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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이 말하는 조선영화 정세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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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영화 감독이 말하는 조선영화 정세 좌담회 映畵監督이말하는 朝鮮映畵情勢座談會
종    류 좌담 座談
필    자 안종화·박기채·전창근·서광제·안석주·방한준·최인규·김영수·승산아부 安鍾和·朴基采·全昌根·徐光霽·安碩柱·方漢駿·崔寅圭·金永壽·勝山雅夫
출처정보 신시대 新時代
연    도 1941-05 昭和十六年五月
면    수 120 120
기사
[사진] 좌담회 풍경
司會 바쁘신데 이렇게 모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저녁엔 여러분을 모시고 조선영화에 관한 여러 가지 좋은말슴을 들을까합니다. 우리 『신시대』 독자를위하여 모쪼록 재밋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바랍니다.
金永壽 이만큼 모이기도 어렵죠.
安碩柱 정말이야, 되려 우리가 고마워해야겠군.

映畵合同問題
司會 우선 조선에 스타디오가 어디어디 있지요?
朴基采 朝映, 高映, 그리고 文化映畵?

出席者(無順)

安鍾和
朴基采
全昌根
徐光霽
安碩柱
方漢駿
崔寅圭
金永壽
司會勝山雅夫
三月二十八日밤
京城호텔에서

崔寅圭 文化映畵는 없지?
方漢駿 없어, 껍데기는 있지.
司會 高映서 새로 짓는다죠.
崔寅 돈을 좀 내시구료.
金永 최근 영화계의 현상과 그 동태에 대해서 安先生-.
安鍾和 답답허군요. 잘 아시는 바지만 영화계의 현상이란 짬짬한것 뿐이죠. 映畵令이 발포된후 오는 七月末日까지에 현재에 있는 회사들이 合同을 해서 튼튼한걸 만들어 놓면 認定을 받기도 되었다는 모양인다 그도 아직까지 무슨 작정된게 없고, 또 항간에는 神會社設이 있으나 근거가 박약한 모양이고 하니깐……
司會 아직 거기대해 具體的 方針이 作定못됐군요.
安鍾 아직 없나봅디다.
[그림] 徐光霽氏 「칼로」이란 결국『캄풀』이야. 그러다간 진보성을 잃고 말꺼니까······
徐光霽 具體的 方針이야 있지. 다만 우물쭈물 허는거지.
安鍾 하옇든 合同은 빨리 해야 할꺼죠. 實際로 어렵다면 카메라나 照明具라도 合同시키면 훨씬 날텐데, 거기엔다복잡한것이니깐……각 회사의 설비를 뭉쳐놓면 내지의 四流會社만큼은 될데니까 그래도 꽤 꾸려나갈것도 같긴하지만 원체 답답한 형편이 많으니깐요.
徐光 合同은 못헐거요. 합한댓자 運用資金은 없이 看板만 합해야 소용이 있나.
崔寅 合同해서 좋을지 안좋을지는 확적히 알수없는 일이죠. 또 合同하는데는 滿映에서 보듯 一長一短이 있거든……
朴基 그렇지, 合同이라는건 機構와 資本만이 될거지, 製作이라는건 좀
安碩 監督들이, 映畵를 제작하는 藝術家로서 映畵會社의 經營까지 干涉한다는것도 무엇하지만, 입때까지 技術者를 너무 無視한 嫌이 없지않아요. 製作者로서 技術家에게 意見을 물은적이 없었다해도 過言이 아니니까, 合同이 되든 新機構가 생기든 映畵人의 技術을 힘껏발휘해서 좋은 映畵를 만들수있게 되어야 할거죠.
徐光 合同問題는 어차피 七月末日안으로 合同을 해야 된다면 促進시켜서 福音을 전해주든지 해야 헐꺼야 그리고 各會社에서는 기운을 내서 우선 製作을 헐것이고….
方漢 合同問題는 어떤 順序로 나갈지 모르나 許可制度가 單一된다는 것일것 같은데 하나가 된다해도 人的問題가 重要한것이고 다음에 資本이 問題가되어야 할것인데 아무리봐도 順序가 뒤바뀐것 같습디다.
金永 우선 映畵人들을 정신적으로 統一해야겠다는 말슴인가요.
