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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적인 음악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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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서론적인 음악극론 緖論的인 音樂劇論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박용구 朴容九
출처정보
연    도 1939-06 昭和十四年六月
면    수 20 20
기사
一, 序 言
最近演劇에새로운 舞台樣式探求에잇어서 演出家들의 舞台形象化에當하야 音樂에對한積極的要求가 重要한課題로되여잇는듯십다. 演劇속에音樂이滲透할수잇다는可能性은 토—키—藝術이 演劇에게밋친여러가지影響中에서도자못큰것으로서 演劇과音樂의交流는 二十世紀演劇이비저낼 새로운舞台樣式의 스크류—라고 말할수잇으리라.
그러나 엇던새로운舞台樣式이맨드러진대도그것이『드라마․트루기—』우에세워저야할것임은 贅言을要치안을것이니 万一 그러치안타면 이는正히外道요 演劇의墮落일것이다. 그럼으로 나는여기서 우에말한舞台樣式의드라마․트루기―에對하야『오페라․트루기―』(라고나할가)우에선『音樂劇』이라는 새로운쟌루를提唱하려한다.
그러면 四五百年에歷史를가진『오페라』와音樂劇과의關係는如何.
집어말하자면 音樂劇은 그릇된美學우에선『오페라』의그릇된傳統에피리옷을고 그속에짓발폇든眞實로價値잇는遺産을發展하는樣相에서繼承하야 演劇과音樂의相互滲透作用으로生起되는새로운質․獨立한한개의쟌루를일우는것일것이다.
于先 『오페라』의歷史를檢討함으로서 淸算해야할殘骸物과 빗나는遺産을가려내기로하자
一, 『오페라』의生成과變革
『오페라』는 希臘悲劇의觀念上의後裔이다. 中世紀의諸侯와僧侶의鐵甕城을헤치고擡頭하는都市市民階級에이데오로기—인『휴매니즘』이가저온『두녯산스』古典復興의精神속에서『오페라』는비저지엇다.
그러나 事實的으로는 希臘音樂의性質은 當時에이미不明한것이엿으니 이는다만希臘悲劇이『디오니소스祭』의『듸튜람보스』(酒神頌歌)合唱에서 發生하엿다는事實——卽그精神만을引繼한데지나지안는것이였다. 周知된바와갓치『오페라』運動은 十六世紀末후로—렌스 宮廷에모히는 音樂家․詩人들이운貴族的크릅 當代의가장새로운인테리겐챠的저너레—슌들로서 이르켜지엇다. 그의舞台는豪華한宮廷의大사롱이엿고 그의演唱者는그貴族的크릅이엿으며 그의聽衆은王候以下부르조아․아리스토크라시—들이엿다. 그럼으로 『오페라』와支配階級과의因緣은사못깁퍼서 조흔意味로나납분意味로나 幻惑的貴族的인것이한갓傳統을이루엇으며 그의相當한役割지도하엿으니 帝王의 封建諸候懷柔에作用하야 政治的으로 封建諸候의宮廷貴族에로의傳化에힘쓴바잇엇다.
初創期『오페라』의한가지特長은 그의世界的性格——嚴格히말한다면西歐的性格——이니『오페라』가비록 伊太利에서 生成되엿으나 伊太利의音樂傳統은 紀元六世紀頃에羅馬法皇그레고리—一世』가 俗稱『그레고리—旋法』으로서 曲調에中央集權化를行한直系國이니만치 그間幾多의曲折이잇엇으나 그性格은非地方的이엿으며『오페라』가 이갓튼世界主義的傳統을繼承하엿을것은 可히짐작할수잇는것이겟다. 더구나 當時의『휴매니즘』思潮와歐羅巴의 地方政權에서民族國家形成에로의趨勢는 强引히世界的性格으로 伊太利『오페라』를 規正햇다. 한世界的性格을가젓음으로서 伊太利『오페라』는北으로 版圖를넓여 世界歌劇史上에 絶對的影響力을밋친바도되엿다할것이다. 셋재로는 劇中人物의 類型的․沒性格的인點을指摘할수잇다. 古典(希臘) 喜劇의復活을한(코메듸아․데․랄테』속에써 卓越한性格描寫를자저볼수업는것과갓치 비록演技者들이假面은쓰지안햇으나『오페라』에는生活하는個性이안이라 움지기는類型만이잇엇다. 더구나 얌전한上流階級을顧客으로 하여야될宿命을지닌『오페라』는 市井에서레—존․데—틀을가젓든『코메듸아․데․랄테』보다 一層『性格의貧困』——類型化의길을발밧슴은必然的이랄수밧게업다. 그밧게 音樂에內容이가진 엇던 瞹昧․不明瞭性 歌手의性格的演技의困難等은『오페라』作家로하여금安逸한類型化의길로『오페라』를運命지우고말엇다.
