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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 「아나운서」―경성방송국의 여성 아나운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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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아리따운 「아나운서」―경성방송국의 여성 아나운서들― 아릿따운「아나운사」―京城放送局의女性아나운사들―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 +++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5-08 昭和十年八月
면    수 246 (246)
기사
[사진] 김문경 양
「J·O·D·K」
여긔는 경성 放送局이 올시다······」
마이크로폰앞에 나서서 멫十萬멫百萬의 많은사람들에게 아츰저녁으로 상양스러운말로 인사의말과 소개의말을 늘 듸리는 女子를 세상에서는 女子아나운써-라고부른다.
이 女子아나운써-가 조선에 처음으로 나타나기는 그 언제붙어일까? 그것을 알자면 먼저「경성放送局 의 발바온 沿革과 거러온 由來를 더듬어 보아야 할것이다.
바로 지금으로붙어 생각하여보면 그리짤지않은 十年前의 일이다. 그때에 지금 체신국안 무전국(無電局) 의 한쪽구석에서 그때에 그안감이과(監理課)에 잇든 某日本內地人의 創案으로 朝鮮서는 처음인 放送局을 꿈꾸고 비로서 첫 放送을試驗하여보앗다.
그때의 放送이래야 全部가 國語뿐이였으며 浪花節, 櫻音頭······等々의 것으로, 極히 멫않되는 日本內地人들을 對像으로 밖에는 되지않었었다. (寫眞은金文卿孃)
그后 얼마않되여서, 아마 생각컨댄 大正十五年末頃에 朝鮮殖産銀行會議室에서 비로서 처음으로 朝鮮안에다, 더욱이 서울에다가 放送局을 하나 세우기로 작정하고 라듸오放送에 對한 깁흔 理解를가진 멫멫人士들이 뫃여서 「京城放送局創立事務所」를 同銀行에다 두고 그의期成을爲하야 적지않은活動을 하게되였섰다.
그때의 조선사람들에게는 라듸오放送局의 創設에 아무런必要도 興味도 거게다늣끼지못햇든것이다. 아마 새學問을 배우고 尖端的文化를 힘닙은 紳士들도 거기에 對해서는 너무도 等閑視하여왔었다.
그러기 때문에 이때의 모-든期成工作가운데서는 지금 京城放送協會에게신 韓相龍氏朴榮喆氏等數三人以外에는 이에關心하는 人士를 별로히 어더볼수가 없었다.
그러든것이 不過十年이 그리 넘지못하는 今日에 비겨보면 여러분 얼마나 놀나운 發展이며 天壤之判임니까?
아마도 그동안, 세상은 다른여러部門도 다-그렇겟지마는 이 라듸오에 對해서도 퍽으나 理解가 깁허가고 그의必要를 점점 늣끼게쯤되였나봄니다.
그리하야서 이 創立活動은 如意대로 進展되여 昭和二年二月에 마츰내 京城放送局-JODK-는完全히 成立되고 말앗슴니다 그建物을 京城 貞洞에다 새로히 모-단型의二層콩쿠릿트 洋屋으로 新築落成을보게되였다.
그러나 그때時期의 放送內容을 살펴보면 全部가 國語뿐이엿스니 그것은 그럴수밖에 없었다. 그聽取者層이 百이면 九十九까지는 日本內地人이엿기 때문이였다.
그러든것이 차츰차츰 서울長安의 젊은사람들에게-或은 海外에서 돌아온 高級文化人層에서, 歡樂과榮華에 단꿈꾸는 有閑人들 層에서, 모단型家庭生活의 紳士層에서-도 거리와거리에서 쏘다저 흘너나오는 라듸오의 소리에 귀가 띄워서 한사람, 두사람, 또는 한집 두집에, 조선사람의 귀를 끄을게되엿스니 實로 여긔에서 비로서 조선사람을 對象으로한 放送內容을 차츰차츰 조금씩 取扱하게되였고 더욱이 特히조선말로도 간간히 紹介할必要를 늣끼게 되였었다.
여긔에 비로서 조선에선 처음인女子아나운써-의 必要를 늣끼게 되였든것임니다.
그러면 이 女子아나운써-라는 새로운職業線에 처음으로 勇敢히 발을 내여민 女子는 果然누구일가.
