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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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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조선민요론 朝鮮民謠論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최영한 崔榮翰
출처정보 동광 東光
연    도 1932-05 昭和七年五月
면    수 82 82
기사
在間島 崔榮翰

民謠의意義─民謠의淵源─民謠와愛着念─民謠의價値─朝鮮民謠의特色─民謠의裏面─民謠의生命─民謠의 新生面─民謠硏究의急務

一, 民謠의意義
朝鮮의 民謠는「朝鮮」이라는 鄕土를 背景으로한 朝鮮民衆의 歌謠이다.
저건너 갈미봉에
비가 들어서 나려 온다.
우장을 허리에 두루고
짐매려 갈거나.(육자백이 一節)
이러케 우리 民謠는 아모 修飾도 없고 아모 技巧도 없이 가장 平凡하고 單純한 말로 때로는 方言까지 使用하여 直接 우리의 感情的 波動을 가장 鮮明하게 表現하엿으니 그는 素朴한 山村의 處女가 田野의 農夫가 鄕土의 事象에對하여 그들의 가슴에 넘처 흘으는 느낌의 물결 소리를 그대로 옴겨 놓은 노래인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사랑에 기쁨에 슬픔에 괴로움에 또는 山川風物에 人情風俗에 對한 衝動的感情을 가장 率直하게 流露한 人情의 소리인 까닭이다. 그리하여 우리 民謠는 누가 지어낸 노래가 아니고 이나라 백성들의 느낌이 넘처 흘러 나온 노래니 노래의 作者도 알지못하고 언제 始作된지 모르게 예로부터 傳해 나려왔다. 그러므로 우리 民謠는 우리 民族의 共同的 作品이다.

二, 民謠의淵源
民謠는 그나라 백성들 사이에 自然히 發生되고 自然히 流行되어 옛날부터 傳해 오는 노래니 언제 始作된지도 모르고 누가 지엇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미 말하엿으나 그淵源은 매우 오래다. 原始人의 生活에잇어서 노래는 없지 못할 것이엇다. 아니 그네들의 生活形式이 되어잇는 것이다. 아침에 山에서 或은 들에서 부르는 노래는 天惠를 感謝하는 祝禱이엇고 저녁에 山에서 바다에서 많은 獲物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모닥불밑에서 祝福의 노래와 춤은 東天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랏다. 붉은 땅에 푸른 풀이 색 돋는 朝鮮에잇어서 半萬年의 오랜 歷史를 가진 朝鮮人原始的 生活이 또한 그러하엿을 것도 事實인즉 朝鮮民謠의 歷史는 朝鮮民族의 生活의 最初로부터 始作하엿을 것이다. 이것을 文獻에서 찾아 보드라도 朝鮮人의 歌謠的 生活은 比較的 久遠한 起源과 整然한 成形을 가젓다. 古樂府 古今註에는 高句麗의 沙工 곽里子高의 妻 麗玉의 作이라는 箜篌引「公無渡河公竟渡河墮河而死將奈公何」라는 노래가 記載되엇고 三國史記에는 高句麗의 第三代 琉璃明王의 作歌「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의 戀歌가 보인다. 그밖에 新羅의 第三代 儒理王五年條에「是年 民俗歡康 始製兜率歌 此歌樂之始也」라고 記載되엇는대 績女의「會蘇曲」等은 이때부터 盛히 流行되어서 國俗이되엇다고 傳하여 왓으며 三國遺事及 均如傳에는 鄕歌가 적혀잇으며 眞聖王 二年에는 三代目이 勅撰되엇다. 그리고 日本歌舞音樂史에는 推古代에 百濟人 吳某가 技樂을 日本에 傳한 事實이 보이며 後漢書에는 夫餘를 評하여「好歌吟 音聲不絶」이라 하엿고 三國誌에는 馬韓을 評하여「晝夜酒會 群會聚歌舞」라 하엿으며 또高句麗를 評하여「其民 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群聚 相就歌戱」라 하엿으며 辰韓을 評하여「俗 喜歌舞 飮酒 鼓瑟」이라 하엿으니 朝鮮上古時代에잇어서 歌謠가 얼마나 盛行하엿든가를 알수잇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부르는 노래에도 그起源이 퍽 오래다는 것을 考證할수가 잇지않은가?. 假令 아리랑打令에「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같은 것이라든지 놀량歌 後念에「에야 아야라 찌어라 네헬네가 네로고나. 마아리에헤 에헤루지아 네헬네로고나. 엘나의여 네헬네로고나」같은 것이라든가 육자백이에「산하지로구나」같은 것을 보드라도 이것이 지금 우리가 쓰는 조선말과는 全혀 判異한 古語다. 이것은 畢竟 여러 사람의 입으로부터 입으로 傳해 오는 동안에 曲調(리듬)와 音響의 좋은 後念만이 남고 그內容과 말이 漸漸 變하여 버린 것이라고 한다.