十七世紀에이르러『오페라』의물결은 北으로흘너갓으니 伊太利에서는世紀初에 大作家『몬테베르데—』를낫엇을 貴族․豪商의快樂主義는 男性쏘프라노歌手의偏愛로기울어『오페라』에드라마틔傾向을아리아樣式에로, 그리하야 作曲家의難曲歌手에의隸屬은 오랫동안伊太利오페라로하여금 墮落의구렁을向케하엿다.
이에反하야 民族的昻揚期엿든十六世紀에『쟌우킹』『투쥬—』第一聯의휴—매니즘作曲家를내인佛蘭西의十七世紀에는『쟌․바프티스트․튤리—』가나서 佛蘭西世俗歌謠의攝取 音樂的데크라마시옹(朗頌法)等을비롯하야 그가開拓한佛蘭西國民歌劇의길은 『그륙크』를準備하엿다.
獨逸에서誕生하야 伊太利에서修業하고 巴里에活動舞臺를發見한『크리스톱․뷜발트․그륙크』는 그의生涯와갓치 오페라에나타나는伊太利의主情主義와佛蘭西의唯理主義의批判的攝取우에 獨逸의重厚한器樂的手法을利用하야 맛치갈래へ든리우에亨々히선樹本처럼 오페라史上에 偉大한改革의一폐—지를지엿다.
우리는좀더『그륙크』에머므르기로하자. 十八世紀의佛蘭西는 새로운社會秩序로더부러 헤도니스틱한宮廷藝術의嚴然한領土에 市民感情이徐々히侵入하든時期엿으니 그럼으로當時의進步的제너레—순이엿든『쟌․쟉크․루소—』를首班으로한啓蒙主義一派와『보와로—的』唯理主義우에선宮廷趣味를固守하는『라모우』派와의사이에 伊太利喜歌劇을싸고 佛蘭西史家들이『道化戰爭』이라고부르는 저有名하고현란한論爭의이버러졋든것이다.
『그륙크』는 이思想家들의思想을咀嚼하엿으니『류리—』——『라모우』의朗頌法(데크라마시옹)에正當한評價와아울러前者의主張이엿든『昻揚된人間的感情』——主情主義를吸收하야 보다더놉흔劇的統一속에 英雄主義的歌劇을完成식혓다.
이제 그의改革을簡單히들면 一, 歌劇에對한觀念의改革 卽音樂과劇과의完全한融合에의希求 二, 劇의情緖를爲한管絃樂法의大改革 序樂의重視 三, 技巧를爲한誇張된演唱의癈棄와 劇進行과動作과의緊密化 흐로『그륙크』의『오페라』가 佛蘭西的歌劇傳統의再建인同時에 그世界的性格임을看過할수업는것이니 이는 主題의普遍性——希臘悲劇에서의取材——과아울러그의地位를一層놉힌것이엿다.
다음으로는獨逸로너머가서 獨逸國民歌劇의樹立者『웨—버—』로붓터 十九世紀의偉大한『樂劇』王國을싸흔『봐그너—』에論及함이順序일것이나 여긔서잠간正歌劇(오페라)를나 喜歌劇(오페라․풉파—(伊 오페라․코믹크(佛))에關하야 簡單히述키로한다.
正歌劇이 絶對君主制的貴族의藝術內容에對應하는形式으로出發하엿음에反하야 喜歌劇은 市民階級의誤樂으로出發햇다. 그럼으로生成期의喜歌劇은 正歌劇中 에서알니워진『아리아』에다가 自己네들口味에맛는歌詞늘뭇처서질겻엇다. 그러니■喜歌劇은次々市民階級의鞏固한支持밋에서 藝術的에로成長하야 불조아民主々義的藝術內容에對應하는形式을가추기에이르럿스니伊太利에서는 十七世紀末에서 十八世紀 『스칼랫틔———『벨고레—지』에依하야 確固한伊太利喜歌劇의民族的規模를가춘創造를보게되엿고 佛蘭西에는 前述한『道化戰爭』이指示하는바와갓치 革命前夜의市民的熱情이 喜歌劇에隆盛을가저왓다.
