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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용의 계승자―한성준 옹의 애손 무희 한영숙―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조선무용의 계승자―한성준 옹의 애손 무희 한영숙― 朝鮮舞踊의·繼承者―韓成俊翁의愛孫 舞姬韓英淑―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마태부 馬太夫
출처정보 신시대 新時代
연    도 1941-05 昭和十六年五月
면    수 210 210
기사
[사진] 三代의춤장면

한영숙(韓英淑)!
조선이 가져온 『춤』의 새주인의 이름이 곧 한영숙이다.
방년 이십이세의 란만한 청춘! 그는 지금 한참 피어나는 젊음의 꽃다발을 무대우에서 대중에게 선물하고저 재출발을 한 조선의무히(朝鮮의舞姬)임에 틀림없다.
최승히(崔承善)가 조선춤을 가지고 세계를 돌았으며조택원(趙澤元)이가, 조선의 『학춤(鶴舞)』 을 가지고 동경(東京)에서 이름을날렸으나 그것은 순전한 조선춤이라고는 볼수 없었다.
물론 재래의 조선의 춤-그 춤을 지키고있는 최후의 일인자, 한성준옹(韓成俊翁)의 가진 춤보다는 새 자리가 잡히고 새 테속에 들어, 현대화한 춤일지는 모르나,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조선의 춤이라고는 볼수 없는것이었다.
여기에 한영숙의 새출발이 있고 새 사명이 있는것이다.
『우리 영숙에게는 좋든 그르든 내가 선대에 배워얻은 조선의 춤을 그대로 물려주려고 합니다』
이것이 한성준옹이 필자에게 일컬은결의였다. 영숙이는 조선무용의 노대가, 한 성준옹의 장손녀(長孫女)로 태여나 이제, 그조부의 일생을, 통해굳게지켜온 『조선춤』 의길을계승하게 된것이다.
이것은 이제 겨우 스무살의 젊은영숙이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일지 모르나 그의 선천적으로 무용가다운-날씬하게 균형된 몸이며, 까만, 눈동자! 오뚝한 코! 정렬이 풍길듯한입술! 밤을 모르고 새벽을 모르며, 춤을 연마하는 그의 단성! 이것은반드시 그에게 조선의 춤을 지키는 새주인이 되기에 부족이 없다 할것이다.

한성준씨는 금벙 모단日本社의 조선예술상을 탄 기회에 손녀 영숙에게 자기의 춤의 후계자(後繼者) 됨을 성명했다! 이로써 한영숙의 십년동안 적공은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은 세음이다. 할아버지의 업을 손녀가 계승함이 일단 당연할지도 모르나 그 물려맡는바가 무용예술인 이상 그의 재질과 인품과 성력을 고려하지 않을수없는것이다. 그러므로 한옹(韓翁)도 자기의 귀여운 손녀일지나, 십년을두고 자라가고 커가는 영숙의 무용가 로서 의 성장을 묵묵히 살펴왔던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최승히도 고려해보고 조택원이도 고려해 봤을것이다.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최승히나 조택원이는 한옹의 춤을 지키느니보다, 한옹의 춤속에서 자기네가 얻고저하는 점만을 가져갔을 뿐이지, 한옹이 다음대에 그대로 물려놓고저 하는 조선의 춤은 지킬,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기에 느낌이 깊은 한옹은·· 깨달은듯이 여러해를 두고 조선에 있어서 조선이 가질 춤의 후계자를 양성하기에 전심전력을 해왔었다. 그리하여, 수십명 제자중에서 열번 스무번 고른 사람이 곧 한영숙이었다. 그러므로, 영숙이는 한성준옹의 손녀가 아니었드라도 당연히 조선춤의 후계자의 명예는 획득했으리라고 볼수있는것이다.

