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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로 가려다가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러시아로 가려다가 露西亞로가려다가
종    류 수기 手記
필    자 최승희 崔承喜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6-12 昭和十一年十二月
면    수 187 (187)
기사
[사진] 최승희 공연 모습
[사진] 최승희 공연 모습(뒷장)
나는 어데까지든지 이후로도 예술즉무용과 싸우며 전진해보자는 생각이 강해지면 강해 질사록 끗까지 끌고나가려고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정열 이끌어서견딜수가없고 또는 무용에 대한 창조적쾌감이 저절로 머리를들고 이러남니다.
그리고 나는 「만네리-즘」 를타파하고 또 다음게단으로 오를수잇에 힘쓰지 않으면 아니되겠다는 마음이 생겼읍니다 그와동시에 조선에서 태여난 무용가라고 하는 독특한 입장에 대해서 자각도 생겨나게 되여서 내가아니면 할수없는 새로운 무용를창작하고 십습니다. 나는 그러한예술을 창작할 사명을 가지고있다는 생각이 내마음을 충동시김니다 또는 여기까지 어려선생의 자애와 친절한 지도아래 보내온 그날 그날의 생활이 그때 내게는 너무나 순조치 아니한가하여 견딜수가 없섯읍니다
그래서 종종 기분을 고치고 「대체 나는 이렇게 무도 생활을 계속해 갈까」하는것또 허할수있는가 장래하늘 대해서 무엇인지 모를불안이 저녁에 안개와도같이 일어나는 동시에 나를 대중압에 시험하고 시련해보기 위해서 이 사회의 험한 물껼가운데 뛰여들고 싶은마음이 억제할수없이 이상하게도 강한 충동을 줍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나의 생활은 격변하여 잘못 쓸어젓슬지도 몰랐을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초초하고 있을때에 로서아 대사관에 관계있는분으로 부터 「당신은 로서아에 가고싶지아니한가 가고싶다면 데리고 가겠노라」 하는 말을 들었다 로서아라는 나라는 내가 소녀시대부터 동경해 오든곳이외다
그래서 그당시 나는 그러한 유혹의 손에 끌리여서 그저기뿌다는 마음뿐 이 가슴에치밀였습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焦燥한 내마음이 로서아가는 것을 쉽Œ가슴체적으로 결정치못하고 내게 잇서 제이의 아버지 와도같이 은혜를 애끼지 아니하고 끼처주신 석정선생의 곁을 떠나
그리운 동경을 버리고 내가 난 서울로 올 결심을 하였는데 그때가 내가서울서 연구생 으로 입소 했을때에 약속한 三년간의 긔한이 끝난 소화사년 칠월이였읍니다 이때에 석정선생을 버렸다는것은 나는 어떤 방면으로 보든지 여러가지 비난과 조소를 받었읍니다 그러나 나는 잠자코 있었읍니다 나는 내 아버지와도 바꿀수 없는 은사 석정선생에게 활을 쏘려는 그런생각을 가진인간은 아니였읍니다 또는 석정선생의 곁을 떠나논 것은 경제적타산적으로 석정 선생을 버린다는 말도 들었읍니다마는 원래 그러한 경제적 타산을 내버리고 뛰여 들어 온길이 아니였읍니까 그러한일로 선생을 떠날 생각은 아니 하였을것입니다. 또는 내형과 기타애인 여러사람의 지도와 권유로써 내가그리되였다는 말로 형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어듸까지든지 선생에게 있어서 초지를 관철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선생의 곁을떠나지 못하게 한것이 형이었읍니다.
지금 잇서 생각하면 내가 성정선생의 곁을떠날 시기는 확실히 아니였든것입니다 순수한 무도나 레뷰 기타 대중의 악평을 받어 위험에다 다렀을 그때 나는 어찌하야 석정선생을 떠날생각을 하였든가 하는것이 내자신이 떠나지않으면 아니될 이유가 있었겠지마는 현재 이때에와 생각해보면 선생에 대해서 면목이 없는일이였었고 마음이 아픈일이였다고 생각됩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그때의 내마음을 이해 해줄줄은 몰으고 무슨 다른이미로 생각한이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불쾌하여 견딜수 없읍니다 만약 내가 나를 본위로하는 여자 여서 타산적으로만 행동하는 여자였드라면 나는 그때 석정선생의 곁을 떠나지 않을 영리한길을 택했을것입니다소랑(小浪)이 떠난후 뒤를니여 석정선생의 상대역으로써 무대에 나올 수 있는 명예스러운 지위에 섯술대에 기회를 잡을수있었을런지도 몰랐을것이외다 어떻든 나는 내 자신의 예술을 세워보겠다는 한마음에만 쏠려서 고향인 서울로 급히왔든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보려는 로서아를 목표로 하고 수업의길을 떠나겠다는 빛나는 몽상을 가슴속에품고 있었읍니다 로서아로 간다는 말이 최초에 로서아대사관에 관계있는분이라 말하였지마는 이것은 서울의 영사관의 후원을얻어가지고 로서아로 가겠다는 계획이였읍니다 그러나 서울에 와서 여러가지로 영사관의 여러분들과 말슴하는 가운데 불행이도 여러 가지 사정이 방해를 했기때문에 그계획은 전혀 틀려지고 말었읍니다 나는 내마음이 어떤 물건에게 깨여저버리고 그 반동으로 내마움은 방심된것같이 되었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해야 좋을까 여러가지로 마음에안정을 얻지 못하였을때 모든것을 잊고 또동경으로 가자. 그리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립해서 하는데까지 해보자고 이렇게 생각해본일도 있읍니다 그러나 또내가 석정선생의 앞에는 돌아갈수없다고 동경에는 석정선생밖에 다른데는 믿을곳이 없었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내마음은 동경행을 바꿀수밖에 다른방법이 없었든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취할길은두가지밖에는 없었든 것입니다 즉 한가지 라는 것은 내가 여태껏 밟어온 무도는 단념해버리고 아버지와 어머님의 희망과같이 배우자나 얻어가지고 영민한 시악씨가 되여가지고 전혀 가정의사람이 되고만다든가 그렇지아니하면 끝까지 초지를 관철해서 무도에길을 열기위해 독립해가지고 조그마하나마 경성에 내연구소를 세우고 무도예술이라는 새로운 예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한사람의 무도가도 내지아니한 향토에 개간 의 삽을 넣어 내가 무도에종자를 뿌리고 갈까이 두 길중 어떤길이든지 밧삐택 하지않으면 아니되게되 였든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말까 하는 생각도 내마음속에 다소 동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무도의 길을 여기까지 밟고와서 내여버린다는 것은 최초의 아버지와 어머님에 마음을 괴롭게까지하며 내가결심했든 내뜻을 전혀휴지와같이 버리는것이되며 또 여태까지 힘써오고 참어온 내생활이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것인데 내가 그렇게 힘쓴것을 아깝게 생각하는것보다도 무도예술에 대해서 내가 뜻하는 무도를 버리는것이 너무나 안타까웟 든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약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너는 예술가다운신성한 예술을 위해서는 끝까지 싸우기를 맹세한 네가아니냐」 하는 형의 힘있는말에 나는 제이의 길 무도예술로 전진할단호한 결심을 했읍니다 그리해서 경성에 내무용 연구소를 설립할결심를 했읍니다 이때에 내나이십팔세 그때는 서울 하늘에는 힌눈이 내리고있는첫겨울이였읍니다.
-(自敍傳의 一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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