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문헌
검색 > 문헌 > 기사
고려시가 「진작」의 시가 명칭성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고려시가 「진작」의 시가 명칭성 高麗詩歌「眞勺」의詩歌名稱性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조윤제 趙潤濟
출처정보 신세기 新世紀
연    도 1939-04 昭和十四年四月
면    수 106 (106)
기사

固有文學 發達의 惠澤을 입지못한 高麗에서 詩歌의 充分한 發達은 本是 期待할바이 아니지마는 李朝의 勝國文獻에 對한 責任의 輕率은 더욱 오늘에 그 遺傳을 적게하야 한갓 所傳한 詩歌란것은 겨우 口傳하여오다가 後日文字에 再現된것과 或은 漢文에 飜譯된것中의 一部分인대 이것마자 李朝學人의 再三檢閱을 겪은것이니까 그數量의 寥寥함은 도로혀 當然하다 하겠다. 따라서 高麗詩歌를 體系세움에는 적지않은 不滿이 있음도 免하지 못하겠지마는 爲先 高麗에는 어떤 種類의 詩歌가 發達하였는가 하는 그種類의 名稱조차도 오늘에 넉넉히 求得하기 어려우나 어찌 생각하면 現存 高麗詩歌는 그들의 類中에서 떨어저남은 一部分, 或은 그片影이라고도 할수있으니, 이것들을 그얼마의 形式에 分類하야 몇개의 種目을 세우지 못할것도 아닌것 같다. 이런意味에서 나는 여기에 「眞勺」을 들어 그內容과 關係諸文獻을 硏究하고 또 그形式을 解剖하야, 다른 詩歌에서 이것의 獨立性을 主張하고 「眞勺」그것은 곧 詩歌의 名稱으로 볼것이 아닌가 하는 卑見을 發表하야 斯界大方에 뭇고자한다.


樂學軌範卷之五 鶴蓮花臺處容舞合役所載의
내님믈그리와우니다니
산졉동새난이슷요이다
아니시며거츠르신 아으
殘月曉星이아시리이다
넉시라도님은녀져라 아으
벼기더시니뉘러시니잇가
過도허믈도千萬업소이다
힛마러신뎌 읏브뎌 아으
니미나마니시니잇가
아소님하도람드르샤괴오쇼셔
는 三眞勺이라 하는것인대, 이것은 아직作者와 그著作年代를 明確히 指摘할수없으나 益齊李齊賢은 벌서 그의 小樂府中에 左와 같이 飜譯하였다
憶君無日不霑衣
政似春山蜀子規
爲是爲非人莫問
只應殘月曉星知(註一)
元來 益齊의 小樂府란것은 그當時 高麗에서 流行하던 詩歌를 漢詩의 形式에 譯出한것인대, 三眞勺과 이것을 比較하야 보면 처음 四句는 이漢詩와 꼭 같은 內容인것을 곧알수있으나, 이것은 아마 益齊가 一律도 節句의 形式을 取한 關係上 一首全部의 澤出에 無理가있어 意譯 或은 一部 重要한 部分만을 譯出하기에 不得已하였던 탓으로 생각 되거니와 이것이 그것의 譯詩 或은 解詩임에는 틀림이 을듯 하다.
그런대 高麗史 樂志 俗樂 鄭瓜亭條에
鄭瓜亭, 內侍郞中鄭叙所作也, 叙自號瓜亭, 聯婚外戚, 有寵於仁宗, 及毅宗卽位, 放歸基鄕東萊曰, 今日之行, 迫於朝議也, 不久當召還, 叙在東萊日久, 召命不至, 及撫琴而歌之, 詞極悽惋, 李齋賢作詩解之曰 憶君無日不霑衣, 政似春山蜀子規, 爲是爲非人莫問, 只應殘月曉星知
라 한것을보면 여기있는 益齋解詩와 小樂府의 解詩와는 서로 다른것이 아니니 三眞勺, 鄭瓜亭曲은 이益齋解詩를 通하야 제절로 어떤關係가 있는듯하고 더욱이 李世佐의 啓稟中에
眞勺, 雖俚語, 乃忠臣戀主之詞(註二라 한것은 이둘이 異名同意임을 疑心없게 하는듯하다. 즉 三眞勺은 瓜亭鄭叙가 配所인 東萊에서 召還의 命令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질래 오지아니하였으므로 스스로 嘆息하야 撫琴하며 부른노래라 하겠다.
