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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제금광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소년 제금광 少年提琴狂
종    류 수기 手記
필    자 이규희 李圭熹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40-01 昭和十五年一月
면    수 248 248
기사
열일곱살때였다.
하로 四十五전이란 일급에 목이매여 十리가넘는길을 멀다 하지안코 강기정(岡崎町) 어느 고무공장의 문을 드나들든 시절이라, 그때쯤은 음악이란것에 취미를 가저보기전에 하로라도 야없(夜業)을 더해서 돈머리를 올니자는것이 당면의 긴박한 문제였다. 더구나 악기(樂器)를 소유한다는것은 생각하는것 부터가 엉뚱한일이 안일수없었다. 그흔한 하모니까 하나도 작난해보지못한 그판이였다.
그판에 정말 거짓말같은 사실로 바이올린을 사가젔다. 헐하게 들구나는것이긴 했어도 마치 꿈속같은 기뿜이었다. 그것은 바로 앞집에서 셋방사리를하고있는 전기회사 공부의것이었는데 그가 하구한날 이웃이 귀가솥을만큼 베걱대면서 연해 눈을 슬슬감든 그 진귀한 물건을 기여히 사가젔든것이다. 그는 세간을 모두 털어파러가지고 큰꿈을안꼬 만주를 바라고떠나면서 一금一원야에 내게다 넹겼던것이다. 스스끼(鈴木) 八백호라나 그때시까로는 四원도 넹겨한다는 물건이었다.
어머니의 불평도 모른체하고 이것을 사가진 나는, 공장에서 도라와서나, 또는 노는날을당해서 조금치라도 내게 자유스런 시간만허여되면 게니때를 잊고 열심으로 삐걱댓다. 맨첨에 익힌것은 「아리랑」인데 차차로 「방아타령」「양산도」「수심가」 그밖에 좀쉬운 서양곡조며 재미있는 유행가등속이 곧잘내 손끝을 통해서 우러나오게되었다. 물론 악보를 볼줄아는것이 아니고 대중해서 비슷하게만 음률이나오면 내딴엔 큰 성공이었다.
이러케 열중하는 동안에 어느듯 맘을 온전히 거기에다 사로잪여버렸다. 그래서 한동안 음악가로서출세할것을 꿈꾸게되자, 이 바이올린을 관련식혀서 엉뚱한 공상이, 마치 여름하늘의 구룸송이처럼 한정없이 피어올났다.
그 한조각의 공상은 이러했다.
우선 나는 순전한 자습만으로 제금연주가로서 훌륭히 성공한다. 날같은 천재적 음악가를 가젔다는것은 조선뿐만이아니라 실로 동양의 자랑이라고, 각방면으로 부터 격찬과 격려가 놀납다. 사실 내 손끝에서는 그 독특한 유창화려한 음조를 따라서 천재의힐광이 빛났었다.
그래 웅도를 품고, 동경악단으로 진출한다. 곧 만도의 인끼는 불등하야 어느자리에 가든지, 내 독주회가 화제의한판을 이룬다. 무슨큰일이 난듯이 술넝해진 분위기에쌔여서, 그야말로 만강의 환영속에서 마침내 일비곡공회당(日比谷公會堂)은 터저나간다. 긴장과 환히에 빛나는 수十만의 눈동자! 우뢰같은 박수! 아아 감격의파도, 파도의 연속이였다. 도하의 각신문에는 당대의 유명한 음악평론가가 다토아 집필한다. 전대미문의 찬사가나열된것은 말할것도 없다. 스스로 동경악단에 군임하는 영광을 가젔든 것이다.
나어린 천재제금가의 전도는 축복밭었다. 유사이래 초기록의 성적을 지으면서 일본내의 저명한 각도시를 순방하야 연주회를 갖는동안에 유력한 후원자가 주체할수없을만큼 미여든다. 그래 그중에서 가장 조타고 생각되는 사람의 후원을 받어 세게일주의 게획을 세운다. 게획은 아무 지장없이 순조로되여 百萬인의 전송을 받으면서 횡빈(橫濱) 부두를 하직한다. 물머리를 차고 넘을수록에 힘은 百배, 千배, 로 벅차오르고 히망의 피안에는 오로라가 뻐첬다. 가도가도 바다, 섬하나 없는 망망한 바다에 달빛이 비첬을때, 참으로 자연은아름답고 큰것에 탄복했다. 그 아름답고 큰 자연과 입마추고 노래하는 내 예술은, 그 자연보다 더 아름답고 큰것이 아니면안된다. 이런 불같은 정열이 五관에서 힘차게 샘솟아올났다.
미주(米洲)전토를 석권하면서 내 예술은 전미주악단에 진감을 주었으며, 그나라국민들은 모두 세게적성사(盛事)라하야 내발이 이르는곳마다 군중은 구름처럼 모여드러, 대통령의 정치연설회장을 방불케한다.
이러케 조야명사의 환대를받고 민중의 숭앙의적(的)이되면서 열국을 역방하는 도중에는 로맨스도만타. 나는 진실로 세게에서 제일가는 행복자다. 세게여성의 흠모를 한몸에받는채 영국의 어느 공작의 무남독녀와 결혼한다. 공작의따님이 천하에 제일가는 미인인것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공작은 천하에 제일가는 부자다.
예정대로 세게일주를 마추고 고토를 다시 밟는날부터 국가의 적극적후원과 처가의 재정적 원조 밑에 내 이상은 실현한다. 곧 금수강산을 배경으로 이따에는 세게음약예술의 중심지가 꿈여지는것이다. (以下紙面係略, 妄想多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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