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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시평―금일의 악단이나 영화계가 문단에 비해서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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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음악 시평―금일의 악단이나 영화계가 문단에 비해서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모르겠으나― 音樂時評―今日의樂壇이나 映畵界가 文壇에比해서 얼마나 뒤떨어저있는지모르겠으나―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이호 耳豪
출처정보 인문평론 人文評論
연    도 1940-02 昭和十五年二月
면    수 110 (110)
기사
今日의樂壇이나 映畵界가 文壇에比해서 얼마나 뒤떨어저있는지모르겠으나, 左右間 한걸음 뒤떨어저서 걷고있는 것마는 否定할수없을것같다.
더크게 文化界를 휘몰아보아 그 가운데서 樂壇만치 초라한 꼴을하고 있는것도 또없으리라.
無知性, 無秩序, 混沌, 亂視 等等 오로지 不名譽스러운 位置에 머저저있는것이 오늘날의 音樂現狀이기도하다.
쩌─나리즘上에서 優待를받는 音樂──樂壇이, 朝鮮만치 繁榮한곳을 보았든가라고묻고도싶으리만치, 기실 그러한 現象은 쩌─나리즘의 幼稚性과 無定見의 綻露에 不過한것이었고, 設或 쩌─나리즘위에 세워진 音樂市場이 隆盛한것같이 보이는 錯覺으로말해도 結局은, 樂壇自身이가진 亂視的歸結에 틀림없는것이다. 一列從隊로 늘러선 天才 豫備軍을 雜동산이로보지못하는 視覺으로말하면 반드시 音樂的敎養의低位와, 또는 쩌─나리즘의 外入에서 誘發된 神經衰弱症으로밖엔 볼수없는것이다.
바꾸어말하면, 朝鮮의 樂壇의 混沌狀態는, 傳統 亡靈의 欠如에서도 說明될수있다. 진절머리나도록 天才가 簇出하는原因도 거기에있고, 無秩序와 分裂도 거기있다고 斷言할수있다.
朝鮮樂壇은 마치 써─커스와같지않으냐고 할사람이있지만 실상 써─커스나 마찬가지로 뒤들섞거리고 있으면서도, 이렇다할만한 實質性을 가지지못하는것에서보면 怪異치않은소리같다 써─커스가 帳幕을걷우고떠나간 뒷터가, 얼마나 空虛하고, 哀처롭고, 愁憂한 것인가를 우리는 잘알고있다. 마찬가지로 朝鮮樂壇이 걸어온過去, 작으만치 지난一年동안의 뒷길을 살핀다 하더라도 써─커스가 지나간 뒷자리와같이 허전한 느낌이 휘돌고있다. 보기좋은 개살구라더니 朝鮮樂壇 역시그런것같다.



音樂家를 攻擊말라!고하는것이 오늘날의 樂壇的常識이다. 그것에는 意識하고있든 않든간에 어깨를 견우고 거닐고있는 姉妹藝術壇의 音樂的 無智를 惡用하고있는 一種의 俗物的自處心理고, 또 한가지의 錯覺은 쩌─나리즘上에서 誇張된 五段的記事에 起因하고있는 虛實때문이다. 어떠한 나라 어떠한 藝術界에있어서도 朝鮮樂壇만치 美辭麗句와色彩, 虛僞와 非音樂的文章이, 根抵와 眞實을 支配한일은 없을것이다.
朝鮮樂壇에서 流行한 文化的 惡德은 美辭麗句, 自負, 大言壯語에끄친다고할수있다. 어떤者는 그것을 眞實로 取하고, 쩌─나리즘은 북을쳤다. 북 소리인줄알면서도 북소리가 眞實로 되어버린 歷然한 表徵이 얼마든지 休紙筒으로 들어간것을 指摘할수있다.
眞實한 音樂家란 뉘든지 그의 활(矢)筒속에 아포롱의 활살이 한개 들어있어야한다.



新年號 新聞特輯 몇개의座談會가운데있는 音樂에關한 文章을(純全한 音樂座談會는아니지만)보면 映畵人이니 作家니 詩人이니하는 이들이 音樂에 關心을 가지고 있는것 쯤은 짐작할수 있었으나(그關心조차 가벼운 푸레이딩에對한「當て場の」雄辯에 지나지않지만) 眞正 音樂이무엇인지를 理觧하지를 못하고있는것같다. 一一히 꼬집어낼 餘地조차없지만 音樂의外廊을 삥삥 휘돌고있을 뿐이지 그核心을 把握한 단한마디의 言說도 찾아낼수가없다. 말은 달라지지만 토─키─監督(作家)에게 要求하는것은 도, 레, 미, 파, 소, 라, 시, 도, 式 의樂典도 音樂理論도 아니다. 첫째 朝鮮의 旣成監督에게 忠告하고 싶은것은 첫째 音樂쎈스, 그리고 音樂的 귀다. 音樂理論을 토─키─ 作者가 修得하는것은 壯大한欲望에끄칠뿐, 爲先, 音樂을듣고들어 귀를 기를일이다.
적어도 藝術家──文化人이 藝術──音樂을 論議할 境遇로말하면 恒常 文化的인 뷰─·포인트를 固守치않아서는 아니된다. 低廻趣味에감겨서 시시덕거리는것은 決斷코 보기좋은 그림이아니다. 作家나 詩人이 音樂을 이야기할때, 더구나 樂壇의 現象을 論點에 모아올때로말하면, 그가 自己의專門밖의 藝術에屬하는 이야기라하더라도, 結局은 그自身의 敎養의 一端을 表示하는것이니만치, 부지럽슨「氣取り」는 삼갈일이다.



라디오 第二放送은 지난해 가을부터 여러가지로 改善할랴고 努力한 자최가 보이었으나, 音樂放送에있어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것은 放送管絃樂의 充實과 指揮者 洪蘭坡의努力이다. 放送 管絃樂團의 流行歌伴奏는 問題外로 하고라도 지난번(一月五日) 未完成交響曲의 演奏는, 負弱한 멤버로서는 相當한 進境이라할수있다. 그리고 音樂放送푸로 編成에있어서 現在以上으로 要求하기는 어려운일이겠으나, 가끔 귀를 거슬리게하는雜군을 一掃할일이다. 이미 지난해에 屬할 토빅크지만 獨逸서 돌아온 李愛內피아노獨奏會(十二月)는 期待에 저바림이없었든 깨끗한 하룻밤이었다. 그러나 雜點은 그의技術이나 藝術的態度에있어서 몇가지 看做할수없는것이있었다. 어떤사람은 단지 피아노技術말을 云云해가면서 激讚한것을 보았지만, 오늘날의 演奏水準에비처봐서 技術一點만을 問題로하기에는 너무나 古色蒼然하다. 批評이랄것이아니고 一種의感想으로서는 取할랴면 取해도 相關은없으련만──要컨대, 李愛內의 演奏는, 오늘날 朝鮮樂壇의 演奏水準에비처봐서는 第一段에올라설수있다. 그러나 藝術的으로봐서는 아직도 高度한것은아니다.
耳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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