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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예술협회」에 보내는 공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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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극예술협회」에 보내는 공개장 「劇藝術協會」에보내는公開狀
종    류 논설 論說
필    자 신불출 申不出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7-01 昭和十二年一月
면    수 170 (170)
기사
그야말노 雨讀晴耕格으로 劇界를 關心하는 筆者로서 이번 第十一回까지의 劇硏 公演을 보고 늣긴바 그感想의 한片鱗을 率直히 적어보기로 하기로하는것이다.

新劇團體는 藝術本位요 人生本位요 指導的이요 啓蒙的이요 良心的이요 眞實이 있을뿐이지만 興行劇團은 利得本位요 迎合的이요 阿諛的이요 虛僞的이요 詐欺박게 아모것도 아니었다고 해왓지만 實際에 있어서 어느程度까지 그런點도 아주없지는 않치만 반다시 서로 그러치않은 點도많은것이다.
이것은 俳優自身의 內的良心과 外的支配와의 軋礫과 劇團自體의 主觀的條件과 客觀的情勢의 不利가 가저다주는 畸型的發展의 結果라고 볼 수있는것이니 이것은 實로 過度期 朝鮮의 荒蕪地벌판에서 떨고있는 앙상한 時代的標本이다. 이것이야말노 尋常히 看過할수없는 朝鮮演劇文化發展過程에 있어서 하나의 特徵的性格의 一面인것이다.
新劇團體에서는 燦爛한論陣을 펴놓코 이러서서 辱喇叭을붙었고 興行劇團에서는 險惡한感情을 참을수없다하야 撲擊砲를 놓얐다.
그러나 아모리 시커먼 惡夢을쓰고헤매는 興行劇團을 꾸짓고서 눈부신 烽火를들고 용소슴처 일어난 新劇團體라 하드라도 이것은 애오라지 辨證法的으로 發展되는 歷史的過程에서 볼수있는 嚴正한하나의 社會的自覺을 찻었다는것뿐이지 新劇團體의 公演이 回數를 거듭하는 동안 上演된劇等의 演劇的效果가 實際에 있어서 果然 얼마나한 嚴正한意味에서의 朝鮮民衆에게 奇與하는바가 있었든가?
興行劇團은 舞臺實際의 經驗은 있어도 社會意識을 뚜려시 認識하지못햇든 緣故로해서 좋은 演劇을 못하는채로 있든것이요 新劇團體는 時代理念은 힘있게 把握했으나 舞臺實際에 經驗이 없었든 所以로해서 역시 좋은 演劇을 못하는채로 있든것이다.
이래저래 좋은演劇을 못가진 朝鮮觀衆의마음은 너므도 寂寞하였든것이다.

演劇에關한 千마듸 文學的理論도 좋치만은 그보다도 한가지의 綜合的壓力이있는 舞臺의 藝術的實際를 보여달나는것이 一般의 時急한 要求다.
宣傳時代가 아니요 實力時代다, 言보다 行이다. 行이없는 言뿐만의 虛張聲勢로해서 朝鮮은 지금 惡夢을 이르킬地境이다 偉大한 技術的人物의 出現이 없이는 少年時代에 있는 新劇團體가 壯年時代에 있는 興行劇團을 征服할道理가 없을것이요 興行劇團을 支持하고있는 全鮮的인 絶對多數의 傳統的觀衆에의 打開는 空想에 그칠것이다.
眞正한 演劇的活動은 먼저 大衆的基礎우에다 뿌리를 박어야 된다는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싶다는 것이다.

京城에는 한번도 와본 일이없는 興行劇團이 全鮮에 數百으로 그數 無慮三千餘를 算한다. 그렇나 이러한 實際現狀을 모르는사람들에게는 實로驚愕를 禁치못할事實인同時에 그네들은 오날날까지 우리들의 問題圈外에서 安着해온것이다.
勿論 나는 興行劇團의 今日의演劇行動을 全的으로 承認하는사람은 아니지만 그것이아모리 歷史的發展에依한 必然的沒落을 當할것이라하드라도 우리는 온갔解決을 時間에다가 맥기고 턱을괴고 期待리는 宿命論者가 아니기때문에 언제라도興行劇團의 演劇的活動을 問題삼지않코는 못견듸게되는것이다. 그러케까지나 朝鮮全幅에다가 시커먼날개를 펼치고있는 興行劇團의存在는 新劇運動者들의 至大한關心事가 아닐수없는것이니 萬一 그들의 存在를 問題以下로 規定해버린다고 할것같으면 그야말노 演劇의 社會學的考察을 더듬어보지도못한 輕率한 態度라고아니할수없다.