三, 民謠와愛着念
옛터전에서 주은 古瓦 한쪼각에서도 無限한 愛着을 느끼게됨은 그것이 祖先의 生活의 片鱗이라는 마음으로서 이다. 우리가 民謠를 사랑하는 마음도 그內容이 鄕土를 背景으로 삼고 우리 民族의 마음을 傳統하고 우리들의 感情에 뿌리가 박힌 까닭이다. 그리고 民族의 特性이란 祖先以來의 傳統에서 떠나려 하드라도 떠날수 없는 因果的 關係를 가지고잇다. 傳統과 生活─여기서 우리는 祖先을 그리워하고 鄕土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素樸한 民謠에서 一種 말못할 愛着을 느끼게 되는것도 그것이 傳統的인 所以다.

四, 民謠의價値
朝鮮에 가장 朝鮮情調를 잘 表現한 文學的 作品이잇다면 그것은 民謠일것이다. 時調도 朝鮮固有文學의 하나이나 그構想이며 表現形式에잇어서 漢詩를 模倣한듯한 點이 잇고 最近流行하는 自由詩같은 것도 歐化된 文明의 産物이니 鄕土的 깊은 見解가 없는듯 하나 民謠는 鄕土를 背景으로 삼고 이나라 백성의 感情이 넘처 흘러서 저절로된 노래이니 時調나 自由詩모양으로 外國詩風에 물들지 않고 朝鮮人의 感情을 如實히 流露하여 鄕土的 色彩를 濃厚하게 保存한 點으로 보아 朝鮮文學의 精華이며 朝鮮詩歌의 源流다. 그리고 朝鮮人의 精神的 遺産의 가장 久遠한 藝術的 存在다. 文學의 文學은 詩요 詩의 詩는 民謠라는 말은 우리가 일즉 아는 말이거니와 民謠는 가장 素朴한 表現이면서도 그「리듬」과 音響이며 感情의 흐르는 모양과 생각이 움지김을 조금도 修飾없이 말소리를 가장 自由롭게 驅使하여 技巧아닌 技巧를 보이며 內容도 單純한듯 하면서도 鄕土의 自然生活 信仰傳統等을 包含하고 잇다. 이러한 內容을 가지고 더욱히 大槪個性化가 되지 않고 一般性을 保存하기 때문에 民族의 言語 音樂 乃至 土俗學의 硏究의 貴重한 材料가 되는 것이다. 特히 朝鮮에서는 다른 藝術的 衝動에 滿足할만한 機會가 적엇든이만큼 그思想的 生活의 자최도 民謠에 豊富하다. 朝鮮에 漢文이 輸入됨을 따라서 文學과 思想의 그內容이 純朝鮮의 民族的 鄕土的 色彩을 잃고 儒敎化하여 버리엇으나 다만 民謠만은 朝鮮人 本來의 思想傾向을 支持하여 왓다. 그는 漢學이 知識層에 局限되고 民衆化는 못되엇으므로 文化底層의 常民의 부르는 民謠에까지는 影響이 및지 않엇다. 그리하여 民衆의 歌謠인 民謠는 儒敎의 形式的 道德에 빠지지 아니하고 朝鮮人의 民族的 特性인 樂天思想 (1)을 基調로 삼아서 朝鮮心을 如實히 傳해왓다. 그러므로 今日의 朝鮮에잇어서 固有文學과 思想도 오직 民謠에서 찾아 볼수밖에 없다. 보라 朝鮮古代로부터 傳하든 巫俗도 오로지 歌舞에 依하여 傳授하여 왓다. 新羅時代의 花郞의 遺風도 다만. 향가 (2)에 依하여 그眞相의 片鱗을 窺測할수 잇고 日本鹿兒島縣等地의 古朝鮮漂浪民의 遺俗도 神社例祭의 祝詞 (3) 乃至 舞樂에서 推考할 수가 잇지 않은가? 그리고 朝鮮人 本來의 思想傾向인 樂天主義도 民謠以外에 이것을 理解感得할만한 朝鮮成形文學이 없지 않은가?. 어느 나라를 勿論하고 文學은 그나라와 民謠와 傳說에서 發達하엿다는 것은 史學者들의 考證하는바 거이와 特히 漢學專制時代의 高壓에 依하여 思想的으로 破滅을 當한 朝鮮에잇어서 朝鮮의 民謠는 朝鮮文學 思想史의 全內容이라하겟다.

