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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론『춘향가․춘향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망론『춘향가․춘향전』 妄論『春香歌․春香傳』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서두수 徐斗銖
출처정보 문장 文章
연    도 1939-03 昭和十四年三月
면    수 150 150
기사
假說은 終乃 假設而己일지 모른다. 여기에 假設하나. 春香傳이 春香歌로 成長하였다면 或은 變容하였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본다. 얼마前 朝鮮日報紙上에서, 成長文學春香傳이 春香歌로 그 모습을 바꿨다는것을吟味없이 말하였던것같다. 漂泊文學——이라고 해서 말이 익지못하다면 定着文學이못된 文學이라 일커러도 無妨타——은 흔히 律語的表現에서散文的表現으로 옮는 過程을 過程하면서 某種 幾分間 固定된 様熊로成形되는것인양싶다. 그러면 春香傳은 웨 春香歌로 成長 乃至 變容하였다고보여질가? 도리켜 設問하야 春香歌에서 春香傳에라는 흐름은 없었을가? 이것이 오히려 當然한코—쓰일지도 모르나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저 한다——結局은妄論일지모른다. 그러나 妄論이 妄論될때엔 이 妄論을 處斬하기를 敢히 躊躇치는 않는다. 즐겨 妄녕의 것 하고 스스로 불號令하리라.
이따는 기름지게 歌謠의 고장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詩歌를 눈을爲한것, 읽음을 豫想하는 律語的表現이라면 이르는바 歌謠란 귀를 爲한것, 드름을, 따라, 읊조리는 行動을 必須히 隨伴하는 것이라는 條件을 內包시킨다. 내가 일즉 南浦따에 住接하였던 두어해동안 무척 그네들의 好謠性을 보고 듣고 하였다. 기나리라는一群의歌謠가 무척대고 연다러 불러짐을 들었다. 卽興衝口도 많었음을 回想한다. 이런 好謠的百姓과 所謂春香傳의關聯, 얼토 당토 않을지나 結論을 이에 揭揚한다.「그, 누구인지 모를 原作者에 原作된 春香傳이있었다 하자. 그것이 民衆의 口味, 脾胃의 無言한欲求에 말미암어春香歌로 移行하였다」고.
萬若에 이過程이 정 無理하다면 먼저 原春香歌가 春香傳을 나혔다가 結局 또 다시 春香歌로 還元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에는 民衆의意欲이 무뚝뚝하게스리힘세게 表現 形態의 變容을 强要하였다고 본다. 이따 過去의文學 아니, 요지음것 까지도 間或은 무엇보담 言語性을 아조 高調한, 따라 音響에 溶解된 言語를 豫想한, 바꾸어보면 音響的投影이 아조 짙은 表現을 지니고있다. 某評論家가 이것이 조선문학일까 하야 泰山이 뮈일 걱정을한「저리산하 약야계에 서시가 좋출하고 군산만학 부형문에 왕소군이생장하고 쌍각산이 수려하야云云」은 이 音樂的投影의 첫머리이다. 享受에 文學이 그 本然的職能을 獲得한다면 春香歌或은 春香傳을 享受한階級은 李朝以後의 民衆이었으며 春香歌로 口味를 찾은民衆은「저라山」이 何處在며「왕소군」쯤 何許醜婦인지 내 무엇 꼬지꼬지 캐내어 알까부냐는듯 오직 올치좋다 좋다좋다 뒤덮어두고 우쭐우쭐 어깨춤을 추다가 마침내 이러서 추춤고 드디어 春香노름까지 하였을 사람들이다. 이 좋다좋다 하는때의 春香傳은 不得已 事且不避로 散文이 아니되어져 있었으리라. 散文이 되여서 있었던것이었드래도 뒤잡아 律語化하지 아니치못하였을것 같이 생각이 든다. 三四 或은 거진 全部인 四四調로의 音響에, 律呂에, 그 興겨워하던 자최가 보혀져 있다. 