그네들의 온갔放縱을 默過自慰하기에는 먼저 산動向이 容怒치않으려니와 熾熱한時代意識에 顚沛된落魄이마저 社會淘汰의 悲劇的인 前途의豫感을 自覺하지못하고 오히려 樂天的夢幻속에서 社會的無爲와 個人的快樂을 氣分的으로 流動시키고 있을뿐이니 實로 慨歎의度를지나 憐愍의情을 禁할事實이요 痛恨의 至極이다.
그러나 그네들을圍繞하고있는 諸現實과 그들을容納하고 歡呼하는民衆이 있음을이저서는 아니된다. 問題는 여긔있는것이다.

興行劇團의 今日을 짓구지 그根本的인 社會的環境에서 찾어보려하면 먼저 人生的으로보는 興行劇團俳優들의 悲哀와苦痛은 너무도 惻隱하고 慘憺한것이다.
날카라운 良心압헤 觀照된自身의 卒縷한꼬라지를 發見할때마다 悲痛한 人生的恨懷와 鬱憤한 社會的咀呪의숨길이 놉았었을것을 우리는잘안다. 그러나 眞實을 늣길때마다 敎養을닥그려하였으되 貪弱한 社會는 그들을爲해서 修業의길을 열어줄만한 溫床的機關을 아니주었고 오히려 無慈悲한 賤待로써만 그들을비웃고 있었으니 惠澤받지못한 不幸한 그들의 갈길은 어데였든가 오즉 自暴自棄에서 極度로 疲勞한몸이되여 口腹이 또한怨讎라 絶對服從을 强制하는 金權階級이 操縱하는바 興行的機構안에서 無理한X取에도 反抗할수조차없는 彈力性을喪失한 無氣力한人間이 되여온것이다 勿論 그中에는 참된 良心的情熱과 藝術的意慾에 불타든 進步的人物이 없든것이아니지만 實로 轗가不遇한 人生들의 混成旅團이라고나할는지?
어느意味로보아서는 이興行劇團은 朝鮮의一面相을 빋어놓은 거울인가고도 생각되거니와 이모든 不幸은 朝鮮의不幸이요 어느누구에게도 轉嫁시킬수없는 우리들의 共同責任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自然人的一面과 社會的一面을 混同視하지아니하는 冷靜이 있어야할것이요 아모리 밥을 먹기爲하야 하는노릇이라고 하드라도 生活問題와 生存問題를 分別할줄아는 聰明도 있어야할것이다
우리는 言必稱 朝鮮의特殊事情云云하되 이러한 氣맥힌 生活實相과 社會現實이 朝鮮이라고함을 다시한번생각해보지안코는 特殊事情이란말의 眞義를 疑心할박게 없게되는것이다.

文學書籍數卷만 읽으면벌서 早老病에 걸여서 一躍評論家然하는者들을 文壇에서도 往往히 發見할수있는 不幸이있거니와 이건舞臺實際에 있어서 初步的常識도 없는 사람이 팜프레트卷이나 읽으면 곳 演劇世界에 立法者가되고 裁判官이되는 唐突無變한 闖入者의 現象를보게되는 不快가있다.
沈滯에서 離脫하라고 絶呼하는者 많으되 그離脫方法을 俱體的오로提示해주는者없었으니 이따위 評論이 踵을接하야 發表되기로 털끗만한反音인들 생길理가 萬無한것이다 評的諸要素를 喪失한批評은 한갔空想遊戱요 不健實한行動의 發作以外에 아모것도아니니 이러한 謹愼性없는 鐵面皮들이야말노 貴族地主的心理를 代表하는 새로운 觀念宗派의되령님들이 아니면 묵어빠진 理想主義의 머슴아희들일 박게없는것이다.
演劇에는 藝術的一面도있지만 思想的一面도 떠날수없는것이요 興行的一面도 버릴수없는것이다. 이三面角型은 演劇의全面的形態라고 볼수있는것이다. 勿論 내가 말하는 興行이란것은 無謀한享樂的인것을 意味함이아니요 志操있는 娛樂的인것을 意味하는말인同時에 取支에對한商業化를말함이아니라 經濟의企業化를 말하는것이다.
