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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연극」협의회―어떻게 하면 반도예술을 발흥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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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영화와 연극」협의회―어떻게 하면 반도예술을 발흥케 할까― 「映畵와演劇」協義會―었더케하면半島藝術을發興케할가―
종    류 좌담 座談
필    자 최상덕·이기세·연학년·이창용·이구영·김동환·최정희 崔象德·李基世·延鶴年·李創用·李龜永·金東煥·崔貞熙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8-08 昭和十三年八月
면    수 84 (84)
기사
時日 昭和十三年一月二十日午後三時
場所 서울 朝鮮호텔
東洋劇場支配人 崔 象 德
紀新洋行 主幹 李 基 世
中央舞臺 主幹 故 延 鶴 年
高麗映畵配給所 李 創 用
團成社宣傳部長 李 龜 永
本社側 金 東 煥
崔 貞 熙

오늘날 文化方面에잇서 映畵와 演劇이 一船社會에가지고잇는 힘이란 참으로 놀납게크고 넓다 진실로 映畵나 演劇의 觀衆은 文學者가 써 내놋는 文藝作品보다 音樂家가 지어내놋는 作曲보다 훨신へ 더强한것이다 그래서 一船 사람들은 모다 映畵와演劇에對하야 깁흔 關心을 가지게되였다.
이때에잇서 朝鮮社會의 映畵 演劇方面의 水準은 엇더한가 한 엇더케하면 그事業을發展식혀 볼수잇슬가함을 생각하지안을수업다.
이제 本社에서는 第一次로 以上의 若干의問題를 取扱하여보려 우리映畵界와 演劇의 權威와 先輩를 한자리에모히어 그抱負와 薀蓄을듯기로하다(으로 한가지슬푼일은이 座談會지난뒤이글發表되기 전에延鶴年氏가그만作故하신것이다)

映畵製作에費用은얼마나나는가?
崔貞熙. 여러분이 바쁘심에도 不拘하시고 이렇게와주신 것을 感謝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맛슴듯기로 하겠는데요 재미있고 實益될말슴을 만히들여 주십시요. 그런데 요새와서 映畵演劇方面에 投資하는분들도 많어지고 또 예전보다 映畵演劇이 文藝보다도 훨신더 重要視되는 傾向이 보히는것같은데 어떳습니까. 最近映畵로서 「나그내」가 製作費는 얼마나 들었으며 興行成績은 어떠했는지요.
李創用. 「나그내」의製作費는 잘알수가없는것이 朝鮮서는 撮影만하고 新興키네마에서 現象錄音其他의것을 다햇으니까 다른寫眞에比하면 三分의一밖에 撮影費가 들지않었죠. 그러니까. 寫眞 全體로봐서는 相當한製作費가 들었다고하겠지만 朝鮮에서 디린 費用이 퍽적었으니까 「나그네」는 아주 興行成績이 좋은셈이였어요.
崔貞熙. 그박게 다른朝鮮映畵는 어떳습니까.
李創用. 우리配給所에서引受한것으로는 수지가 맛는映畵라곤 한개도없섯읍니다. 日本內地 滿洲等地에 配給網을 넓히기前엔 當分間 수지맛추긴 어려우리라고 생각됩니다.
崔貞熙. 映畵한개를 製作하는데 얼마나한 費用이듬니까
李創用. 大略萬圓부터 萬五千圓가량들죠.
李龜永. 요새 필님값이 밧삭 오르기때문에 製作費가꽤많이들죠. 었잿든 七八卷짜리 映畵한개를 만들재도예전 四五倍以上 돈이 드니까요.
崔貞熙. 東京가튼데서도 그렇게많이 드나요.
李龜永. 거기서야 設備가 다完全하니까 그렇게 많이들지안치요. 우리들이야 아직 신접사리格이니 뭐뭐할것업이새로 가추워야하니 돈이안들겠읍니까.
崔貞熙. 「春香傳」은 얼마나 들었든가요.
李創用. 一萬二千圓가량 들었읍니다.
崔貞熙. 李基世先生 「沈靑」은얼마나 들었읍니까.
李基世. 「春香傳」에 못지지안을 것입니다.
崔貞熙. 「春香傳」이나 「沈靑」은 古典文學을 復興식히는 좋은 機會였는데 그 結果가 어떠했읍니까.
李基世. 저두 그런意味에서 「沈靑」을 만들게 됏는데요 映畵로서는 現代物인 「나그내」가 오히려 낫지않을가 생각합니다.
崔貞熙. 인제 獨鵑 延鶴年 劇界의 두거장先生이 演劇方面의 말슴을 들여주십시요.
