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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 여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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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조선영화 여우론 朝鮮映畵女優論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김정혁 金正革
출처정보 신시대 新時代
연    도 1943-01 昭和十八年一月
면    수 118 118
기사
[사진] 文藝峯과 卜惠淑 각 1매

大體 朝鮮映畵界에는 몇사람의 女俳優가 있는가? 아마 두루合치면二三十名쯤은 쉬이, 헤일수 있을게다.
그 아가씨들을 한사람씩 죄-다 끄집어내어야 滿花式으로, 이種類의글을 즐기는 讀者諸君에게도 興味가 있을게고, 따라서 이原稿를 성화같이 督促하는 編輯者氏의 本意에도 合當할것이로되, 어제오늘 石火모양으로 되였다간, 지고 지기무섭게 또 어느모통에서 번쩍이는 작자들도 꽤흔해서, 그食口를 一一히 쫓아다니기란 맥도풀리려니와 그야말로 春風秋雨, 朝鮮映畵의 旗幟아래 맨발벗고가는, 알들한 몇사람을 爲하야도 到底히 이런차리에 함께 座席을펼수없다.
나는 그런 意味에서 量보다 質本位로 이아래 몇사람의 女俳優를 이얘기하러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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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本論에 들어가기전에 暫時 이얘기해둘것은 앞에 朝鮮映畵界에 二三十名의 女俳優가 있으라고 言明했으나 事實은 지난 十月一日부터 朝鮮映畵界는 朝鮮映畵令에 依한 統制로서 在來의 有名無實合 十ケ製作社가一社, 卽 朝鮮映畵製作株式會社라는 二百萬圓資本의 新會社가設立(이會社設立에 對한 具體的인것은 筆者自身도 딴데서 이얘기하야 왔으므로 여기에선 畧하거니와)되어 女俳優들도, 應當 素養 平素의 모든點이 採點되어 不過 六, 七名밖에 入社되지 못하였다.
卽 朝鮮映畵界가 단하나의 會社로 統制되었으니 여기에 採用된 六, 七名의 女俳優外에 이젠 女俳優가 없어젔다고 보게되는것이다.
그런中에도 全혀 지금까지 映畵界에 있지않었던 洪淸子(朝鮮樂劇團에있든) 木下福惠(放送드라마生養成所를다닌)等의 新人이 끼어있으므로 實際로는 文藝峰, 金素英, 卜惠淑, 姜貞愛等 인셉이다.
朝鮮映畵가 三十年의 歷史를 갖었다고하나 비로소 새로운 地盤을 잡고 정말 出發한다는 마당에서 겨우 이들 밖에 추려지지 못했다는것은 얼마나 意外의일이며 섭섭한 일인가!
그만침 끝까지남은사람은 어디로보든지 우리들이 사랑할수있고 애낄수있는 사람들이 었을것을 짐작할수있다.
新會社側으로서도 이같은 女優飢饉의 對策으로 出衆된 女俳優를 百方으로 增員中이라고하니 머지않어 第二陣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줄줄 期待하거니와 이제 우에 몇사람을 素描하야 朝鮮映畵女優論을 써보기로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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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藝峰 映畵는 그形式에 있어서 文學보담훨신 說明을 하지못하는 藝術이다. 언제든지 感覺에 依하야 觀衆에게 祈하는것을 特色으로하는 藝術形式이다. 오늘날 朝鮮映畵라는것에 女優 文藝峰이 登場하지않는 寫眞이 있다고하면 벌서 그作品은 어느程度까지 成功할수있는 要素를 스스로 割愛하고 만것이라고 말할수있다.
그만침 文藝峰의人氣—貫綠이 움지길수 없는것이라는것은 映畵를말하는이면 周知하는 事實이다.
이事實은 作品의 좋고글고간의 問題를 떠나서 畵面을通하는 文藝峰의 팬에게 보낼수있는 感覺의 波濤때문이다.
果然 이것은 映畵의 特色인것과 한가지로 女優 文藝峰의 特色이 아니면 않된다.
