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문헌
검색 > 문헌 > 기사
예술상으로 본 옛 기생․지금 기생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예술상으로 본 옛 기생․지금 기생 藝術上으로본녯妓生․지금妓生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윤백남 尹白南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5-10 昭和十年十月
면    수 198 (198)
기사
妓生하면 우리는 흔이 路柳墻花를 聯想하게된다, 우숨을 팔고 술부어주며, 춤을 추며 노래만 부르는 즉업 女子로서는 매우 아름답지 못한 종류의 人間으로 안다.
妓生! 그들에게는 아무 의리도없고 아무 절조도 찾어볼수 없으며, 또한 아무런 아름다운점도 노-불한맛도 찾어볼수없는, 다만 천하고 더럽고 人間性을 잃은 종류의 녀자로만 알게된다.

허나 오래인 멫百年前부터 리조末까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妓生들에게서 間或 진실한맛을 엿볼수 있었으며 高尙하고 깨끗한맛을 찾을수도 있엇든것이다.
또한 그들의 가슴속에는 깁히 節操가 숨어잇고 良心이 또한 움즉이고 있었든것이다, 다시말하면 義理와 純情에 넘처흐르는 옛이야기를 우리는 자주듯게된다

妓生은 娼妓와는 달다, 이妓生이란 한階級이 비로소 우리朝鮮에 생겨나기는 언제붙어일가. 여긔에 대하여는 여러사람들의 말하는 근거가 서로 갓지않다.
나는 조선에 妓生이 언제붙어 엿엇는야 하고 뭇는다면, 아마도 高麗中葉이나 末葉붙어는 확실히 있엇다는것을 말할수잇슴니다. 그러나 어떤분들은 그러치않고 적어도 新羅때붙어 벌서 妓生이란것이 잇섯스리다고들 말하게된다.
그 리유로는 新羅에 金庚信갓흔이는 娼妓의 집으로 매일갓치 단이다가, 그뒤 자긔의 잘못을 깨닷고하로는 자긔의탓든 말(馬)의목을 베히고 그후붙어는 그만 창기방을 단이기를 그만 두엇다는 력사에 있는 사실로보드래도 그때에 벌서 娼妓가 있었든것이 확실하니, 으레히 妓生도 그때에벌서 있었스리라고 말하게된다.
그러나 新羅때의 문헌에는 아무런 妓生에대한 긔록을 어더볼수없음으로 부득이 高麗때붙어라고 말할수박게없는 것이외다.

이러케 오래인 옛적부터 잇서내려온 妓生이란 그러면 어떠한 종류의 女子들이엿든고?
우에서도 잠간말하엿거니 요사히 우리들은 흔히 妓生, 妓生하면 으레히 구락부나, 오락장에서 불너다가술부어주며 노래부르며 춤추며 별별 추한즛을 다-하면서 뭇사나히들에게 우숨과 고기떵이를 파는 종류의인간인줄로, 곳 련상된다.
허나, 멧百年전은 그만두고래도 멧十년전만 하여도妓生이라고 하면, 오늘날같은 그러한 종류의 妓生이 안이엿섯다.
그들은 반듯이 詩한줄은 지을줄 알어야하고, 「律(율)한首(수)는 읍흘줄을 알어야 한다, 「가사」는 으레히불너야하엿고, 거문고나 바둑쯤은 반듯이 알어야 하엿다.
그들은 우으로 고관대작(高官大爵)으로 부터 아래로는 랑인(浪人 )과 천한게급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한갈같이 대하여왓다.
그들은 고관대작들을 상대하여 놀만한긔품과 상식을 닥기에 힘쓸뿐이고 돈이나, 物質에는 아무런 관심을가지지안코, 다만 고상하고 순결한 긔품을 기르기에만힘써왓다.
그들은 반듯이 「서방」을 가지고 잇다. 만약 돈을버온다하드래도 그돈은 자긔의「서방」의 소유물이 될뿐이지 자긔에게는 아무런 소용이업섯든것이다, 그러기때문에 오늘날의 妓生들처럼 다만 物質에, 돈에만 억매여서, 어떻에하면 그돈많은 사나히에게 잘뵈여서 돈을만히 벌어볼까하는 그런 心思는 터럭끝만치도 안가젓섯다. 그러기때문에 옛妓生의生活이란 참으로 깨끗하고 노-불하엿든것이다.
이런點으로보면 오늘날의 妓生들이란 너무도「妓生道」에 어그러진 아름답지못한길을 것고잇는것 갓다.

