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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변과 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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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웅변과 만담 雄辯과漫談
종    류 논설 論說
필    자 신불출 申不出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5-06 昭和十年六月
면    수 105 (105)
기사
『漫談』은 講演이않임니다 演說도않임니다 또 才談도않임니다 그러타고 작난은 더구나 않이올시다
『漫談』은
漫文, 漫畵, 漫詩, 漫謠等等으로 서부른一丸의것이로되 어느무엇보다도 그 諧譃性(humour)의 縱橫無盡함과 그 風剌性(Irony)의 自由奔放한點을 特徵으로삼는 그야말노 불같고 칼같은『말의 藝術임니다』

『말』은 마음의 그림임니다
생각을 表現하는 연장의 하나로『말』같이 끔즉 대단한 效果를 가진것이 없으면서도 매양『말』그것이 마음의 왼통을 그대로 表現식혀 주지못하는것임을 毋論또한 벨느고 벨너서 맨드러진 그『말』조차 다 하지못하는 끝에『말』은 究意지금 세상에선 변변치못한 녀석일박게없읍니다 이러틋 不完全한 그리고 탐탁지못한『말』을가지고서 이루워지도록 마련된 이『漫談』이란것은 그리 쉬운노릇이 못되는것임니다.

실상『漫談』같이 어려운게 없으니 제아모리 群衆心理를 操縱하기에 能通한 재조군이라도 단 한사람의 말재간으로써 그많은 聽衆으로하여금 長時間동안을 喜怒哀樂의 世界에서 無我夢中으로 漫遊하게 하기는 難々之中 難인것이외다.

『漫談』은 반다시 재미라는것은 前提로하는 것이로되 그러타고 神通奇拔한 美辭妙語를 羅列하는 것뿐으로서『漫談』이되는것이 않이니 果然 現代人의 가슴을 찌를만한 칼같은 迫力이있는 그엇던 眞實을 必要로하는것은勿論임니다.

『漫談』은 元來 朝鮮에는 없엇든 것임니다.
所謂, 才談이란것이 있기는하엿으나 그것은 이『漫談』과는 아조 比肩도 못할만치 本質的으로 다른것이외다 이才談이란것은 아마 東京에있는『萬歲』라고하는것과 비슷한 다만 우슴本位로 空虛한內容을 가진것임니다.

언제인가 한번 西洋사람이 筆者를보고『漫談』을 英語로는 무어라고하느냐고 뭇기에(IDLE TALK)이라고 對答햇슴니다만 西洋에도『漫談』이란것은 없는가봄니다.

그럼 이『漫談』이 어데서 비롯된것이냐하면 그故鄕을 日本에다 두고잇는것인데, 東京서도 이『漫談』이 始作된지가 不過五年이라는 짧은 歷史를 가진것임니다.

『漫談』이 東京서 처음 發生된 動機는『落語』나『萬歲』나『講談』따위와 같은 或은 너무 低級하고 或은 너무 頑固한 다낡어진 在來藝術形式의 傳統을 깨트려버리고 여긔에 對立이될만한 가장 嶄新하고 가장 輕快明朗한 表現形式인 舞臺藝術로 마련된것이다.

그러면 이『漫談』을 즘지한 사람은 누구냐하면 德川夢聲, サトハチロ-等의 諸人이라하나 이들은 하나의 漫文客은 될지언정 漫談客은 않이다.
시방 東京서 漫談家라고 自他가共認하는 사람으로서는 大辻司郞이라고하는 사나인데 當代의人氣를 한몸에다 실고었는 모양임니다.

筆者는 朝鮮에다가『漫談』을 처음 輸入식혀놓은 사람의 하나올시다, 만은 決斷코 大辻司郞類의『漫談』을 고대로 模倣한것이않이니 筆者가 일즉 엄청나게도 不利한 客觀的情勢아래 刻々으로萎薇不振하는 朝鮮劇界를떠나 그러케 까다롭지않이하고도 될수있음즉한 좀더새롭고, 조촐한 돈않들고도 손쉽게 될수가있는 舞臺形式이 하나없을가하고 西洋것을 冊子에서 硏究해보고 中國이나, 東京것을 直接으로 實際見學도 하야본結果, 드듸여이『漫談』이란것을 創案해가지고, 비로서 朝鮮에다 그첫試驗을 해밧든것임니다.