그러면 三眞勺 鄭瓜亭曲이 必是 하나이라면 왜두가지 이름으로 불렀는가. 東國通鑑卷二十四 毅宗五年條에
流鄭叙等于遠地……(中略)……叙將行, 王謂曰, 今日事, 迫於朝議也, 行當召還, 叙旣流, 召命久不至, 乃撫琴作歌詞, 極悽惋, 自號瓜亭, 後人名其曲曰, 爲鄭瓜亭
이라 한것으로 보면 鄭叙가 歌詞는 지었으나 自己는 그에 아모 名稱도 붙이지 않었던 것을 後人이 그의號가 瓜亭이니까 鄭瓜亭曲이라 불렀던가. 그렇다면 樂學軌範에는 왜 鄭瓜亭曲이라 하지아니하고 三眞勺이라 하였을가 三眞勺이야 말로 作者自身이 부친것이고, 鄭瓜亭曲이란것은 다만 後人이 作者를 連想하야 불렀던것인가. 좀더 이兩者間의 關係를 考究해볼 餘地가 있는듯이 생각된다.


다시 다른文獻을 參考하면 太宗大王이 世宗元年에 孟思誠等에
後殿眞勺, 其音節雖好, 其歌詞不欲聞也(註三)
라 하신말슴이 있으니 이後殿眞勺은 또 三眞勺과 關係가 없을가, 後殿眞勺이란것은 忠惠王이 淫聲을 頗好하야 嬖幸으로 더부려 後殿에서 新聲淫詞를지어 自娛하였으므로 時人이 그렇게 불렀다 (註四) 하니 말하자면 後殿에서부른 眞勺이라 解釋이될듯하야 三眞勺의 三의解釋에따라서는 이두사이에 密接한關係가 있는듯이생각된다. 그런대 多幸히大東韻府群玉에 依하면
樂府眞勺, 有一二三四, 乃聲音緩急之節也, 一眞勺最緩, 二三四又次之(註五)
라 說明하야 준것이있어 三眞勺이란것은 絶調緩急 第三位에있는 眞勺이란것을 알수있으니 後殿眞勺의 「眞勺」과 三眞勺의 「眞勺」은 각각 다른것이 아니고 同一類를 規定한것이 아닐가 한다. 前記 太宗大王의 下問에對한 孟思誠의 啓稟에
上旨允當, 今樂府用其調, 不用其詞, 眞勺, 有慢調, 有平調, 有數調(註六)
라 하였고, 世宗實錄卷第二(元年八月)에는
信又啓, 中國父老, 皆誦名稱歌曲, 宮中之人, 亦誦此曲, 上王曰, 知中事掌此事, 令工妓習之奏於史臣, 孟判書, 素知音律, 其選曲調之合於眞勺者
라 하였을뿐 아니라 그밑에 眞勺을 割註하야
眞勺, 俗樂調名
이라고까지 하였으니 眞勺의正體는 거이 여기에 나타난 感이있으나 이에 一二三四의 緩急絶調가 있다고도하고 또 慢, 平, 數의 絶調가 있다고 한것 만으로도 이것이 一個 特殊詩歌의 名稱으로만 보기 어렵거니와 하물며 「眞勺은 僞樂調名이라」고까지 바로 일렀다 한다면 벌서 眞勺은 三眞勺, 後殿眞勺만이 가질 特殊名稱이 아니고 그들을 휩싸서 모아불을 一般的名稱이란것에 疑心할 餘地가 없는듯하다.
