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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서 절찬 받는 최승희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태평양서 절찬 받는 최승희 太平洋서 絶讚밧는 崔承喜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 +++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8-08 昭和十三年八月
면    수 164 (164)
기사
-米國건너가서 最高人氣속에 싸히다-
西洋人社會에서 人氣爆發
조선을 떠나 이미 반개년을 넘은 우리의 자랑할 무히(舞姬) 최승히여사는 그뒤 얼마나많은 꽃관속에 쌓히고 전세게의 호화로운 칭찬속에 무처, 있는가 이제 그남편되는 안막(安漠)씨로 붙어 녀사의 옵바되는 서울 최승일(崔承一)씨에게 허리우트로붙어 온 편지를보면 그 一端을 짐작하리라
承一兄-.
「지난달 二十二日 桑港에서의 公演을 大成功속에내고 二十四日 헤리우트로 와있읍니다. 이곳은 여기서 第一高級인 이-벨劇塲에서 二月二日에 公演이 있읍니다. 每日 練習으로 바뿌게 지냄니다. 허리우트에서 各스타-들과같이 맛나고있읍니다. 機會를보아映畵人의찬쓰를 어드려합니다.
이곳을 마치고는 二月三日에 뉴-욕을向하야 出發합니다. 메트로포리타뮤지칼비유-로와 正式 調印하야 爲先 뉴-욕을 最初로 十二回公演을 一週日에 三回式하기로 되였읍니다. 承喜가 메트로포리탄 푸레센트라는 렛텔를 가지고 際的水準에 올나간셈이지요.
우리는 몸건강히 지내며 每日 休息할틈도 없이 新作에熱中함니다作品이 不足하여 맨들었읍니다. 뉴-욕에 가면 집에서온편지가 到着하섰을듯 반가히 읽겠읍니다. 아모조록 자주 편지 주시고 서울살님 이야기나해주세요 日前편지에도 썼읍니다마는 米國저이들의 住所는 日本總領事舘氣付로해도 좋고 메트로포리탄 氣付도 좋으니 그리로 어디든지하십시요. 新聞紙上에 發表하시려면 메트로로 하는것이 좋을것같읍니다. 또한 日本領事舘보다 메트로사람들은, 每日같이 地方에도 가고 公演을 나가게되니까 아마도 메트로 住所로보내시는것이 便利할것도합니다. 허리웃트호텔에서 安漠拜.
[사진] 최승희 공연 포스터
이편지속에 있는 「메트로포리탄뮤직」이란곳이 全世界의 가장웃듬가는 예술가만 소개하고 흥행을 알선하는 곧으로서 동양사람으로는 매란방(梅蘭芳)도알선을 청하다가 과거에 거절을 당했고 후지하라요시에(藤原義江)테-너도 세끼야도시꼬(關屋敏子)도 잘 안되고 다만서양사람사이에 많은 인기를가진 미우라 다마끼(三浦環)여사가 이행운(幸運)을 어떻다든가 그렇게 최고 급의 명여의 길을 그곳의 마네-자가 허리를 굽혀청격하는속에 최승히여사는 등장하였든것이라한다.

太平洋저쪽에서 人氣爆發
최승히여사가 아담한 조선의 소복단장에 판란갓신을신고 하와이(布哇)을 거처상후란 시스꼬(桑港)에 내리자 그곳 예술단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혹은 화려한 화완(花環)을 전하고 혹은지휘봉(指揮棒)을 둘너 환영하는 음악을 하여주는듯 태평양안 상륙제일보,(太平洋岸上陸第一步)로 부터온것 미국상하사회의 인기를 끄을었고 그가 자동차를 모라호텔에들자 또한 쌍우란스, 타임쓰(桑港日報), 를 위시하여 다수한신문잡지기자가 달려와서 그의 일언척구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기에 분주하여 진실로 그날의 신문에는 빙그레웃는 이반도의 아름다운 자태와 소식으로 장식하였으며 재류 조선동포들도 항구의 파지장(波止場)에 또는 역두(驛頭)에 나와 수건을들어 소리치며 마지한것은 물론이다.
그러고 곳곳내 쌍후란씨스꼬와 헐리웃드의 一流극장에서 그청초하고도 아릿다운 자태를 나타내어 우리반도만이 가 지는 그춤의 정조를 내뿜을때, 만장의 박수와 환호와 경탄(敬嘆)과 찬성(讃聲)은 더말할나위없이 크고 깊고 널벗슴니다.