(1)樂天思想─「樂天知命故不憂」라는 思想이다. 即 天地自然의 道를 즐기어 天命 또는 天理를 알기 때문에 物事에 不滿의 念을 가지지 않고 知足의 心境에잇어 杞憂를 아니한다는 人生觀이니 厭世의 域을 超脫한 境界 或은 厭世의 極度에 自暴自棄하여 世間의 快樂에만 耽溺하는 옵티미즘(Optimism)이 아니다.
(2)鄕歌
골 동시쩍 건달바의
舊理東尸汀叱乾達婆矣
(고을 東쪽 건달바의)
노오는잿흘 여 바라고
遊烏隱城叱肹良望良古
(노리터를 바라보고)
왜의ㅅ군두 왓 다
倭理叱軍置來叱多
(日本軍도 구경왓다)
봉내산 가기쉽어
烽燒邪隱邊也藪耶
(蓬萊山 보고 싶어)
삼화의묏봄보리어서들고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
(三花郞의 구경가기 어찌 참아 고만두랴)
달도들절이쉬어지네
月置入切爾數於將來
(달도 질때 쉬여 지네)
새바의길시스세
尸波衣道尸掃尸
(새벽에 길 떠나세)
별 바라고
星利望良古
(저별 바라보고)
헤성아 삷펴라
慧星也白反也
(慧星아 살펴봐라)
人是有叱多
(사람이 여기있다)
後 句
달아너도 가잿든냐
達阿羅淨去伊叱等邪
(저달아 너도 가잿드냐)
이야벗모뒤
此也友物北
(어화 벗님 뫼두 함께)
밤헷다잇고
所音叱慧只有叱故
(밤도 慧星도 상관말고)
大意
우리 東便에 잇는 仙境 蓬萊山을 구경하고싶어서 日本軍도 왓는대 하물며 우리나라 사 람으로서 더구나 花郞(即 國仙의徒)로서야 오작 보고싶으랴
(3)鹿兒島縣 朝鮮漂浪民의神社祝詞
一, 玉山神社御幸祝詞
당이 韓 魏 昭視
タイ, ハンホンソ―シ
(神明은 다행이 昭視하시옵소서 韓族을)
昭 代 八 路 핑 돌아
ソタイパンロツビントラ
(우리는 昭代의 八路(朝鮮)을 핑 돌아서)
긔 멀 허 러 손 흐로
クイムルホロソンホロ
(그무엇을 하려 他鄕의 손으로)
다님흐로 즛슬 허로지내
タニホロツソルホロヅネ
(길단김으로 業을 삼게 되엇는지요)
헤 먹 구귀이 굴 흔게
ヘイモククイルホンゲ
(벌어먹고 貴히 굴도록)
고이 소사 아리 키소사
コエソサル, アリキソサル
(고이소사 가리처 주소서)
놉구 난기 世 尊 께 빌 쟌지
ロクナンギ セイチウムキベツチヤンチ
(尊卑間에 누구든지 世尊께 빌잔다)
(下略)
二, 玉山神社祝詞
오놀이오놀이라 오느―ㄹ이라.