四月 十五日!
이날은 영숙이의 일생을 통해 가장 즐겁고 가장 뜻있는 날이었다. 이날, 아침, 한성준옹은 자기의 무용도장인 경운정(慶雲町四七의一) 이층에서 영숙이를 중심으로 문하생을 모아놓고 두가지의 발표가 있었다.
첫째=한성준무용연구소의 후계자로 한영숙이를 세운다.
둘째=한영숙의 혁혁한 장래를위하여 사회의 유지일동의 후원회가 조직되었다.
이리하여 영숙이는 십년적공의 결심을 보아 여기에 조잔하던 조선무용을 떳떳하게 활기있게 재홍시켜 총후반도의 직역을 굳게 지킬 기세를 돋우게 된것이다.
영숙이는 할아버지의 무릎앞에손을짚고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영숙아! 내 나이 벌써 육섭팔세이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이다. 그러나 내 춤만은 젊은 너에게 물려주는것이니 정성껏 지켜서 다음날 훌륭한 이름을 남겨주어야한다.』
순순히 이르는 몇마디였으나 그 말속에는 피가 맺쳤었다. 천길만길의 깊이가 있었었다.
『네, 할아버지! 저는 오늘부터 춤을 위해 살고, 춤을 위해 있을수있는 새 영숙이가 되겠습니다』
이리하여 육십팔세의 노인의 힘겨운 짐이 이십세의 젊은역군에게도 새광명을 꿈꾸며 뜻있게 옮겨가게 된것이다. 한성준옹은 이제는 나이 칠순에 다았는지라 도저히 자기자신이 무대에 오르기는 어려운 일이요 오른다해야 겨우 한가지나 두가지에 지나지 못할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의 조선무용의 진까는 한영숙의 몸을 빌어서 세상에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한영숙의 걸어온 길을 한번 돌이켜, 그에게 오늘이 있는 유연을 살피기로 하자!
영숙은 충남 홍성(洪城)서 났다. 홍성은 여러대 지켜온 고향이었다. 한성준옹의 장남 종히(宗喜=四八)씨의 장녀로 태어나 홍성서 보통학교를 마쳤다. 열두살에 보통학교를 마치기까지에 그는 날마다 조부되는 한성준옹의 『춤』 을 보아왔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나도 무용가가, 되겠다』
는 어렴풋한 결의가움이 터나기 시작을 했던 것이다. 영숙의 부친 종히씨는 불행히, 춤에는 재조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업을 계승을 못할줄을알 때 그는 고수(鼓手)가 되어 아버지의 춤을측면에서 도을 생각을하였다. 한성준옹은 춤에만 일인자가 아니라, 고수로서도 그야 말로 일인자임에 틀림없었는지라 영숙의 부친은 아버지가 열어주는 고수의 길을 가장 충실하게 걸어온 이였다.
어느날 영숙이는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나도 춤을 배고싶어요』
『너는 공부를 더해라.』
『춤은 어려서 배지않으면 안된다지 않어요.』
『그렇지만 시대는 달러졌다. 첫째 공부가 있어야지, 무식하고 춤만잘추어서는 김빠진 예술가가 되고만다.』
[사진] 上右韓英淑孃, 同左韓成俊翁
『공부는 삼촌에게 집에서 계속해가며 춤에 전공을 하겠어요.』
『어디 그럼 여쭈어 보자.』
이리하여 열두살 때 보통학교졸업장을 들고나서 영숙이는 할아버지 문하의 무용연구생이 되고 만것이다.
『소원이 그렇다니 어디 일년만 해봐라. 일년동안에 성적을 보아서, 재질과 성력이 갖추어 있으면 계속해 가르키고 그렇들 못하면 다시, 학교를 다녀라.』
이것이 할아버지되는 한성준옹의 말이었다.
『네, 일년동안 뼈가 부서져라 하고 춤을 배우겠습니다.』
입술을 악물고 맹서하는 영숙에게는 십이세 소녀로서는 보기어려운 굳은 결의가 빛났었다.