이 無條件特色의 證據로는 萬若 어떤演出者가 文藝峰더러 그 作品속에 惡(덧말:あく)玉(덧말:たま)로 粉粧시켜 登場시켰다고 생각해보자 팬은 率先하야 그作品의 全部를 信用하지않는것은 做捨하고 욕설이 나오지않으면 多幸일것이다.
亦是 文藝峰은 그 약간 哀愁를띠었으나 淸楚한 얼굴로 우리의畵面에 絶對의 善(덧말:ぜん)玉(덧말:たま)主人公으로 나타날때 비로소 팬은 황홀하고 즐거워 하는것이다.
그러면 이같이 絶對의 人氣를 獨占하고있는 文藝峰의 今日을 생각할때 그人氣의 出發은 언제부터인가. 흔히 映畵俳優는 그中에도 女俳優는 一朝一夕에 쩌내리지즘의 물결에 휘몰려 有名하여지는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이 通例가 되었다.
間或 그같은例가 없었든것은 아니나 어느때나 誠實한 出發者를 익일수없었고 그壽命은 오래지 못했다.
그런意味로는 그의 俳優로서의 出發은 地味한 誠實一路이었음을 發見할수있다.
그의父親 文守一氏가 무슨 朝鮮演劇의 元老이니 그딸의 今日이 있음이 至當하다고할는지 몰으나 그것은 오늘들어 來日떠나간 遊覧者의 印象記에나 씨울소리이지 決코 文藝峰의 정말 俳優記는 못되리라고 생각한다.
구태여 나는 그것을 否定하려드는바도 아니나 다만 그의勤儉, 誠實, 謙讓, 이런 許多한 그의 人間的인 面의 아름다운面을 바라볼때 한개의 相續的인 遺産으로서만 보아바리고 싶지않으므로서다.
昭和七年 羅雲奎와 함께 作品 「임자없는나룻배」 (無聲 李圭煥監督)에서부터 토-키 「旅路」에서의 成功! 그리고 最近作인 「君と僕」에 이르는 二十數本속에서 時間的으로 十有餘年을 經過하는동안 그는 한걸같이 文字그대로의 誠實속에서 多難多恨을 極한 映畵生活을 밟어왔음을 우리는 생각할수있다.
때로는 朝鮮映畵의 荆路의 길때문에 모든것을 斷念하고도 싶었으리라, 하지만 실상 잘싸워왔다. 萬若 지나간날의 映畵女俳優속에서 그이만침한忍耐와 誠實을 가진사람이 한두사람있을법도 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못했다.
우리가 시방 얼는생각하야도 一世의佳人으로 아직것 그가 불으고간 民謠만은 귀담을수있는 S가 그렇고 그밖에도 許多한 女優들이 文藝峰에게서 볼수있는 그런 人間的인 長點을 含有치못했든 나머지에 모다夭折(?)하야바렸다.
그러한 그의 人間的인 性格은 偶然히 作品속에 紛粧하는 가운데서도 가장 잘 捕促할수있다. 假令 그의 代表作인 「旅路」의 「안해」를 通하야보는 眞實性이라든가 「水仙花」의 未亡人에서보는 光彩있는 貞淑의빛은 비단 그의 演技의 힘뿐이 아니리라. 演技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文藝峰의 演技를 그의人氣와 한가지로 絶對的이라고는 생각지않는다. 오히려 그의演技는 地味한 人間을 通하야 活動되여 비로소 演技以上의 演技가 우리들의 視覺에 演技를 超越한 반가움을 갖게 하는것이다.
그러므로 그의演技는 決코 俳優로서의 天分이라든가 素質은 못된다. 어디까지든지 그의 人間으로서의 誠實과 努力에 依하야 今日의 文藝峰을 있게한것이다.
이런말은 極히 平凡한 말이면서도 平凡한 人間에게는 到底히 敢當되지 못하는 노릇이다.
