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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의 감명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지휘자의 감명 指揮者의感銘
종    류 수기 手記
필    자 홍난파 洪蘭坡
출처정보 문장 文章
연    도 1939-11 昭和十四年十一月
면    수 243 243
기사
昭和十四年 七月 二十三日밤, 京城放送局의 第二放送 夜間「프로」에는 京城放送管絃團의 管絃樂演奏가 있었다. 모오차알트作 交響曲 第四十一番 C長調(一名 쭈피터—交響曲)——.
이것은 十三萬餘의 放送聽取者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닌 平凡한 또는 當然한 일임에 틀림이 없었을것이다. 그러나 朝鮮에 放送事業의 歷史가 있은지 十有餘年. 그리고 放送管絃團이 생긴지도 四五年이나 된 오늘에, 交響曲의 全曲演奏란 이것이 처음일뿐만 아니라, 極히 少數의 멤버어로 이 歷史的 演奏를 決行한 裡面에는, 第三者로서 헤아리지 못할 온갖 苦心과 努力과 感激이 숨어있었음을, 우리는, 눈물겨웁게도 잘 記憶하고 있다.
朝鮮에서 交響曲團體를 만드러 보겠다는, 생각은 오래前부터 樂人의 머리에서 쉴새없이 往來했던 것이요, 또 數三年 前에는 이의 實踐運動의 第一步를 내듸진적도 있었지마는, 人材의 缺乏과 經費難으로 因하여, 所期의 目的을 達成치 못한채로, 우리는 今年에 들어서서, 하르빈 交響樂團과 東京 新交響樂團의 二大團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은 確實히 우리에게 있어서 多幸한 일인 同時에, 부끄러운 일이었다. 七十萬府民이 살고 있는 文化的 大都市 京城에 交響樂團 한아쯤은 우리의 體面을 爲해서라도 絶對 必要한것임에도 不拘하고, 우리는 이것을 所有하기에 必要한 아모런 好條件도 가지지 못했슴을 생각할 때에, 새삼스럽게 長太息이 나오는것이다.
이때에 있어서 京城放送管絃團은 貧弱하나마, 그대로 우리가 가진 唯一의 管絃樂團인만치, 우리는 이것을 土臺로 하여가지고, 앞날의 大交響樂團을 만들기 爲하여, 基礎的 工作을 해오는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七月 二十三日밤, 우리는 마이크로폰을 通해서, 交響樂演奏의 火蓋를 뗀것이다
百度에 가까운 炎熱. 더구나 密閉된 防音裝置室內에서의 三十分間의 演奏란, 생각만 해도 膏汗이 흐르지마는, 그러나 우리의 苦行은 炎熱에 있음도 아니었고, 空氣의 流通이없는, 外界와의 遮斷에도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忠實하고 完壁에 가까운 演奏를 해보겠다는것이 二十餘團員의 一脈相通된 氣魂이었다. 管絃樂團의 演奏란 언제나 그리해야 될것이지마는, 이날 밤 우리는 다 各各 自我를죽이고 渾然一體가 되어서, 어떤 一個의 創造物을 完成하기에 心血을 다했던것만은 事實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豫期하던 以上의 好結果를 지을수 있었다.
蓄音器의 圓盤을 通하여서, 또는 內地로부터의 中繼放送에 依하여서, 훌륭한 演奏에 귀가 저즌 聽取者에게 있어서 이날밤의 쭈피터어의 演奏는 賞讃할만한 아무것도 없었으리란것을 모르는배가 아니지마는, 그러나 各員의 滅私協調에 依한 이날밤에 演奏야말로, 貧弱한 우리로서는 實力以上의 熱演이라고 自矜하는 同時에, 各員의 마음 속에 일어난 이날 밤의 感激은, 우리의 一生을 通해서도, 그다지 흔치는 않는것이었음을 생각할 때에, 演奏者로서의 愉悅이나 指揮者로서의 感銘이 또한 옅지 않다고 생각한다. 讀者여러분은 이것을 自畵自讚이라고 웃어버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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