조선춤의 기본은 승무(僧舞)라고한다. 춤을 배는이가 제일 먼저 배우는게 승무요, 평생을 두고 추기 힘드는게 승무라고 한다.
영숙이도 입문을 하며 즉시로 승무를 배웠다. 할아버지에게 한바탕 배우고 나서는 맹련습이 시작되었다. 이연습에 장단을 처주즌이는 곧 그의 아버지되는 종히씨였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춤을 아버지의 장단에 연습을 하고있는 영숙이의 무용가로서의 환경은 세게에 짝이 없이 행복했었다. 다리가 꺾일듯이 연습을 거듭해도 할아버지도 칭찬은 주지 않었다. 땀을 흘려 한바탕 추고나면 할아버지는 번번이
『틀렸다! 틀렸어, 어깨가 그렇게 뻑뻑해서 쓰겠느냐. 그리고 첫대오금이 그저 안떨어졌으니 무엇이 되겠니.』
꾸지람이 나렸었다. 영숙은 이 꾸지람을 들을때마다 앞이 캄캄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자각이 불길 같이 타올랐다.
『오냐, 산에 가서 어깨를 풀고, 오금을 떼어가지고 오자.』
이같은 새결심을 가지고 그는 아버지를 졸라서 산으로 들어갔다. 홍산읍에서 북으로 솟아있는 월산(月山) 그늘에 있는 고찰(古刹) 보덕사(寶德寺)를 찾아가 백일정성을겸해 승무를 되풀이 하기로 일과를 삼었다. 영숙의부친이 장구채를 들고 장산을 치면, 영숙이는 다리야 꺾어져라! 어깨야 떨어져라! 정성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귀여운 손녀가 산에 가서 백일을한하고 승무연습을 하는줄을 알때 한성준옹은 그윽히 기뻤으나 백일이 다되도록 한번도 찾아가들 않았다. 그것은 영숙의 결심에 틈이 벌까봐 끄렸던것이다.
구십구일이 되던날 밤이었다. 한옹은 내일은 손녀가 백일을 마치는날이니 가슴속에 간직했던 칭찬을 주고저 하루 미리 산으로 올라갔다.
저녁늦게 절에 도착한 한옹은 멀리서 장고소리를들었다. 그것은 분명히 자기의 아들이 치는 장고이었다. 그 장소고리에 맞쳐서 백일을 두고 춤을 추고 있는 영숙의 초최한 모습이 눈앞에 왕래하였다.
『오오냐, 내일이랄것 없이 이밤으로라두 승무가 옳게 되었거든 곧 다른 춤을 가르쳐 주자』
얼굴에 미소를 띄고 급급히 절에들어스니 그때는 오랫동안 과격한 심노와 육체적 피로에 견디어 참지못해, 영숙이는 기어코 혼도되었던 때였다.
『종히야 영숙이가 너머졌구나』
한옹의 눈에는 이슬이 맺쳤다. 따라서 눈문을 짓는 영숙의 부친은 잠간 일어나 아버지에게 예를 베플고는 그대로 주저앉어서 쓰러진 영숙이는 본체도 않고 장고만 계속해 치고앉었다 혼도한 딸을 일으키도 않고 장고만치고앉은 그의 얼굴에는 인간이상의 엄숙한 기상이 서리같았다. 한옹도 아들의 뜻을 안다는드시
『영숙아! 이밤이 네게는 백일정성 백일연습의 끝막는 날이다. 자, 어서 일어나 추는 춤을 마저 끝내라』
소리를 질렀다. 귀여운 딸, 귀여운 손녀에게 차마 못할 소리일지 모르나 여기에 예술가의 무한한 깊이가 있고 끝없는 열정이 숨긴것이다.
『할아버지! 죽드라도 춤을 끝마치고 죽겠습니다.』
모기소리 같은 영숙의 대답.
『오오냐, 그래야 내 손녀다. 자, 남은 장단은 내가 처주마』
한옹은 장고를 끌어안고 입고 입신(入神) 한 명고수의 승무장단은 울려나왔다. 이 소리에 영숙은 잠 속에서나 깨드시 벌떡 일어나 남은 춤을 기어코 끝내고 말았다. 춤을 마치고난 영숙은 전신에 땀을흘린채 고깔을 쓴채 북채를 든채 할아버지에게 덜썩, 안겨서 두번째 혼도되고 말았다. 이같은 정신적 훈련과 연마를 거듭하여, 영숙은 비로소 십년만에 조부의 춤을 온전히 계승하여 후세에-다음대에 전할수 있는 실력과 지위를 획득하기에 이른것이다.

テイコ イトウ가 왔을때도, 삼교연자(三橋蓮子) 가 왔을때도 그는 조부를 대신하여 그네에게 조선춤의 모습을 전해주고 조선춤의 멋을 일러주었다. 그는 지금 사실상 조선무용연구소(朝鮮舞踊硏究所)의 부소장 격이요 조부를 대신한 조교수의 지위에앉어있다. 내일의 조선춤의 주인공이되기에는 너무나 확연한 존재가 된것이다. 요사이도 그는 매일 일은 아침이면 춤연습을 한다. 그럴때마다 그의 부친은 장단을 처주고 그의 조부는 춤을 일러준다. 세상에 이만큼 다복한 무용가는 다시 없을것이다. 승무를추면 황홀한 경지에서 보는이의 정신을 뺐는 그의 신기는 결코 일조일석에 된일은 아니다.

한영숙! 광명있는 조선춤의 새주인이여! 다복한 그의 이름을 다시한번 부르자! 그대는 자중하라! 부민관에서 동경 대판에서 허다한 관중들이 그대에게 보낸 박수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명일의 한영숙에게 가장 큰값을 놓고저 준비를 부지런히하고 있다. 부대 자중하라.
馬太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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