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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단잡감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악단잡감 樂壇雜感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권태호 權泰浩
출처정보 동광 東光
연    도 1931-10 昭和六年十月
면    수 71 71
기사
내가 이러케 붓을 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무슨 樂理를 말하려 함이 아니고 또는 樂壇에 關한 어떠한 理論을 展開하려함도 아니다. 다만 音樂을 職業으로하고 잇는 사람으로써 우리 樂壇에 關하야 보고느끼게 되는바 몇가지를 쓰고저한다.

批評에 關하야

本誌(東光)六月號에「半島樂人漫評」이라는 題下에 나로써는 처음보게 되는 樂人批評이 發表되어잇다. 그것이 音樂專門家의 評이 아니요 더구나 漫評이니까 그러케 責任잇는 評文은 아니엇으나 노래를 부른 사람으로써 (아니 音樂의 常識이 잇는 사람이면) 보기에 너머나 不快하다는 것보다 얼골이 확근거릴만큼 부끄러운 일이엇다. 曲의 內容을 모르고서 그曲의 關한 評을 하는것은 言語道斷의 철없은 일이다. 깊이 삼갈바이다. 나는 이제 그 漫評中 特히 筆者에 關한 것에 對하야 몇마디 쓰고저한다. (筆者에게 對하여 特히 어떠한 曲을 指定하엿기 때문에 거기 對한 內容을 쓰고저함이다)
그리익 (Grieg) 의 쏠베이지 (Sal-veigs) 노래는 文豪 입샌(Ibsen)作의 베루 균트(Peer Gunt)劇의 對한 노래中에서 빼인 것인바 이노래는 作曲者의 獨創的으로 쓴것이 아니고 民謠를 表集해서 지은 노래다.
評文가「이것은 女子가 부를 노래다」하엿다. 이 쏠베이지라는 것이女子의 일름이다. 그리고 女子(소프라노)가 흐니 부르는 노래다.
그러나 노래라는 것은 사람의 衣服과 같은 兩性의 別이 잇는 것이 아니다. 노래(音樂)란 그러케 範圍가 좁은 藝術이 아니다. 簡單하게 말하면 그 音色을 따라 即 소프라노와 테너가 같은 性質의 노래를 부를수 잇으며 알토와 뻬스가 같은 性質의 노래를 부를수 잇는 것이며 부르고 잇다.
評文나「拍子가틀리엇다.」 멜노디와 伴奏를 初步者에게나 어린兒孩들이 듣기 쉽게 배우기 쉽게 하기 爲하야 그音을 一一히 똑똑히 드러나게 四部로 或은 二部로 和聲만 되게 作成한 것도 잇지마는 大曲이 될수록 멜로디와 伴奏가 어떠케 連絡이 된것을 알기가 어려우며, 이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相當한 常識 (音樂) 이 잇는이라고 할수잇다. 이 쏠베이지노래의 멜노디와 伴奏는 그다지 複雜하다고는 못하겟으나 이노래는 멜로디를 짚어 주는 伴奏는 한 小節도 없고, 모다 伴奏曲은 伴奏曲대로 멜로디에 對하야 和聲的 連絡만 取하고 잇음으로 이것을 모르는 사람으로써는 타임(拍子)이 틀리는 것처럼 들리기 쉬운 것이다. 그中에도 더욱 이 노래의 멜로디와 伴奏는 거이 切分音符의 形式을 가지고 잇다. 即 强弱의 差가 서로 엇끌리며 멜로디는 八分音符로 끛이는대 伴奏는 二分音符로 連續하고 잇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러한 멜로디와 伴奏의 連絡을 모르는 評者로써 拍子가 틀리엇다고 한것이 率直한 告白이다.
評文다『高音은 모다 피아니스모로』 이노래는 거의 피아니스모로 부르게 되어잇고 높은 音에 가서는 pp라는 記號가 記載되어잇다. 그러면 pp記號가 잇음에 不拘하고, 피아니스모로 부른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評文라『假聲에 가까웟다.』 音樂이라는것은 勿論 音이 基礎가되는것임으로 어떠한 樂器를 勿論하고 各各 그音色을 잘 發하게 하는 것이 첫재일이다. 그러므로 聲樂에도 그 基礎가 되는 것이 發聲法이다. 이發聲法을 다 說明할 時間과 紙面이 許치않음으로 그中에 特히 必要한 것만 몇가지를 말하자면
1, 自然히 나오는 音聲의 美를 充實케 하며 2, 音聲의 强弱을 自由로 하며 3, 音樂을 明白히하며 4, 적은 音聲이로되 能히 멀리 들리게하며 5, 오랫동안 變함이 없이 音聲을 繼續할수 잇게하는 等等이다. 그리하야 發聲할때에는 목을 부드럽게 가질것과 입을 空間되게 벌려서 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래가 거침없이 나오게하는 同時에 歌詞에 發音을 明白히 할것이며 呼吸을 充分히 할것이며 全顔面의 共鳴을 시키는 것들 몇가지 條件아래서 發聲法을 工夫하며 硏究하게 되는 것이다. 筆者는未熟하나마 이 發聲法을 五六年間工夫하엿고 斯界의 專門家 批評家로부터 好評을 받엇다. (이것을 自己宣傳이라고 誤解할런지 모르나 評者가 무엇으로써「假聲」이라고 하엿는지 너머나 어이가 없음으로 筆者의 經驗事實을 쓰게되는 것을 理解하기 바란다)
以上몇가지로써 漫評의 內容이 너무 無責任하엿슴을 알수잇다. (이 一文을 쓰게됨은 그評文에 어떤 剌戟이 잇엇다는 것이아니요 讀者(東光)知友中에「所謂專門家로써 拍子가 틀리게 노래를 불럿단말이냐」라는 물음이 많기때문에 一一히 對答할수 없음으로 여기에 쓰게 되엇다)
아직우리는 한사람의 音樂評論家를 가지지 못하엿다. 이것이 퍽 안타까운 일이다. 斯界의 權威가 速히 나타나기를 衷心으로 바라는 바이다. 同時에 노래의 評을 쓰고저 하는이는 먼저 노래를 알기 (배우기) 바란다.