그러면 三眞勺과 鄭瓜亭曲과의 關係도 비록 異名同意라 하였지마는 全然같은 떨어지지 못할 內容의것이 아니고 鄭瓜亭曲이란것은 정말 그노래의 固有名稱이라 한다면 三眞勺은 鄭瓜亭曲類의 詩歌를 부른 一般名稱이라 할수있다. 이것은 또 다음의 例에서 더욱 明確하여질듯 하다. 卽 經國大典禮典 取才 樂工에
鄕樂, 三眞勺譜, 與民樂令, 與民樂慢, 眞勺四機, 履霜曲, 洛陽春, 五冠山, 紫霞洞, 動動, 保大平十一聲, 定大業十一聲, 進選樂, 豊安曲前引子, 後仁子, 請東方, 鳳凰吟三機, 翰林別曲, 還宮樂, 致和平三機, 維凰曲, 北殿, 滿殿春, 醉豊享, 井邑詞二機, 鄭瓜亭三機, 獻仙挑, 金殿樂, 納氏歌, 儒林歌, 橫殺門, 聖封無疆, 步虛子
라 있는바와같이 取才科目에 三眞勺, 鄭瓜亭曲이 따루 있음을 보드라도 이兩者가 全然同一體일수는 없는것이다
그렇다면 眞勺은 어떤노래에 대한 特殊한 題目的名稱이 아니고 그들種類 一般에 대한 一般名稱이란것은 틀림이 없을것이다. 이것이 또한 單純한 一詩歌群에 附與한 命名的名稱인가 或은 그들의 音樂的樂調를 規定한 音樂的名稱인가가 남은疑問이라 하겠다. 그러나 여기對하여는 實錄에 바로俗樂調名이라 일렀고 또 이에는 慢, 平 數의 三調, 혹은 一二三四의 四調가 있다하니 音樂的으로 規定한 名稱인것은 거의 틀림이없는듯 하며, 星湖李瀷는
毅宗五年, 杖流鄭叙于東萊……中略……叙旣流, 召命久不至, 乃撫琴作歌詞, 極悽惋, 自號瓜亭, 後人名其曲爲鄭瓜亭, 卽今之界面調也(註七)
라하고 또
今之瓜亭界面調, 亦哀傷流湎, 與桑問一套, 士大夫莫不學習(註八)
이라하야 鄭瓜亭曲의 樂調는 後世의 界面調(註九)에 當한것이라고 하니, 바루 界面調類의 哀怨調가 아니었던가 한다. 그러나 나는 眞勺을 單純한 界面調類의 一樂調로만 보고자 아니한다. 다시 나아가서는 이것이 어떠한 形式에 拘束된 一詩歌群에 附與한 命名的名稱이 될것이아닌가 하는것을 主張하고 싶다.


그러면 먼첨 眞勺의 하나인 鄭瓜亭曲의 形式으로부터 論하야보면 鄭瓜亭曲은 全體 十句로된 歌體라 하겠으나 끝엣 二句
니미나마니시니잇가
아소님하도람드르사괴오소쇼셔
는 內容上前八句와 어느 程度까지 分段될수 있는듯이 보이어 鄕歌의 十句體歌와 그形式에 있어 비슷한點이있다. 鄕歌에 있어 十句體歌라 하는것은 前八句 後二句에 分節되여 前節에서 意味의 一段落을짓고 後節에서 다시總括的으로 或은 結論的으로 再唱하는 形式인대 이後節을 特히 落句 혹은 隔句라고 불르나 鄭瓜亭曲의 後二句는 不分明하나마 鄕歌十句體歌의 落句에 當하는듯이 보인다. 그런대 鄕歌의 落句란것은 本來 獨立하야 自存할수 있는것이 아니라 前節에附生하여서만 依存할수 있기때문에 前節 後節의 關係가 緊密하여지면 緊密하여질수록 그地位가 危險하게되여 자칫하면 前節에 倂合되어 버릴수 있는듯이 보인다. 그렇게되면 鄕歌에 十句體歌도 前後兩節에 分段되지 않은 單純한 十句體歌가 되고말것이나 鄭瓜亭曲은 或은 鄕歌發達의 그階段을 밟은것이 아닐가. 