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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무용을 보고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최승희 무용을 보고 崔承喜舞踊을보고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구왕삼 具王三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5-01 昭和十年一月
면    수 126 (126)
기사
[사진] 최승희
現下朝鮮에 處하야 舞踊을 論하기보담 舞踊에對하야 年一次이나마 鑑賞할 時間과機會 차 없는 現象에서 今般 石井漠一行에 우리의 唯一한 舞踊家 崔承喜氏의 出演은 大端히 意義잇는일인同時 一般팬에對하야서도 퍽 期待가 큰것이엿다 氏의 舞踊行動은 數三次 觀覽한일이있어 氏의 舞踊의 技術的水準及硏究的態度를 觀側할수는잇였다
그러나最近氏가 不斷한硏究 目標로 다시 石井漠 恩師의門下를차저들어 眞正한 藝術를 爲하고 處女地인 朝鮮舞踊의 開拓을 爲하야 二三年間의 긴歲月을 硏究時間을費함에 對하야서는 반다시 새로운發表가 있을줄 생각하엿으며 그學究的態度에對하야 眞心으로感謝의意를表하는것이다
今日朝鮮에 處하야 다른藝術分野에서도 同一한現象에 處하야있지만 唯獨 舞踊分野만은 歷史的 遺産이 極히 貧弱하고 生活과 有機的으로 結合하우리 못한치 舞踊에對한 因習的 奇怪한 惡觀念으로 因하야 朝鮮에舞踊은 오랫동안 受難期를當하야 우리가 朝鮮의 舞踊을 鑑賞하려면 어대로가서 어떻게 觀賞하게되며 그存在가 어대었는지를 論하기 거북한 現象이데로이다
勿論 아직까지도 農村으로드러가게되면 豊年이왔다고 小皷를 둘너메고圓形陣으로 돌아다니면서 춤을추는粗朴하고 單純한 原始的인 朝鮮特有한 鄕土舞踊이란 遺物이있으나 이것은 舞踊이란 見地를 떠나 特有한地位에 處한物件이므로 아직 朝鮮은 民俗舞踊이나 古典舞踊이다같이 荒廢한曠野가 가로 노허있을뿐이다
이같이 特殊한 地帶에 處한 오늘 朝鮮舞踊界(?)에 舞踊을 爲해 生命을밧치고 朝鮮의 生活感情에서 一片의反映의 쭐기를 잡아 朝鮮舞踊을再建設하고 舞踊의 歷史的遺産物을 繼承하여 나갈唯一한 舞踊家 崔 承喜氏의存在는 今后朝鮮 舞踊界에 한큰 刺戟이 될것이며 衝動이 될줄믿는同時 氏는舞踊家로써가출 現身이나 技術的 成熟이나 藝術的思想과 魅惑的인藝風은 舞踊家로써 다갓추운 有福한者라고 生覺하게된다
이제 當夜氏의 舞踊에 對하야觀客의 한사람으로 늣긴바 멧가지를 써보기로하겠다
第一部에 처음 出演한 『習作』은 無音樂的 舞踊으로 打奏樂器의 音響作用에依하야 表現하는 動作을뵈여주는 舞踊인데『習作』에서 가장强하게 뵈여주는것은 思想과 肉體의 親密的消化로서 苦悶의 强音的態度는 舞踊美以上 劇的要素를集中식허 舞踊의 本格的 核心을威觸하게되엿다 舞踊은 참으로 肉體의 藝術임을께닷게되며 이肉體를無視하여서는 藝術的表現이 없다는것을 當夜氏의 無音樂的作用으로 表現되는 肉脈을 보고 한층 더切實히늣기게되였다
다음 第二部『에헤라노아라』는 第一로 音樂의效果가몹시 致命傷을當하게되여 참으로 不快하였다 洋樂의 바요링과 朝鮮의 長鼓와 合奏한 音樂으로 舞踊을 하게되는데長鼓의 長短이 몹시强音的인 音響에 바요링은 D線中心을 많이 使用하여 音量이몹시 弱하여 調和가되지않은 點으로보나 또는音樂的 價値性을보아 舞踊伴奏로는 너무나貧弱하여 이舞踊에 對하야 立體的으로 補助를 같이하지를못하였다 (이것도 石井漠의말에 依히면 不過數時間內에 合奏練習하였다고한다)
