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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나아갈 길―극장은 연극을 결정한다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연극의 나아갈 길―극장은 연극을 결정한다 演劇의나아갈길―劇塲은演劇을決定한다
종    류 논설 論說
필    자 유치진 柳致眞
출처정보 신시대 新時代
연    도 1942-09 昭和十七年九月
면    수 84 084
기사
編輯者께서 앞으로 朝鮮演劇의 나아길길에 對한 愚見을 請하였으나 至今 演劇人으로서의 나의 立場은 남을 批判하기보다 남한테서 批判을 받어야할 立場에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劇團·現代劇場을 中心하여 내가 밟어온 最近의 活動을 돌아보므로써 一般劇壇 趨勢의 一端을 살펴볼가한다.
讀者도 아다싶이 劇團·現代劇場은 國民劇樹立을 標榜하고 創立된 團體로써 昨年六月에 拙作 『黑龍江』을 내걸고 그活動을 開始했다.
創立當時의 氣勢는 六月의 『黑龍江』公演으로부터 五月부터 八月까지 四個月間의 國民演劇硏究所의開講 그리고 九月의 第二回公演 『黑鯨亭』의上演―春香傳의 문자가아니래도 날으는새도 잡고 山川草木도 울릴만한 氣勢였다.
그러나 그 氣勢도 그後 얼마안가서(十月의地方公演으로부터) 꺾이기 始作하여 今年四月 『北進隊』公演을 끝내고는 劇團은 여름을 마지한채 休演을 하게되었다. 그러나 이미 여름을 다보낸 今八月부터서는 다시금 그 行動을 開始하게 되었다.
여름 두서너달 休演하는 동안에 現代劇場에對한 別別 데마가 巷間에는 돌았다.
그中에도 性急한者는 解散이 되었겠거니하고 早斷해버리기도하고 個中에도 親切한 사람은 現代劇場과같이 그만한 文化的 背景과 經濟力과 人才의 集結로써 웨 그렇게 沈滯되었을까?하고 걱정하였다.
그 原因이야 어디에있든 現代劇場을 支持하고 後援해주시던분에 對해서는, 이런風說이 돌게된것은 여간未安한일이 아니였다. 이와같이 現代劇場이 世間의 杞憂를 받게된데는 여러가지 原因이 있다. 그러나 그中에도 根本的인것을 따저보면, 그것은 決코 財政難도 아니오, 人才難도 아니다.
여기서 結論부터 말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現下의 朝鮮演劇이 地方巡業에 依存하지않으면 그生命을 부지할수없는데 起因되는것이 아닐까한다.
現代劇場뿐이 아니다. 朝鮮의 모든 劇團이 高協이나 阿娘이나 藝苑座나 演劇號나, 그 모두가 地方巡業으로 劇團의 經濟를 維持하고있고 그렇게 하지않으면 견딜수없는 形便에있다.
怜利한 劇團經營者는 異口同聲으로 말한다.
「中央公演을 하지마세요」라고.
中央公演을 하게되면 假令 府民舘公演이면 한번 公演에 公演費로서 一萬圓은 支出된다.
支出이 一萬圓이면 收入은 얼마나될까? 普通一圓식 入場料를 받고 二三日間 滿員을 이룬대도 三, 四千圓의 缺損은 떼어노흔당상이다. 게다가 中央公演準備하느라고 三四週日 쉬게되면 그동안의 團員의 人件費알라 그달은 六, 七千圓의 赤字를 질머진다.
六, 七千圓이란 쓰기에는 만치않은 數字이지만, 그것을 갑허내려들면 더구나 주먹九九로 營業하고있는 手工業的인 現在劇團 經濟로서는, 容易한 일이 아니다.
그때문에 現代劇場 더러 中央公演은 하지말라는것이오, 事實에있어, 高協과같은 一流劇團도 今年 正月初旬에 中央에서 新作「桐栢꼿피는마을」을 上演하고는 一個年이 가깝도록 地方巡業만 繼續하고 있다. 高協뿐이아니다. 阿娘도 今年 三月에 「三代」를 上演하고는 여태 地方巡業中이다.
이 얼마나 憂鬱한 일이냐?
