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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조선음악경연」 입상자 좌담회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제1회 「조선음악경연」 입상자 좌담회 第一回 「朝鮮音樂競演」 入賞者 座談會
종    류 좌담 座談
필    자 최창은(외 6명) 崔昌殷(外 六名)
출처정보 신시대 新時代
연    도 1943-02 昭和十八年二月
면    수 132 132
기사
[사진] 조선음악경연 입상자 총 7매

出席者 無順
테너 崔昌殷
日本高等音樂學校 京城 三十一歲
洋琴 花村美代子
京城帝大在學中 長野縣 二十三歲
提琴 木村敏男
平壤師範學校 淸州 二十九歲
洋琴 金聲福
梨花女專音樂科 咸興 二十一歲
테너 大山俊熙
培材中學校 京城 二十八歲
쏘푸라노 高英喜
梨花女專音樂科 昌原 二十四歲
提琴 烏川琴洲
國立高等音樂學院 平壤 二十八歲

記者 여러분의 入賞을 眞心으로 祝賀합니다. 바뿌실텐데 수고스럽지만 「新時代」讀者를 爲하여서 여러분의 貴하신 經驗을 말슴해주십시오.

指導者
記者 먼저 여러분의 오늘의 榮譽를 얻기까지 指導를 해주신 先生님은 어느분이섰는지오?
大山 任祥姬先生한테 좀 指導를 받었습니다만 거이 혼자 공부했습니다.
木村 平壤師範때는 片岡晴太郞先生한테서 指導를 받었고 그後 大場勇之助先生과 上野久子先生께서도 좀 指導를 해 주섰습니다만 그後는 獨學이었습니다.
烏川 전 末吉雄三先生 아우그스트융겔先生 金田演成先生이 세분한테 指導를 받었습니다.
崔昌殷 저는 關種子先生한테서 指導를 받었습니다.
高英喜 이번 콩쿨曲을 指導해 주신 분은 任祥姬先生님이섰어요.
金聲福 이전엔 더러 다른분한테서도 指導를 받었습니다만 이번 콩쿨曲指導를 받었습니다만 이번 콩쿨曲은 金悌植先生님이섰습니다.
花村 竹井春子女史였습니다.

音樂을 하게된 動機
記者 이번에는 어떤 動機로 音樂을 하시게 되섰는지를 말슴해주십시오
金聲福 小學校四學年때 제형이 조곰한 풍금하나를 사주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작난한것이 피아노를 배게된 動機가 된것 같어요.
大山 전 나면서부터 基督敎信者의 家庭에서 자라면서 讚美歌를 귀에 젖게 듣고 불든것이 動機라고 생각합니다.
崔昌殷 어려서부터 音樂을 좋아한것이 音樂을 하게된 動機라 할가요.
烏川 兄님이 바이오린도 좀 하고 그림도 좀 그리고 文學書도 좀 읽고 했는데 때때로 베르레-느라던지 바레리의 詩를 읽어주군했습니다. 그런 雰圍氣속에서 막연하게나마 藝術全般에 對하여 愛著를 가지게됐지오. 그中에서도 兄님의 바이올린을 훔처 가지고는 혼자 켜군한것이 저도 모르는새 바이올린外에는 제 生活을 左右하는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木村 전 아주 시굴서 자랐는데 하로는 어머님 심부름을 갓다오는데 自轉車방에서 한번도 듣지못하던 音樂소리가 들리지 않겠습니까? 한참이나 멍하고 서서 감격해 들었습니다. 그이튼날부터 그집에 가서 그의 바이올린을 빌려서 뱄습니다. 그것이 아홉살때인데 얼마 안되어서 流行歌란 流行歌는 거침없이 켰지오. 하로는 동리사람들을 모아놓고 신이나서 바이올린을 켜는데 낯모를 紳士한분이 제 어께를 툭치며 「너 참 잘 켠다만 그 손 집는法은 다 틀렸구나」하겠지오. 전 속으로 좀 不滿했지만 그紳士를 따라 그의 宿所로 가서 指導를 받었습니다. 그紳士가 누구였던지도 지금은 생각안납니다. 제게는 큰 恩人입니다. 그後부터 저는 바이올린을 들고는 江邊으로 들로 혼자 조용한 곳으로 찾어 댕기며 그저 자꼬 켰습니다. 이런것이 動機가 되었습니다.