作曲에 關하야

學窓生活을 떠난지 얼마 안되는 樂壇의 經驗이 淺薄한 筆者로써 또한가지 놀라웁게 느끼게 되는 것은 作曲에 關한 것이다. 적어도 作曲者로는 和聲學이 能通하여야 된다. 그리고 그 精神이 어떤 詩歌에 對한 徹底한 吟味와 徹底한 느낌속에서 우러나오는 生命잇는 멜로디라야 되고 멜로디가 되어진 後에 伴奏를 붙이게 되는 것이다. 이제 몇분들의 노래를 본다면 멜로디와 時의 感想이 判異하며 멜로디와 伴奏의 連絡이 어찌 그리 貧弱한지 그러한 것을 너머 많이 보게 된다. 좀더 硏究를 싸흔 後에 作曲에 着手하엿으면 좋으리라고 生覺한다. 우리에게는 아직부를만한 노래가 많다고 할수 없다. 그러므로 大量生産 (겨우 形式만 成立되게 하려면 하로에도 數十個의 作曲을 할 수 잇다) 할 必要를 認하고 多作을 試하는 것도 一理는 잇으려니와 그러케되면 노래의 값이 너머 낮게된다. 一般民衆은 많은 노래보다도 좋은 노래가 나오기를 더욱 바라는 바이다.

朝鮮在來의 音樂에 關하야

우리는 마땅이 朝鮮音樂을 再生시킬 義務와 責任이 잇다. 이 意味에 잇어서 梨專音樂科에서 이것을 硏究하게 된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대 이것은 여러가지 關係上 쉽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안는다. 先生과 書籍을 얻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梨專音樂科에서 發行한 所謂 朝鮮民謠集에 실린 노래가 實로 朝鮮民謠의 情緖가 흘러잇느냐 하면 그러타고 하기가 甚히 거북스러웁게 된다. 西洋音樂도 아니요 朝鮮音樂도 아닌 民謠合唱은 뜨겁지도 차지도 아니한 맹물과 같아야 부르기는 커냥 듣기에는 厭症이 생기게 된다. 原來 朝鮮音樂이란 根本形式부터 西洋音樂과 相違함이 잇기 때문에 그높고 낮으며 길고 쩔은 (이러케 하여야 朝鮮民謠의 特性이 나게 된다) 것을 도, 래, 미, 파, 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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