オノリオノリラ オノ―リラ
(오날이라, 오날날은)
날 논 조 이 믈
ナルノンチヨイムル
(날로서는 마음 조리든)
제 믈 됴차 이즐
チエイムルドサイズル
(祭物의 근심 조차 잊어 버릴)
오놀이라―
オノリラ―
(오날이라)
(下略)
三, 玉山神社例祭踊歌
올날이 오 놀 이 라
ヲヲルナリイヲノリラ
(來日도 오날 같이)
마일 되나오놀이라
マイルトナヲノリラ
(每日 장차 오날 같이)
날 손 저 물어도
ナルソンチヱムルト
(날이사 저물어도)
새도록 오놀이라
サイトロクオノリラ
(날이 새도록 오날이라)
오놀이라 늘 이갓솔 면
ヲノリラノルイコソルミヨム
(오날이라 항상 이같으량이면)
무슨 세 로 같으랴
ムスンセイロカツライ
(어느 聖代에 譬喩하랴)
(下略)

五, 朝鮮民謠의特色
朝鮮民謠의 特色을 內容的 方面으로 考察하여 보면 樂天思想을 基調로 삼아 民族的 特性을 支持한 點에 잇고 이것을 詩歌의 形態學上으로 보면 音數律의 四四調가 基礎가되어 말의뜻과 音節의 數爻에 따라 平ㆍ哀ㆍ樂ㆍ激의 온갖 調로 變하는것이다. 그리고 朝鮮民謠의「리듬」은 西洋의것과는 判異하여 音의 高低에 關係됨이 적고 音節의 長短에 關係됨이 많고 또 押韻法의 頭韻 胸韻 脚韻을 다는데는 音律的 效果를 얻지 못하고 反復이나 對句의 修飾에서 音律的 效果를 얻는 것이다.

六, 民謠의裏面
民謠의 內容은 決코 單純치 않다는 것은 이미 말하얏거니와 이제 두기가지 民謠의 實例를 들어 그裏面에 潜在한 時代相, 社會相을 考察하여 보려고 한다.
(1)愁心歌
노자 노자 노자
젊어 靑春에 맘대로만 노잔다.
나이 많아 白首를 날리면 나못놀리로 구나.
人生 한번 죽어지면
萬樹長林의 雲霧로 구나
아니놀고 아니쓰지는 못하리로 구나.
이노래를 들을때 누구나 그頹廢的이며 厭世的이고 그리고 自暴自棄的 生活의 苦悶의 殘喘을 想像하지 않을수가 없다. 이노래의 發生地는 平壤을 中心으로 삼아 西北地方인대 그들은 웨 많은 民謠가온대서 가장「데카단」인 그리고 가장 感傷的인 愁心歌를 불럿을가. 李朝政策은「西北人 勿爲重用」으로 信條를 삼고 西北人을 無慙한 虐待를 하엿다. 또 貪官汚吏의 徒는 이信條를 삼고 巧妙하게 利用하여 그들의 膏血을 마음대로 搾取하엿으므로 西北人의 生活은 참으로 悲慘하엿다. 그들은 李朝의 惡政과 汚吏의 橫暴에 對하여 悲憤의 極度에 自己의 境遇와 前途에 對하여도 極度로 悲觀하엿다. 그리하여 그悲觀은 厭世의 域을 超脫하여 快樂에만 耿溺하게 되어 飮酒 放歌로 그悲憤을 위로하려 하엿다. 이것은 自暴自棄的 手段이나 絶望의 陷穽에 빠저서 아모리 애를쓰드라도 救援될 希望이 없는 그들에게 잇어서는 할수없는 일이엇다. 그心的 生活의 苦悶의 悲痛이 愁心歌의「멜로디」로 표현된 것이다.
(2)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
문전에 옥토는 다어찌고
쪽박의 신세가 웬일인가?
이것은 世界大戰亂以後에 發生된 노래다. 朝鮮에서 經濟的으로 破産을 當한 貧民이 西北間島와 滿洲方面에 流浪하는 情勢를 노래 부른 것이다. 우리 朝鮮사람은 元來 祖先의 墳墓地를 떠나기를 매우 슳어하는 風이잇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白衣長竹 平和한 故國을 등지고 산설고물선 異域에 흘러가는 모양이야 참으로 그얼마나 慘狀이냐?.

七, 民謠의 生命
民謠의 生命은 人生의 搖籃인 歌謠인 點에 잇다.