音樂공부를 하는동안 特히 注意한 健康法
記者 다음엔 여러분께서 그 힘드신 音樂을 硏究하시는 동안 어떠한 健康法을 쓰섰는지 말슴해주십시오. 崔昌殷氏 말슴해주시지오.
崔昌殷 別로 이러타할 健康法은 없었습니다만 消火器에 故障이 없도록하고 感氣에 걸리지 않도록 注意한것뿐입니다.
花村 잠을 充分히 자고, 小食을 지킵니다.
高英喜 저도 잠을 잘 자도록하고 저녁밥後에는 絶對로 間食을 않고 飮食은 무었이던지 가리지 않고 먹도록합니다. 그리고 는 마음을 넓게 가지고 明朗하게 살려고 努力합니다.
金聲福 전 健康이란데 對해서는 全혀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웬채몸이 튼튼하니까 어지간한 練習에는 疲勞를 느끼지 않습니다.
大山 저도 별로 그런것을 생각지 않었습니다.
烏川 누구나 그렇겠지만 전 健康이라는것을 여간 重要視하지 않습니다. 特히 適當한 運動과 營養과 睡眠, 이 健康의 三大要素를 늘 머리에 두었고 精神的으로나 肉體的으로나 純潔과 健全을 늘 目標로 했습니다.
木村 저는 테니스를 좋아해서 늘 그것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린을하다가 疲困하면 곳 쉬도록하고 바이올린을 하기 直前에는 무거운 것을 들지않고 과격한 運動을 피하고 술담배도 될수있는대로 피합니다.

音樂을 공부하는中 特히 즐거웠던 일 괴로웠던 일
記者 音樂을 공부하시는동안 즐거우섰던 일도 많으섰고 남모르게 괴로우섰던 일도 많으섰을겁니다. 그것을 좀 말슴해주십시오.
金聲福 좁다란 練習室에서 신이나서 練習을 할때 自己音樂에 自己를 잊어버리고 練習을 繼續할 때가 가장 유쾌합니다. 괴로웠던 일은 별로 없습니다만 音樂會나 月例音樂會를 앞에 두고 손고락끝이 터저서 그저 피아노 앞에 멍하고 앉었을 때는 울고싶군했습니다.
記者 그럴때는 정말 안타까울겁니다 大山氏는—
大山 처음에 저는 高音을 내지 못하였는데 자꼬자꼬 練習하는동안 高音을 낼수있게 되었을때가 제일기뿌두군요. 괴로웠던일은 별로 없습니다만 變聲期에는 혼자 은근히 걱정도 했습니다.
高英喜 전 最先을 다해서 練習을 해가지고 先生님께 칭찬을 받었을때는 눈물이 나게 기뿌두군요. 괴로웠던 일은 聲樂試驗이나 音樂會를 앞두고 몸이 괴로워서 音聲이 잘 나오지 않을 때가 제일 안타갑두군요.
崔昌殷 참 그렇습니다. 칭찬받기란 여간 힘들지 않으니까요. 전 몇번이고 音樂을 집어던지고 말가하고 생각했는지 몰릅니다. 先生님께서 가르치시는것을 修得하기가 어려웠고 또 自身이 너무나 音樂에 天分이 없다는것이 悲觀될 때가 가장 괴로웠습니다. 즐거웠던일은 제 志望대로 專攻할수 있게 되어 늘 誠實하게 工夫한것이겠지오.
烏川 제게 있어서는 技巧의 열쇠를 하나하나 얻어가는데 괴로움과 즐거움이 걸렸었습니다. 힘든 技巧를 하나식 解得하기까지의 그 괴로운 투쟁, 그것을 解得했을 때의 그 즐거움은 도저이 말로 할수없습니다.
記者 참 그럴것입니다. 얻기 힘든것을 애써 얻었을 때의 기쁨이란— 木村氏 말슴해주십시오.
木村 저는 거이 獨學이었음으로 즐거웠던 일이란 통 생각 나지 않습니다. 그저 努力이 있었을뿐입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서울로 뛰어올라와서 大場先生의 指導를 받군했는데 그때 宿所에서 練習을 하노라면 땀이 샤쓰가 펑 젖고 바이올린 턱 바치는데가 땀이 고여서 바이올린이 몇번이고 떠러지게 된것을 다시 잡고 練習을 하고 後에는 핏치카-드練習때문에 왼손 손고락끝에 빩안 피가 배었을때는 참 괴로웠습니다.