方漢 人物을 잘 配置해야죠.
安碩 全兄도 말슴좀 하시요.
[그림] 全昌根氏 合同해서 잘될까 못될까는 合同을 해놓고 볼일인데 어디 그나마······
全昌根 그 문제에 대해 별루 생각헌적은 없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合同해서 잘될까 못될까는 되어봐야 알겠지요. 그런데 어디 合同할 싻이나 뵙디까.
司會 항간에 一千萬圓 會社設이 떠돌고 있던데……
徐光 그건 虛說일껄……二百萬圓두 어려운데, 헛소리야.
安碩 허지만 合同한다면 그만은 해야 企業化할수 있을껄요.
司會 滿映도 一千萬圓이던가요.
崔寅 아니죠, 아마 八百圓이든가.

朝鮮映畵의向上策
司會 朴先生, 조선영화가 좀더 向上하려면……
朴基 난 만든것도 없고, 제작도 시켜주잖으니 할말이 있어야지.
安鍾 내가 經營者라면 技術家들을 몇해만큼 동경에라도 보내서 반년이고 일년씩 공부를하게 하겠습디다.
金永 하, 그럼 감독들을 再敎育하자는 거로군요.
安鍾 말하자면 氣分轉換이지, 그리고 强力한 脚本部가 必要하다고 생각하죠.여니때는 건둥건둥 보내다가 갑짜기 한달, 혹은 보름안으로 脚本하나를 쓰라고 아무한테나 부탁해 놓니 신통한게 나올수가 있나요. 그다음이 設備인데 이것조차말씀아니니 큰일이 아닌가요.
司會 그래도 이즘은……
[그림] 安鍾和氏 새떼를 박는다고 사흘을 꼭 부뜰렸었는데 결국 사진에는 뵈두않으니···
安鍾 이즘은 좀 낫다고 허지만 어디하나 연출자나 작자를 만족시키는 구퉁이가 있어야죠. 가령 각본에 뻐스나 電車場面이 나오는 경우에 얼핏 생각하면 쉽사리 될것같지만 이만한것 부터도 어렵습니다그려. 암만해도 특수장치가 있어야 할텐데 제아무리 정성껏 만들어 놔야 결국 욕밖에 안돌아오니 정떨어질 노릇이지요, 우선 무대장치, 카메라, 조명장치, 촬영기……등 기초부터 해결지어야겠죠.
方漢 설비나 각본은 그만해도 현재 만들고 있지만 그보다 급헌것이 있습니다. 일을 할수있도록 해주는것이 더 선결문제일껍니다.
安碩 입때까지 우리는 글로나 말로 여러가지 운운 했지만 인제 부터는 기술적인문제, 표현문제, 심지어는 化粧에 까지 관심하고 연구해야 할것입니다.너무 企業이고 經營에 관한 문제에는 손을 대지말고제작과정에 관한것 부터 생각해야 될것이요.
朴基 옳소, 그래야지.
安碩 經營主나 企業家가 아닌만큼 錄音까지라도 연구할 필요가 있을줄 압니다.
方漢 글세 말입니다. 質的問題는 다른部門보다도 技術問題가 제일 앞설겁니다. 勿論 機械的條件도 좋아야겠지만 우리들의 입장이 技術方面이니까 역시 우리는 기술을 닦아야죠.
司會 조선서 쓰는 촬영기는 어떤거죠.
崔寅 『발보·케』 입니다. 그게 조선 제일이죠(笑聲)
司會 값은요?
崔寅 삼천원쯤, 아니야 요새는 오천원에도 물건이 없을껄.
司會 세계서 제일 좋은건?
崔寅 『스파·미찌엘』 . 한 육만원되죠 아마 조선것허구 비교하면 一世紀의 差가 있을겁니다.
方漢 그런걸로 찍으라니 억지지.
安鍾 일반 관중들은 화려한 미국영화를 보다가 간간 우리 난장판 영화를 보니 실증도 나려니와 무능하다고 않을수도 없죠. 「집없는天使」나 「志願兵」은 당자가 아니곤 고생을 모르죠. 安兄한테 들었습니다마는 「志願兵」의 전송장면도 일부러 박힌것이 아니고 남이 출정하는 장면을 보고 박힌것이므로 감독마음대로 인물배치도 못했고, 시간도여유가 없었으니 여기에 무슨 영화적 감격을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기다 기계까지 古色이 낀것이니, 그만큼 꾸려놓는것만 끔찍하죠. 불란서영화보다 한층 더 치바쳐 줄것이 조선영화죠.
