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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강좌―시조 감상과 작법―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시조 강좌―시조 감상과 작법― 時調講座―時調鑑賞과 作法―
종    류 강좌 講座
필    자 이병기 李秉岐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6-08 昭和11年8月
면    수 260 (260)
기사
筆者紹介
氏는全羅北道出生으로 今年四十五歲인學者 作家, 現在 徽文高普校의敎師로 있으며 時調와「한글」에對한 硏究가 깁고 또 號를「가람」이라하야 時調作品을發表한바가 만햇다.
「朝鮮語學會」會員이다

[時調講座]
時調鑑賞과 作法
李 秉 岐
二, 作 法

鑑賞에 당한건 이미 말한바와같거니와 지금부터는 作法에 대하여 若干 말하고저 한다.
한데 이걸 말하기전에 먼저 말하여 둘것은 이것에 대한意志와態度다. 그意志와態度가 薄弱하고 不實하면 비록 남다른 天稟을 타고난이라도 소용이 없을것이다. 무슨工夫든지 그造詣가 깊고높고하자면 그만한 동안과努力이 있고야한다. 李白과같은 大天才로도 匡山磨鐵의說을 전하고 杜甫와같은 詩聖으로도「借問別來太瘦生, 總爲從前作詩苦」라는 嘲弄을 받었든것을 보면 그때 그들도 그얼마만한 工程을 쌓았든가를 짐작할수있다. 더구나 그들과같지못한 凡才로서야 그들보다 百倍千倍의 工程을 쌓아도 될가말가한것을 그저 한때의 어떤衝動으로 發心하여 얼마간 하여보다가 두든지 또는 自能한척을 하든지 한다면 그는 마츰내 아무런 成就도 없고 所得도 없을것이다. 그럼으로 한번 이것에 뜻을 둔다면 그걸 尊重하고 敬虔하고 自己의生命과같이알고 힘과애를 오로지 바다드리어보고야할것이다. 이러케 말하면 그까진것을 가지고 그러케까지 하잘것이 무엇이냐고 하실이도 있을는지 모르나 그건 그러치 않다 조고만 바늘귀에 실을 꾀는것이라도 정신과힘을 오로지하여야 될것이고 함부로 서뿔리하여서는 아니 되거든 하물며 이것에랴
時調를 지어보랴면 이러한 意志와態度를가지고 不斷의修鍊과 刻苦한努力이 있어야한다 그리하여 항상 그 精進하기를 바라고 재촉하여야한다.
이作法을 아무리 자상하게 說明하드라도 그것만 보고는 되는것이 아니다. 自己가 體驗하고 알어야한다. 龍鳳湯이 맛이 좋다고하여도 말만듣고는 배부를수 없다. 결국은 自習自覺에 있다.
이에 그作에 대한 몇몇가지를 말하면
1, 形 式
時調는 不定形한 自由詩와 달러 대개 旣定한 形式이 있다. 이軌道를 따러야하리라. 만일 脫線이 된다면 時調는 破壤한다. 지금 어떤이는 이軌道를 맛땅치못하게 여기는이도 있으나 이것이 다른나라들의 定型詩와는 달러 嚴定한 字數가 있는건 아니다. 和歌의 五七七七이나 漢詩의 五言七言과같은 꼭 限定된 字數가 아니고 몇몇字를 加減하여 쓸수 있는 너그럽고 自由스럽게 된것이다. 실상 알고보면 이것도 一種 自由詩다. 요마적 新詩라는 自由詩도 詩로 된다면 그만한 形은 제각각 있어야한다.
橫說竪說 이것저것하여 어수선하게 늘어놓기만하면 되는것이 아니다. 다시말하면 自由詩는 여러詩形을 自由로 選擇하여 쓰는것이고 時調는 旣定한 形을 쓰는것이다.
時調의構成은 初章, 中章, 終章의 三絶로 되고 初章에는 初句, 終句가 있고 中章에도 初句, 終句가 있고 終章은 初句, 二句, 三句, 終句가 있으며 字數는 初章의 初句에는 六字(二四調)로부터 九字까지 終句에도 六字(二四調)로부터 九字까지 中章의初九에는 五字로부터 八字까지 終句에는 六字(二四調)로부터 九字까지 終章의初句는 三字 二句는 五字로부터 八字까지 三句는 四字혹은五字 終句는 三字혹은四字를 마음대로 쓸수가 있는것이다. 이걸 다시 表하여보면
(ㄱ), 時調-初章-初句-[六字-九字]-終句-[六字-九字]
-中章-初句-[五字-八字]-終句-[六字-九字]
-終章-初句-[三字]-二句-[五字-八字]-三句-[四字,五字]-終句-[三字,四字]
(ㄴ), 時調-初章初句-바람이 물소린가(七字) 終句-물소리 바람인가(七字)
-中章初句-石壁에달린 老松(七字) 終句-옴츠리고 춤을추니(八字)
-終章初句-白雲이(三字) 二句-허우적어려(五字) 三句-蒼天에서(四字)終句-나리더 라(四字)