그러나 이불조아民主々義的藝術은 맛침내한사람의『모리엩』을갓지못햇고 雅典喜劇의辛辣한諷刺 『코메듸아․데․라르테』의風俗描寫 『코메듸—푸란세—』의안삼물 그어느것하나에나밋지못하고말엇다. 十九世紀에『조르주․비제—』가 이領域에빗나는曙光을보엿으나 그가早世한後 今世紀初에『쿨드․봐일』『三女오페라』에서 注目할만한境地를開拓하엿을 山谷의聖處女와갓흔 喜歌劇의 無盡藏한魅力은 喜歌劇의正統的遺産을繼承할이世代압에 통채로가로노혀잇다할것이다 獨逸의浪漫主義는 일직이『괴—테』『실렐』音樂에서는『베—토—벤』에 發展的浪漫主義를가젓고 그럼으로獨逸의十九世紀는 이미『前衛的인市民階級的理想의反映』이기를치고 보다더 幻滅과폐시미즘에透徹한 個人主義的傾向을갓기에이르럿다.
그럼으로 十九世世紀半에登場한『릿히알트․봐그넬』이 詩 音樂 演劇 美術을휘몰아 綜合的인壯大한『樂劇』을樹立한 그藝術內容은『쇼펭 하우엘』의厭世哲學으로 一貫된것이다.
『봐그넬』의樂劇은 獨逸浪漫主義의集大成이며 最後에聳立하는鴻大한王城이다.
그가自己의 樂劇을『베—토—벤』의 合唱交響樂(第九)의發展形態로 自負하엿든만큼, 『베—토—벤』의 이데—의形而上學的世界—純粹音樂——와, 『봐그넬』의形而上學的世界의生成과直接關係된 現實的이데— 와의사이에는 엇던共通性을볼수잇스니『樂劇은交響樂自體를外面化——表象化하는交響樂으로서 이는눈으로볼수잇고 理解할수잇는動作에依하야 結晶된다』는 그의말대로이다. 그러나 그들사이에가로노힌時代의距離는『베—토—벤』을昻揚하는 市民感情의體現者로『봐그넬』을 쇼펭 하우엘的페시미스트로規定하엿다. 『그러타. 余의 世界로부터의逃避우에「파—시활」은 그發生과 成長을 갓고잇다. 그누구가그의一生을 愉快한感情과 平靜한理智를가지고 이 組織的殺人과 掠奪의世界 虛僞와僞善이 正當化된이世界속에서 눈을바로고 볼수잇엇으랴. 엇지 로嫌惡와戰慄에 얼골을돌니지지안햇으랴』. 파—시활」上演의팜프렛트에쓴이말이가장 그의樂劇의「象徵的」이며「哲學的」인藝術內容을어느程度지 表現하고잇다하겟다.
「봐그넬」의 藝術的勞作으로서 그의樂劇을觀察할때 그의樂劇에잇어 作曲家는最高執政者다. 그는오—케스트라아니라 舞台의全機構를 自己의壯大한「音響的惡夢」——페시미즘——의再現에驅使하엿으니 詩人으로서의그는 樂劇의台本을쓸 벌서作曲을念頭에두고 이를作成하엿으며 劇的構成에잇서는 主導動機(라이트․모틔—브)로서 거믜줄처럼音樂的 劇的統一에로劇全體를얽엇고 管絃樂은 恒常事件을提示 註解할더러 이와同時에 各部分의連續과 連結을確實케하는無限旋律이採用되엿다. 그리고 在來로—맨스의線描的인形式에 適用될이엿든聲樂은 一躍하야 哲學的內容의表現에지高翔되야코스춤을입은데지나지안튼歌手에게는 內面的演技가要求되엿다.
이가가저온結果는 그의綜合藝術理論에反하야 그의樂劇으로하여금 단지壯大한音樂場面의 展開를將來햇을 劇的發展은 第二意義的意味를갓는圖解로서의役割을지녓을름이되고말엇다.
「오페라」의 變革을더듬는順序로는 다음으로「봐그넬」과 同世紀人에屬하는露西亞의作曲家「뭇쏘르그스키—」의驚嘆할만한歌劇創造에論及하여야할것이나 그의創造는「오페라․트루기—」로보아(勿論 오페라는體系化된自身의美學을갓지못햇고그러기에「오페라」는 歪曲된길을왓스나 그의歷史에서 抽出할수잇는槪念에빗추어 確實히在來오페라와區別될그무엇을가젓음으로 그의 勞作에對하야는後章에音樂劇과關聯하야 考察하기로하고 이章을맷는다.
一, 오페라에서音樂劇으로
音樂劇은 「뭇쏘르그스키—」에서出發한다. 보다도 그의歌劇作品 「보리스․고도노프」에서出發한다.
우리가 거긔서차즐수잇는것은 첫제로 音樂의「리아리즘」의길이다.
이 리아리즘의意味는 前章에말한것과갓흔「레시타틔브」의日常的對話化를 말함이안이다. 萬一 그方向으로나간다면歌劇은自滅할수밧게업스리라.