徐光 그렇게만 말할수 없지. 불란서 듀 비비에는 「大地의끝으로가다」를 「발보·케」로 만들었다잖어요. 영화가 그렇게 메카니즘의 지배만 받는다고는 말할수 없죠. 에스프리만있으면
[사진] 崔寅圭氏 돈 돈하지만 돈을 몬다고 해보슈 얼마든지 나을꺼니까 채산이 맞도록하는게······
諸氏 그렇게 말할께 아니야.
方漢 어쨋든 금후 기술적으로 연찬할 점이 많은것이 사실이지.
安鍾 夕影이 「沈淸傳」을 만들때 「임당수」장면이있었죠. 外國같으면 힘안드리고 촬영소 안에 있는 설비로 무시무시한 파도도 일으키고 해서 「심청이」를 물에 던져야할 심리장면을 내놓을것인데 이건 잔잔한 강물에서 우물쭈물하다가 마니 實感이 나올택이 있나. 이런건 연출자만 이러니 저러니 하고 나무랄께 아니죠.
安碩 천만에, 다 미숙해서 그건거죠.
(그렇잖다는 諸氏의 소리)
安鍾 方兄, 「漢江」때는 어땟었소.
方漢 결국 기술부족이죠. 눈으로 볼땐 물결이 꽤 세차보이던것도 사진으로 본즉 너무 잔잔합디다. 다른분도 다 그런경험을 당했었겠지만 사실 순조롭게 나온 사진은 없어요. 출연하던 女俳優가 임신을 해서(笑聲)…解産을 기다리기도 하고
崔寅 서양서 우리가 쓰고 있는 「발보·케」로도 훌륭한걸 낸걸 보면 결국 재간이 없어 그런것 같어요. 사진만 생각잖고 딴 생각을 하니 그럴수 밖에.
金永 재간이야 있지.
崔寅 그렇다면 성의가 없어 그래.
安鍾 이 상태로는 어려워. 카메라 하나만 맽기고 사진만 찍어 내라니, 난 엄두가 안 납디다.
朴基 무엇보다도 건실한 자본이 있어야죠.
崔寅 나온자죽 없게 척척 없어만 지는데 돈이 나오겠소. 이건 내 경험이야.
徐光 조선서는 감독이 금융가도 돼야하고 社交도 해야 되고…. 예술가가 작품행동만에 정영을 쏟아야할텐데. 너무 덤벼야할 分野가 많어.
金永 영화계에 인적재원이 부족해서지요.
安夕 감독이 회계까지 봤으니. 앞으론 좀 분업적으로 나아가야지.
方漢 그리고 영화인 아닌 영화인을 구축해야 돼요. 이건 푸로주서가 아니라 뿌로커니깐…….
安鍾 돈만 있다고 다 되잖을껄….
崔寅 자본이야. 자본 없으면 난 못할일이야.
[그림] 方漢駿 출연하던 女俳優가 임신을 해서解産을 기다리기도 하고······
로칼色과 外方進出
金永 조선영화가 외방으로 진출하기위하여서, 로칼色을 강조하여 어떤 레델을 붙여야 될줄 아는데, 여러분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徐光 로칼은 결국 캄풀이죠. 그래서는 진보성을 잃고 말껍니다.
金永 조선서 영화 한개 만드는데 적어도 五萬圓은 걸리는데 조선만 상대로 했다간 손해보는 건 뻔한 일이죠. 이런 견지에서, 시장을 內地나 滿洲지방에 개척해야 될것이요 그렇자면 특수성을 가지는편이 좋지 않을까요.
徐光 아니야, 지금, 소화 십륙년도, 같은 세대에서 같은 분위기를 그린다면 어디로 가든지 환영 받을껍니다. 하필 로칼이 있어야 될건 아니고.
方漢 그렇죠. 조선은 조선 독특의 풍속 습관과 언어가 있잖어요. 이러한 생활양식이야 비록 다르다고 해도 그 속에 감격을 줄만한 내용을 내포시키면 아무데 가도 환영을 받을겝니다.
