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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수를 어떻게 발견하였던 나―기석 1곡으로 선우일선을 발견―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명가수를 어떻게 발견하였던 나―기석 1곡으로 선우일선을 발견― 名歌手를엇더케 發見하엿든나―妓席一曲으로 鮮于一扇을發見―
종    류 수기 手記
필    자 왕평 王平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6-11 昭和十一年十一月
면    수 186 (186)
기사
[사진] 선우일선 얼굴사진
妓席一曲으로 鮮于一扇을發見
포리돌―文藝部長

金龍煥氏 故李景雪氏 全玉氏는 모다 나와 같이 朝鮮에서 처음으로 『포리도-루』 朝鮮支店을 新設하고 初期 朝鮮레코―드界에 부다치는 여러가지難關을 깨트리기 爲하야 서로굳게 손잡고나온분들이니 지금 새삼스러히 말할배 아니나, 王壽福이가 콜롬비아에서『포리도-루』로 넘어온다는것을 其當時 各新聞雜誌上으로 굉장히 떠든만치 우리들의 苦心도 한두가지가 아니였든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王壽福이가 이미 콜롬비아에 專屬된것울 무슨 음모로 끄을어오기에 苦心하였다는것은 絶對아니고 콜롬비아에서도 專屬은아니 였으나 큰歌手이였든것만치『포리도-루』에 와서는 流行歌에 女王이라고 하도록 만들녀고하니, 그땐첫번 作品의 作詞作曲에 特別한苦心을 하지 않을수 없었든것입니다. 그래 第一囘作品으로 李雲芳氏의 作詞인『孤島의情恨』 을 全基玹氏作曲으로 吹込하였든바 作曲者의 想像한以上 妙하게 꺽거넹기면서 가늘게 뽑아 大成을 이루웟든것입니다. 王壽福은 健壯한 몸집과같이 목소리도 우령차게 氣運 좋게 세차게 나옵니다 特히 平壤藝妓學校를 卒業한만큼 그넘기는데는 과연 감탄 아니할수없읍니다. 본성대가 아니라 순젼히 만드러내는 성대이면서 一般大衆에게 열광젹 대환영을 받어孤島의情恨은 朝鮮류행가중에 가장 많이 流行되었으며 販賣枚數도 朝鮮레코―드界에 있어서 最高記錄을 지었든 것입니다. 王壽福이 平壤긔생으로 世上을 놀내이는 大歌手가 되매, 콜롬비아 빅타―等各레코―드會社의歌手爭탈전은 平壤妓生들을싸고 展開하였든 것입니다. 그뒤 昭和八年 느진가을 일홈난 妓生들은 거진 다 各레코―드會社에 從屬된때 우리는 朝鮮노래를 吹込하겠다는 某老歌手를 차저平壤에 갓든것입니다. 그때 그老歌手가 相對役으로 선택하였다는 세妓生가온대 가장 나어리고 人氣 없다는 鮮于一扇의 노래를들어보고 나는, 다른歌手가 온대서는 도져히 차저 볼수없는 우리朝鮮民謠를노래할 品價높은목청을 發見하였든 것입니다. 그래 우리는 流行歌手에 王壽福이 있고, 이제 바로 民謠歌手를 얻을녀든터이라 곳 鮮于一扇이를 民謠歌手로 결정하여, 上京식혀 金億氏의作詞 「꽃을잡고」를 李면상씨 作曲으로 한겨을 練習식혀 이듬해인 昭和九年봄에 吹込식혀든바 다른歌手들은 도져히따를 수없는 그獨特한멜로듸는-듯는者의 가삼을躍動게하였든 것입니다.
한번 鮮于一扇이 불는『꽃을잡고』가 販賣되매 레코—드팬들의 감격에넘치는 환영과 藝術家들의 정평으로 昨日까지 一無名의妓生이든 鮮于一扇이는 一躍朝鮮이 가진 大歌手로—躍進하게되였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아직 世上이모르는 無名歌手를 大歌手로 進出식힘에 가진 힘을 다하였사오며 今後로도 그리할녀고 합니다. 鮮于一扇의 오늘이 그러하였든 것입니다. 또 그해봄, 콜롬비아레코—드會社에서 全朝鮮音樂家가온대서 가장훌융한 歌手를 선발 할녀는 意圖로 全朝懸賞音樂大會를 열었든것입니다. 바로 그날밤우리는 그大會에 時間前에 가지못하고 거진 半이나 끈난後 入場하였섯는데, 第一나종에 하는분의 성대가 가장 명낭하고 힘차 보였든것임니다. 그래 나와같이 갓든 李源培氏를 通하야 이재그분이 콜롬비아에서 落選되면 우리社의 專屬으로하고 십다는 뜻을 그에게 傳하였드니, 그분은 콜롬비아 當選發表日字도 기달니지 않고 콩클後 잇흘되든날 우리社에專屬歌手됨을 自願하였든것입니다. 그가 바로 우리 포리도-루의 大歌手요 지금 全레코—드界에大人氣를 끌고있는 尹鍵榮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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