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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가무를 이어가는 사람들—기생 금석담—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조선 가무를 이어가는 사람들—기생 금석담— 朝鮮歌舞를 이여가는 사람들—妓生今昔譚—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목금흑 木金黑
출처정보 여성 女性
연    도 1939-06 昭和十四年六月
면    수 46 46
기사
기생은 조선의 명물이다. 외국서오는 손님이 조선을 들릴때면 조선의 기생을 한번 보고갔으면 하는것이 그들의 소망의 한가지라고 한다. 그만치 기생은 조선의 명물노 그들에게 있어 관심의 적(的)이된다.
이렇게 기생이 그들의 관심의 적이 되는데는 무슨 그들의 모양에서 라기보담은 조선고래의 노래와 춤, 즉 조선의 고전가무가 그들의 흥미를 낚는것이 제일차적의 요망일것이라고본다. 실로 조선의 고전음악은 기생으로해서 보지되여 나려온것이 사실로 이런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공이 결코 적다고 볼수없는것이다.
그러면 이 조선 고전음악의 보지자 기생은 언제부터 생기여 어떠한 경로를 밟어 나려왔나?
이조이후 수백년전부터 기생이라는 존재는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여 옛날에는 기생에게 등급이 붙어 일패(一牌) 이패, 삼패로의 구별이 있었다. 一二패는 기생, 그리고 三패는 준(準)기생을 일컷는것인데, 一패중에는 등급순서가 있다. 성적행장에 의해서 그 우열이 따저젓던것이다. 그리고 기생가운데서 관기(官妓)를 내었다. 그런데 관기의 명칭에 있어서도 광협(廣狹)의 두가지 의미로, 좁은 이미로서는 왕실(王室)에 속하게 되는것만을 일커른것이오, 넓은이미에서는 지방과 중앙을 불문하고 특히관변(官邊)에서 사랑과 옹호를 받는것을 일커렀다.
관기는 한국시대(韓國時代)에는 예조(禮曺)로부터 관자(關子)라고 일컷는 지령을 띠여서 각 고을로부터 이것을 뽑아내고, 시조(時調), 어부사(漁夫辭), 춘면곡(春眠曲), 상사별곡(相思別曲), 권주가(勸酒歌), 리무(里舞), 승무(僧舞), 검무(劍舞), 고(皷), 같은것을 배우게하고, 별감(別監), 각궁의 청직이와 및 정원령(政院令)의 가운데서 각한사람을 기부(妓夫)로서 택하게하였다. 이리하야궁정(宮廷)에대례(大禮)같은것이있을때는 진연도감(進宴都監)및진선도감(進饌都監)등 각방(各房)의 관기견습중 성적이 선량한것을 뽑아서 곡악(曲樂) 장악원(掌樂院) 및 례조에 정(呈)하고 三, 四개월을 거처 비로소 관기로서의 록(祿)을 주고 또 행수(行首), 부행수(副—), 삼수(三首)에게 맡겨서 달마다 수당도 주고, 약방(藥房) 상의원(尙衣院), 혜민서(惠民署), 활인서(活人署)에 부속해서 八十명의 정원에 이르렀으나 그후 궁중의 숙청(肅淸) 때문에 폐지 되었다.
기생이 이렇게 왕궁에 인연을 갖게된 연혁은 가고할문헌도 없으나 례악(禮樂)을 국정의 하나로 아던 시대에 여기(女妓)는 자연적으로 필요를 느끼게 되었던것으로 고려(高麗)의 악제(樂制)에 예기를 참녜케한것을 보드라도 이때에 예기가 있어서 궁중에 출입한것을 알수있는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조(李朝)에 미처서도 이런 풍습이 있어왔으나 성종조(成宗朝)에 이르러 정전(正殿)에 예악을 쓰는것은 고법(古法)이 아니라하야 례연(禮宴)에 예악을 일체 금하였다. 그리고 기생을 내의원(內醫院), 혜민서(惠民署)의 여의(女醫), 상의원(尙衣院)의 함선비(緘線婢)의 명의를 가지고 채용하게 된것은 이 금령(禁令)의 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패, 이패의 기생의 교양은 평양, 진주여학교가 있었고, 그밖에는 기가(妓家)에 있어서 가무, 음곡(音曲), 독서, 습자, 기타 시, 그림까지도 배왔다. 대개 기생은 대관(大官)의 환대와 애호밑에 생활을 하게 되는것이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상대편의 문벌, 품위를 택하야 일단 즐거움을 바꿀때에는 이것을 거절하기까지는 타인에게 허치않고, 또 여기에 배반하는 자는 제삼패로 지위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에 있어서 기생은 지방청의 주재에 속해서 입적, 교양, 락정등 기타의 모든 진퇴에 이르기까지 모다 그 지휘를 받었고, 의무로서의 보수없이 관리하던가 또는 관계의 연희석상에 나가게되여 주배(酒杯)의 간선, 또는 노래와 춤으로 자석의 흥을 돋우었다.