安碩 사실입니다. 이왕에 실패한것을 보면 쓸데없이 金剛山에 가서 춤을 추고 종로서 유행가를 부르고 한 까닭이지요. 요컨대 진실되게표현한다면 그만일것입니다. 선량한 사람을 진실하게 활략시켜야지 진보가 있을겝니다. 애써 기생, 요리집만을 집어넣으려니 영화에 빈데가 생기고 그러노니 어색하잖고 못백이죠. 착실히만 그린다면 아무라도 즐겨 볼것입니다.
方漢 조선서 만들면 조선적이야. 淸水氏의 「동무」를 봐도 그게 곧 조선적 향토색이 나오고 마는거요. 조선서 박으면 제절로 향토적인것이 나와지죠.
[그림] 安碩圭氏 인젠 會計 庶務같은건 집어치고 監督노릇만 착실히 해야허죠······
崔寅 이왕에는 너무 현실을 무시한 점이 많었지요. 화면에 내지인이나와도 어색하였고……그러나 지금부터는 쉬워 질겁니다.
安碩 조선영화가 재래의 비관하는것 그것을 버린것은 좋은 경향인줄압니다. 로망적이면서 앞으로의 생활에 용기를 주게 해야 할것입니다. 니힐한것은 청산해얄겁니다.
徐光 그렇다고 너무 시국에 편승한다는것도 생각할 문젠걸요.
朴基 좌우간 조선영화가 좋지 못했으므로 내지에로 진출치 못했죠
安碩 너무 태고쩍 감정에 사로잡혔으니…
金永 조선만으로서는채산이 맞지않는다- 그러니 부득이라도 외지로 진출해야 되죠. 무슨 수단을 써도 내지로, 만주로 진출해야죠.
方漢 그 수단이 큰 일이거든. 아시다시피 그곳은 튼튼한 배급조직이 되어 있지요. 松竹이나 東寶에서만든거라면 아무것도 아닌 엉터리같은거라도 문제없이 소화되고 말어요. 자기가 생산한것을 자기가 소화시켜버리니……. 우리가 그러한 조직을 변경시키기 전에는…….
崔寅 최대걸작 이면몰라.
方漢 얼마전까지 동경서 구라파사진은 시네마·파레스에서 전문적으로 봉절하였죠. 그곳서 상영된것으론, 무성판 「아스팔트」이후부터가 본격적으로 상품과 되었었지요. 그전것은 모도가 희생인겁니다. 요는 감명을 줄만한 걸작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친절한, 누구나 알수있는걸 만들어야죠.
安碩 그렇지요. 외국만한걸 만든다면야 손님이 안붙을 까닭이 없지요
方漢 예술성이란 세계에 공통한거지요. 言語도 문제 아닙니다. 슬픈장면에서는 아무말도 안해도 다들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걸작만 내도록 해야지.
朴基 그렇지요. 조선서 좋은거면 아무데 가도 환영받을겝니다.
苦心談·苦笑話
司會 이번엔 기왕에 고생하시던 얘기나 웃으운걸 좀…….
安碩 다 고심이야.
金永 목침돌림으로 헙시다. 안선생-
安鍾 아까는 뻐스 얘길 했지만 이번엔 까치 얘길 허겠습니다. 「人生航路」를 백일때 일인데 아침에 까치가 울면 좋다는-그 까치 우는 場面에 소용되기로 南大門시장에 가서 한마리에 二圓씩 주고 두마리를 구해다 놨더니 사흘만에 한마리가 죽기로 한마리를 더 구해 와보니, 그전께 또 죽어버렸죠. 그래 헐수없이 한 마리라도 박힐려했더니 웬걸 그거마자 죽고 마는군요. 기가막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으려니, 조수로 있던 사람이 딴데서 우물우물 재주를 부렸지요. 나중에 시사때 보니, 히미한 안개속에 무슨 꽁지 긴 새가 있는것같두군요 허허. 또한번은 참새떼를 찍을려고 세시간이나 허비해도 못 찍은적도 있었지요. 이렇게 하찮것이 어려운만큼 큰 장면 찍기란 또한 몇곱 더 어려운것입니다. 가령 살림집을 찍는데도 문전이 좋은 집은 안이 좋질 못하고 안이 좋은 집은 문전이 좋질못해서 南村서 마당을 찍고 北村가서 마루를 찍는 이를 테면 주어모은 집을 찍는일이 비일비잽니다.