民謠의 愛尙은 人間生活의 慰樂인 點에 잇다.
民謠의 眞價는 本能的으로 欲求된 自然의 藝術인 點에잇다.
遊樂生活에잇어서 勞働生活에잇어서 우리는 律動的 運動에 依賴함이 적지 아니 함을 생각할때 加一層 民謠의 生命의 人生과 함께 잇는 所以를 首肯케 된다. 特히 事役에 잇어 律動的 運動은 그勞苦를 輕減하고 不知不識間에 能率을 增進시킨다. 그는 歌謠의 全體에잇어서 다만 民謠에서만 認定되는 特異한 點이다. 民謠는 即生活 即人間과 함께 흘러서 조금도 不自然이 없이 人生을 融和하는 힘을 가진 곧에 生命이 잇다. 民謠는 民衆의 生活과 함께 그生命은 永遠히 存續할 것이다.

八, 民謠의新生面
(1)新作民謠와整理
過去의 祖先에잇어서는 個人的으로나 團體的으로나 實生活과 民謠의 交涉은 密接하엿다. 옛날사람들은 民謠를 부르고 舞踊을 行하면 반다시 豊年이 된다든지 비가 온다고 깊이 믿고 疑心치 아니 하엿다. 이러케 옛날사람은「生活으로의民謠」를求하엿으나 物質文明에 神經이 疲勞된 現代人 은 「娛樂으로서의民謠」 乃至「音樂으로의民謠」를 求한다. 그런데 今日 農村의 趣相은 어떠한가? 옛날에 比하여 散文的이다. 趣味와 娛樂이 缺如되엇다. 過去에 流行하든 歌謠는 亡失되고 或 그殘骸가 남아 잇드라도 現代靑年에게는 조금도 興味가 없을 것만은 事實이다. 그리하여 現代의 그네들의 趣向에 適合한 娛樂은 아직 發見되지 못하엿다. 農村靑年 그들 自身이 現代的 鄕土的 民謠를 가지지 못하니만큼 音樂도 가지지 못하엿다. 다만「라디오」의 普及에 依하여 音樂에 親할 機會가 잇는 同時에 蓄音機의 普及에 依하여 都會文明의 末期를 象徵하는 頹廢的 俗謠가 農村을 망치기 시작하엿다. 只今 新進民謠詩人은 各地에서 輩出되엇으나 現代人의 趣味性을 滿足시킬만한 鄕土的 깊은 見解를 가진 民謠創作도 없거이와 그것을 音樂化시킬 民謠作曲家는 더욱 없으니 朝鮮農村이 新民謠에 依하여 生活에 潤澤을 가지게 되는 날은 언제 일런지 모르겟다.
世界大戰亂以後의 民族自覺의 提唱은 世界的 問題이엇다. 그리하여 朝鮮新興文藝界에서도 國民文學運動이 熾熱하엿다. 그 波動은 컷다.「데모크라시」의 슬로―간은 人種差別의 撤廢 婦人問題, 勞働問題의 徹底를 求햇다. 온갖 階級의 人格이 尊重되고 生活이 解放되엿다. 朝鮮詩壇에서도 平明한 말로 表現된 童謠, 民謠를 重要視 하엿다. 온갓 階級의 讚美 個性의 高調를 여기서 볼수가 잇다. 그리하여「文藝와生活」이라는 것이 密接하게 되엇다. 民謠를 硏究하여 그作品을 發表하게된것은 童謠의 藝術運動과 相互呼應하게 된것이니 一九二○年 以後일 것이다. 朝鮮詩壇에서도 十餘年동안 多數한 新作民謠가 發表되엿다. 그러나 今後 大衆의共鳴과함께 鄕土의 新民謠로서 歷史的 存在가 될만한 傑作은 얼마 없는듯 하다. 더구나 音律的으로 無理한 存在인것이 적지않다. 民謠는 노래 불러야한다. 花柳街의 노래로서 아니고 民衆의 노래로서 더욱히 지금은 一方 映畵의 主題歌等 特異한 流行을「카페」의 거리를 通하여 蓄音機的으로 流行을 傳播하는것이 만은 時代다. 이러케 民衆의 民謠가 되지 못하고 時代와함께 亡失되지 아니하는 것도 얼마 잇을 것이니 鄕土民謠의硏究과 함께 新作民謠도 어느 程度까지 適當히 整理하지않으면 아니 될줄로 생각한다.
