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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 명인 예담―가야금 줄 골라 30년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탄금 명인 예담―가야금 줄 골라 30년간― 彈琴名人藝談―伽倻琴줄골너三十年間―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심상건 沈相健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5-11 昭和十年十一月
면    수 205 (205)
기사
[사진] 합주

가야금은 순전히 우리조선음악의 하나이다, 여긔에서 룽겨저 우러나오는소리야말로 조선의 고전(古典)미가 잇고, 예로부터 오래오래 내려오는 조선음악의 독특한 맛이 나는것이다.
조선음악의 자랑도 이 가야금이 잇슴이요, 조선음악의 남달은 점도 이 가야금의 잇슴일가 한다.
자고로 내려오는 동안, 한다하는 풍류객들이며 일세에 이름날이든 고관대작들도 모도다, 명창이 울니는 가야금의 신비로운 음율에 발마춰 춤도 추고, 곡조마춰 노래도 부르며 즐기든 이들이 하두만헛다.

내가 가야금의 줄을 잡은지도 퍽으나 오래전 일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야금에서 우러나오는, 말할수업는 그 매력적이며 신비로운음향, 비단결가치 부드럽고도, 구슬가치 구으는 음률에는 넉을일코, 우드머니 듯고는, 어린가슴을 쥐어고 하기를 그멧번이엿다.
이러케 가야금소리에 온정신을 일코 애착심과 호긔심을 가지고, 나도 한번 남보다 훌융한 가야금歌手가 되여 일세에이름날니는 훌융한사람이 되여보려니 하는 마음에 불타고 잇섯든것이다.
그런데 마츰, 나의 아비님이, 나에게 가야금배우기를 권하엿스니, 二十전후의 어린마음에도 여간 깃분것이 안이엿다.
이러틋이 내가 이가야금에 애착심과 호긔심을 가지고잇는데다 부모역시 배우기를 찬성하니 내가 오늘날까지 이길로 거러나온것도 우연한일은 안일것이다.

이제 가야금을 손에 쥔지 三十五년이 넘엇스니, 내가 이 가야금에다, 전생명과 온정신을 기우렷든것도 확실한 사실일가하노라!
그동안 세상은 변천과 파란이심하여, 내가 가야금의 줄을잡고잇는동안, 한때는 조선악으로서의 훌융한지위에도 노여잇섯든일이 잇스며 사회에서도 고상하고 점잔은 대우를 바더왓섯건만, 세태가 밧귀우고 세상의모든 사조와 인심이 뒤집히우게되니 이 가야금도 오늘날에와서는 겨우 과거유물로서 일루의명맥을 보존하는 형편에 노여잇게되엿다.
이 어찌 뜻잇는 이들의 한가지로 유감되게 생각하지안흐며 또한 서러워하지안흐리요.
요사히에 와서 멧멧분이 이에유의하여 고전적 조선음악의 재발굴과 재음미를 목표로 이「가야금과산조」에 깁흔연구를 쌋코저, 여긔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잇슴은 실로 고마웁고, 반가운 현상이라 하지안흘수업다.

조선의 고전악긔는 어느것이나 다-그러하지마는 이 가야금도 역시 오늘날의 양악긔와가튼 일정한, 가격(價格)이 업다.
이 얼마나 고상한 악긔일것인야! 여기에는 가격을 부칠야고도 하지안코, 또한 부칠수도 업는노릇이다. 거기에서는 다만 한업는 가치가잇슬것이고 무한한 가치를 발견하기 문일것이다.
근자에와서 세속이 달너지매, 헐수 할수업시 이에 가격을 부처 매매는 하지마는, 이는 그리조흔일이라고는 할수업다.
그래도 조흔것이면 百圓以上이고 좀 낫분것이래야 四, 五十圓가량이니 그재료부터가, 우리조선-동양사람들이 한가지로 고상한나무로 처오는 오동(梧桐)나무로 「대」를 만들고 배(梨)나무로 「안족」을만들고 명주실로 길게 끈을만들어 잡어맨것이니, 보기만하여도, 조선미가 떠도는 고상한 악기라할것이다.