그런데 옛날에 있어서 외관(外官)은 대개 독신으로 부임해 오는것이어서 관찰사, 군수등은 이러한 기생으로서 울적한 심사를 푸러왔다. 그리고 중앙으로부터 순시의 제관이 나려가게되여도 이런 기생으로서 모서 그들의 위안의재료를 썼다고한다.
그리는것이 오늘에 와서는 그 조직이 점점 문화식으로 변하야 일반 고객의 수요에도 응하기까지에 이르게 된것이다.
그리면 현재의 기생은 어데서 여떻게 길리여나나? 역시 옛날과 다름없이 기가에서도 길리여 나지만 학교를 나와야 하는것을 원측으로 서울안 기생권번의 한성, 조선, 종로의 이세권번에 다 학교가 있어서 그들 기생을 길러내고 있다.
이 기생학교는 그 조직이 보통의 학교와 꼭같이 시간제로서 수업년한이 삼년으로 되었는데 어느 권번에서나 꼭 같은 방법으로 가라친다고한다.
그러나 기생은 또한 기생으로서의 수양어있어야 함으로 보통의 상식이외에 또 가무(歌舞)를 배워야 하는것이니 고등여학교 내지 전문학교의 출신이라로 가무에 있어서만은 조합의 규정에 의하야 같은 수속과 같은 과정을 밟어야 하는것이다.
수속에는 입학금이 오원밖에 더드는것은 없고 세금으로 十六세부터는 오원, 十六세이하는 그반액, 즉 이원오십전으로 바치는것은 이것뿐이고 삼년의 년한에 수업을 마치고나서 머리를 얹을때에 삼십원을 내이게 된것이다.
그런데 영업장을 얻으려면 반드시 머리를얹어야 하는것으로 머리를 얹고 안얹는데 있어서는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사요, 권번으로서는하등의간섭이 없다한다.
그러면 그 교수관목의 배치는 어떻게 되었나 오전에 네시간은 학술, 즉, 국어 산술등, 내지 체조까지 배우게되엿있고 오후부터는 가무를 배운다. 시조(時調) 노래 가사, 그리고, 춤, 이리하야 이들에게서 남 다 돌보시 않는 조선 고전의 노래와 춤이 계승되여 나려온다
그리하야 「평시조」「남청지름」「여청지름」「사걸지름」등의 시조로부터 시작하야 十여바탕의 노래 十二의 가사등을 순차로 배워야하는것인데 삼년이란 그 시일안에는 도저이 이것들의 제 종목을 완전이 다 배홀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래하면은 대개 첫바탕, 그리고 잘배워야 둘재바탕까지 배호게되는것이요, 가사에 이르러서도 일곱바탕이나 여덜바탕밖에 못배우는것이 보통이라한다.
노래 한바탕하면 듣기에는 무척 쉬운것같으나 그 한바탕속에도 상당이 종류가 많은 것으로 노래 첫바탕의 열다섯조목을 예로 드러보면
우조(羽調)—첫바탕—간발, 청조, 일소, 한숨, 남화야.
게면(界面)—첫바탕—황산곡, 산촌, 초강, ■모
롱(弄)—첫바탕—각설, 우학제갈량, 환게락사랑, 게학청산리, 화편, 태평가.
한바탕의 노래에도 이상과같은 종목이 있는것이니 용이한것이 아니라한다.