文藝批評도 그러하거니와 演劇批評에있어서도 一般으로하여금 그鑑賞眼의視野를널펴주는仝時에 演劇을 보담더 社會的으로進出시키기爲하야 가장寬大하고 親切한 指導的態度를 가짐으로서만 그評論은 하나의尊貴한 斯界의文獻이되는것이다. 稚氣滿滿한 애昧한論旨로써 演劇發展을防害하고「디렘마」에빠지게하는 阻止的態度는 警戒할일이다. 主觀을强調하기前에 먼저 現實을冷靜히凝視하라 朝鮮을 알어야할것이요 人間修業을 해야할것이다.
評家一石의波紋은 至大한 功罪의 俎上에 스게되는것이다. 正當한批判이없는社會가 正當한發展을 하기어렵나고하는말은 벌서 社會學以前의 이야기다.

漠然한꿈이 너무糢糊하야 甚히애昧한말이될는지는몰나도 興行劇團에서는演劇을「砂糖」으로쓰려햇고 新建設에서는 演劇을「藥」으로쓰려햇다. 그러나 劇硏에서는演劇을「밥」으로서쓰려한다. (그런데이「밥」이란말이 職業化를意味하는것이 아닌것은勿論이다)
무릇 社會的意識으로본 演劇의 究極的目的이 어데가있다는것을 생각할새 演劇을「밥」으로쓰려하는劇硏의意圖를 正當한 態度로보느냐 그것은 보는各自의 位置에서 規定될 問題겠지만 朝鮮新劇運動은 그發展限界가 이미制約되여있는터이라 表示된 範圍안에서 制約되는 結果는 演劇이「밥」일수박게 더以上다른 엇더한 效果를 가저올수없으리라는것은 거의 先驗的事實이다.
「藥」보다는 못하지만 「砂糖」보다는나은 이「밥」의 營養價値의必要性도絶對한것이지만 要컨대 그「밥」을 잘料理할수있는演劇的手法을 가지느냐못가지느냐에 問題는머물너신줄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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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서 하나의 常識이지만 朝鮮劇人이 朝鮮民衆에對한 理解가薄弱하다고할것같으면 아모리 솜씨좋케料理된「밥」이라하드래도 그「밥」을 咀嚼하고攝食할 朝鮮民衆의食性과 脾胃에 맞지않을진대 決局 消化不良을 이르키고 말것이니 이러한 親切치못한일이 어데또있겠는가? 歷史的으로 時代的으로 社會的으로 오로지 生活實際를 通해서보는 朝鮮民衆에對한 確然直裁한 認識을가지지않으면 않될것이다.
때마츰 어두운『밤』인지라 모름직이 그時代의主潮를把握하려는 熱情과意慾의「횃불」을 켜들고 그밝은 불밑에서 솜씨좋케 맨드러진『밥』이라야할것이다. 여긔에 답답한 艱難과 懷疑가있고 여긔에 슯은逡巡과 低徊가있고 辛酸한 時代苦行의 人生的感激이 있는것이다.
詩의詩요 藝術의藝術로서 生活을 生活시키는 이한덩어리 커다란演劇을 演劇한다는것은 무섭게도 어려운것인지라 이러한 先驗者的苦盃를 맛본 그야말노 「靈魂의거문고」가울줄아는 외입쟁이的達觀과 雅量이잇어야 비로소 훌륭한 演劇을 해낼수있는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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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까지에 劇硏十一囘公演을보고서 두가지 큰깃붐을늣꼈다.