그證據로는 無慮百餘名의 映畵女俳優가 들낙날낙하였으되 그의右에나가는女優가出現되지 못하였음을 보아서도짐작되는것—. 아마 文藝峰은 앞으로도 朝鮮映畵俳優로서 어떠한 苦難이 있다고하드래도 現在의 誠實과 努力을 바리지않는限 朝鮮映畵 女王의 자리는 獨占된채 維持될것을 疑心않는다.

卜惠淑 어떤部類의 사람들은 卜惠淑을女傑이라고 이름진다고한다.
아닌게아니라, 그는 朝鮮映畵의 初創期時節 아직 어린女人의 몸으로서 私財 幾千圓까지던저서 半途에 停止된 製作을 繼續시키는등 가지가지의 에피소-드를 갖었다. 뿐만아니라 그는 白南尹敎重氏等의 主宰하든 朝鮮俳優學校의 第一期修了生으로서 그야말로 朝鮮映畵界의 元老級이다.
그런 年祖의 意味로서는 現役 男女映畵人처놓고 가장 오랜 구로-닝이라고 할수있다.
只今 그의作品 經歷을 回顧하야 보건대 昭和二年 「洛花流水」(監督金永煥, 撮影李明雨)에 데뷰-한것을 비롯하야 「세동무」「春風」「逆襲」「授業料」等의 許多한 作品을 거처서 文藝峰과 함께 「君と僕」에 出演하기까지 얼는 十五年이라는 歲月동안 그가 映畵俳優로서의 生活를 持續하야 온것이다.
그出演 作品속에서 比較的 代表作이라고 말할수있는것은 「授業料」의 할매니役을 들수있다.
生活의 困境에빠저 惡德家主等에게 집세의 督促을받으나 우리들 朝鮮의 늙은이들에게서 흔히 볼수있는 「귀여운孫子에게 全部의 生涯를 依支하야 하로같이 넉마行商을 다닌다」
大槪 이같은 悲劇에 가까운 늙은할머니役을 이 作品속에서 맡은 卜惠淑은 前에보지못하든 沈着과 圓熟한 演劇의 境地를 보엿는데 그것은 亦是 一朝一夕에 出演하는 俳優로서는 到底히 본뜨기 어려운 노릇이다.
十五年이라는 俳優生活속에서 참다운體驗이 쌓이고쌓여 비로소 그같은 老練의 境地에 到達할수있다는 敎訓을 보여주는것이다.
다만 이지음은 映畵會社의 初創關係도 있겠지만 專業인 映畵를떠나 第二放送部의 라뒤오드라마에 出演하는 便이 더-많은것을 볼때 本人이나 朝鮮映畵界를 爲하야 섭섭함을 느끼는바이다.
이렇게 말하고보면 라뒤오드라마의 藝術性을 손쉽게 無視해바리는것 같기도하나 그런意思는 秋毫도없다.
今日의 緊迫한 時局과 라듸오의 役割은 어데까지든지 重要視하여야 할뿐아니라 吾人은 하로바삐 라듸오가 世界共通의 課題로 하고있는 테레피죤에까지 發明되기를 마지않는바 뉴-쓰나 時事解說等과 한가지로 眞實로 偉大한 藝術家들의 얼굴과 肉聲을 房안에 앉어서 듣고저함은 오늘날 우리들共通의 意慾일게다 오로지 映畵女俳優 卜惠淑의 境遇에뿐 本業便의 有秀한 技能과 요지음 흔히 씨우는말을 빌자면 十有年의 實積을애껴서 어차피 蛇足의 辯을붙이는터이다.
實際로 이두가지 길中에 自己의 處身을 懷疑하는일은 所謂 女優의 稱이있는 그에겐 千不當이겠지만 萬若 그럴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하면, 그것은 적지않은 誤算이 아닐수 없으리라.
「내 이길이 非常이 어려운일인줄알면서 나섰노라 하고 하고 또하야 끝내는 舞台우에 슬어지는날까지!」
十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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