그리고 춤의 종류에 있어서도 남무(男舞), 입춤, 검무(劒舞), 승무(僧舞), 경자춤 등인데 이 경자춤속에도 춘향무(春香舞)무산양, 가연접목단, 무고, 장생무연지무, 봉내의, 사선무, 항년, 육화대, 수연장등 九十여 종류나 되는것을 다배울수는 도저이 없는것이라고 보통 승무, 검무 등의 간단한것 몇가지를 배흔다고 한다. [사진] 기생 교습 장면
그리고 또 이 춤에 대해서는 그들 동기에게 배흘 시간의 여유가 있다 하드라도 그춤법을 아는사람이 없다한다. 다만 한성권번(漢城券番)의 장계춘(張桂春)씨가 그 수많은 춤법을 다 알기는 아나 이미 년로 (八十)에 할 수가 없어 동기에게 가라키는것은 별문제로 그가 세상을 떠나면 조선고래의 그수많은 춤법은 그 밑에서 배우는 한성권번의 기생들이 약간 흉내를 내일것뿐으로 張씨와같이 영원이 잃고 말을 염녀가 있다고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기자는 기생을 한낱 유흥의 대상으로만 보랴고 아니하고 조선 민속예술(民俗藝術)의 보지자로 사랑하고 싶은것이 이 기사를 취급하게 되는 소이인것을 특히 여기 말해두고 싶다.
남을 위하는것은 흖이 자기 히생에서 생기는것이여니와 이 또한 그들의 눈물겨운 사정이 저도 모르는 가운데서 이렇게 노래와 춤을 보지하여 나려오게 되는것이니 남다 천이 여기는 기생이란 그 영업이 제자신으로선들 향그러울리는 없을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야 그들은 하고많은 직없가운데서 하필기생이 되고저 기생학교들을 찾어왔나 그들 자신으로부터 동기가 되기까지의 그경로를 드러보기로하자
H권번의 동기 B
『우리집의 식구는 어머니, 오빠 그리고 저까지 이렇게 셋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두살적에 도라가셨다니까 저는 얼굴도 모르지요. 그래서 어머니 혼자 우리 오누을 다리고 싻빨래와 싻바느질이라 이런 품을 파라서 생활을 지탕해왔다고 합니다. 그리다 오빠가 소학교를 드러가게되니 학비의 부담이 우리구차한 집안에 무겁습니다. 지금은 소학교가되여서 그럭저럭 지나는 가지나 이제 소학을 나와 중학을 드러가게되면 학재를 대여야 될것이 저로 하여금 이런길을 밟게 만든 것입니다. 여학생들이 부럽지 않느냐고요? 웨 부럽지를않겟어요 저도 남과같이 책보를 들고 제복을입고 학교로가서 공부가 하고싶어요 그러나 저는 제 신세를 그리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빠를 위하야 이런길을 밟었으니까요 오빠가 잘되는것이 제가 잘되는것보다 났지않겠어요.』
O권번의 동기 H
『기생을 웨 배우느냐구요? 돈버려고 배우지요. 뉘가 그게 좋와서 배울사람이 잇겠어요 우리아버지는 막버리를 하구요, 어머니는 남의집에 안잠으로 사러요 양복점에가서 풀칠을 하여주다가 작년에 이리로 드러왔지요. 부러운것이 무엇이냐구요? 그저 저두 남과까이 학교에가서 공부가 하고싶어요』
그들이 동기가 되기까지의 경로는 대개 이러한 생활란에서이다. 남과 같이 제복을 입고 책보를 끼고 학교로가서 공부가 하고싶은것을 자나 깨나 잊지못하고 그들과의 세게와는 너무도 동떠러진 노래과 춤을 배우는 것으로 일을 삼어야 하는것이니 아! 이 동기의 세게에서는 알뜰이도 배우고싶은 향학에 목마른 아름다운 동경의 꿈이 노래와 춤속에얼마나 썩어저 나는가? 현재 서울 안 한성, 조선, 종로의 이 세 권번에서 근 사백명 동기가 길리여난다니 인제 이들이 三년이란 년한을 마침과동시에 비로소 한사람의 부끄럽간은기생으로 머리를 얹고 정식으로 손님을 대하고 나서는 날이면 그들의 첫 수입이 대저 백원은 다 넘는다고하니 이것으로 그들의 생활은 족히 완화가 될것인가 그리하야 눈물에 젖어드럿던 동경의 꿈을 완전히 있게스리그들의 가정에는 기대와 봄바람이 과연부러올것인가 [사진] 기생들의 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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