가정살이 장면을 찍을려면, 의례 남의 집을 빌리게 됩니다. 방이라야 보통 간반이나 두간쯤되는 쫍은것이므로 촬영에 여간 힘이 드는게 아닙니다. 기계를 그대로 방속에 넣기에는 너무나 쫍으므로 몸만 떼서 석유 궤짝에 얹고 목침으로 누르고 해가며 박어야 합니다. 광선도 물론 불완전하지요. 대개는 낮전기가 통치않으므로 언제나 태양광을 반사시켜야 되니 답답하죠. 그뿐아니라 방속의 살림기구란 빈부나 직업에 따라 어느구석에라도 차이가 나는 법인데두 우리는 그런것을 따질 새가 없이 그저 아무것이나 박고 맙니다. 이럭저럭 저녁때가 되면 주인네가 밥을 짓자 나갔던 식구가 돌아오는 고로 모처럼 시작했던것도 끝을 못내는 수까지 있지요. 그렇다고 또 이튿날 이어서 일할수 있느냐면 천만에 다시는 못빌려 주겠다고 거절하는게 보통입니다.
[그림] 朴基采氏 「無情」 박다 기생어머이가 몰려와서 한동안은 숨어다니기 까지 했죠.
方漢 「漢江」때 이야기를 합지요. 강에 가보면 뱃사공들이 상앗대를 젓가락 놀리듯이 하잖어요-그 상앗대는 대개가 참나무로 만든 무거운것입니다. 우리는 사진에 나오는 최운봉군이나 이금룡군이 갑짜기사공노릇을 하기 힘들줄 알고 백양나무로 만들었지요. 그래 척 상앗대를 짚고 서기까지는 좋았으나, 힘을 주어 상앗대를 짚는 바람에 배가 쭉나갔지요. 깜짝 놀란 이 친구들은 그만 뛰어내리고 마니 강물에는 뷘배만 둥둥, 그보다 더 당황한 나는 카메라 앞에 나와 소리를 치고, 카메라는 카메라대로 그냥 기계를 돌리고……참 웃어운 일도 있었지요.
그리고 강변말이란 악샌트가 이상하잖어요. 예를 들면 「얘이놈들아」하는걸 「여음들아」(笑聲)하지요. 이것도 꽤 많이 연습을 했지요. 또 아프레코할적에는 상을 찌프려도보고, 코를 막고 맹꽁이소리를 해가면서 만들었지요.
安碩 배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도 배타령이나 하겠습니다. 「沈淸傳」쩍에 外金剛으로 로케차로 갔습지요. 심청이가 배를 타고 떠나는 장면을 박을땝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큰배가 하나도 없고, 맨 적은것 뿐이군요. 적은 배를 찍자니 너무 빈약해 그럴수도 없어 궁리궁리허다가 적은 배, 두척을 한데 얽어서, 중간을 포장으로 둘러 하나처럼 야마시를 했겠다요. 그런데 별안간소내기가 와서 배는 뿔뿔이 놀지요. 이기세, 김소영 군들은 비를 맞고 여름철인데도 추워서 덜덜 떨죠. 혼났습니다. 그뿐인가요 비에 옷이 다 젖어 결국은 그 장면은 다 끊어버리고 말은일이 있었습니다.
徐光 「軍用列車」쩍 일입니다. 京城驛에서 화물열차가 출발하는걸 박고나서는 福溪에서 언덕 場面을 그리고 三防에선 山峽으로 달리는 場面을 박기로 하였지요. 三防서 驛長과 타협을 하고 기차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時間이 되니까 칙칙팍팍 올라온단 말이지요. 카메라는 긴장들 해서 기다리는데, 나타나는 기차를 보니 웬걸 기관차가 맨뒤에 붙었군요. 기가 막혀서 어쩔줄 모르고 있으니까, 驛長말이 이담차는 앞에 붙었으니라 하드군요. 한시간반이나 기다렸는데 이번엔 미리 감시원을 두어 기관차가 앞에 붙었으면 손을 흔들기로 했지요. 그래서 손이 흔들리는걸 보고 좋아서 찍었더니 젠장 이번엔 붙기는 앞에 붙었는데 거꾸로 놓였군요(笑聲). 하여간 그 장면 박는데만 사흘이 걸렸답니다.