劇硏이 創生된爾來 事實上 너무도 藝術的發展이 貧弱함을 늘 恨하드니 문득거짓말 이라고도할만큼 奇蹟에같가운 飛躍的發展을 보게되었는바 舞臺그늘에서 애쓴 裝置家 演出者들의 눈물과땀이 흘르는 感激속에서 出演俳優들의 熱情的이요. 良心的인 眞實한態度의演技가 놀날만큼 熟鍊되고 能한데 一種驚異의 念을禁치못하게하였음이 그깃붐의하나요 滿場한 觀客과 더욱 絶對한 支持聲援을 보게됨이 그깃붐의 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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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긔서 하고십은 많은많은 稿를 달니하여 쓰려들거니와 꼭한마듸하고넘어갈것은 이번 劇硏十一囘公演時에 一般에게 配付한「劇藝術」이란劇藝■關을 읽어본中에서「飜譯劇의生命」이라題한 金恍燮氏의 말슴이 一般이 飜譯劇을 싫여하는理由는 外國劇藝의 自主性을 無視하는 認識不足이라고 指摘하신상싶은데 내 생각같애서는 朝鮮사람처놓코 어느 누가 外國劇이 가지는 그獨立境의 價値를 拒否한사람이 없었든것같고 劇硏에서 上演한飜譯劇이 대개 그飜譯手法이 不足함으로 因해서 一般으로하여금 飜譯劇에對한 尊敬과 理解와 興味를 沫殺시키게한것이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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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애초부터 飜譯劇上演을 反對하는者가 아니다. 더구나 西洋것 좋와한다고 歐米中毒된 熱病患者라는 極言까지를 인색한줄모르는사람들의 精神狀態를 疑心하는 나지만은 這間 劇硏이 上演하는 飜譯劇만은 언제라도 歡迎할수없는것이니 그理由는 勿論 專여 그飜譯方法이 無批判的인데 있었다는것이다
元來 飜譯이 至難事임은 周知하는바라 飜譯은 創作이란 말까지도 있거니와 더욱 感情藝術의 飜譯이란 到底히 不能의 屬하는일이라고 아니할수 없는것이다.
一擧一動一言一辭가 모두 歷史的으로 地理的으로 文化的으로 判異한民族의生活感情이어떠케 그와다른 것과의 完全한一致와 融和가될것이겠는가? 하물며 生活實相을 極히 自然스럽게 表現하기를 爲主하는 演劇藝術에 있어서리요.
往往히 外國劇을 飜譯上演하는것을보면 背景道具와 衣裳化粧은 그대로 西洋것인채 臺辭만을 朝鮮말노 해왔었다. 여기에矛盾이 생기는 것이다 西洋生活에다가 朝鮮會話를 시킴은 나무에다가 돌을 接한것과 彷彿하거니와 이不合理하고 不自然한 빌미가 갖어다주는不快란 다시 더 말할나위조차 없었든것이다.
더구나 直譯으로 이리나는 飜譯脚本의 不充實은 같득이나 서투른 俳優들의演技를 죽여버리기에 알마즌手法이요 所謂 舞臺呼吸이 않맛는다고하는말은 여긔에서 原因하는 것이라본다.
一例를 들면 그原本에
(Ihope you well live to bra wiser)
이러한 臺辭가 있다고 假定하고 그말을 飜譯할새
『나는 바란다 네가 오래살기를, 그것은 賢人이되기까지말이다!』
이러한式으로 直譯을 해놓코보면 그것이 아모리 原作에 充實하려는 良心的態度(?)라고 할는지는 몰나도 그러케까지 窘塞하게 飜譯된말은 或 어느聰明한 文學靑年이아니고는 一般朝鮮觀衆이 그말이 무슨말인것을 얼는알지못할것은 너무도 自然스러운일일것이다.
萬一 그臺辭를 제법 알기쉽게 飜譯하려면 그냥
「知覺좀 나거라!」
와같은 式이라면 엇덜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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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즉이 飜譯劇上演을 反對하든사람의말을 빈다고하면 무릇 나의것의 遺産이 없을때 남의것을 攝取한다는것은 必然한事勢요 當然한行爲라고 보겠지만 大體 外國劇을上演함으로서 얻는바攝取는 劇硏의自體敎養 또는 修業으로라면 몰나도 그것이 일단 大衆앞에 公開을 하게되는때에 있어서는 오늘날 朝鮮事情으로봐서 그性質이 달나지게되는것이다. 다시말하면 一般觀衆이모두 外國劇鑑賞法을 修得하려는閒暇한餘裕를 가지지못했을것은 勿論이요 劇硏이 그러한 受苦는아니해주드라도 優秀한外國作品은 벌서 大槪는보았고 또 各常設舘에서 上演되는 發聲映畵를通해서 보려할것이다. 하물며 貧弱한舞飜에서 未熟한演技로 上演되는 그『飜譯劇』앞에서 觀客이되려는 不幸을 누구라도 두번다시 經驗하려고 아니할것이니 이로말미아마 外國劇에對한 一般의 尊敬과 理解와 興味가殺減되고 原作에對한侮贖이 되였으니 言語途斷이란 實로 이를이름이니 地下에도라간 原作者들이 痛哭을 하였을것을생각하고 짐즛 苦笑를 不禁할노릇이라고까지 慘酷한極言을 했든것은 這間에事情을 如實히 代辯하는 것이 아니면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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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劇硏에의注文을 멫가지 말하려한다.