李基世. 두분이 서로對立이 되실걸요.
崔獨鵑. 그러면 松竹하고 日活이게하, 하, 하
李基世. 어느쪽이 日活인고?
延鶴年. 돈없는쪽이 日活이겟지.
李龜永. 웨 日活이 지금 돈없나요.
李基世. 前까지는 九百八十萬餘圓이란 天文學的數字의 빗을 가지고 있었으나 요새와서는 그렇지 않태요.
崔貞熙. 獨鵑先生 東洋劇塲은 물론 利益이 많을줄알지만, 具體的으로 좀더 잘알수없을가요.
崔獨鵑. 東洋劇場이 三年前十一月三日에 開舘했는데 그 동안의 數字的統計를 본다면 利益이야 많었죠.
崔貞熙. 投資額은 얼마나 되엇서요.
崔獨鵑. 빗을끄러다가 넣은것두 投資라고할지 모르나었쨋든 東洋劇塲이 처음 開舘될때야 어려운 形便이였죠 정말 演劇이 東洋劇場을 살였다고해도 過言이 아니죠. 映畵를 했드면 優美舘만도 못했을지 모르나, 그동안 演劇만 한덕에東洋劇場은 살고난셈이지요. 또한편으로보면 東洋劇場때문에 演劇이 살고 在來의朝鮮俳優들이란高尙한 敎養이 적은는까닭에 俳優들에게만 독특하게있는 根性을 턱하면 내놋는통에 어느劇場에서 든지演劇을해서 成功한데는없어요. 俳優와 劇場과게약을 서로맺고 혹俳優側에서 病이생긴다든가 무슨事故가 있을때면 劇場側에서 月給을 支拂하고俳優側에서 그만두게되는경우에는 게약금을 바더낼수가없단말얘요. 그러니까 결국 劇塲側에서는 損害만보고 연극도 못하게되는일이 만커든요 그렇기에 金基鎭兄과 團成社朴氏 두분이 내가 演劇을 시작 하는것을 여간 반대하지않었어요. 그러나 욱여서 모험을해보느라고 처음엔「靑春座」와「喜劇座」두를두고 「靑春座」는 正劇만하고 「喜劇座」는喜劇만 하기로 됏는데, 觀客들이 悲劇은 좋아하나 喜劇은 웃기는웃으면서도 좋다고하지 안는것때문에 「喜劇座」를 변갱하여 「豪華船」이라 하고 이것도 正劇만하게되였지요.
李龜永. 었쨋든 觀客은 실컷웃기보다 우는것을 좋아하드군요.
李創用. 映畵도 그렇지요.
崔獨鵑. 그런데 가튼悲劇을하는데도 「靑春座」가 서울서 劇할때면 觀客이 훨신 더많은데 「豪華船」이 하는때면 웬일인지 人氣가 덜했어요 그랫는데 近來에는그러지안코좀나어가요.
李龜永. 「靑春座」에 좋은 俳優가 많은게죠
崔獨鵑. 그렇다고도 할수없는데요.
崔貞熙. 그런데 한푸로에 觀客을 멫名까시 어들수 있을까요?
崔獨鵑. 前에 朝鮮劇場에서 演劇할적엔 한脚本으로 三日을겨우해도 마지막날은 텅텅비여있었고 또 우리가 처음 演劇始作할적에도 四日씩하는것이 보통이여서 脚本대기가 아주 곤란했는데 요새는 한주일 혹은열흘식하는데도 늘 滿員인例가 있단말이죠.
崔貞熙. 그러니까 質로보하서 많이 進展된셈인가요?
崔獨鵑. 그렇지도않은것같애요 지금 演劇을보는 손님들이란게 토-키를 보아낼수 없고또 그렇다고 第三四流劇場 解說者있는 常設舘엔 가기싫구한 손님들이거든요. 말하자면 花柳界있는 女性들, 또거기따르는 할양손님들이 토-키를 보하낼재주가 不足하니까 演劇을 求景하려오는셈이죠 그러니까 주머니는 다-들튼튼한손님들일박게요뭐니 뭐니해야 演劇은 花柳界를노치며는 數字上으로 결손을 보게되드군요. 小林一三氏가 演劇시작할때 券番에는 하나 알니지않어서 大失敗를한 後에권번을차저가 와달나고 했다는 얘기도있지만 돈을 벌여는 演劇이라면 애초부터花柳界를 노리는 演劇을해야될줄알어요. 이런얘기는 延鶴年氏비위에 대단 틀니겟지만나는 돈을 벌자는사람이고 延氏는 말하자면 技術者니까요.