(2)朝鮮詩의 形態學의樹立
新興文藝運動의 勃興에 依하여 新詩가 輸入되고 時調가 復興되엇으나 아직까지 形式方面인 韻律의 硏究가 없엇다. 詩의 根本問題인 韻律의 基本形式이 決定되지 않고는 完美한 詩의 創作은 바랄수 없으니 우리는 하로바삐 詩의 原形인 民謠를 硏究하여 이韻律問題를 解決하기에 努力을 아끼지 말어야 한다. 朝鮮詩韻律은 平仄法 押韻法 音數律 內在律 여러 가지 잇는 가온대 어느것이 基本形式이 될가?. 이것은 朝鮮語性質上 어느形式에 依하는것이 가장 音律的 効果를 얻는가를 究明치 않고는 斷定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朝鮮民謠를 詩의 形態學上으로 解剖하여보면 朝鮮詩의 韻律은 平仄法이나 押韻法이 使用된 例는 別로 없고 音數律에 依하여 表現되엇으니 朝鮮詩韻律의 基本形式은 音數律인듯하다. 만일 그러타면 四四調인가?. 四六調인가?. 三四調인가? 또한 三五調인가를 究明하고 한거름 더나아가 音脚結合의 科學的 硏究가 잇어야 한다.
(3)民謠의變遷과成長
같은 內容의 民謠라도 土地에 따라서 노래 부르는사람에 따라서 形式이 多少 變更된다. 假令 愁心歌에
(1)千年을 살거나 萬年을 사드란 말가.
人生 한번 죽어지면 萬壽長林의 雲霧로 구나.
(2)놉세다 놉세다 젊어만 놉세다. 나이 많아 白首가 지면 못놀리라. 人生한번 돌아가면萬壽長林의 雲霧로다.
(3)노자 노자 노자 젊어 靑春의 맘대로만 노잔다. 나이 많아 白首를 날리면 나못놀리로구나 人生 한번 죽어지면 萬壽長林의 雲霧로 구나.
같은 것을 보면 알수 잇다. 그리고 曲調와 音響 좋은 後念만이 남고 內容全部가 變更된 것이 또한 많다. 아리랑 打令에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바리고 가시는 님은
十里도 못가서 발탈 난다.
이라 든지 또 긴난봉가에
(2)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님을 다라서 나 돌아간다. 에에 에헤이야 어라마 둥둥 내사랑
같은 것은 好適例라 할것이다. 이러한 變遷은 即民謠의 成長을 意味한다. 最近 文壇에서도 民謠作歌들이「아리랑」같은 것을 試作하는듯 하다. 雜誌 新聞에 種種 揭載된것을 보왓으나 하나도 記憶에 남어 잇는 것이 없고 마츰 所持한 雜誌도 新聞도 없기 때문에 유감이나 引例치 못한다. 民謠의 變遷의 法則的 型式에 依하여「리듬」과 音響좋은 後念같은 것은 古謠의것을 引用하고 알맹이만 作家의 創意에 依하여 現代人의 趣向에 適合하게 作謠하는 것도 決코 無意味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九, 民謠硏究의急務
온갓 文化建設의 途程에잇는 우리가 가장 民族的 特性과 鄕土的 色彩의 濃厚한 在來의 文物을 硏究함은 매우 意味이잇는 일이라 하겟다. 時世의 進運은 加速度的으로 推移되어 交通이 頻繁함을 따라 舊物은 破壤되고 鄕土에 秘藏된 許多한 資料는 湮滅하는 狀態에 잇다. 그것이 文書典籍이라 할것없이 口碑傳說도 故事舊慣도 다 같은 運命에 際會하야 잇으니 지금 이것을 蒐集에 힘쓰지 안는다면 마침내 다시 探求할수가 없게 될것이다. 金玉의 貴라도 이것을 求할길이 잇으나 時間은 帝王의 尊이라도 이것을 갚을 길이 없으니 하물며 자랑할만한 鄕土의 歷史와 先人의 事蹟은 한번 잃어버리면 이것이 恢復은 永遠히 바랄수가없다. 歷史的 生命의 源泉인 鄕土로하여금 思想上에는 아모 風物이 없는 不毛의 曠野로 化하여 興趣가 索莫하게 되어 뉘우침을 子孫에게 지치게 하면 그것이야 참으로 千秋恨事가아니고 무엇이랴. 이것을 다못 學術的 方面으로 보는것보담도 貴重한 史料를 함부로 湮滅식히는 것은 到底히 참을수 없는 일이니 지금에야 鄕土의 所産인 在來의 文物의 硏究를 하로 바삐 着手하여야 할것을 切實히 느끼게 된다. 民謠의 硏究같은 것은 其中 가장 重要한 者이다.
