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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회 안기영 김현순 연애 사건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사문회 안기영 김현순 연애 사건 査問會 安基永 金顯順戀愛事件
종    류 대담 對談
필    자 +++ +++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6-06 昭和十一年六月
면    수 168 (168)
기사
명예와지위를 버서버리고 모든세상의비난과 조소를 거더차면서「노래」로 매저진 정렬의「로맨스」를 실고 멀니멀니 방랑의길을 떠낫든 두젊은이가 사년이란세월이 흘너간 오늘 바로 봄소식을따러 다시금 이땅의 품속에 안겨버린지도 멧츨이지낫다.
四년전 어느봄날 세상사람들의 눈을피하야「사랑의개선가」를부르는 이두남녀가 새삼스럽게 四년이지난오늘 또한아무도몰내 고토를밟게되는 그동안에는 실로여러가지 고난의 길도 걸어보앗슬것이며 또한 순정에 타오르는 사랑의복음자리도 펴보앗슬것이다 또한 어떤때는「노슬탈치아」의 야릇한회포도 떠올낫슬것이며 고향의하날밑에서 가치손목을잡든 동무들도그리웟섯슬것이다.
유랑사개년간!이들은 멧번이나 눈물을 흘녓든가? 멧번이나「멩랑코리」한 심회를 노래로 씻처버렷든가
그뿐이랴! 사회의 모든 세파(世波)에 얼마나 배움이잇섯스며 얼마나 깨달음이 많엇든가? 한마듸로말하면 방랑의 사개성상에서 이두젊은이들은 어든것이 무엇이며 또한 금후에 장차로 거러갈야는 길은 과연 무엇인가?
한때의 이사회를넘우나 소란케하든 이「방랑의가인」들을차저 이들이 과거에걸어온 평탄치못한길을 더듬어서 널니 세상에서 흥분과 초조ㅅ속에 지내오는 이땅의 젊은이들앞에 알니일가 한다
한양성에 꽃소식을 재축하는 부드러운봄비가 소리업시내리는 四月초순 어느날나는 안긔영씨와 김현순씨 두분이 사랑의복음자리를 틀고있는 一간초옥으로 서슴지안코 차저 들어갓다
[사진]안기영 김현순 부부와 그들의 아이
미국에서 음악을 연구하고 금의환향하여 리화녀자전문 음악과 교수로 잇스면서 반도의 젊은이들의 흠모를 한몸에 모으고잇든 안긔영씨. 백만장자의 귀애하는 마님으로 태여나서 세상의 아무런물정도 몰으고 곱다라케 잘아가며 수많은 젊은이들가슴을 투근거리게하든 김현순양! 이러한말이 四년전 이들에게 불니워젓다면 오늘의 생활은 넘우나 빈약하고쓸쓸하 지않은가? 나는 서대문박 관동三一번지로 안김양인이 머물너있는 애의서(愛의巢)인 단간오막사리문을 뚜다리면서 이러한생각이 문득 지나침을 깨달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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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방랑생활에서 몹시 시달니운듯한 창백하고 파리해보이는 안긔영씨와 너글너글 복스럽게생긴 얼골에다 상글상글 미소를 지우며 주부(主婦)답게 수수하게 차린 김현순씨와를 한자리에 마주앉을긔회를어더. 지난달 걸어온길 방랑사년의 추억담을 듯기로하엿다
나― 두분이 다-방랑사개년간에 퍽으나 고생도 않이 하엿것지요? 물론 행복스러운때도 한두번이 아니엿섯겟지요 는…………
김― (약간미소를 지우며 두눈을 내뜬다)
안― 물론고생도 많이하엿지요 그러나 우리두몸이 오랜동안의 방랑생활에서 어든것도 많고 배운것도 만헛지요 나는 미국에가서 음악공부할때에도 늘고학을 하엿기에 세상의고생이란 일즉부터 맛보앗섯지마는 이 현순이야 어데 생전 고생이라고알엇나요 그러한 몸이 어떤때는 수중에 돈한푼업시 지내오면서 그고생을 감당하는것을보니 여자의마음이란 약한것이안이드군요……그러나 이러한 지난날의 쓸데업는 이야기를 해여야 세상사람들에게 반감을사고 문제나일으키엿지 소용잇나요! 나의 지금의 일거일동 한마듸말에 이사회에서는 늘주시를 하는모양이니 이런이야기를 다시금 들추 어내기는 십지안허요 그러나 우리들의 거러온길이「사랑」으로서의 결합만이 아니고 예술(음악)에다 두몸을 바치랴는 순정에서 끌어오르는 결합이엿기에 우리는「예술」에대한 정렬을 한시라도 이즌적이 업섯다는것만은 말하고십허요!
나― 바로 四년전 봄날 두분이 서로 압스며 뒷시며 굿게굿게 서로약속하고 방랑의 첫신호를 부른때는 장차로 어느곳으로 갈작정이 엿든가요?