옛적에는 지금과가치 구락부나妓生券番갓흔데가 잇는것이 안이고「기생방」이라고하는 一種의 사교장이 있었을뿐입니다.
이「기생방」에는 고관대작이나 엇떠한 천한 사람이나 누구나 다-들어갈수잇섯다, 실로 그곳에는 절대적으로 平等이엿다, 오늘날과가치 富貴貧賤을 저울질하며 대하는법은 전연업섯다, 실로 그곳은 오늘날의데모크라시-그것이엿다.
그러타고 그 「기생방」이 무질서하거나 난잡하지는안엇슴니다. 그곳에서는 소위 「신사도」의 「불문율」이 꽉서잇섯슴니다.
「기생방」에 들어오면 十名이고 二十名이고 한데모여서 똑가치 놀지, 어느 개인이 독점하거나 하는일은절대로 못함니다. 만약 그런사람이 잇다고하면 그「기생방」에단이는 여러사람들끼리 다가치 제제하게되는 것이며 또는 기생이 손님에 대한 접대가 아름답지못할때에는 「기생방」에 단이는 여러사람들이 그기생의「서방」을 妓生에게서 떠러지게 할수잇스니 만약그리된다면그妓生서방은 여러손님들을 차저단이며 자긔의 잘못을사과한연후에 손님들이 다시금허락하여야 비로소 그妓生의「서방」이 되는 풍속이잇섯다.

그러면 妓生들과의 오즉하나인 社交塲인 「긔생방」에서는 妓生들과 어떠케 놀앗든고하면, 오늘날과 달너서 그곳에서는 술을 마시지안헛고, 춤도 추지는 안엇섯다.
여러손님이 쭉-모힌가운데서 율이니 시나짓고, 「가사」나 한곡조 부르든지, 거문고를 띄우지안흐면 바둑이나 뛰며 그날그날의 청유(淸遊)를 일삼는것이 그들의 업이엿다.
옛妓生이라고하면 거문고는 거문고의 선생에게서, 글은 글선비에게서, 서화(書畵)는 글잘쓰고 목화잘치는先生에게서 멧해를 고심하며 배우는것이다.
참으로 그들에게는 지금妓生에게서 도저히어더볼수업는 노-불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맛이 잇섯든것이다.
지금의妓生은 제일첫재 얼골이 고와야 유명한 妓生이 될수가 잇다, 그럼으로 머리에는 기름이 흐르고얼골에는 粉가루가 칠하여저잇다. 몸에는 보기에도 어리우는 별별천으로 몸을 휘감엇다.
몸 단장이나 얼골치장에 잇서서는 녯妓生보다는 훨신 낫다고 하겟지만 그妓生道에 잇서서는 오늘날에는 도저히 어더볼내야 어더볼수가 없는데가있다.

옛妓生에는 一牌, 二牌, 三牌로 나노여 잇섯다.
一牌妓生은 궁중(宮中)연회(宴會)에 참석하는 그중에 가장 妓生道에 훌륭한 妓生들이고 二牌妓生은 고관대작들이나 선비들을 벗하여 노는 그다음가는 妓生이다. 이一牌와 二牌妓生만이 참말로의 妓生이다. 三牌妓生이란 가장 천하고 추한 종류의妓生層이다. 그들은 매음도하고 천한즛을 하는일이잇다. 이것은 妓生이라고 할수는 업다.
멀니는 李朝成宗때의 芙蓉이갓흔 名妓며 壬辰役때의 桂月香이 갓흔 妓生은 노래잘불느고 글잘짓고 글시잘쓰기로, 거문고 잘띄우기로 당대에 유명한 妓生들일뿐라안이라 널니 후세에까지 妓生道의 표본이 될만한 女子들이며 너무나 유명하여진 黃眞伊도 역시 妓生이엿스며 論介도 역 妓生의 몸이엿다.
이들은 천추만대를 네려갈지라도 이땅의 名妓로 길이 일홈이 널니 알이워질것이다.
리조 말엽에와서도 山紅이나 夢初나 珊瑚珠갓흔 妓生이며 지금은 滿洲벌판의 어느구석에 숨어잇는지 消息조차 아득한 海棠花갓흔 名妓는 조선의 기생을 말할적마다 이즐수업는 유명한 妓生들이다.

그들은 한번 妓生에몸을 바치매 궁중 향안에 불니우기를 일생의 소원으로 녀기기에, 그들은 지금妓生모양으로 物質과는 철리만리 먼거리에떠러저서, 다만 깨끗한 妓生道의 수양에만 온몸에 정신을 기우리엿든것이다.
이제 지금의妓生들은 間或 대하여보매, 高尙한맛, 노-불한맛을 차즐수없음을보게된다. 이것도 세상의변천과 환경으로 말미암음이 많겟지만.
오늘날의 妓生들은 돈만흔사나히들을 사괴이지못하게되면 그날그날의 생활이 문제이기때문이다. 그들은 얼골을 곱게단장하고 몸치장을하여서 뭇사나히들에게 잘뵈여야만이 그들의 생활문제가 해결된다. 여기에 그들의「비애」가 잇다고나 할넌지?
요사히에와서도 間或 방송국에와서 古典的인 가사」 갓흔것을 부르는 妓生들을 보게되나 어쩐지 그 의복의 맵시라든지 그짓까부는 양으로보아 엣날의妓生들과갓흔 그런 古典美를발견할수는 업다.
이메일주소 무단 수집거부 권리침해신고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