이 女子아나운써-라는 일흠붙어도 그때의 조선사람들 귀에는 잘익지못하엿든 만큼 그에 志望하는女子도 勿論 만치 않었다.
오즉 한분의 귀여운 志望者가 있었으니 그이는, 當時붙어 京城放送局에 勤務하여서 오늘날까지 꾸준히 放送局事務에 努力을 악기지않으시는 盧昌成氏의 婦人되시는
李玉景氏 이였다.
이 李玉景氏는 그러면 어떠한분이길내 조선에서 처음인 女子아나운써-로 나오게되엿든고? 그는 勿論 男便의 깁흔理解와 指導가 있기때문이엿섯겟지마는 그보다도 그의 어린處女時節붙어가 그婦人으로하야금 조선서 처음인女子아나운써-란 職務에 敢히 나스게만들었다고 봄이 옳을가한다.
그러면 그어린處女時節은 어떠하엿스며 그家庭은 어떠하엿든고?
李玉景氏는 仁川에서 나서 그곳에서 小學校를 단이게되였었다 氏는 본래 태여나기를 貴하게 名門의家庭에서 태여낫스니 그의父親은 그當時에 仁川稅關々長이란 놉흔要職에 잇섯슴을 보아도 그가어린時節붙어 얼마나 호화스럽게 귀엽게 또한 父母의 사랑가운데서 노래를부르며 자랏낫는가를 可히 짐작할수가 있다.
그후 氏는 父親이 安東縣稅關々長으로 轉任되여 가게되매 父母를따라 異域滿洲安東縣으로 가게되였다.
그곳에서 小學校를卒業하고 그해로 곳安東縣高等女學校에 入學하였었다.
氏는 어려서붙어 美貌의 사랑스러운얼골을 가젓스며 또한 그의 목소리는 明朗하고도 아름다웟다 그는 小學校時節이나 이곳 高等女學校時節이나 늘 學校에서는 先生앞에서 집에돌아와서는 어머님과 아버님앞에서 그 고흔목소리로 노래부르기를 좋와하였다.
그렇게 영이하게 생긴 氏는 學校에서 工夫도 남에 빼나게늘 優秀한 成績을 어덧다.
그러한 氏가 또한 조선녀자로서는 國語을 남달니 잘하엿슬것은누구나 짐작하고도 남을일이였다.
仁川小學校을 마추고 安東縣高等女學校를 마춘 氏는 그當時의 朝鮮女子로서는 어더보기 드물게 流暢하게 흘너네리는 물처럼 國語을잘한것은 조금도 奇異할것이 없었다.
그러튼 李玉景氏는 學校를 卒業하자 現在 男便되시는 盧昌成氏와結婚을 하게되였다.
當時의 盧氏는 京城放送局에 勤務하엿섯스니 結婚後의 李氏가 라듸오放送에 對하야 多少間의 智識을 갓게되엿고 또한 留意하엿슬것도 當然한 일의하나이였다.
李氏는 그렇게 多福한 新婚生活中에서도 男便의하시는 그業務에 깁흔理解와 同情을 가지게되엿슴인지 또는 男便의 간곡한 忠言으로엿슴인지 그는 二十五歲의 젊은나이로 비로서 家庭에서의 主婦生活을 버서나서 처음으로 京城放送局放送室의 마이크로폰-앞헤 나스게되였었다.
실로 지금에 앉어 생각하여보면그때의 李氏의 行動은 참으로 大膽함이 있었다.
그때만하여도 라듸오의 聽取者에조선사람들이 대단 귀하였고 대개는 日本內地人 이였음으로 李氏의입에서 흘너나오는 國語는 조금도그들에게 不滿足함이없이 流暢하였다.
아무리 말잘하고, 明朗한목소리를가진 사람이라도 처음으로 마이크로폰-앞헤나스면 말문이 꽉 맥키고 또한 말의 高低, 長短을 잘마추워 放送하지못하면 모든 聽取者들에게不滿을주고 또한 무슨말인지도 알아듯지못하는境遇가 하두많은데도 이李氏만은 그에對한 素質을가젓슴인지, 天才로 태여낫슴인지, 조금도주저함이없이 약간의 失手도없이 每日每日 마이크로폰-앞에서 數萬의人士를 대하여 情답게 고흔목소리로 放送하게되엿스니 그의 그때의 큰理想은 많은聽取者들을 한家族과같이 늘 생각하엿다고한다.