김― 글세요……(안긔영씨를 말끄럼이 처다보며)말하세요 내가말하나 이이가 말하나 일반이니까요……호호
안― 허허허……우리들의길이 방랑의길이요 사랑과예술을찻는 도피(逃避)의길이엿스니 돈인들 많엇슬리가 잇나요 그래서 우리두몸이 다만 예술만을 공부하겟다는생각에 한번은 긔어히이태리「미라노」로 갈작정이엿지요……참으로 그때의 우리들의희망이란 컷담니다! 예술의나라 이태리 음악의도시「미라노」에 건너가서 우리들은 열 심히 음악을 연구하니 구라파악단에서 조선사람의 존재를 빗내이리라 그런뒤에는반듯이 내가난땅인 이조선으로돌아와서 조선의악단을 위하야 우리두몸을 밧치리라! 이러한 열이잇고 힘잇는 굳은약속과 빛나는 희망과를 가슴속에 가득이품고 세상의 소란할 물논도 몰으는체 방랑의길을 떠난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의 모든일이란 어데 뜻한데로 됩뎃가?
나― 방랑사년동안의 거러온 코-스는 어데어데엿나요?
안― 경성을떠나서는 나는 그길로「하루빈」에 잠간 들여잇섯지요 그때의 내생각에는 돈 이업시떠난몸이니「러시아」에는 가기만하면 돈업서도 음악을 연구하리라는생각에 얼마동안은 하루빈에서「러시아」로 갈야고 힘을써보앗지요 그러나 그때의시국도 다단하고 도저히가능성이업고하니 그길로 신경에와서 현순이를맛나 갓치 북경으로 갓섯지요 우리들이 북경에들닌것은 현순이의 오라버니되는이가 그곳에서 병원을하기에 그이한데서 돈을좀 어들야고 하엿지요 그러나 그이는 우리들을 넘우나 냉정히 대하기에 그냥멧츨을 려과에서 묵다가 나혼처 먼저 상해로떠나버렷지요 현순이도 그뒤곳 나려왓지요 우리는 상해에잇스면서 이태리「미라노」로갈 여러가지 활동을하엿섯지요 우리가 상해에 잇게된것도 이태리로 갈야는생각때문이요 일년반이나 이곳에서 가진고생을 다-격근것도 이때문이지요……실로 방랑사개년간에 그중많이 고생한때도 이상해시대이지요 어떤때는하루에불과 멧푼돈을가지고 생활하여 갓섯스니 오직햇겟서요!
나― 그러케 고생을하는동안 눈물도여러번 흘니엿겟군요?
김― 네-(고개로 폭숙으린다)
안― 여자란 눈물이많으니까요! 눈물을 흘닌때가 한두번이 아니지요
나― 그런때는「우리들의 지금 거러가는길이 잘못이엿구나! 차라리 이길을 택하지말걸!」하는 후회한때는 업섯나요?
안― 우리는물질상 정신상으로 여러가지고난이 많엇스나 한번도「우울」하다거나 후회하 여본적은업섯서요
나― 가장 고생을 많이하든때는 어느때이엿나요?
김― 이번동경에서 조선으로 나올때 배에서 그중 고생을 많이 하엿지요……호호
나― 아니요 그런고생도 고생이겟지요마는 이역으로 전전하며 수중에는 돈한푼업고 누가 하나돌보아주는이업스면 얼마나 고생이되며 쓸쓸하겟서요?
안― 우리는 처음떠날때는 약간의 돈이 잇섯스나 북경에서 상해로 오자 돈이 떠러젓지요 그래서 상해의 일년반은 그야말로 퍽으나 고생을 하엿지요 상해잇슬때가 가장고생이엿지요 그러케 고생을 하든때어떤「땐스홀」에서는마침 흑인 가수가월급을 더많이주는 다른데로 옴겨가고 자리가비엿는데 나에게 엇던사람의소개로 월급 四백五십원을 줄테니 오라는것을 나는딱 거절하여버렷지요 그곳사람은 나를바보로알드군요 그러나 그때의 내리상이란 이태리에가서 예술을 연구할야는 욕심뿐으로 아무리생활이 궁하기로서니 나의예술가적양심을 그러케 쉽사리 팔어버릴수야잇느냐하는 생각에서엿지요? 그러나 지금만 갓해도 좀생각해볼여지나 두렷마는 그때에는 생각치도안엇섯지요
나― 상해에잇는동안 가장 유쾌하게 지내든때는 언제인가요? 대개 어떠한생활을 하엿나 요?