全昌 「福地萬里」에 豆萬江 빨래터에서 姜弘植君이 수심가를 부르는 장면이 있지요. 그런데수심가를부르기 시작만하면 구름이 깔려요. 어쨋던 일주일동안을 두고 카메라가 절반쯤 나가려면 구름이 뭉게뭉게 떠올러 무라가 지는군요. 그래 강군말이 걸작이지. 아마 내가 부정해서 하늘이 싫어하는 모양이니 목욕재계를 해야겠군-하더니만 옷을 훨훨 벗어던지고는 강물에 덤벙 들어가서 그 소위 부정한 때를 빼고 나서 다시 박었지요. 아 그랬더니 정말 구름도 안 일고(笑聲) 그래서 잘 박게 되었지요.
朴基 나도 구름타령을 해얐군. 「無情」때 十五, 六나는 계집애가 한삼십명 소용이 됐지요, 머리를 따어내린 아이를 드만큼 구하려니 암만 생각해도 권번밖에 없두군. 그래 사정사정해서 하루 五圓씩 내기로 하고 억지로 의정부로 다려 갔지요. 의정부에 가서 촬영을 시작하려니 구름이 쫙 깔린단 말이예요 헐수없이 하루밤을 그곳서 지나기로 했지요. 익숙이 그날로 돌려주기로 했는만큼 아이들 어미들은 도모지 모르는 일이었었는 까닭에 야단이 났더랍니다. 권번으로 몰려와서 내아이 내놓으라구요. 허기야멀리 있는 내가 알리없구 하여간 이튿날 또 시작했지요. 아침에 쨍쨍하던 날씨가 일을 시작하니 또 말성을 부리는구먼.
[그림] 金永壽氏 채산을 마치려면 암만해도 내지만주방면으로 나갈 방침을 채리는게···
徐光 하-경도탓이군(笑聲)
朴基 그래서 그날도 묵게 됐는데 밤이 되니까 수심가 흥타령 방아타령이 나오는데 참 삼십명이나 모여 놓니깐 무섭데(笑聲). 아무튼 닷새가 걸렀군요. 그동안에 서울선 야단이었지요. 애들 집에선 경찰서로 찾어 안가나, 권번서는 하루 十圓쳐서 五十圓내라 안하나 필경 옷 한벌씩을 해줬지요. 그렇지만 그애들은 잘 놀았지요 허허.
司會 최선생, 「집없는 天使」때 아이들 부리기에 힘들었죠.
崔寅 아니요, 다들 말을 잘 들어요. 그런데 다리 떨어지는 장면이 있잖어요. 그것만은 그때까지 아르켜주지 않었지요. 모다들 그 임시해서 목수가 톱으로 다리에 공작을 하는걸 보고야 안 모양이지요. 그렇게 되니까 다들 헐수없다고 생각했는지 싫단말없지 잘되었습니다.
俳優·衣裳·技術
司會 배우나 기타 전문 기술가를 배출시킬 방도는 없을까요.
崔寅 배우는 돈을 많이 줘야지!
徐光 배우만!
崔寅 우리야 염치에 많이 내랄수 있담.
朴基 자꾸 제작만하면 됩니다.
崔寅 한번 출연에 한 三千圓은 줘야지. 돈 안주는데 배우가 날수 있나
司會 古代劇이면 의상이 문제겠군요
安碩 과히 어려운 경험이 없었지요. 왜 종각뒤에 전방이 있잖어요, 갓도 팔구하는데, 그런데 一任하면잘해줘요.
方漢 專門家에게 묻기도 합지요만 옷은 그저 대동소이 하니깐요.
安碩 옷은 李健爀氏 夫人이 잘 아십니다. 그분 수고를 빌린적이 많지요.
方漢 시대극에서의 행동거지란 여간 어려운게 아닙니다. 아무리 가쓰라를 썼다해서 그냥 넘어가는게 아니니깐요.
朴基 우리에게도 연기후리쓰께가 따로 있어야 되겠어요.