그의 빛나는 두눈동자, 뱃꽃같이 하얀살결 동그스럼한그에얼골, 호리へ한 몸맵시 明朗한 목소리는 그때의 放送局안 여러사람들의 눈을 황홀케한때가 많었다고한다.
그후 氏는 한어린이의 어머니로될宿命的運命에 닥다렷스니 그는하는수없이 家庭의 복음자리로 다시금 들어가고야말았다.
지금의 李玉景氏는 盧氏와 단란한家庭을 일우워 五男妹의 귀여운어린것들의 재롱을 벗하여 그날へ主婦로서의 賢母良妻로 지낸다고한다
李玉景氏가 JODK에서 姿態를감추게된뒤에는 그누가 다시금女子아나운써-로서 나섯슬것인가, 그다음에 나온이는
馬賢卿孃 이다.
이 馬孃의 故鄕은 咸北城津이니南男北女라고 이르는 朝鮮에서, 北岳摩天嶺의 정긔를 타고 낫슴인지그의美貌는 남달니 빼낫스며 北鮮女의氣質이 그냥있는 處女이였다.
孃은 城津에서 普通學校를 卒業하고 이여 서울로 올나와서 京城女子高等普通學校에 入學하엿섯으니 그의優秀한 學力을 可히 짐작할수가 있다. 그는 工夫에만 재조가 있을뿐아니라 孃은 또한 곱고 아름다운목소리를 가젓섯다. 그가 같은 동무들과 놀때면 늘 꾀꼴새같은 明朗한노래를 부를때가 중중하엿다고한다.
그의 美貌와 재조와 고흔목소리는 學校時節의 여러 동무들에게서 많은 羡慕를 남달니 한몸에 모으고잇섯다.
그러하든 孃이 女高를 卒業하자바로 李玉景氏의 뒤를이여 京城放送局에 들어감도 그리 偶然한일은않이엿다.
그러나 學窓에서「女王」의소리를들든 그이기로니 한번 마이크로폰-앞에 나서서는 果然 많은사람들앞에 얼마나한成功을할넌지 放送局員들의 초조하든일이엿다. 그러나 첫번나슨 그는 조금도 어색함이없이 약간 미소를 띄우며 洗練된목소리을 내엇다고한다. 그러나 그렇게첫번 마이크로폰-앞에 나스기까지에는 참으로 많은努力과 꾸준한練習을 애끼지않었다고하니 馬孃이 얼마나 가슴을 조리며 핃발이 솟앗슬까는 넉넉히 짐작할수가있다.
孃의 그때의 나의 二十一歲이엿다고하니 한번 마이크로폰앞에나서서는 멫十萬, 멫百萬 청취자들의 귀염을 바덧섯고, 한번 事務室책상앞에 돌아와서는 여러局員들의 귀염을 바덧다고한다.
그러튼 馬孃도 昭和五年에 放送局의 事業이 一時停止되여 女子아나운써-를 두지못하게될 事情에 일으매 하는수업시 골살을집흐리며 憂鬱한얼골로 몸을도리켜 故鄕 城津으로 내려간다음에는 그后의 孃의消息을 도무지 알어들을수가없다고하니 짐작컨댄 孃은 그后 白鷗가 떠도는 東海바다ㅅ가에서 거세게처드러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멫번이나 哀愁에 가득찬 노래를불넛슬것이다!
아마도 지금쯤은 사람의짝을차저幸福된家庭을 일우웟슬늣도하나 그후의孃은 그야말로「一去無消息」이다.
그後 昭和八年四月에는 새로히 二重放送을하기로 作定하고 第二放送課를 設置하게됨에 따라 새로히 女子아나운써-二名을 採用하게되였다. 京城放送局이 생겨 近七八年의 歷史을거러오는동안 조선사람들의 청취자도 날로增加되여 이에 비로서 二重放送의必要를 늣꼇든모양이다.
한번 放送局에서 女子아나운써-를 募集한다하니 많은女子들이 이에 應慕하여왓었다. 그러한가운데서오즉 두분의女子가 뽑혓스니 그이들은 崔兒只孃과 金文卿孃의 두젊은女子이엿다.
