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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회고 「장한몽」과 「쌍옥루」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번역 회고 「장한몽」과 「쌍옥루」 飜譯回顧 「長恨夢」과 「雙玉淚」
종    류 수기 手記
필    자 조일재 趙一齋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4-09 昭和九年九月
면    수 234 (234)
기사
[사진] 두 여인
지금도 길을 지나다가 무심히 아히들이「大同江邊散步하는 李守一과沈順愛」하는 노래소리를 드르면 저도모르게 발을 멈추고 한참 귀를 기우리다가 도로가군, 가군한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興분이 가슴한편으로 어오름을 닷는다.
생각하면 벌서 녯날일이다. 내가 明治文豪 尾崎紅葉의「金色夜乂」를 長恨夢이란 일홈으로 변안하여낸것이 그것이 已未前이엇스니 벌서 二十餘年의 歲月이 그사이를 흘넛다.
그 내나이 스믈일곱살이다. 지금갓흐면 二十歲만되어도 조선靑年도 先輩의 創作과 飜譯을 通하야 小說과詩等 文藝的 敎養을 쉽사리 어더가실수잇섯지만은, 二十四五年前, 우리가 靑年일에는 한각의小說, 한편의詩歌를 어더보기가 참으로 어러웟다. 겨우 刊行物로는 每日新報가 잇섯고 雜誌도 六堂의 「靑春」과 「少年」과 「아이들보이」들이 잇섯슬,
先輩로 마질사람이 오직 한분이잇섯스니 그는「鬼의聲」「血의淚」를 쓰든 偉大한先駈者 李人稙氏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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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恨夢」을 飜案함에잇서 가장 重要한 내意見은
1 事件에나오는 背景等을 純朝鮮냄새 나게할것
2 人物의 일홈도 조선사람일홈으로 改作할것
3 푸롯을 過히 傷하지안을 程度로 文彩와 會話를 自由롭게 할것
이세가지엇다. 그래서 제일 苦心한것이 「長恨夢」속가장 華麗하자 重要한 骨子인「熱海의海岸」의 그 愁歎塲을 어듸로 할가, 朝鮮江山의 어느모통이에 移植하면格에 마즐가? 함이엇다.
나는 原作을 두세번 읽으면서 내머리속으로 서울附近으로 할가, 漢江에 구품처 흐르는 물결이잇고 노돌강변이 水石이 매우 아름다우니 여기에다가 두靑春男女의 主人公을 세워노코 「정월열나흔날」 달을 처다보면서 사랑의 怨恨을 속삭이게할가 그러케도 생각하엿다
그러나 다시생각하면 熱海라하면 全國的으로 有名한名勝地다. 紅葉이 熱海를 擇한것은 一代의苦心을드려, 적어도 文學史上으로 그다운 일홈을 千秋에 날니고저하여 그러함이엇슬, 그러타면 絶景이라고못할 漢江沿岸을 갓다쓰는것이 엇전지 한증 格에 러지는 着想인듯, 이리하야, 仁川萬國公園附近도 생각하엿고, 晋州矗石樓도 생각하여보다가 結局 第一江山인 平壤으로擇하엿다. 이러케 생각이 결정되자 마츰 신문사일로 平壤을 단녀올일이잇서, 매우 흥분하면서 平壤으로갓다.
大同江을 다시한번 有心히 보앗다. 달밤에 浮碧樓로도 올너가보앗다.
乙密台, 綾羅島, 牧丹峯등을 휘-휘- 들너보앗다. 이에 내머리우으로는 李守一과 沈順愛가 둘이 거러다니는 모양도 보엿다 金重培의 寶石 손락도 보엿다. 崔滿慶이도 보엿다. 달비치 흐르는 樣々한 저大同江물, 그우으로 一陣淸風이 스처지나갈 배락이도愁心歌도 아닌, 새로운 樣式의 悲歌 한曲調가 귓가를스치고 지나갓다.
○능라도 숩풀사이로 우지지는 리소래, 七星門기둥에 비 우스러한 달밋, 모도다 나의 붓을 激勵하여주는 絶景이엇다.
나는 흥분하며 서울로 도라갓다.