方漢 부족한게 한두가지야지.
崔寅 映畵界에 멋도 모르고 나왔단 굶어죽기 밖에 없어. 금광을 하는 수 밖에 없지.
方漢 金鑛에야 美人은 안가지(笑聲)
司會 조선 女俳優는 누구누구를 꼽을까요.
安碩 文藝蜂, 金信哉, 卞惠淑氏까지 해서 五六名이지.
司會 그래도, 安先生의女俳優論에는 수효가 꽤 많던데요.
安碩 그야, 映畵에 한번씩 나오기만 해도 다 집어 넣었으니깐.
司會 錄音技術는 어떱니까.
崔寅 상당합니다. 기술자론 文化에 李强雨氏가 있고 高映에 梁柱南氏, 朝映에 森田樹氏가 있지요.
崔寅 옛날엔 常設舘의 기계가 나뻐서 녹음에 정성을 다 드려도 시언찮게 들리더니 요새는 기계가 좋아서 좀 나쁘게 해도 문제 없습니다.
司會 照明은요?
徐光 엉터리지!
崔寅 뽑낼것은 하나 밖에 없어요. 太陽말이요(笑聲).
朴基 지금 형편으로쳐도 百키로는 있어야 하겠는데 모두 합처야 五十키로가 될락말락합니다.
安碩 허-이렇게 アラ만 쑤시면 資本主가 나오다가두 들어가겠네.
朴基 아니야, 이래야 나오지.
崔寅 돈! 돈이 있어야지.
徐光 또 돈이 나왔군.
司會 카메라는요.
安碩 좋은 렌즈만 있다면야.
崔寅 렌즈는다 있어.
朴基 정말 기술, 경험이 있어야죠.
安碩 내생각으론 카메라맨은 그림을 많이 봐야겠두군요. 「모나리자」라든가 「그려진人生」에는 그이들이四五年이나 걸려서 내논 재주지만 우리는 一秒동안에 그걸 배울수 있잖어요. 조각품이나 그림을 모르고서는 좋은 카메라맨이 될수없지요.
金永 어느분이 優秀합니까.
安碩 다 우수합니다.(笑聲)
徐光 登錄된 사람은 다 우수헙지요.
司會 무대장치는?
徐光 무대장치는 참 없어!
朴基 그때그때 꾸어서 했으니깐.
安碩 사람이 아니라 돈만 있으면 다 생길것이지요. 기술이라는게 뱃속에서 나오는것이 아니고 生活을 해나가면서 硏究해야 되는것이니깐요.
司會 字幕은?
徐光 이번 「福地萬里」것 좋던데.
崔寅 한형모씨가 했습죠.
司會 대개 도안가가 합니까.
朴基 그렇죠.
方漢 美術部에서도 헙지요.
最近映畵의 批評
司會 요지음 봉절된 映畵에 대해서 생각하신점을….
安鍾 「집없는天使」 「福地萬里」 「志願兵」셋중에서 「志願兵」만은 事情이 있었으니까 좀 떨어지죠. 나머지 둘은 큰 감격을 주었습니다. 조선영화가 이만한 정도로 컸다는 사실을 보고는 관중도 안심하였을줄압니다. 어느 의미로나 대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이 우에다 설비만 좀더 든든하고, 그리고 제작할 기회를 자조 준다면 수준은 훨씬 올라갈수 있잖을까 생각합니다.
徐光 나로써 기탄없이 말한다면 「志願兵」은 作者자신이 時局映畵에 정열을 가지고, 그걸 통해서 감격을 집어넣어야 할것이었는줄 압니다. 「지원병」은 감격이 희박하여서 失敗作이라고 봅니다. 夕影은 리리시즘의 作家인 만치 다이나믹하게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性格이 약해서, 다시 말하면 夕影에게는 맞지않는 映畵이었음으로 실패한줄 압니다.
安鍾 아까도 말했지만 夕影은 전송장면을 마침 出征하는 군인이 있는걸 利用해서 만든것같은 너무나 타협을 했기때문입니다. 人物도 마음대로 움즉일수 없었고 시간도 여유가 없었으니 실감이 나올까닭이 있습니까?