안― 상해시대에는「쩨스필公園」으로 황혼만차저오면 단둘이 늘산보를 하엿지요 나무숲 욱어진 그늘밑에서 우리는 고향의하날도 그리여보앗고 우리가즐기는 노래도 늘 나즈막하게 불너봣지요 어둠의공원길을 둘이서 거닐며 차이콤스키-의『트로이카』(러시아썰매)-一名「十一月」(북국十一月)-라는 노래를 늘불넛지요 또 일흔봄「서가 회」(이곳은상해의교외) 넓은벌판 파란잔듸 밭우에서는 단둘이 딍구불면서 남양의 야자수 욱어진그늘밑도그려보고 아라비아의 광막한 사막벌판도 그려보고 또어떤때 는 눈나리는 북국의시베리야도 그려보면서 끝없는 공상의나라를 무한히 달음질처보 앗섯지요 그리다가는 우리들은 잔듸밭우에서 작곡도하고 늘즐기는 노래도 부르면서 먼-ㄴ하날저편으로 고향의 산천도 그려보앗지요 또 어떤때는 나는 작곡하고 현순이는 벌판에서 냉이, 시굼치, 달내갓흔것을 뜯어가지고는 그날저녁돌아와서 뭇치고 지저서먹기도 하엿지요
김― 참말로 우리들의 생활은「우울」이업고「불평」이업고「고민」이 업섯담니다 한갓 쓸쓸한때가잇섯다면 그것은 고향의 부모와 친하든동무의 얼골이 보고십고 꽃피고 새지저귀고 물소리맑은 아름가운 조선의산천이 그리운때이지요 그러나 상해의 가을은 참으로 조왓서요「서가회」천주교당에서 들여오는 종소리 은은한 저녁때엔 황혼의붉은노을을 물끄럼이 처다보며 노-란잔듸밭우에서하루종일 지내든일은 지금도 서언해요
나― 그래 이태리로 갈야든 일은어찌되엿나요
안― 상해에잇는 조선사람이란 넘우나 미미해서 서양사람 중국사람들과 여러번 교섭을하여 보앗스나 모든것이 돈때문이니 어찌하는수가 잇서요! 이때에 우리는 비로서 오늘날세상에서 황금의세력이 얼마나큼을 깨달엇지요 그러나 우리는 허는수업시 다시 발길을 돌닌곳이「동경」이엿지요 그러나 정작 동경에와보니 역시 우리들의 생활이란 고달프지요 내가 미국게통의사람이라 동경악단에는 아는사람하나업고 또 이곳의 성악게(남자)란 오히려 우리들보다도 떠러지는듯하기에 나의 희망이란 이곳에서 차즐수업섯서요 그런데또멧멧동무들은 이제라도 조선에나가 과거의걸어온길을 다시금 음악으로 보답하여야한다는 충고도 잇고해서 다시금 고향의 땅에다 발을듸려노케되엿지요
나― 四년전 처음 경성역을 떠날때와 四년후에 다시 경성역에 나릴때의 감상이 엇더하엿 서요?
이때 저쪽방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닌다. 아마도 방랑사년동안에 어든 귀여운 따님의울음소리가 분명하엿다 애기의 어머니는 이여자리를 일어서나가버린다.
안― 그때의 우리들의 행동이야 보통때의생각은아니엿스니까요「예술」이 맺어노흔불붓는정렬과 두사람의 똑갓흔 방랑성이 그러케식힌것이니까요! 지금에안저서 내가 거러온길이 잘못이엿다고 후회하면 무슨소용이잇겟서요! 그러나 잘못된행동이라고 생각치도안허요 우리는 그동안「사랑」만을 속삭인것이아니고 음악을 또한연구하엿스니까요!
나― 금후에는 장차어떠한길을 밟으럄니까?
안― 「예술」(음악)을위하야 우리두몸은 일생을 밧치기로 굿게 맹세하엿서요 이것만이 우리들이 조선사회에 보답하는 오즉한가닥길이니까요 그러기에「모성애」의 철윤으로말미아마 음악에서 그열이 어린것으로 옴겨지랴는「현순」을 늘 부축해가며 서로번가러 어린것을 보아가면서까지 두몸의 앞길을개척할얌니다. 다만 조선의사회가 우리들에게 얼마나 한 대우를 하여주겟는지? 어떠케 우리들의 행동을 귀정지울지는 우리들의 알바가 아님니다! 금후의 우리들의 걸어나갈길은조선의악단을 위하여 목숨을 밧치는것뿐이지요 이번에도 우리두사람이 출연하는 음악회를 열기로하엿슴니다 이것을 벌서부터 비난하는사람들이잇지마는 우리는 이번음악회도「내가 잘낫노라!」고 얼골을 처드는것이 아니고「우리는 그동안이만치 음악공부도 하엿다」하는것을 일반에게 알니우자는데 잇슬뿐이지요
나― 그러고전부인에게 난 자식들이 인제는 커다란아이들도잇서 늘 아버지를 차즈며 눈물을흘닌다는데 그자식에대해서는 어떠케 생각하시는가요
안― 세상에서 생각하는거와갓치 그러케 몰인정한 사람은 아니여요 물론 방랑사년간이야어데 조금의 여유가잇섯나요? 그러나 나는얼마전에도 맛딸(금년녀자고보에입학한)을보고「조금도 섭섭히생각하지말고 공부나 잘해라! 내가애비로서의 도리를 이저야버리겟늬?」하는말을하여달내엿지요 그리고 요사히는 우리집으로 큰애들은 자주놀너도오지요
그에말매듸는 자비한 부성애(父性愛)에 가득차잇다 그러나한편 가정, 부부애, 모성애, 법률, 도덕, 이모든문제를 뒤저볼때 그에얼골에는 한가닥 우울한 구름짱이떠도는것을 역역이엿볼수잇섯다
나는 이「戀愛」의 히로인을차저 批判하려고하엿다가 참아못했다 諸君은 엇더케 査問하려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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