그래서「かるた會」를「윳노리판」으로 金小史의집의一塲面을 만들고, 곳계속하여 大同江邊의 塲面을갓다부첫다. 정직하게말하면 나는 大同江岸의 正月十四日 月明夜의 두 사람의 悲戀을그리면서 우럿다. 少年情熱에 러오르는 마음의 불길이 그냥 눈물이 되어 러젓다. 움지기는 펜을 몃변 버렷든가, 버리고는 벼개로 얼골을 부비면서 울엇든가, 내自身이 돈문에 사랑하는 녀자를 일코 失戀, 落魄의 靑年의몸이된듯 李守一이 곳 내인듯, 沈順愛는 내가 그립어하고 늘 에보든 未知의 愛人인듯, 그愛人이 富者를 라 사랑의길을 달니드딜 엇지써 悲痛하지안으랴,
내 原稿紙는 눈물에 点々히 저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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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에도 高利貸金業者가 되어 李守一이 어더맛고서 病院에 入院하엿슬 順愛가 니우치는 가슴을안고 차저올 그 塲面을 그릴적에도 나는 울엇고 白樂觀이李守一을맛나「사람에다시도라가라」고 勸하든 대목에도내自身은 울엇다.
아지못게라 나는 이러캐 울며쓴 「長恨夢 을 몃사람의 靑春들이보고 울어주기나 하엿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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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苦心한것이 일홈이엇다. 高等學校 生徒「間貫一」를 무에라할가 나는 姓은 보통잇는 「李」哥를어오고 그사람은 오직 한사람만 직히는 純眞無垢한 靑年이매「守一」이라하엿고, 「お宮」은 비록 한번 그릇하게 마음을 먹엇스나 그性質이 업시 부드럽고 順한 女性이 엇기에「沈順愛」라하엿다. 그밧게「金重培」「崔滿慶」모다 그럿듯하게 생각나는대로 부첫다.
그런중에 지금 생각하여도 가장 愉快한 것은 「白樂觀」이란 일홈이다. 이일홈만에는 나는 自信이잇다. 그리고 가장 내마음에 드러맛는 愉快한 일홈이다. 그活達하고 豪放하고 義理에 굿으며 主가 實하고 그리면서 어듸지든지 樂天的인 이男子의 일홈을「白樂觀」이라고 부친것은 나는 잘表現된 일홈으로밋는다
白樂觀을 晋州郡守로 보낸것도 何必만흔 郡中에 晋州를擇한것도 嶺南人의 性格이 白樂觀이 政治하기에어울너서가 안이엇든가
나는 長恨夢의 讀者로부터 만흔好評을 밧으며 그當時 오직唯一의 日刊紙이든 每日申報에 連載하든것이거지반 終末에 갓가워오자, 當時 編輯局長의 勸도잇서다른小說을 飜案하기로 생각하고 이것저것 뒤적어리다가 菊池幽芳의 「己が罪」를 着手하여보려하엿다.
그 題目을 나는 「雙玉淚」라하엿다. 가튼슬품의 小說이지만 長恨夢에는 長恨夢으로의 맛이잇고 雙玉淚는 雙玉淚로서의 맛이잇섯다. 그것을 題目에서부터 表明하여야한다. 이리하야 하나는 「長恨의」 한아는 「두줄의눈물」에 意味를부친것이엇다.
「己が罪」는 내게잇서서는 참으로 印象깁흔 作品이엇다. 그것은 내가 십오륙세 되엇슬 하로는 엇던친고가 나를 차저와서 이小說이약이를 구수하게 하여들려 주엇다. 나는 그이약이에 퍽으나 感觸을 밧엇다. 그런뒤 다시 四五年이 지난뒤 그原冊을 어더다가 나는 읽어보앗다. 이약이듯던보다 더한 깁흔印象을 밧엇다. 그뒤에 나는 생각하엿다. 조선청년남녀의 精神的 糧食을 주기위하야이小說을 「조선것」 으로 옴겨노아야 할날이오리라고,
그래서 내 내손으로 이것을 成就하여노흔터이다

李基世, 尹白南, 金陶山 여러동무가 長恨夢이나 雙玉淚를 演劇으로 며가지고 演出하엿고,  活動寫眞으로지 脚色되어 스크린에 李守一, 沈順愛가 나올 지금도 그옛날 飜案하든의 생각이나면서 알수업는懷古的 센치멘타리즘에 쓸리는것을 엇지할수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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