崔貞熙. 中央舞臺는 獨特한 見地를 開拓해나갈수 있지 않을가요.
延鶴年. 말뿐이지잘돼야죠.
崔貞熙. 東演劇場과는別 다른 觀客層을 어들수있잖어요?
延鶴年. 그렇게 잘안돼요.
崔貞熙. 演劇때마다 늘滿員이라든데?
延鶴年. 어쩌다가 그리된거지요 나는 지금 演劇을해서 남에게 보혀주기가 急하다가보다위선 집안수습부터해야겠어요. 現在있는 演技者들을 가지구는 좋은演劇을 못하겠어요. 지금까지 거러온 소위演劇俳優들은 演劇을 모르고演劇을 했거든요. 거저 職業的心理뿐이지人間的으로는 글세요. 앗가 獨鵑도 말했지만, 좀不足한點이잇지요 정말 藝術을爲해서 뭘하겠다 는 마음은 가지려고도 하지않어요 도모지 뭐가 뭔지를 모르니까 말해야 소용도 없죠. 朝鮮사람들도요새와서는 文藝映畵라면 한사코 求景하면서도 演劇이면 똑같은 스토리건만 보아주지를 안커든요. 그것은 다른데 原因이 있는게아니고 演劇을 잘못하는點에있다고봄니다.
李基世. 그것도 그렇지만, 앞으로 점점 演劇보다도 映畵를 만히보게 될것입니다. 지금 東京京都等地에도그런現象이보이니까.
延鶴年. 그래도 名作이면 좀낫긴 하드군요. 「하이델벨히」 「카츄-샤」는 꽤사람이 많었는데 지난번「村先生」은 아주失敗였어요. 실상은「村先生」이 좋은脚本이얘요. 內容이 훌융한 脚本이지만 제목부터 村先生이고 또 原作者가 별로有名하지 못하든사람이라 대수롭지 못하게 알었든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公演하고저 지금 준비중에있읍니다.
李基世. 그런例가 얼마든지 있죠 東京가튼데서도 無名作家의 씨나리오가 映畵製作하여서 아주 훌융하게되여있어도 菊池寬이나 또 그박게 有名한사람의 原作을 쓴단말이야요.
崔獨鵑. 要컨댄 宣傳이 第一이니까.
李基世. 지금 「長恨夢」을 公演한다면 우습게알지만 그래도 어늬것보다 그것이 더 アタル할걸요.
崔貞熙. 劇藝術硏究會는 어떤境遇에 서있어야할가요?
延鶴年. 그건 우리 部門엔 못들어오죠. 劇藝術을 硏究하는團體니까.
李龜永. 硏究하는 團體도 대단히 必要하죠.
延鶴年. 劇을하는사람보다. 劇을 아는사람이 있어야겠어요.
李創用. 내말이 그말입니다. 돈만있으면 하겠다는. 사람들이많이있지만 돈보다도 技術을 硏究하는사람이 더必要해요. 지금 돈이있어도 돈을 마음놓고 맷길사람이 누구냐무르면 한사람도 꼽을사람이 없어요. 죽은 羅雲奎君이 朝鮮映畵界를 오늘 水準에 올여놓았지만아직 그水準以上을 넘어갈映畵를 만드러낼사람도 없으니까요. 돈보다 먼저 기술을 딱거야 할줄알어요.
李基世. 그말슴에 同感입니다. 사실 돈을 아주맺겨 놓을만한사람은없죠 그러나 技術者側에서도 또할말이있을게란말이죠. 지금까지 그들에게 技術을딱글 긔회가없었거든요. 챤쓰를 주지않고 좋은技術을 딱지않는다고해서만 되겠어요. 日本內地가튼데서도 初創期에야 돈을 흠벅버리고 그리고 긴-ㄴ 歷史를 가젓기때문에 오늘과같은 技術者들이 났을거란말이죠.
李創用. 글세요 여러가지 客觀的條件이 없는것은아님니다. 그렇나 朝鮮映畵人은 誠意가너무없어요. 돈을주면 일을 하겠다기보다 일을하기爲해서 공부를해야지안겠읍니까 그래도 과거十年歷史라는게 빤히있는데 아직도 그모양이니 성의있다고 누가말하겠읍니까.
李龜永. 朝鮮映畵 十年歷史라는게야 어디完全한歷史라고 할수있나요 말한다면 變態的年歷이죠 신접사리하듯이 누가돈가진사람이 나와서 한作品을 맨들고는 들어가고했으니 完全하다고 할수없지요.