實在的生活의現實性과 創作的現實性은 峻烈히區別될것이니 作家가 作品에形象化에잇어서 現實生活을再構成하는곳에비로소 創作的리아리틔—가생겨지는것이다.
더욱이 象徵的인 音樂을 包容한歌劇쟌투에잇어서는 作曲家가現實을受容하는 作家眼에依하야 그의作品의創作的리아리틔—가 計量될것이다. 다시말하자면 畵家가 人物이나 寫象의特徵을 最大限으로 「데포르마시옹」함으로서 「不自然한眞」에到達함과갓치 歌劇作家는 台詞가가지는 言語的昻揚(인토네—숀)과 心理的內容을 音樂的으로 데포르마시옹」함으로서 創作的리아리틔—에到達한다. 이를爲하야는 勿論 리아리즘우에선台本과 이를受容하는作曲家의樂想이 全的一體가되기지 作曲家의制作力의燃燒되어야할것이나.
「푸—쉬킨」의戱曲에依한 「보리스고도노프」에서 「뭇쏘르그스키—」는「푸—쉬킨」이가진多分히浪漫的인要素를 그에게理論的指導者的役割을한友人들로 當時의有名한나로—도니키評論家「시제투누이엡스키」,「더부류보프」等의 進步的助言과改作으로因하야 이를批判的으로攝取하엿다.
卽「푸—쉬킨」과自己와의사이에가로노힌社會的 時代的距離測定을正當히함으로서 이古典的傑作을發展的으로把握하야 音樂의리아리즘樹立에지到達식혓다.
「보리스고도노프』이서『믓쏘르그스키—』는社會的存在로서人間을볼안이라 이로써規正밧는人物의典型的性格을그렷다.
이劇進行의原動力을이루고잇는『群衆』은 過去오페라에서보는 彫塑的合唱隊員이안이고 人間的 社會的인性格을갓고登場하야 典型的으로描破된『보리스고도노프』 潜稱者『듸미토리—』波蘭의令孃『마리—나』等에社會的存在를規正하여노앗다.
그리고『뭇쏘르그스키—』가 이戱曲을音樂우에構成함에잇어서 그는實로 修辭學의敵이엿라. 帝政專制인當時의情勢로보아『보리스고도노프』의上演不可能을念慮한 『시체투누이엡스키—』等의忠告로 戀愛場面揷入의必要上作曲된『듸미토리—』와『마리—나』와의舞踊曲에서지라도 우리는 華麗한리즘뒤에잇는劇的陰影과 그두男女에對한暗示를感受할수잇도록 여긔音樂은 完全히劇的이며는簡明 直裁하다. 그리고 이갓치劇과音樂이 完璧한程度로 相互滲透되야보다더놉흔形式을創造한歌劇의 完全한舞台化는 過去의獨唱家的오페라씽거—가안이고 演技者的舞台歌手에依하여서 비로소바랄수잇음은贅言을要치안는다 이갓은點——音的의리아리즘『生活』이잇는舞台와典型的性格을갓인人物 이에서오는演技者的舞台歌手의要求等——은確實히 『보리스고도노프』가 在來오페라의規範우에버서나는것을意味한다. 무슨말이냐하면——
文藝復興末期에 푸로—렌스宮廷크릅에机上에서誕生한『오페라』는 端初부터形式의觀念이『드라다』의內容보다 보다더重要視되여왓섯다. 그後『오페라』는 難曲歌手 (빌토우오—즈』의『音의曲藝』或은音樂美에의偏愛로말미암아『드라마』의內容은 漸々더等閑視되여왓다. 여기에『그룩크』의改革이잇으나 歌劇속에生活을담기에는 멀니밋치지못하야 英雄主義的主題를擇하야 歌劇의形式的均齋를갓추엇을이였고『봐그넬』은 樂劇에依하야自己의廣大한惡夢——페시미즘——을展開하엿을 그의登場人物들은 그의思想을行動하는抽象的인類型에지나지안헛다. 極言하면 한갓그의머리속에노는마리오녯트일이엿다.
이상 序言에서말한바와갓치 『오페라』의걸어온길을檢討함으로서 우리는音樂劇의方向을뭇쏘르그스키- 』에서엇는다.
우리의音樂劇은『뭇쏘르그스키—』가『보리스고도노프』에서보혀준『리아리즘의길』을繼承함으로서『오페라』의 오페라的主題의限界性과 形式主義——性格의貧困을 揚棄하고 出發한다.
音樂劇은 未來에다期待할수밧게업는課題인關係上 이小論에서는다만 音樂劇이가져야할方向만을 指示함에滿足할수밧게업다. 後日다시 稿를다시하야 그의方法論的展開를試해보려한다. (三․一六日豐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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