콩쿨-舞臺의感想
記者 참 얼마나 괴로우섰을가요. 그렇게 여러분께서 애쓰신 보람이 계섰군요. 그렇게 애써 공부해가지시고 舞臺에 스섰을 때는 感槪無量한 것이 계섰을겁니다. 大山氏 말슴해주십시오.
大山 그저 지금까지 괴로움을 이겨온 成果를 未熟하나마 여러분 앞에 내놓을때는 感激했습니다.
金聲福 전 별로 없어요.
高英喜 學校講堂에서는 여러번 노래를 불러 봤지만 府民舘은 처음이었는데 막상 音聲을 내서 노래를 해보니 제귀에는 어찌 숭하게 들리던지오. 伴奏도 들리지 않고 聽衆도 뵈지 않두군요. 둘째曲을 불을 땐 그래도 좀 낳두군요. 그저 練習할때만치라도 불르려고 애썼습니다.
崔昌殷 이번 콩쿨에 參加한것은 이런 機會에 心身을 緊張시켜서 공부의 熱을 채쭉질 하랴는것이었는데 다른 音樂會보다는 性質이 달러 長點보다 短點을 찾어내는 音樂會라 여간 어렵게 생각하지 않었습니다. 一擧手一投足에 細心한 注意를 하게됨으로 그만 노래를 爲한 노래가 아니라 무슨 罰쓰노라고 부르는 노래같어서 練習때 보다는 六割가령 밖에 힘을 發揮 못 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번 舞臺에 선 中에 이번이 가장 困難했습니다. 이機會에 自身의 工夫에 크다란 고개를 넘어 그만치 한거름 理想의 音樂道를 前進한것은 事實입니다. 一生을 自己의 工夫時代로 삼는 藝術部門의 學徒들은 利用할만한 舞臺라 생각했습니다.
烏川 전 全혀 初舞臺였는데 靜肅했던것이 기뻣고 이런 靜肅한 聽衆을 가지면서 同時에 演奏者는 舞臺우에서 自己自身의 生活을 가질것이라고 마음속 깊이 느꼈습니다.
木村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演奏를 해봤지만 이번처럼 氣分 좋은덴 없었습니다. 聽衆이 理解해 준다는것이 얼마나 유쾌했는지오. 그대신 만만한 演奏는 못하겠시오.

將來의 抱負
記者 社會의 많은 期待를 받으시고 계신 여러분께는 앞으로의 抱負도 크실겁니다. 그것을 말슴해주십시오.
崔昌殷 入賞의 可否는 생각할것 없이 自己공부를 爲해서 몇번이던지 콩쿨에 應募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로바삐 조그만 音樂藝術이나마 가지고 一般民衆에 明朗한 日常生活에 이바지할수 있도록 奉公할 생각입니다.
高英喜 될수있으면 언제까지던지 공부를 계속하고싶은 생각뿐입니다. 제게 자랄수있는 소질이 있다면 가장 幸福될것입니다.
金聲福 저도 結果는 어찌 되었던 그저 배고 자라는 生活을 하고싶습니다.
烏川 自己自身을 좀더 높은데로 이끌도록 間斷없는 自己脫皮와 自己反省이 있을뿐이겠지오. 音의 世界를 追究한다는것은 제게 있어선 거이 宗敎的입니다. 音樂에 제 全生을 바치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木村 來年에는 꼭 一等入賞을 해보겠습니다.
大山 인제부터 좋은 先生님한테 指導를 받어 本格的으로 공부를 하겠습니다.
花村 빠하와 쇼팡을 공부하겠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베-토-벤을 깊이 理解할수있게 되고싶습니다.
記者 바뿌신데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서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健康하시어 音樂의 精進해 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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