나는, 그러나 演劇이 地方으로 몰린다고 그것을 悲觀해서 이글을 쓰는건 아니다. 演劇뿐만이 아니라, 모든 文化가 中央에만 限해서 集權的으로 存在할게 아님을 나도 안다. 더구나 요즘과같은 新體制下에 있어서는 娛樂에 주우린 地方人士에게 廣地域에 互하여 有益한演劇을 많이 보힐 必要가있고 보여야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演劇의 質的發展問題다. 即 地方巡業때문에 演劇水準에 있어서 그 發展이없고 오히려 退步를 거듭하고 있다는 事實이다. 우리는 恒時 前進을 要望한다. 헌데 萬一 우리의 일에 前進 代身에 退步가 準備되어 있다면 이는 얼마나 슬픈일일가? 내가 警戒하는데는 여기요.
이것이 우리의 杞憂할點이오, 現代劇場이 煩惱하는點이다.
數月前에 나는 某地方에 旅行할 機會가 있었다. 그때 마침 그地方에서 公演하는 某劇團을 맛났다. 勿論 그劇團員은 幹部以下 大槪가 나와는 안면있는 사람들이오, 딸아서 나를 반가히 마지했다.
그러나 그劇團의 幹部의 한사람인 演出家 某氏는 내게 自己네들의 演劇을 求景시키지 않으려한다.
開幕時間은 가까웠다. 나는 恒時 京城서 常住하기 때문에 地方巡業中의 舞臺는, 그다지 보지를 못해서 이劇團을 맛난게 내게는 좋은機會였다. 나는 꼭 그들의 舞臺를 구경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를 막고 못보게한다.
「제발 舞臺만은 보지마러주세요」
―이게 간곡한 그의請이다.
京城서 中央公演만 보는이한텐 참아 부끄러워서 地方巡業中의 이舞臺를 보이지는 못하겠다는것이다.
나는 여기서 생각했다. 그리고 首肯했다. 하는것은 나도 그와같은 心情을 느끼고 있기때문이다.
내가 現代劇場을 引率해가지고 地方公演을 떠났을적이다. 各地方에서 相當한 觀客이 動員되었고 地方人士의 支持도 컸었다.
開幕直前이되어 觀客이 몰려들때 氣分도 조왔고 또 感謝히 느꼈다. 한사람이라도 많이와서 興行上 좋은成績을 어드면 하고 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願하는 나는 남이 부끄러워서 劇場밖으로 못나가고, 舞臺뒤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내마음의 한구석에서는 될수있는대로 觀客이 오지말었으면하고 또 願하고 있었다.
矛盾된 이 두마음의 激鬪는 그原因이 어듸서 發源한것일가? 이 心情은 꼭 某劇團의 演出家 某氏가 願하는것과같은 心情이 아닐까, 即 제솏옷밑은 될수있는대로 남에게 안뵈려는 心情이 그것이다.
이와같은 經驗이 내게 있기때문에 演出家 某氏가 自己의 舞臺를 안뵈려고하는 그良心的인 心情에 나는 感激했던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引用한 이例는 某劇團의 某氏乃至 나만이 經驗하는 問題는 아니리라 생각한다.
讀者는 궁금하리라, 얼마나 粗放한 舞臺를 보이기에 그와같이 스스로 滿足치못할까? 하고, 그러나 나는 구태여 여기 그舞臺의 粗末한程度를 說明해볼 紙面이없다. 그리고 說明하고 십지도않다. 웨그러냐하면 賢明한 讀者는 허구헌날 地方으로 돌아다니는 巡業舞臺를보고 이미 짐작하고 있을것임으로……
나는 여기에는 單只 웨 그들 演劇人이 巡業舞臺에 滿足치 못하는지 그原因만을 캐여보련다. 그러나 그 原因은 簡單하다.
本是 演劇은 「舞臺」에서 起源한藝術이다. 그것이 野外劇이건 移動演劇이건 屋內劇이건 演劇은 舞臺에서 演出되고, 劇場에서 上場된다. 그래야만 演劇으로 成立된다. 그때문에 舞臺(廣意로 말하면 劇場)이란게 演劇構成의 三要素의 하나로 손곱히는것이 아닌가? 이와같이 舞臺는 演劇의 生命이다.
그러길래 또 演劇은 舞臺의 制約을 絶對로 받는다. 即 野外劇은 露天의 舞臺에서 하기때문에 野外劇의 性格이있고 移動演劇은 移動하는 舞臺이기때문, 移動演劇의 形態가있고 屋內劇은 한建築物을 차지하기 때문에 屋內劇으로서의 獨特한 特質이 있지않은가.
그리고 같은 屋內劇이라고 그劇場의 建物과 位置에따라서 그演劇의 性格이 제各其 또 다르다. 그例를 外國에까지가서 求할것없이 가까운 東京서만 하더래도, 東京劇場과 國民小劇場과 金龍舘은 그建物과 位置에 딸아서 스스로 그演劇의 스타일이 다르지않는가? 이와같이 演劇스타일의 相異는 그劇이 上場되는 場所(舞臺)에依해서 스스로 달러지는것이다. 演劇의 舞臺란 이와같이 演劇의 運命을決定하는것이오, 그性格을 烙印해준다. 그와같이 宿命的이다.
