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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극과 첫 무대―금도산과 「처」의 무대―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문사극과 첫 무대―금도산과 「처」의 무대― 文士劇과첫舞臺―金陶山과「妻」의舞臺―
종    류 수기 手記
필    자 이기세 李基世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6-11 昭和十一年十一月
면    수 175 (175)
기사
내가 처음 舞臺에 나섯든때는 지금 으로부터 二十五年前 即明治四十四年인가 五年인가 됨니다. 그때는 부모형제와 여러동무들이 말니는것도 듯지안코 모든사람들에게 버림을바드며 그길로 進出하였든것을 지금다시 더듬어본다면 참으로 감개무량하여짐니다. 그때 나는 演劇에 밋처서 京都明治座에서 一年半을 練習하고 安光翊, 金桃園, 金陶山, 高秀喆, 金秀明, 金鎭, 其他合三十餘名이 勸善懲惡을 目標로 組職한 「唯一圑」公演「妻」라는劇에 男便役으로 처음 舞臺에 나섰든것임니다. 물론 그때는 自己의主觀을 독특하게 내세우라던것도 안이고 또한 藝術的立場에서 熱熱히 부르지즈려든것도 안이었음니다. 다만 日本內地의將士劇처럼 맹목적으로 그저 사회에 美風良俗을 助長한다는 意味의 장난이였슴니다. 만약에 지금과같은 人生觀이나 社會觀 藝術觀을 가젓더라도 보담 意味깁고 興味있는 연극다운 연극을 하였을는지도 몰음니다. 무었보담도 지금까지도 머리속에 이저지지안는것은 지금생각하면 얼굴이 불거지는 그 되지안는演劇을 하노라고 세상사람들에게 광대나 不良輩로밧게는 대우밧지못하고 심지어 父母들하고는 氷炭不相容으로 反目되였든것이올시다. 그때 나는 그와같이 모든사람들이 만유하는것도 듯지않코 날치든것은 언제까지든지 있지못할뿐아니라 혹 극장을 간다면 공연스럽게 옛날을 더듬어 보기에 헤매는것이 한두번이 않이올시다. 긔회보와 다시 마음속에 끌어오르는 그대로 자세하게쓰겟기로 우선 이에서 붓을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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