李基世.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부터 再出發하는수박게없어요. 各各다-自覺해서 自己를알고 참된藝術을 爲하는마음이 간절해지지않어서는 안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엔어디돈있는놈을 꼬여서는 寫眞하나 박어놓으면 이건 아주 훌융한 일이나 한것 처럼 監督이라고 버티고 속알머리하나없는 짓들을하고 또 日本內地에 얼마동안 가있으면서 監督의담배나 부처주고 椅子나 들어다주고- -이런 심부럼이나 하다가 나와서는 제법 監督이라고 버티는건 참우수운 觀景이죠. 어느비러먹을 놈의 會社에서 自己들을 監督을 시켜달단말입니까 助監督이면 社長과 副社長格같이 되는줄 알지만 監督과 助監督사이는 그런게아니얘요. 助監督이監督이된다는건 아니니까요. 助監督은 監督의 심부럼꾼일뿐이지. ……撮影技師로는 우리가 정말 애끼고爲해줄사람이 있어요. 梁世雄氏가튼이는 京都서도 여섯개의映畵를 撮影했고 또 여기와서도 훌융한 成績을 내였죠. 그러치만, 朝鮮에는 監督이없어요.
崔獨鵑. 나는 監督이 아주 쉬운줄 알었드니…내 「僧房悲曲」을 李龜永氏가 監督했을때 나도 한번해볼생각이있었는데요. (大笑)
李創用.  어떤사람은 남이 脚色한것은 監督을 못하겠다고 하니 어떡해요.
李基世. 그러니까 돈이 멫十萬圓이고 무지워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못한 이形便에서 하는수있나요. 監督은 東京이나 京都에서 초빙해다가 作品製作을하면서 技術을 딱는수박게……그런다면 企業者側에서도퍽 有利할것이 여기서監督을 一二百圓줘서 하기보다 一二千圓주고래도 대려다가 하면 서트른監督이 비싼필님을 一二千圓어치 식업새는데 比해서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崔貞熙. 그래가지고 朝鮮의情緖를 完全히 살닐수 있을까요?
李基世. 情緖는 내가 살니면서 技術만 뵈운단 말입니다 그것도 늘그럴것이 아니라 一二年만 그러면 넉넉할거죠.
李龜永. 技術問題가 물론 重大하겠지만 단지 誠意가없어서 못하는것도 아니겠죠 한사람의 製作者가 굿세게나선다면 그아래 다모혀서 일할수없는것이 아니죠
李創用. 돈은 來日이래도 만들수없는것이 아니얘요. 사람이 問題지 이번에도 東京 京都各撮影所를 두루 들여보고 얘기도 듯고 했는데 어느會社에서든지 大陸映畵製作에 뜻을 두고있어요. 滿洲 支那를背景한 映畵를 만드는데는 朝鮮을 거치지않고는 안되는 까닭에 朝鮮사람의손음빌여는마음이 많어요. 그러나 여기와서 技術者들과 그런얘기들 했드니 어떤사람은 내가말을 올케듯고또 어떤이들은 그렇게하면 朝鮮의藝術性을 抹殺해버릴 念慮가있다고 하드군요.
崔貞熙. 朝鮮映畵가 日本內地에 比하면 얼마나한 差異가 있을까요. 需炎前만한 水準에는 達할까요.
李創用. 意識水準은 그以上이라 하겠으나 技術로바서는 아직도 그때것에 比할수없죠.
崔貞熙. 演劇은 얼마나 떠러젓나요? 한 十年?
延鶴年. 年數를따저 말하긴 어려우나 엇쨋든 比較가안되죠. 朝鮮사람이 재조는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演劇을 헛해왔기 때문에 전혀몰나요. 내가 처음 中央舞臺에갔을때 참 놀났어요 모르다해도그렇게 모르고 어떻게 演劇을 했는가했드니 그저 「세리후」를 외워가지고 나가면 되는걸 하고 대답하는데는 비관하지 않을수없었읍니다.
崔貞焦. 李基世先生 옛날 先生이 李守一을하든때와는어떳읍니까.
李基世. 그때보다야 훨신 進步됏죠. 우리가 지금 여기 안저공공연하게 演劇을 論하는것이 벌서 그때보다진보됏다는걸 알니는것입니다 그때는 연극얘기를 하는건 붓그런일 인줄알고 남들이 흉을보니까 얘기하고도 안했다 거짓말하기가 일수 요 또 劇場에 求景갔다 오고도 동무집에 갔다왔다고 거짓말하게 됏으니까요. 지금은 俳優도 그때보다 進步되고 觀客刀手준이 훨신 높아진셈이죠.