『남의것을 배호는것은 내것을 맨들기爲해서만 價値가잇는것이다』
우리는 惠澤받지못한 文化의 遺産속에서 양상한 自己그림자를 發見할마다, 늘 外國의先進文化를 適當히 模倣하여 한 正當한 眞理를 追從하야 自己文化의 領域을 廣大하게하는것은 勿論이겟지만 自己文化의 創造的任務가 決코 模倣과追從에만 있는것이않이고 좀 더 한거름 나아가서 가장『참된批判』의 칼노써 料理된營養劑가 않이여서는 않될것이니 요즈막 海外文學을 硏究하는이들 中에서 흔이 볼수있는 無批判的 模倣에서 가저오는 섯투른솜씨가 맛츰내 그民衆으로하여금 消化不良症에 呻吟케하는 罪過가 하나 둘이 않인点으로보아 그들의 反省을 求하는것이니 要컨댄 實際 朝鮮을 再認識하는 仝時에 批判的攝取로서의 再出發이 있기를 翹望하여 마지않게 하는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脫線되엿슴니다만 다시 本論으로 드러가서 그리하야 朝鮮서 시작된『漫談』은 大辻司郞類의 漫談과는 아조 판의것이라고도 할만치 두드러지게도 달니 된것이니 그것은 그들의 입맛과 비위가 우리와는사뭇 다른때문이엿슴니다.

往往히『野談』과『漫談』을 區別못하는이를보는데『野談』과『漫談』의 다른点은 첫대『野談』은 主로 野史를 中心으로한 古談을 內容으로하는 것임에反하야『漫談』은 主로 現代를 中心으로한 實談을 內容으로하는 點일것임니다.

『雄辯』은『漫談』이 않이외다, 그러나『漫談』에는『雄辯』이 없을수 없는것임니다, 또『雄辯』은『講演』이 않임니다, 그러나『講演』에는『雄辯』이 없을수 없는것임니다

『雄辯』은 英語로『Eloquence』 라고함니다 또는『Oratovy』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흔히『演說』을 意味하는것으로 解釋함니다.
『雄辯』은 무엇이나 맘대로 할수잇는『말의武器』올시다
太陽같이 힘잇는『말』로써 天下人心을 左右할수 있는이『雄辯』은 能히 革命의 矩火가되여 千載의宮殿을 하로아츰에 灰盡케할수도있는것이요 能히 戰爭의洪水가되여서 萬世의 社稷을 하로저녁에 流失케하는수도 있는것이니 壯하다 『雄辯』의힘이여 너를 익일者- 그 누구이뇨?
엇던 學者는 말하기를
『이 펜(筆)이 銃釼이 되엿으면』
하엿지만 筆者는
『그銃釼이 雄辯이되였으면』
하고 싶음니다.

『雄辯』은 멀-니 기리시아, 로-마의 共和政治時代에 뿌리를박고피여난 꽃인데 大盖그뒤에『雄辯』이 發展되여내려온 沿革을볼것같으면 專制政治時代보다도 自由政治時代에 있어서 한층더『雄辯』의 꽃이 滿發하엿다고하는데 그러나 『雄辯』이라고하는꽃은 自然草木과 다른지라 따뜻한 봄에만 피는것이않이요 치운 게을에도 될수있다는것은 가장 賢明한 現代人만이 가질『雄辯』의特徵일것임니다.
무릇 國民的大事件의 解決은 잉크나 펜이나 총과 칼도 必要하겟지만『雄辯』은 모든것 보다도 항상 앞을스는것이외다.

오날은 新聞雜誌時代라고하지만 筆者는 朝鮮은 雄辯時代라고 하고싶읍니다.
國民의 八割은 無識하니라하고 말한 엇던 大政治家의말을 오르지 承認하지 않을수없는 우리處地에서 하물며 가갸거겨(한글)을 今日에야 배우고있는 朝鮮에서 新聞과 雜誌도 必要하겟지만『말』노써 世上을 左右할수있는『雄辯』의힘을 너무도 切實하게 必要한것이라고봄니다.

世界가 시방 人本主義文明時代로 推移하면서있는 오늘날 時代의 推移를 率直히 代表하는 雄辯家가 나와서 캄캄한 세상벌판에다가 새벽 종을 울녀주기 바라기 마지않이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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