완전히 아메리까 일대의 인기는 절찬의 폭풍속에 잠겻슴니다. 이리하야 수천리를 머다안코 건너간최여사 한분의 힘으로 아세아의 조고마한 동반도(東半島)에서 싹돋고움트고 무성하기 시작한 조선의 춤과 정조(情調)는 기게문명에서 기게문명(機械文明)으로, 물질문명(物質文明)에서 물질문명으로, 숨막힐드시 잠겨있든데서 각국인게게 큰 감명과감격을 주었든것임니다.
이제는 (太平洋) 건너(英佛)로-
이제 세게최대의 도시뉴-욕(紐育)에서 米麴서의 맞으막 공연을 끝내고 다시 태서양에 배를띄어원래 목적하든곳의 파리와 음악의 위인(維也納)과런돈(倫敦)있는 구주대륙(歐洲大陸)으로 향해 건너가리라 진실로 생각하여 보면 지금은 세게적으로, 일홈을 날니든 무용가-례하면 안나바보로니 싸이라스 마- 나라거나 지금은 모도 다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진실로 새로운 천재무용가(天才舞踊家)를 세상은 부르고있다 이때에 이기대에 저버리지안케 반도의 무히가 등장하고 있잔는가 진실로 깁분일은 이일이라할것이다. 이제 여사가 미국 뉴-욕에서 무용한 연기에 대하여, 「뉴욕산」신문지의 무용평(舞踊評)을 초록하면 이러하다.
「朝鮮과같이 먼地方에서 온손님을 對할 때 觀衆은 自然同情的寬容의 態度를 取할것으론 상상되는터이나 崔承喜女史에 對하여는 그럴必要가 전여없다. 女史는 特異한 藝術家다 本土의 傳統에 專念하면서도 能히 人種的制限을 超越하는 精妙의 機敏의 技術을 發揮하는 藝術家이다. 舞臺우 에선 女史의 날신하고 아릿다운 자態와 表情이 豊富한 어여쁜 얼굴은 觀衆을 醉하게한다.
當日의 「푸로그람」은 朝鮮의 古典的 유모어의춤인데 가장 民俗的 유모어의춤인데 가장 觀衆의人氣를끈것은 「유모어」와 民俗的춤놀이였다. 個中에도 朝鮮의 漂泊者라는 假面춤은 춤自體도 奇怪하거니와 그假面 이야말로 可謂天外의 奇想이었으며 華麗한 高麗大將의 뽐내는 춤도 亦是珍奇한 假面춤이였었다. 高雅하고도 華麗한 衣裳은 춤마다 變하야 觀衆의 끝없는 觀心을 삿다.
女史의 아름다운 動靜과 千態萬象으로 變하는자態를 「朝鮮舞姬中」에 볼수있었는데 大體로 말하면, 東洋藝術에 特有한 優雅纖細의 情味가 그特色이였다,
伴奏는 李孤山指導下에 長鼓와피아노이였었다.
(끝)
그날의 順序는 다음과 같다.
一, 新婚旅行 二, 新羅宮女 三, 의道僧의誘惑 四, 相別曲 五, 樂浪의壁畵 六, 劍舞 七, 朝鮮의 漂泊者 八, 高句麗의戰舞 九, 高麗大將 十, 朝鮮舞姬 十一, 記念祭舞 十二, 農家의處女 十三, 觀相家 十四,

崔女士의 米國訪問第一聲
그리고 최승히 여사를 방문한 헐리웃드선의지상에실닌 신문기사는이러하다.
최승히女史는 아메카에 체류하고있는中지금은하리욷, 루스벨트, 호텔에 머믈너있다. 그는 朝鮮古典舞踊을 紹介한편現代色을가진自己創作도 보여주고있다.
최승히女史는 訪問한아메리카 記者에게다음과같이 말한일이있다.
멀니잇서서누구나 아메리카를보고저함니다. 아메리카는文明한나라요 또는누구나 잘사는奇蹟의나라임니다. 여기있는배우까지라도 모다들한번보기원하는바임니다.
더욱이現代靑年男女들은 아메카의 것이라면무엇이나 조와해요. 가령 아메리카 음식이라든지, 아메카의복이라든지, 아메리카의습관, 아메리카의춤까지라도 조와함니다.
그는더듬 거리는영어로 곳잘 이렇게말하고 다시이여서
그런대 조선은유감이지만 땐쓰홀이없어서문제임니다. 그러나 各各집에서들은 할수있지요 나는西洋풍속에집집에서 할수있는社交 땐쓰를大端히조하함니다 하고그는잠간우섰다. 崔女史는 朝鮮舞踊使節노서古典것으로붙어 現代것에니르기까지깊은硏究를 싸흔후渡米하였든것이다. 쌘푸랜씨쓰코에서 첫公演을맟이고다음으론뉴욕으로 向할作定이다. 其後엔 유롭으로 떠날모양이다.
崔女史는 대단히깁버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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