉 防空施設도 서울과달리 여간 完備되어 있는게 아니에요.
金尙鎭 이런것들이 普通때에 있어서도 生活化 되어있습디다.
李蘭影 下關서 東京까지 二等을타고왔는데 오면서 볼라니까 모두 벤또를 사가지고 싸개 종이에나 뚜껑같은데붙은 밥알들을 한알도 남김없이 아뜰이 떼어먹는게 어찌나 밥알한알갱일지라도 소중스럽게 여기는지 나는 고만 食堂에 가고푼생각까지 없어지고 말았세요. 또 하나 느낀건 神宮에 參拜하고 오는데 女學生들이 모두 몸빼이를 입고 흙투성이가되어 일들을 하는데 우리는 털오–바를 입고 있지 않아요? 良心的으로 부끄러웠어요.
銀座에 그많든 오샤레들도 모두 어디루갔는지 하나도 볼수없구요. 旅舘에서도 아침 일곱시 반만되면 모두 『있지, 니, 산, 시!』하고 運動들을 하는데 고만 『東京이 이렇구나!』하여저서 精神이 번쩍났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것은 四年前과 매한가지로 파–마넨트가 그대로 流行하고 있는것이예요. 몸빼이라든지 配給機構라든지 健實함이라든지 모든게 충실한데 오직 朝鮮에도없는 파마넨트가 이상했습니다.
沈 影 파마가 경제라지오.
李蘭影 그래서 그런가요? 모두 도나스로 꼬부려 올려부치구……
沈 影 神宮에를 信哉씨와함께 參拜하고 도라서 나올여니까 金鵄勳章을 찬 將校한분이 信哉씨 앞으로오드니 嚴肅하게 不動의 姿勢로 敬禮를 하지않겠어요? 信哉씨가 朝鮮옷을입고 갔었기 때문에 눈에 띠었든 까닭입니다.

하로에二百집도는 스피-드回覽板
李蘭影 東京서는 回覽板이 하로에二百집을 돈다는데!
宋 影 朝鮮엔 몇집이나 도는고?
金尙鎭 몇집이나 돌까.
宋 影 마루에 놓아두고 한시간, 부엌에 세워놓고 두시간……
沈 影 『얘! 아모개야 그거 옆집에 갖다 둬라!』
金尙鎭 보기나 봤으믄-
沈 影 한심스러워요.
李蘭影 아침이면 구루마를 껀사람이 종을 울리면서 오니까 旅舘 下女들이 쓰래기에 종이 모아 두었든것을 모두내다가 구루마에 담어주겠지오 집집마다 모두 내버릴 수지를 내와요. 그런점을 볼지라도얼마나 물자를 애끼고 利用하고 깎듯이 구는지 알수가 있어요.
金尙鎭 점심時間이 되니까 銀座나 마루노우찌 점잖은 男女事務員들이 일시에 配給받을 쪽지들을 들고 주욱 늘어서서 차례차례로 配給들을 받는데 朝鮮서는 부끄럽게 여기고 천하게 생각하여 열적게 생각합니다.
宋 影 가장 生活化되었어요.
沈 影 八年前에 보든 頹廢的氣分이 씻은듯이 없어지고 아조 健康한 都會가 되었세요.
宋 影 그럼 結論으로 綜合해 말슴하면 國民이 一體가되어 모든게 組織的으로되어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라도 능히 헤어나갈만큼 沈着하다. 만일에 敵國의爆擊을 當한다 할지라도 큰일을 일으키지 않을만큼 體裁가 서있다는 말씀이지요.
一 同 그렇습니다.

우리눈으로 본 東京劇界의 美風
宋 影 우리가 모두 劇界에 있느니만큼 今般거기에도 留意 하시었을터인데 前과 다른점, 例를들면 作品의 動向이라거나 舞臺의 形象化된것에 느끼신것을 말씀 해주셨으면-
沈 影 저는 前進座와 東賓와 아사꾸사(淺草)에서 몇가지 劇을보았는데 東賓는 잘들 해요. 그러고 모두가 政治的傾向을 띠고 國家精神에 合一되어 있는것만은 事實이었습니다. 그렇다고 戰時라고 아양을부리는것 같은것도 없었습니다. 또한가지는 朝鮮의 大衆들은 가다이한데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宋 影 舞臺와 客席의 장壁이없어지고 國家精神이라는데 한덩치가 되었습니다.
金尙鎭 朝鮮에 映畵로나 劇으로나 第一問題되는건 技術이라고 생각됩니다.
李蘭影 國際劇場舞臺에 오르고 있습니다만 朝鮮서야 李蘭影이라면 누구나 알고있지만 東京서야 어데 그래요? 그러므로 머리가 더 씨워지어요. 그저 實力으로서 誠意껏하였습니다.