이러한데 初章의初句終句나 中章의終句의 六字句에는 반듣이 二四調를 쓰고 三三調와같은것은 아니 쓴다. 그例를 들면
山아 물어보자
와같은건 六字句의二四調요
이시라 하드면
과같은건 六字句의 二三調다 이건 中章初句의 六字句에는 쓰기도하고 또 初章의初句終句나 中章의終句에는 九字以上으로 十餘字까지라도 破格하여 쓰기도한다. 이밖에 다른句들에 있어서도 한두字쯤 더쓸수가 있으나 다만 終章初句의三字만은 一定不變한다.
己上의 말한字數는 보통으로 쓰는 平時調의形式이거니와 엇時調, 辭說時調의形式은 初章, 中章, 終章의三節로 된것만은 平時調와 같어도 그句數라든지 字數라든지가 다 다르고 또 終章初句의 三字도 그以上字數로 쓰기도한다.
時調의種類는 우에말한바와같이 平時調, 엇時調, 辭說時調의 세가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와서 짓는것은 平時調뿐이다 물론 初學하는이로는 이平時調로부터 始作하는것이 正當한 順序이다.
時調의字數가 이러케 되어야할理由는 얼른 말할수 없다. 다만 이러한形式은 어느때 어느 한사람의 創作이아니고 적어도 八九百年前 高麗때부터 一一이쓰든것으로 전하여왔다 누가 이걸쓰라고 獎勵한것도 아니고 어느 主義에 끌리거나하여 써온것도 아니다 그러케 漢文漢詩를 愛重하고 崇尙하든 그때에있어 무수한 波瀾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뚜렷하게 그모양을 지키고 活躍하고 展開하는것을 보면 우리의 言語, 文學에서의 歷史的으로 永遠한 不離性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2, 內 容
時調의內容이라하여 별다른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다른詩歌에서 쓸것을 時調의形으로서 할뿐이다. 自己가 보고듯고 感動하는바를 率直하게 말할뿐이다. 그러나 時調의 形이 다른詩歌의形과는 다른만큼 그全部를 그대로 할수가 있다는건 아니다 그作에따러 千差萬別이 있을건 當然한일이다. 혹은 時調는 懷古나 山水風景이나 읊는데며 諷剌, 諧謔를함에 適當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그건 時調自體가 그런것이 아니고 時調를 짓는사람에 따를것이다 하필 時調만이냐 다른詩歌에있어도 그러타 이러한 점이 時調에만 있을까닭이 없다. 北原白秋의 作歌의體驗을 보면 같은內容을 가지고도 新詩로도 짓고 童謠로도 짓고 和歌로도 지었다. 과연 다지을수가 있는것이다. 즉 自然이나 人生의 모든것을 다內容으로 쓸수가 있는것이다. 한데 그內容이 될材料를 取함에 初學者로서는 이러한 缺點이 있으니 하나는 그形에 不足한것이고 또하나는 너무 넘치는것이다.
不足한것은 아즉 事物을 觀察하는 힘이 綿密周到하지 못하거나 또는 銳敏하지 못하며 그가장 緊要한곳을 내버리고 그시시한 部分을 고르는것이다. 그러면서도 自己는 그런줄도 모르고 그것에 興味를 가지고 있다. 이건 一定한 標準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사람의 天稟과 修鍊의程度에 따러 다를것이다. 제법 作家라할만한이로도 서로 다를것이다. 李白이가 黃鶴樓에 가서 崔灝의詩를 보고 「有景道不得」이라하고 嘆服하고 鳳凰臺로 가서야 詩를 지은것이 李白인 大詩人의 眼目이다. 벌서 崔灝가 黃樓詩를 더할나위없게 지었는데 게다가 다시 重言復言할것이없다. 그갈피를 모르는 詩人들은 黃鶴樓에 가서 崔灝의詩를 보고도 自己가 能히 그보다 낫게 짓겠다고 呻吟하며 陳腐한 수작이나 내놓을것이다. 이건 웃으운일이지마는 나도 이왕 慶州를 가서 數十首 時調를 지어 어느新聞에 記載한일이 있다. 그뒤 數年만에 또 慶州를 가보고 그전의 지은數十首가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다시 두首를 지었다. 그두首라는 것은 이러하다.

