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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안 조선인 요정 20년기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서울 장안 조선인 요정 20년기 서울長安朝鮮人料亭二十年記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 +++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6-08 昭和十一年八月
면    수 234 (234)
기사
서울에는 현재 約 五十處의 料亭이 市內 郊外에버러저있어 돈있는 사람들의 흥을 도우고있다. 이料亭에서밤낮을 가리지않고 名妓, 名唱불너놓고 뚱땅뚱땅하면서 蕩財하는 돈이 하루만치드라도 可驚할만하다함은 앞서서 報導한바 있지마는 이자리에서는 特히서울에서 조선人經營으로 主로 조선人을相對하는料亭만을 대강대강 살펴보려한다.
물론 서울에는 內地人經營으로 內地人을主로 相對하는 料亭이 더많어 가장 有數한 곳만치드라도 十五六處가 되나 이것은 여긔에서 省略하고 다만朝鮮人料亭만을 적어가기로한다.
京城의 所謂朝鮮人 料亭이 있어온지도 이제二十年의 歷史를 가지고있다. 그중에서重要한것을 적어보면

[明月舘]서울에 처음으로 明月舘이 생겨나기는 大正六七年頃 安淳煥氏가 지금東亞日報社側의空地에 純朝鮮料理屋을 비로서 처음세우게된것이 明月舘의 前身이다. 그뒤火災를맛나 安氏는 새로히 현재의 食道園을 세웟다. 짐작컨대 安氏는 京城에있어서 朝鮮料理業者의 元祖라고할만하다.
그뒤 現在의 明月舘基地에 任學魯氏가 長春舘이란 朝鮮料理屋을 세웟스며 任氏가 死去한다음에는 李鍾九氏가 그것을 引受經營함으로부터 名稱을고처 明月舘으로 하엿다. 合資組織이지마는 李鍾九氏가 大部分의資本을 出資하엿스며 實際의經營은 崔敏氏가 모든일을 處理하고있다. 지금約十萬圓의 當財를이루 成功한사람이다.

[食道園]東亞皮革商會主尹熙泰氏가 經營하고있다. 昨年까지에는 安淳煥氏가 經營하엿섯스나 尹氏가 經營하여온다. 이料理屋은 오래전부터 朝鮮料理의 好評을 받어오며 近來에와서는 結婚式場 又는婚禮宴會場으로써 많이 利用하고있다.

[國一舘]忠南의 富豪 金甲順氏를 物的背景으로 가지고있는 朴熙源氏의 創立으로 이루워젓는데 三年前부터는 現在의主人朴憲鎔氏가 朴熙源으로부터 引受하여 爾來經營하여오는데 氏의 揮身的努力으로 지금은 一般에게 相當히好調를띄워 業路가 나어간다고한다.

[天香園]일즉이 京城花柳界에서 그艷名을날니든 女丈夫 金玉橋女史의 經營이다. 今年여름 府外貞陵里에 別莊까지 新築하엿고 天香園은 지금 好成績을 내이고있다는것이다. 天香園本舘의 創立은 벌서七八年前 金女史의 剛骨의 男使用人들에對한 操縱은實로 整制된바있어 男性에앞스는바가 있다한다. 非凡한 事業慾에 불타는 그는 年來의 宿望인 純朝鮮式호텔도 不遠에세운다고-. 實로女流事業家로서의 代表的인人物이다.

[太西舘]鷺梁津漢江町에別舘까지 設置하고 그러틋 大規模로 好調를밟는 太西舘의 主人은 高慶云氏 氏는 얼마전까지도조고만 料理品店을 經營하든분으로 큰成功을 이룬분이다.

[東明舘]趙南鎭氏가 본래 市內瑞麟町에서七星舘이란 小料理店을 하여가든것이 漸次成功하여 오늘의 東明舘을 이루게된것이다.

[朝鮮舘]明月舘支店에서過去十七八年間 帳簿係에있으면서 勤勉의날을 보내든 金畊培氏가 昨年十二月부터 처음始作하엿다. 아직 四十未滿의 活動家인 氏는 多年間料理業體驗이相當한 분이라고한다.

[飮碧亭]經營主 韓澤洙氏는 朝鮮의名門家韓圭卨氏의 愛孫으로 本年三十未滿의 弱冠의몸이다. 方面이다른 料理業經營에발을 듸려놓은 氏는 心腹의 人趙萬九氏에게 모든 經營을맷기고 있다.
서울에있는 料理屋으로서는 그位置가 別莊地帶에 處하여있어 展望의 風光은 實로 絶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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