宋 影 前進座 三月公演의 舞臺演習을 보았는데 全員이 區別이없이 熱을 내어있는데는 놀랬습니다. 階級은있지만 區別은 없세요. 演習하는 틈틈이도 女俳優들은 바늘과 실을 들고 衣裳의 터진데를 꿰매며 小道具 하나라도 바루 건사하는것이 朝鮮劇界에 볼수없는 美風이었습니다. 演習에도 統一이서있는데 實例를 들면 『暫』을 演習할제 主演俳優의 다스끼 하나가 準備못되었는데 다른 俳優들은 紛粧을 모두하고 그 변변치않은것을 기다리면서도 군소리한마디없이 嚴肅하게있는데 그것이곧 劇에對하는 態度가 아닌가해요. 어페가 있을지 모르지만 蘭影씨 過去에 좀 부끄러운점은 없습니까 硏究生에게對한 態度같은데對해서 세메투하는것은 아니지만……
李蘭影 朝鮮樂劇團에서는 모두 동생같이알고있지 幹部라고해서 차별을 두고있은일은 여지十一年間 없다고 생각합니다.
宋 影 劇界는 戰前에는 上下가 各各區分되어 있었지만 지금볼때에는모두 協調해서 國民의 기가마에가 서있다고 보겠습니다. 저번 軍人會舘公演때 初日에 傷痍軍人앞에서 國家를 위해 눈과팔을 잃은 그분들앞에서하실 때 어떠한 感懷가게셨습니까.
李蘭影 온 熱情으로 있는 재주를 통째 다 바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꽉찼었습니다.
宋 影 東賓撖影所空氣는 어떻습니까. 信哉씨 보신대로 말씀해주십시오.
金信哉 沈影씨가 인제 대신 모다 말씀드리세요. 그런約束으로 오지 않았세요?
金尙鎭 滿洲映畵의 甘粕氏는 아침아홉시부터 오후네시까지 일을하며외에 밭일과 日曜 祭日에도 쉬지않는데 日本의映畵는 만넨도꼬(萬年床)에서 나온다고 나무랜후 新時代映畵藝術은 私生活부터 고치지 않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沈 影 前進座의 組織과 集團訓練은 좋와요. 東賓는 식구가많어 個個人이 모다 冷情한것 같드군요. 오즉 京都松竹의 小杉, 田坂 씨들의 雰圍氣란 여간 좋지않어요. 作品主義로서 全員의 精神이 集中되어 있습니다.
金尙鎭 처음에는 우리가 東京歌劇團에 뒤떨어지리라고 상상하였었는데 의외로 우리가 훨신 앞섰습니다.
李蘭影 그건 참으로 우리가 앞섰습니다.
金尙鎭 우리硏究生의 態度도 여간칭찬을 듣지 않었습니다.
李蘭影 우리는 이번公演에선 전부가 전신이 불덩어리였습니다. 『翼贊親子』라는 스켙취를 하는데 松竹少女들에게 시켰다가 우리에게 바꿔주었습니다. 잘하고못하고 우선 熱이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李蘭影 松竹에선 幹部렌쮸(連中)에 對해서 少女들은 보지않어도 그방문앞을 지날때에는 반드시 예를하두군요.
宋 影 內地의傳統입니다.
沈 影 이傳統은 반드시 必要합니다.
李蘭影 演習場은 設備가 어찌完備한지 고도(琴)도 몇십대가 쫙늘어있고 샤미센(三味線)도 수없이 걸려있고 피아노도 쭈욱 있어서 아츰여덟시부터 마음것 演習을 하는데…
沈 影 거기서들 자나요?
李蘭影 벤또도 가지고 다녀요.
沈 影 우리金信哉씨는 지금 東賓撮影所에 第一가는 人氣者입니다.
金信哉 쓸데없는말씀 마서요.
沈 影 얼골이 어여뿌신데다가 조선 옷을 아름답게 입고게시어 撮影所 男女全員의 戀人이 되셨습니다.
金信哉 에구구?
沈 影 이번에 새로운 新作에 出演해달나고 請을 받었건만 『望樓의決死隊』가 끝나기 전에는 대답할수없다고 거절했습니다.
金信哉 고만두서요.

東京의國民劇
宋 影 大東亞戰爭後 演劇界 全體가 動員하고있는데 보신중 『저런게 國民劇이다!』하고 느끼신걸……
沈 影 어려운데!
宋 影 그어려운걸 듣기쉬웁게 말씀해주섯으면 좋겠는데.
沈 影 觀念이 앞섰습니다. 유도리가 없습니다. 藝術的으로 薄弱합니다.