한고개 또한고개 고개를 헤어오다
吐含山 넘어서서 東海바다 바라보고
저믄날 돌아갈길이 밧븐줄을 모르네

보고도 보고지어 이곳에 石窟庵이
험구즌 고개넘어 굽이굽이 도는길을
잦은숨 잰걸음치며 오고오고 하누나

이두首가 그전數十首를 당하고남으리라고한다. 그전것들은 陳腐한 소리에 지나지 못하였다. 即누구나 다依例히쓰는 懷古의材料를 가지고 時調에 맞후어놓았을뿐이다. 自己로서의 獨創은 없든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게를 가보고 이두首를 얻었는데 첫재首의內容은 吐含山을 넘어서서 東海바다를, 바라다보든것이다. 佛國寺를 나서 줄곳 山비탈로 오르며 그여러 고개들을 넘어돌아갈때 한고개를 넘어돌면 또한고개, 또한고개—이많은 고개들을 넘어 도노라고 손고락을 꼽아 헤어보기까지하였다. 그얼마나 괴로웠으리. 땀은 물흘르듯하고 숨은 차고 다리는 파근파근하여 차침차침 寸步도 옴길수가 없다. 바야흐로 곱게도 물드는 丹楓이라든가 졸졸이는 물소리라든가 바위틈으로 오락가락하는 다람쥐라든가 그밖의 모든것, 모든일이 다잊어지고 다만 생각나는것은 괴로움뿐이다. 그괴로움만으로 行進은 繼續한다. 마즈막 높은 고개를 넘었다. 발을 멈추었다. 浩浩茫茫한 東海바다가 대번 바라다보인다. 가슴속이 갑작이 넓어진다. 시원한 바람이 치달어온다 올목졸목한 山줄기들 줄줄이 벋어있고 松林과 沙岸蒼波와白帆— 이런風景들이 부나비처럼 알신거린다. 이곳이 가장 緊要한곳이다. 이곳을 버려서는 아니된다. 여복이나 좋길래 저물어가는날에도 돌아갈길이 밧분줄을 모르랴.
吐含山넘어서서 東海바다 바라보고
의 「東海바다 바라보고」의 고字가 이內容을 살린것이다. 만일 東海바다 보라보니라하여 고字를 니字로 한다면 그中心인 緊要한곳을 잃어버릴것이다. 그고字때문에 그노래가 되고 그많은 風景들이며 그壯快한 心事들이 含蓄된것이고 또는 그初章의「고개를 헤어오다」의 오字와 그終章의 「돌아갈길이」의 갈字도 이노래의 中心인 「東海바다 바라보고」를 더욱 힘있게 한것이다. 항용 道程의順序대로 하면 헤어가다, 돌아올길이라 하였을것이다. 그리고 또 둣재首의內容은 有名한 石窟庵을 讚頌한것이다. 石窟庵의 彫刻—神將, 佛像들이 이러니 저러니하고 詩나 文으로 암만이라도 지을수는 있으나 자칫하면 그彫刻, 그藝術品을 그대로 살리기는커녕 도리어 筆陣圖에 改漆이되고 말것이다. 아무리한대도 그彫刻以上의 創作品을 낼道理가 없을것이다. 그彫刻보다도 더곱게 아루사기려고 덤벼서는 더구나 詩歌로서는 愚昧한짓이다. 나도 그전에 이러한 愚昧한짓을 하였다. 무척 애도 써보았다. 그러다 다시 가서보고는
보고도 보고지어
이곳에 石窟庵이
라하고 험하고 사나운 고개들을 넘어 또 여러굽이 돌고돌아
갖은숨 잰걸음치며
오고오고 하누나
라한것이다. 이곳은 웨 이와같이 수없이 수고를하면서 찾어오겠느냐. 이곳의 石窟庵이 너무도 훌융하고 아름답고 좋다는것이 말은 없어도 말한것이다. 그건 石窟庵自身이 말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면 이노래에는 「이곳에 石窟庵」이라는것이 가장 緊要한 곳이다.
넘치는것도 역시 그緊要한곳을 모르고 함부로 그材料만 取하여다가 빡빡하게시리 채워놓은것이다. 말이나 곱게 쓴것이고보면 陳列한 商品과같이 어수룩한 顧客은 끝는지는 모르나 한作品中으로서는 失敗다. 材料가 過하면 過한만큼 不必要한 것이 많다. 그리고 그不必要한것때문에 必要한것도 살릴수가 없을것이다.
두세首의內容이 될만한것을 가지고 한首쯤을 맨든다면 될수없다. 時調는 時調만은 內容이랴야 될것이다. 千噸을 실어야할 배에다 千噸以上을 실어서는 아니된다. 時調도 그量을 알어야한다. 그量을 알자면 從來의 短歌들을 많이 읽고 玩味하고 自己가 또한 많이 지어보고 따저보아야한다. 그內容은 木石과같은것이 아닌즉 자로 재어보거나 저울로 달어뵐수도 없다. 다만 自己의 밝어지는 心眼으로 보고서 알수밖에는 없다. -(繼 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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