헌데 半島의 演劇은 어떠한가? 그들은 그들의 性格을 決定할劇場을 가지지못했다. 各劇團이 各其 十三道坊坊谷谷으로 봇다리를 싸질머지고 一年 三百六十五日을 집시와도같이 떠단여야한다. 그렇게해서 비로소 連命을하고 糊口를 할수있는게 朝鮮演劇의 現狀이다.
이것이 移動演劇으로서의 한簡素한 型態를 가진것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것은 移動劇이아닌 一種의 屋內劇이다. 屋內劇을 이와같이 떠단이면서 해야되니, 여기에 演劇으로서의 무슨 스타일의 完成을 바랄수있으며 藝術的인 性格의 特性을 培養할수 있으랴?
國民演劇이 提唱된지 거진 二年동안에 演劇의 水準은 부끄러운 말이나 그식이 장식이다. 밤낱해야 發展이없을뿐 아니라 하면 할수록 粗雜해지고만다. 뜻있는 演劇人의 어찌 두려워할일이 아니랴? 演劇을 단지 돈버리의 미끼로 생각하고 돈만벌면 그만이라면 또 모르겠다.
허나 良心있는 演劇人으로 누가 돈버리에만 滿足하랴. 演出家 某氏도 이와같은 煩惱를 煩惱하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그舞臺를 남에게 안뵈려든 것이다.
남에게 뵈려고 當當히 入場料를 받고 公開하는 舞臺를 안뵈려하니 이얼마나 살을에우는 苦痛이랴.
過去 一年동안 現代劇場은 이苦痛을 苦痛했다. 現代劇場의 애초의 創立趣旨는 指導的인 國民演劇의 樹立이였다. 指導的인 演劇이 어떤건지? 그것을 世上에 뵈야하고 뵈주기를 自他가 願했다.
그러나 이問題는 劇場이란 演劇의 道場이 없이는 解決될問題가 아니다. 다른 演劇團體와 같이 現代劇場도 봇다리를 싸지고 地方으로 돌아단였다. 단여보니 演劇의質은 갈수록 低下되고 國民演劇의 새로운 스타일의 樹立이란 机上에서나 꾸며지는 一장이 設計圖에 不過했다.
創立後 一年동안에 現代劇場은 꼭百日의 地方巡業을했다. 그동안에 團員들은 演劇의 現狀이이러하며, 그前途가 이럴바에야, 即 國民演劇의 設計란 机上의 꿈에 不過할바에야, 차라리 그꿈이나 꾸다가 죽는게 나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뿔뿌리 劇團을 떠나려하고, 또떠났다. 或者는 書齋에 들어앉으려하고 或者는 다른職業으로 轉換해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먹고 떠나는 사람을 나는 남우럴수는 없었다. 國民演劇이 이現狀으로 持續되고, 그리고 이것으로만 끝인다면, 그成果란 눈에보이는듯 하기때문이다.
至今 國民演劇을 꿈꾸는 團體는 現代劇場만이 아니다. 演劇協會가 創立된以來로 朝鮮의 演劇은 모다 國民演劇의 길로 그발길을 돌였다. 그러기때문에 現代劇場의 이煩惱는 現代劇場에만 限한問題가 아니오, 劇壇全體의 煩惱일것이다.
國民演劇은 前進해야한다. 國民演劇이 前進하랴면 위선 國民演劇의 型態를 發見해야하고 그 型態를 發見하자면 國民演劇의 性格을 담을만한 그릇!即 劇場이 要望된다.
國民演劇의 藝術的인 諸方針과 課題는 劇場이 存在한다음에 비로소 論爲되고 講究될 問題다. 劇場問題는 그와같이 根本的인것이다.
各劇團은 國民演劇을 樹立해보량으로 제全力을 다하고 있다. 原則的으로하는것은 안하는것보다야 났겠지만 발부칠 劇場도없이 힘만쓰려는것은 그結果에 있어서는 모래우에 그리는 그림과같다. 어느 물결에 언제 흐려질지 몰을일이다.
現代劇場은 過去 一年동안 暗暗裡에劇場獲得에 努力해왔지만 앞으로는 一層 더 이問題의 解決에 邁進해야할것이다.
그래야 演劇은 救援의길을 밟을수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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