劇硏은 다시演劇以前의 地點으로 도라가 달나는것이다. 劇硏은 시방 演劇을 함에있어서 진실로
理論的硏究에서 實際的硏究에로 抽象的理論行動에서 俱體的實際行動에로란말이니 勿論 이實際란말은 公演을意味하는것이아니다. 다시말하면 準備時代에서 實行時代로 넘어가는 發展過程에있어서 그過渡的手續으로의 演劇的基本條件인 朝鮮的인 劇作法과 朝鮮的인 演出法 (抑揚法表情法) 과 朝鮮的인 裝置法等等을 創案하란말이다.
新演團體가 興行劇團의 演劇을 演劇아니로보는 理由의하나로 興行劇團의演出法은 모두 日本內地新派式이라고하는點에 있는것이니 그러면 興行劇團은 新派式인 演出法으로나 演劇을해왔겠지만 新劇團體인劇團은 대체 무슨式演出法으로다가 演劇을 해왔었다는말인가?
萬一 靑春座를 興行劇團이라고 할것같으면 興行劇團인 靑春座俳優들의 抑揚과表情動作과 新劇團體라고하는劇硏俳優들의 抑揚과表情動作이 얼마나 한 다른差異를 가지고있다는말인가?
劇硏의 演出法에依하야 上演된「人形의家」와 興行劇團의 演出法에依하야上演된「人形의家」가 개처놓은 社會的效果가 서로얼마마한다른點이 있었는지는 모르거니와 그 分別이 두드러지게도 鮮明치못한지라 要컨대 演劇은 良心만가지고는 못하는것을 다시한번 알어야하는 仝時에 演劇이없는 朝鮮에다가 眞正한意味의 新劇文化樹立을 不減의希願으로 삼는 劇硏이라고 할것같으면 公演囘數가 많어가는것을 자랑삼을것이 아니라 맛당히 新劇百年을圖謀할準備工作으로서 하나의뚜렷한「朝鮮的인演出法」을벌서 가젔었어야할게아니었든가?
내말이 너무形式的側面만을 云爲하게되었으나 決코 演劇藝術의形式的還元術을함이아닌것은 勿論 戰場에서 武器의使用方法을 모르는兵士의 無謀를 한번생각하여주웟스면 足하다는것뿐이다.
所謂『玄人の癖』니『素人の癖』니하는것도 要컨대 一定한演出方法이없을때에『제멋대로』가 맨드러주는 後天的不隨病이라 뚜려시作定된 演出方法에依하야 演出되는臺舞에서는 도저히있을수없는『病』이다.
나는 이點에서 現在 朝鮮에있는 新劇團體와 興行團體에 巨離를疑心하게되는 遺憾을가진다.
저 劇硏諸公은 여기對한 再吟味 再認識再出發이 있을줄을 밋고 疑心치않는다.
또한가지는 俳優들의 生活保障을 해주란말이다. 밥을먹어야살수있다함은 너무도 自然스러운 人類共通의 普遍的生活事實이다. 生活을떠난 藝術이없다고하는말은 俳優들이 뇌까리는 戱曲속에만 씨여있어야되는臺辭가아니라 곳 그배優自身의말일것이다. 演劇을好事的趣味로나 氣分的道樂으로서하는것이 아니라고할것같으면 劇硏會員으로서 本業과副業이 따로있지못할것이다. 世人이 劇硏을 일커러(紳士素人劇團」이라고함도 無理가아니다.
演劇속으로 드러가라! 그래서 演劇속에서살고 演劇속에서죽으라! 演劇은 演劇을스스로 生存의天職으로 삼는사람의것이다. 藝術意慾과生活經濟의 葛藤과 桎梏를 完全히解
(第一八一頁에게속)
(第百七十七페지에서續)
決하는데서 비로소 新劇百年의 根本問題가 決定될것이요 始初로부터 約束된 演劇興亡의 宿命的法則이다
그리하야 가장 撤底한 藝術的實踐者로서의 新劇文化樹立에의 길을 열면서 歷史의 前面에 뚜려시 나타나야할것이다.
시방 東京과 各地에서 피를끄리며待機하고있는 進步的인 新人들의 登龍을 마지할날도 머지않다. 탐스럽게자라나는 劇硏을가진 朝鮮의나움은 깁부다.
不遜한 蕪辭를海諒하라 끝으로 劇硏諸公의 健鬪를 望翹하고 이만각筆한다. (舊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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