많은 女子들中에서 오즉 이두사람의女子가 뽑혓스니 그들의 學識이 남달니빼남도 잇기는잇스나 오로지 眞珠를 구을니는것같은 고흔목소리의 所有者이엿든까닭이였다.
崔兒只孃은
그해에 바로 京城女子高普를 優秀한成績으로 卒業한 秀才로서 卒業卽后에 아나운써-로 들어오게되엿스며, 또 지금까지 繼續하여 꾸준히 나아가는
金文卿孃은
昭和八年三月 京城淑明女子高普를 優秀하게 卒業하는卽時로 二十歲의젊은나이에 역시 아나운써-로 나스게되엿다고한다.
崔孃은 한번 마이크로폰-앞에 나서면 청산유수같이 졸졸흘으는 말소리는 늘 많은聽取者들의 마음을보드랍게하엿다고한다.
그리고 一段 자긔事務室에 돌아와서는 늘學窓時代붙어 질겨 工夫하든 文學에 온精神를 기우려 文學書籍을 眈讀하며 때로는 그영롱한 눈동자를 말끄럼이하여 藝術的瞑想의 세게를 머리속에 그리는때가 중중하엿다고한다. 또한 때로는 原稿紙에 붓을 달여 멫줄의 詩를 쓰고는 혼자 읊으곤하는때도 있엇다고한다.
어째든 崔孃은 藝術의世界를 퍽으나 憧憬하엿든것만은 사실이다.
그의 아련한 얼골에는 늘보아야 로맨틕한情緖가 아롱へ 떠돌앗스니 孃이 一年半의 쩌른동안을 마이크로폰-앞에 스고는 앗갑게도 자최를 사르시 감초여버린다음 그는 어느 普通學校에서 敎鞭을잡고잇는 某靑年과 남모르는사희에 사랑의실마리를 매저, 지금은 市內 어느한모통이에 깨끗한幸福의 복음자리를 꾸며놓고 賢母良妻의 家庭生活을 繼續한다고한다.
金孃은 八年三月붙어 오늘날까지 꾸준히 내려오며 그곱고 깨끗한말소리로 매듸へ 高低長短이잇게똑々 꺽어서 보드럽게 매끈へ하게 늘 마이크로폰-앞에 서서 市井의 수많은 사람들을 對하게되니 아마 그는 市井人 에겐 없지못할「天使」일것이다.
孃은 그얼골에도 역역히 나타난거와같이 그의趣味는 高尙한것이다. 짬짬이 틈만나면 늘 자繡놓기를 겨을니하지 않는다고하니 이手藝에對한 氣質만 보드래도 그의性格이얼마나 高潔하고 아름다운가는 알수가있다.
그것은 한편 그의家庭의 影響됨도 많으려니, 그의 오라버니되시는분은 現在 陸軍少佐로서 龍山第二十師團陸軍步兵隊의 現役으로 단이신다고하니 그家庭이 얼마나 嚴格하고 高潔함가를 可히 짐작할수가잇다.
孃은 마이크로폰-앞에 나슬때마다 많은청취자를 대하기를 한집안 家族과같은 感情으로 대한다고하니 멫萬, 멫十萬의聽取者들에게 얼마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밧고잇는가를알수있다.
放送局朝鮮語放送課長으로 잇는 金雲汀氏는 말하되「우리가 얼핏생각하면 마이크로폰앞에 나서서 간단한 인사의말과 紹介의말을하는것이아주쉬운일 같지마는 여간 힘드는 일이않이야요, 아무리 말잘하고 口辨이 좋은사람이라도 한번 마이크로폰앞에 턱나스면 말이잘않나오는법이고, 또아무리 말이잘나오드래도 말의高低長短과 呼吸한번 잘못하여도 청취자가 말을잘못알아 들는페단이 퍽으나 많은데 아즉까지 그런일은 없었어요, 그리고 아나운써-로더욱 어려운것은 어떻게하면 모든청취자를 한家族과같이 親하게맨들가 하는것인데 여긔에 대해서는여간어려운일이 않이야요······여하튼지금있는 金文卿孃은 퍽 재조잇는 녀자이지요」하는 氏의 말을 들어도 金孃이 얼마나 재조가 빼난녀자인가를 짐작할수가있다.
그것은 孃의 理智的인 이마와 영그러운 눈동자로서도 넉넉히 알아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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