그러나 舞踊全體의 衣裳이나 案舞에對하야서는 新鮮味를띄고 純朝鮮的感情에서『팔』과『억개』의 動作을 많이使用하는 點과 自然스런案舞的手腕은朝鮮在來 民俗舞踊을 中心으로한 樂天的態度로써 朝鮮特殊한腕肩의 動作法과 表現法으로된 舞踊이다
뒷짐을지고 빗틀거리는 姿態이라던지 고개를간들간들 거리는動作은 朝鮮古典的民風의 特異한姿態의 一塲을 諷刺한感을 充分히表現하엿으며 圓滿한『덱닉』에서 움직이는 억개』의 回圓的動作은 世界어느나라에서나 보지못할朝鮮獨特한 舞踊의 形態를踏襲하는一方 古典舞踊의『리틈』쇽에서 新鮮한 一鏡地를 開拓한 點이뵈여준다
이『에헤라노아라』의 舞踊作品에對하야서는 朝鮮人이 아니고는 그興味와澁味와肉體的表現美를 鑑賞하기어러울것이다
나는이『에헤라노아라』를보고 舞踊은 舞踊을 爲하야된樂曲이 무엇보담 必要하며 舞踊樂에 依하야 創生된 舞踊이야 얼마나圓滿한 藝術的舞踊을 創作할것인가할때 우리에게 氏의藝術發展을 도아주고 朝鮮舞踊의 再建을爲하야 手腕있는 作曲家가 없음을甚히 遺感으로 늣기는바이다 作曲家와 演出家와의 協力에依하야 創造된 舞踊이야 純情한 朝鮮의感情에서 表現한줄 믿는바다
貧弱한 朝鮮舞踊외 今后發展을爲하여 이를도아줄 音樂하나가 똑똑지못하는 이處地이니 直接 當하는 崔氏自身의 쓰라린 마음이야 여북하겠는가
第三部『劒舞』에 對하야서는 氏의 解說에依하면 在來의 劒舞는 新羅時代 美將『黃昌』의 英雄的行爲를稱讚하여만든 勇壯한 舞踊이던것이后生妓生等에 依하야 舞踊하게되면서부터 매우 優長纖弱한 춤으로 變하였다한다
그리하야 崔氏는 이劒舞의 本統의 意義를 再現하여보고저 勞力하였다고한다 먼저 劒舞의 衣裳이 古典的氣分을 流失한것같어며 그色彩에도 多少頭腦를 썼으어면한다 그리고將軍의冠은 어느 時代의 歷史的背景에서 考案한것인지는 잘모러겠으나 朝鮮의 劒舞로써의 가질冠으로는 그 模形이 不滿하다
勿論 새로운 表現으로써 새로운 角度를 뵈여주러고 勞力한것같어나 衣裳과 冠의 調和가 美將『黃昌』을 象徵(?)할 壯重한 맛이없는感을주게하였다 劒춤은 自由스럽게 回轉할수있는 두個의 칼노써 打奏樂器(大皷)의 長短에 맞추어 춤을추는데 全體的으로본다면 比較的 手腕動作이中心作用으로 驅使하는 舞踊인데 너무나 變化性이 적고 또한 上身과 上枝의 流動이 없어 딱딱한맛이나며 表情도 柔軟한 表情을 많이써게되였다
좀더 內面的 搆成이雄壯하며 變化性이 豐富하였으면하는 生覺을갔게되있다『劒舞』만은 第一日公演밤보담 第二日公演의밤이 리틈의線도 明確하였고肉脈에도 力强하여 쳣날밤보담 조흔 印象을 주게되였다
劒舞도 亦是 音樂的伴奏로는 平鐵板의 打擊樂器의 音響과 追覆的으로 打奏하는 强聲的인 大皷의皷音에서 舞踊하게되였는데 이拍子的인 皷音에맛추어 下枝의 放蹴的動作과 足拍子는 强調한맛이 났어며 動作의線하나하나마다 朝鮮舞踊의藝風을 表現하기에 많은苦心을 싸흔것이무겁게 印象에 남게되였다
以上으로 나는 觀客의 한사람으로 舞踊藝術을 보기좋아하는 한사람을 二日間公會堂에서 公演한 崔氏의 舞踊(獨舞)을보고 印象된 小感을말하였다
그러나 이글이 批評을爲한 글이아니믈먼저 알아주기를바란다
當夜石井漠一行中에서도 어느方面으로나 가장優秀한 天品과天禮를 타고난 우리의 舞踊家 崔承喜氏에 對하야 讚詞할길이 다할배없다 均整된肉體와 達練되技術은 그만두고라도 正確히把握한 藝術的 創意性과 藝術的悟性은舞踊作品 에實現化하여있으며 獨自的 創作鏡地를開拓한 角度는 舞踊家로써 가출모-던 要素가具 한有福한舞踊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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