나는 鄕歌의 形式을 四句, 六句, 八句, 十句의 順次로 發達하였다 보고자 하였으나 (註十) 六句體歌, 十句體歌는 元來 各各落句를 가지고 있었든것이다. 그러든것이 後世의 進展發達이라할가 退步라할가 마침내 落句가 떨어저 버리서 單純한 六句體 單純한 十句體가 되고 만것일줄 믿으나 이것이 萬一 主張이 된다면, 鄭瓜亭曲 十句體歌는 應當 鄕歌의 十句體歌에서 發達한것이다. 아니할수 없게된다 또 設令 그렇게 主張할수 없다. 한다드라도 新羅의 鄕歌는 어떠한 形式으로나마 變遷하야 高麗人에 繼承되었을것이고, 高麗는 어떻게나마 鄕歌를 繼承하야 發達시켰을 것이다. 어디로 하드라도 鄭瓜亭曲十句體歌는 鄕歌에서 發達한 形式이라고는 할수있을듯 하나 眞勺은 實로 이形式的詩歌를 規定한樂調라 한다면 제절로 그樂調는 그詩歌의 形式을拘束하야 그範圍에버서나지 못하게할것이니 여기에 整齊된 그詩歌를 眞勺이란 名稱으로 一般이 부를수 없을가. 時調의 名稱이 本是 樂調에서 온것이라 하여서도 (註十一) 時調形式的詩歌의 名稱이 될수 있으니 眞勺도 그詩歌의 樂調에서부터 그詩歌의 一般的名稱이 될듯한것 같다.


要컨대 眞勺은 關係諸文獻을 綜合하야 보면 이것이 一個詩歌의 特殊名稱이 아니란것이 거의 決定的으로 말할수 있을듯 하고, 眞勺의 이름으로 傳해 오는 鄭瓜亭曲은 單一首이지마는 그形式的發達로 보아 그스스로 한詩歌의 形式을 이를만 하다 하겠으니 그種類의 詩歌에 對하야 三眞勺 後殿眞勺이라 일러온와같이 眞勺이란 名稱으로 부를것일듯 하다. 高麗詩歌가 大部分 오늘에 그形影을 傳틀 못하고 한모통이의 小部分이 겨우 우리에게 남어, 眞勺조차도 樂學軌範에 三眞勺이란 이름으로 傳한 鄭瓜亭曲이 있을뿐이고 後殿眞勺은 그內容을 全部 알아볼道理가 없으니 或은 나의 이생각이 臆說 獨斷에 마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高麗詩歌에도 優秀한 作品 鄭瓜亭曲은 李朝에 이르도록 宮中典樂에서 或은 士大夫間에 널리 愛誦되든것이고, 또 그形式의 雅麗한點은 반드시 그類歌를 가질듯한 疑心에서 後殿眞勺이란이름을 얻고, 딿아서 關係文獻의 一部를 얻었음으로 그當否는 다시 後日에 기다리겠거니와 于先 여기에 생각의 一端을 議論하야 본것이다
(註) 一, 益齋集卷四 詩編 小樂府
二, 成宗實錄 卷第二百十九(十九年八月)
三, 世宗實錄 卷第三(元年春正月丙午朔)
四, 仝上
五, 大東韻府群玉 卷十九 樂韻 眞勺條
六, 世宗實錄 卷第三(元年春正月丙午朔)
七, 星湖集 卷之五 樂府
八, 星湖僿說 四卷下
九, 界面調는 俗樂調의 平調, 羽調와 아울러 三調의 一인대 秋江先生文集 卷之一 玄琴譜에 「界面調怨 令威玄國 千載始婦 纍纍塚前 物是人非」라 說明하였다.
十, 拙稿 「朝鮮詩歌외原始形」(朝鮮語文第七號所載)叅照
十一, 李秉岐氏論文 「時調외發生과歌曲과외區分」(震檀學報 第一卷所載)叅照
이메일주소 무단 수집거부 권리침해신고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