가야금이라고 하면 으레히 산조(散調)를 생각하게 되는것이니, 가야금과 「산조」는 서로 떠날내야 떠날수업는 관게를 가지고잇다.
가야금의 근본도 이「산조」에잇고 가야금이 조선고악으로의 특색과 생명도 이「산조」에잇다 할것이다.
이만치 가야금의 잇서서 유명하고도 필요한 산조란 어떤것인가.
이산조는 멀니「신라」나 「백제」부터 조선사람이 가지고내려오는노래곡조로서, 이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순전한 조선음악의 으뜸이 될 것이다.
이산조가운데는, 슬픈곡조로 울여나오는 매듸도잇고, 또 쾌활하게 울여나오는 매듸도 잇지마는, 대체로 세가지로 난우고잇다.
맨처음에 기-ㄹ게, 느리게 뽑는 매듸를, 「진양」이라고하며, 그다음, 족금느리게 뽑는매듸를 「중모리」라고하며 셋재번 아주 쩔게들니는 마듸에가서, 이를「자진모리」또는「잔모리」라고 부른다.
「진양」, 「중모리」「잔모리」, 이세가지로 나노우게된것은 음율의 고하장단에 의하야 갈너노흔것이고 지금 현대음악이나, 양약에서와가치 일정한 무슨「가사」갓흔것이 잇는것이안이기문에 이「산조」에다는 무슨 노래곡조를 마춰서 노래부른다든가, 「병창」으로 합창으로 한다든가하면 이「산조」의신비로운 맛이라든가, 고상한매력적힘을 차저볼수가 업게되는것이다.
그外에도 「병창」이라는것이 잇는데 이「병창」에는 「장부한」이나「노화월」이나, 「명긔명창」이나, 「소상팔경」 갓흔것을 맞춰서 부르는것이지만, 그박게도 「츈향가」나, 「심청가」갓흔것도 거기에 마춰서 부를수잇는것이다.

음악이란 다-그러하지마는, 더욱이 이 조선고악중에서도 가야금은 天才가안이고는, 참말로 잘할수는업슬줄로 안다.
내가 이 가야금에 손을 대인지가 三十年넘는오늘에도 아즉도 내자신이 생각하여도 아무런 自信이라고는 못가젓슴을 보아도, 이가야금이 일견 배우기는 쉬은듯하면서도 실은 그진경(眞境)까지 가기에는 얼마나 어려운 음악인줄을 알 것이다.
그것은, 이음악이 일정한 가사나 곡보를 가지고 잇는것이안이고, 다만 그 허는사람의 자긔독특한 진경을 자긔의 천재와 긔술로 개척하여가는 음악이기 문일것이다.
나는 이 가야금으로 늙어가며, 이것으로 一生을 가치하고잇지마는 아직도 내마음에 부족하고 미흡한 데가 만타.
내목숨이 다할까지 이 가야금을 벗하여 끝을막는날에도 나는참말로 이 가야금의 진경을 차즐넌지 의문이다.

내가 오늘날까지 무릇 三十여년 동안을 이 가야금과 동무하여, 밤과낮을 가리지안코, 열중하여 내려오는 동안, 나는「산조」의 「중머리」ㅅ조를 울가 그중의 나의 心琴을 울닐라고 할것이다. 한 그 매듸, 그구절에가서는 그중 자신을 가지고, 나의 心靈은 심미경(眞味境)에서 그냥 넉을일코 손가락이 제절로 노는것이다.
이의 나의가슴은 무한히 뛰놀며, 「무아몽중」 의 글자그대로의 심경으로 드러가고 마는것이다.
그다음 「병창」으로서는 내 일즉부터 즐겨이우는 『장부한』 일것이다.
「……옥난간에 놉히올나 인호상이 자작후에 한단침 도두베고 장주호접잠이드니 꿈이또한 생시가치 우수를 놉히드러 소상반죽 둘너집고 반야청산 드러가니, 산용수세도 조커니와, 초목무성 아름답다 칭칭암절벽상에 락화로자리삼고 고금영웅 문장열사……」하는 군데에 가서는 내가 오늘날까지 내려오는동안, 멧千번 멧萬번을 다시우고 또다시 운들 더욱 그맛과 그가경이 나의 마음에 새로운맛을 도두게한다

세태가 변하고 세상인심이 변하기전에는 이에 을두고 관심하는 이들이 만터니만, 이제 오늘에와서는 너무도, 쓸쓸함을 늣끼게한다.
五六年전에는 李完用씨갓흔이며, 崔麟씨갓흔이들이 가야금을 벗하야 閑日月을 보내드니, 오늘에 와서는 그이들이 소식조차 잠잠하다.
자고로 「藝人淸貧」이 잇서 그러함인지는 몰나도 내 가야금과 一生을 가치하여 내려오는 동안 실로 그날그날의 생활이 요사히에와서는 더욱 절박하게 되엿다.
내 만약 빈약하고 천대밧는 이땅에 태여나지안헛드래도 내 더욱 「진경」에로 닥거나가겟거늘, 밤이나 낮이나, 가야금줄을잡고 음침한 五尺단간속에 안즈면, 불우한 이땅의 「탄금인」됨을 서러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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