日本을 爲始하여 其他 各國에서도 音樂ㆍ文學 내지 土俗學의 硏究者들은 이미 民謠의 學究的 價値를 認定하고 或은 直接 國家의 經費로 또는 그補助로 或은 同好者의 組織한 協會의 힘으로써 民謠를 蒐集하여 硏究하는 事業을 經營하고 잇다. 日本은 明治三十八年 文部省內 文藝委員會의 意圖로 全國의 民謠를 蒐集하고 其結果 大正三年 俚謠集 大正四年 俚謠集拾遺의 二大部가 刊行되엿다. 또舊墺太利政府의 計劃한것은 本世紀의 初期에 이미「지몰」地方에서 一萬五千의 歌謠又舞踊歌를「베―멘」地方에서 一萬二千의歌謠及 三千餘의 歌謠曲譜를 蒐集하엿다 한다. 또 舊獨逸帝國에서는 皇帝「윌헤름」二世의 獎勵補助下에 前世紀末에 이미「엘크」「베―메」兩氏가 蒐集整理하고 또 註釋을 施한 民謠曲譜 其數 二千百七十五種에 達하엿다. 또 獨逸의「맛크스·후리-렌다-」를 委員으로한 獨逸民謠調査會委員의 編纂한 獨逸民謠曲集은 四部合唱歌 六百五曲을 修訂하여 이것을 刊行하엿다. 또 英吉利에서는 前世紀末에 이미 英國民謠協會가 組織되어 有益한 報告를 定期的으로 斯界에 提供하고 繼續하여 千九百十一年에는 四年前 物故한「세실, 샤프」氏가 英國民踊協會를 組織하여 民謠와 民踊의 蒐集集調査를하여 會報를 定期發行하여 藝術音樂의 紹介와 保存에 힘쓰고 잇다. 그런즉 하물며 朝鮮人의 過去의 文化와 思想은 尊華主義 事大主義에 因하여 自我精神을 亡失하고 오로지 朝鮮人의 獨創的 生活은 民謠에서 밖에 찾아볼수 없음이랴. 그럼에도 不拘하고 우리는 民謠의 蒐集을 企圖하여 본일이 없엇다. 民謠는 어느 나라의 例에 미루워 보드라도 新文化 新生活樣式의 侵入에 對하여 極히 對抗力이 薄弱한 者로 容易히 그影子를 감추어 잊어버리게 된다. 朝鮮은 지금이야말로 急激한 文化의 過渡期에 서고잇다. 在來의 文物은 非常한 勢力을 가지고 이땅우으로부터 사라저가고 잇다. 그런즉 朝鮮民謠도 오래지 않어서 그太半 은 조선땅 조선사람의 입으로 부터 잃어버리게 될것은 疑心 없는 일이니 지금에잇어 이것을 蒐集硏究할 劃策을 세우지 안는다면 永久히 亡失하고 말것이다.
(一九三一年 十一月二十九日밤「엿사구려」외치는 소리 유별히 凄凉하게 들리는 龍井假 寓에서)
參考書目
1, 民謠小考 (李光洙氏)
2, 鄕歌와俚謠의硏究 (李源圭氏)
3, 靑孀民謠小考 (李殷相氏)
4, 朝鮮民謠蒐集趣旨書 (城大法學部朝鮮語文學硏究室)
5, 鄕土史의硏究 (柴田常惠氏)
6, 民謠와童謠遊戱 (藤澤衛彦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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