宋 影 五郞劇의 『千利休』 八重子의 『當陽舍の人々』 前進座의 『雁と鷰』 세가지가 이번情報局 參加作品인데 『當陽舍の人々』는 共同協調밑에서 牧場을營爲한다는 生活을 그린것인데 作品의 態度가 생갱하고 깊이가 적고 좋은 意圖가 觀念的 抽象物이 되어버리고 말았세요. 거기에 比해 『雁と鷰』는 滿洲國이 大東亞의 一團體를갖기엔 日本的이 되어야한다는 테–마인데 作者의 人間性을 探求할려는것이 作品의 現在國民劇도完成이되지않고 올라가려는 勞力가운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도리어 朝鮮이 앞섰습니다.
沈 影 아암. 朝鮮이 활발해요 朝鮮이 質이 높습니다.
宋 影 東賓에 長谷川一夫는 年俸一萬二千圓씩 받고있다는데 여러분은 단 一圓을 받는다드래도 좋은 演技를 내놓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겠지오.
金信哉 그러믄요!
李蘭影 그런데 아사꾸사(淺草)에서는 길에나서서 오뎅을 다 사먹었습니다.
金信哉 노래부르는이는 매운것을 꺼린대는데 고추가루는 안잡수세요?
李蘭影 어째서요 없어서 못먹지오. 나는 목구멍을 뜨끔하게 지저 놓아야 목소리가 탁튀어나와요. 이번旅舘에서도 고초를 사다놓고는 드리처서먹어요.
金信哉 나는 이번 映畵에 모두 洋裝을하고 꼭한군데만 조선옷을 입으라고하여 퍽 걱정이었더니 의외에 반대로 모두 조선옷을입고 꼭 한군데만 洋裝을하게 되었세요.
李蘭影 저는 조선衣裳을 산떼미같이 가지고왔다가 하나도 못입었습니다. 쪽도리도 못쓰구요. 화복을 입고는 거름거리까지 고치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에 힘이 무척 들었세요.
金信哉 노래를 죄 國語로 부르시는데 거기에 무슨 藝術的表現에 뜻두신게 있습니까.
李蘭影 전부 國語로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勿論 勞力에勞力은 쌓고있습니다.
金尙鎭 청중들은 李蘭影이가 나오면 李蘭影이가 나왔다! 張世貞이가나오면 張世貞이가 나왔다! 俳優가나왔다. 歌手가 나왔다!하고 생각질않고 오랜동안 故鄕을 떠나있든 무리라 거기 나오는이가 누이같고, 집안 식구같고, 戀人같어 그러는것이니까 그 心理를 잘 理解해주고 慰勞해주어야 합니다.

畵家ㆍ小杉勇 歌手ㆍ高田稔
沈 影 敎養은 우리내 劇人들도 깊이涵養하지 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나의 義兄弟를 맺고있는 小杉勇로 말씀해도 硏究하는 劇方面以外에도 그림으로도 一家를 이루어 가지고 있고 高田稔같은 분도 映畵外에 歌手로 또는 그림으로 有名합니다. 이번에 선물로 쪽짜를 몇장 받어가지고 갑니다만 우리도 敎養을 깊이 쌓고 趣味를 넓혀 生活을 潤澤하게 하지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宋 影 오늘은 어찌나 꾸지람을 많이 들었는지 어깨가 묵직합니다.
李蘭影 용서 하십시오. 그러면 우스게나 하나 하십오.
宋 影 그건 蘭影씨가 하서야지.
李蘭影 그러지오 제일 기매키게 우순건 內地에 와있는 조선 사람들이 國語를 말하는데 全羅道사람은 全羅道사투리로 國語를말하고 慶尙道사람은 慶尙道사투리로 말하며 咸鏡道사람은 咸鏡道사투리로 平安道사람은 平安道사투리로 말하는데 『안다 곳찌기데이 스아리나샤이요오……』(하고 사투리로 숭내내이니 滿座가 拍掌大笑)
李蘭影 우리도 東京에오니 시골뚜기가 되어버리고 말었어요. 東京驛에서 省線을타고 神田에와 내리는데 『에–엣–!』소리가 나기에 보니까 福本씨가 채내리지못한체 門이털걱다처지곤 車가떠나지 않겠어요. 福本씨의 멀뚱한 얼굴이라니! 또 하나는 地下鐵로 아사꾸사 國際劇場엘갈데 다가서 내릴제 李鍾哲씨는 가치고金貞九씨는 외투가 반이 門틈에끼어서 밖에서들은 댕기구, 안에선 떼밀구, 車는 떠나려하고, 貞九씨는 소릴지르구, 한쪽으론 무섭고, 나종생각하니 우습구! 그냥패라니 항여 이말은 쓰지마세요. 나중에 貞九씨한테 야단만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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