延鶴年. 觀客의눈에든俳優치고 다좀 나아젔겠지만, 아직도 幼稚하기 끝없지요 어떻게하면 前보다 나은演劇으로 좋은觀客을 어들수있을 까하는것을 늘생각하게됩니다 朝鮮俳優들은 웃는것 우는것 놀나는것 노하는것- 이런것을할때면 어떤境遇에 있든지 똑같은 表情으로 하니 되겠읍니까 知識, 敎養, 階級, 生活환경, 年齡에따라다-달너야할텐데 그렇지못하단말얘요 演劇을 템포와 動作업시 소리로만하려고 한다니까.
崔獨鵑. 엇쨋든 舞臺에 나가서 저혼자만 살여고 노력하지요 演劇이야 엇지됏든간에 저혼자 觀客에게 조케보이면 그만이라니까, 심한사람이면 惡漢노릇하면觀客에게 미움밧는것이싫어서 惡하게할데도 善하게 말을해서 演劇을 버리는일이 얼마든지 있어요.
李基世. 그것도 그렇지만, 셋이얘기하는場面에 하나가제할얘기를 다-하고나서는 제할것은 다했으니까, 하는格으로 演劇하는사람같지않게 가만안저있는것도 우리가 종종 볼수있는일이죠.
延鶴年. 또 이런일도 있어요. 뒤에 사람오는걸 상관말고 아주 모르는척하고 안저서 뭘생각하라고해도 작구만 뒤에울 사람을기다리고 있느라고 表情이 自然스러워안저요. 그리고 때리는것같은데도 저쪽상대자가 어디까지 말하면 때린다는것을 딱 기억해둿다가그말이떠러지면 담박 후려갈기는데 그行動이 참 어색해요 이런例가 非一非再니 어떻게함니까.
崔貞熙. 俳優養成은 할생각이없읍니까.
延鶴年. 돈만있으면 하죠
崔貞熙. 小林一三氏와 같은이와協同해서 資本방침을 달니할생각은없읍니까?
崔獨鵑. 演劇은 돈이없어서못하지 않으니까요. 小資本으로 될수있거든요
崔貞熙. 映畵는 外來投資策이 어떨까요.
崔獨鵑. 純全한 朝鮮物은 못맨들지 않을까요.
李龜永. 內地映畵도 第一처음에는 유니버살會社에서 돈을가지고와서 始作했거든요.
李創用. 앗가도 말슴했지만, 投資하자는사람은 만치만技術者가 없어요.
崔貞熙. 朝鮮映畵를 一年에 열개쯤消化시킬수있을까요
李創用. 消化는 되지만, 製作할수가없어요 一年에 다섯개 만들기도 지금까지는 어려웠어요.
李歸永. 많이 만들必要가 없어요 적게만드러도 좋은것을 만드러야죠東寶에서도 작구맨드러만 내다가失敗하지 않었어요.
崔貞熙. 京城市內에 하로저녁에움직이는 演劇 映畵觀覽客이얼마 나될까요.
李龜永. 하로저녁에 萬名씩은 꼭움입니다.
崔貞熙. 인제 여러분이 朝鮮映畵와 洋畵보신中에서 印象에 남는것 몇가지 말슴해주십시요.
崔獨鵑. 나는 챠푸링의「거리의등불」과 「未完成交響曲」이좋았어요. 그外에도 좋은것이 있었겠지만 전혀보지못했으니까.
李龜永. 난 西洋것으로는「푸른빛」 「내가죽인사나이」 「미모자舘」이좋았고 朝鮮것으론 「沈靑이가좋았어요
李基世. 「椿姬」를 東京에서 봣는데 旅愁를 느끼든때라 그런지 참좋았어요 비오는밤 그것을 보고와서 밤깊도록생각했으니까요.
政鵑年. 나는「구랜드호텔」 「黃金狂」이 좋았든것같애요
崔貞熙. 內外俳優들中에서는 누가 좃습니까
李基世. 께-리쿠-파와 徐月影이가 좋아뵈드군.
李龜永. 샤르르보아웨가 조치요.
崔獨鶴. 「未完成交響曲」에 전당포집딸로 나왔든 女子가 조트군요.
延鶴年. 난俳優 일홈을 전혀모르니 말할수있어야죠. 좋은 俳優들이 만트구만 그래도 아마「가르보」가 상당할걸요
崔貞熙. 너무오래 말슴해주서서 감사함니다. 앞으로 도 종종이런議會가 있기를 힘쓰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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