徐光 「집없는天使」-는 흥행적으로 성공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藝術로서 진실이랄지 모르지만 現實에서는 虛構性이 많었습니다. 실례의말씀이지만 메로드람마에 젖은것을해탈해야 深刻味가 나타나겠어. 그리고 創造性보다는 模倣性이 많습디다. 「福地萬里」는 다들 스토리가없는 영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중이 스토리만을 보러 온다면 그런層은 무시해도 좋을것입니다. 이 영화가 스토리없이 관중을 온 이끌고 나아갔다는 創造的인 見地에서 확실히 조선영화는 一步前進했다고 하겠습니다.
方漢 「志願兵」은 夕影으로선 損失이 많었죠. 二年전 사진이 기분이 달러진 요새 封切된것이나 기술적으로 아프레코에서 손실이 컸습니다.
「福地萬里」는 기대가 컸었고, 조선서는 최고의 노력을 다한만치 東洋的 舞臺에다 굳은 그무엇이 나타날줄 알었더니 사실로 나타난것을 보면은, 그만한 곤란을 관중에게 느끼게 헐수는 없는것 같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에 나타나는 勞動者는 紳士면 신사였지 노동자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徐氏가 말한 創造云云에 反對입니다.
「집없는天使」는 素材가 社會的으로 問題視되는만큼 有利했었다고봅니다. 또 同時錄音한것도 技術의 發展으로 봅니다. 內容에 있어서 제작자의 意圖를 보면은 다리서 떨어지기 전까지가 作者의 作品이고 그담부터는 순전한 관람자에의 써비쓰였다고 봅니다.
崔寅 옳은 말씀입니다.
方漢 우리가 이 다음에 영화를 제작할때에는 不足한 立場만 말하고 回避하고 悲觀할것없이 積極的으로나아가야 할줄 압니다. 좌우간 세 作品 모두가 話題의 作品이었음엔 틀림없었습니다.
安鍾 종래로 보면 제작책임자가 분쟁에 휩쓸린 일이 많었습니다. 연출자가 불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훌륭헌걸 만들어 내라는게 도대체 무리한 일인가 합니다. 「福地萬里」로 하더라도 臺本대로 되지않었습니다. 못다된것을 그저 억지로 수습한데 불과합니다. 그러고도 그만한 성과를 걷우었다는것은 기쁨이아닐수없습니다. 이담에는 그러한 분쟁이 없이 순조롭게 하나 찍도록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司會 朴先生도‥‥.
朴基 해야 똑같은 얘기죠. 「志願兵」은 事實 헨디캡이 많었습니다. 映畵란 一年이 넘으면 태고적같은 느낌을 주는것인데 그것이 「福地萬里」와 「집없는天使」와 때를 가치하여 나왔다는것부터 夕影에게는 不愉快했을 줄압니다.
「 집없는天使」는 어쨋든 成功한 作品입니다. 한가지 유감한것은 너무 妥協했다는것입니다. 完全한 商品이 되고 말었습니다. 다만 藝術性을 無視하고 興行的으로 본다면 성공한것입니다.
安鍾 그건 욕심이야. 흥행성적이 안난다면 제작할 수가 있나.
崔寅 아니올니다. 事實은 타협한거지요. 藝術性이나 映畵에 대한 정열을 버린 作品입니다. 나 자신도 막상 시사해보고 「돈데모나이」 사진이 된줄알고 놀랐지요. 편즙도 九卷으로 하려다가 이왕 市場에 내놓는다면 十卷이 좋으리라 해서 그렇게 한것입니다.
朴基 이왕 말할바에는 나쁜 점도 이얘기해야 서로 편달이 되겠지요. 그 영화가 우리들에게 과제한바는 旣成俳優에게 기대를 가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훨씬 좋은 연기를 아이들에게서 볼수있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演出者의 깊이가 不足한점입니다. 이러한 영화는 보기만 좋지 큰 감명을 줄수는 없는법입니다.
司會 운사람이 많다는데요.
朴旣 그야 울리려고 만든건데, 울지도않는다면 우습지. 「福地萬里」는 스토리가 없느니하지만 내가 생각기는 이作品에는 큰 감격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作者가 自己精神을 살린 점은 칭찬할만합니다.
司會 고맙습니다. 인제는 私談會로하고 座談會는 여기서 끊겠습니다.
(一同食卓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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