이「散文아닌表現」이 春香傳으로 하야금 非文學視되게한다면 問題는 自然 딴길을 찾게된다. 文字——朝鮮말로의文字——를모르기도하려니와 社會的諸因으로 하야 알정황도 없었고 막상 모르고도 能히 長々秋夜가 하야케 새도록 듣고 能히 마츰하야 말 잘 하는사람 사설과 넉두리잘하는사람을「春香어멈같군」이라고 譬喩하는 造句能力을 發揮한마치 엄벙하는 寬傲性을 그들은 文學享受에 있어서도 가지고 있었다. 文字的敎養을 武器삼지 못한체로 言語的傳誦을 더 生活하였다. 支配階級이 壟斷하고있던 漢文詩의 文學的敎養에對하야 그들 民衆이 스스로의 言語를 生活하면서 한黙黙의反抗 乃至 黙契的掠奪이 春香歌로 成長시킨것이다. 요지음 慶賀롭끼도 博文文庫와 朝鮮文庫에 담겨지게된 完山板春香守節歌도 이 春香歌가 慶尙道에서 자라난—想必—숫姿態를 言語를 生活하던이들입모습에서 환그려저 巧較롭게랄가 아찔할만치 危機一髮格이랄가 아슬아슬하게 現存시켜진 貴여운 딸이라고 보아둔다. 나종 또 다시 漢文詩의 治裝으로 漢文詩文章人이 春香歌를 아서가기도하였으나 終乃는 民衆의 春香歌가 春香의 生命을 傳해왔다고 본다. 선비 같이 에헴 뽑는 꼴악서니는 적고 잡성스러운 수작이 많어지면서 春香은 傳해왔던것이다. 語感의差異는 있으나 입심이라는 말이있어지는 입의힘! 나는 이를 偉大타 한다. 俗談에 여편내 말엔 오뉴월에도 서리가 온다 라는 警句를 말의 卽 입의힘의 偉大를, 말이 生活에 基底하는 直接性이 가져오는 偉力을, 內包시킨者의 한 꼴이라고본다. 이 입의 直接性과 强力! 이것이 文字가 그네 所有가 되어있지 않던 民衆으로하여금 享受로서 作者의地位를 纂奪하게 하였으며, 그리하야 이 纂奪者의 손에서 春香歌乃至 春香傳은 變容과 成長이 되어졌을 것이다. 이作品의 享受者鑑賞者가 作者의 地位를 빼앗어 그우에 성큼올라서서 原作의 모습을 이렇게도 고치고 저렇게도 바꾸어버린다는것은 歌謠文學의 特徵이니 손쉽게 民謠를보라.
알기쉬운 現象일것이다. 所謂 文學의 敎養이 적으니만치 卑俗한곳이 많음 ——이에 對하야는 다음날 稿를 달리 하련다—— 이 春香歌에 있어서도 너무나많이 볼수 있는바 不可避의 事實이나 그러나 한 刹那이라도 神과더부러 神遊하는 瞬間은 오히려 이에 가져지게도 될지니「신이난다」는 말됨이 丁寧 滋味롭다.

또이렇게보아하면 이따의 古典들——便宜上 이稿에서는 諺文文學以前에는 遡及하지 않는다——이 知性的으로 現實과 어울려지는 모습이 적게된 까닭도 짐작될법하며 이로써 所爲思想性의 缺乏같은것은 애當初問題도 삼지 않았던 그네 心境도 헤아려질상 싶다. 大體로 時代文化의 基準을 이르는바 天才가 끼친 最高의功績에 두는 西洋的觀點으로 한다면 文學이면 文學이 이를테면 神의말삼으로 외여지게만 되고 그 雰圍氣를 몸가까히 느낄수는 없는 그것일것이다. 그러나 이따 文學의 古典에는 이와 反對로 作者와 享受者間에 緊密한 有機的交感乃至 처음主客이 顚倒됨조차 이즐만한 渾一을 이루어버려 마침내 享受者가 어느사이엔지 제도모르게自己네 口味와 脾胃에 맞게 修正하는 參與가 容許되고만것이 春香歌가 보혀주는 事實이 아닌가한다. 이때에비록 맨 처음의 原作者가 뚜렷이 알려져 있다더래도 그를 作者로 敬視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自己네의 代辨者로 여기는, 親感이 强하매, 이것이 及其也春香歌의 散文的發展의 活潑을 막어버렸다고 보혀진다. 그리하야 우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知的理解는 이境遇에 큰 問題가 되지않어 知性的體系랄가 所謂論理的 搆成이랄가는 돌보혀지지않은채 그들의 文學을「무늬」化시킨點이 많었었다. 그리고 이 무늬는 알송알송 하였다. 그러나 全體로 꿰어진 무었인가는 맛 볼수 있는것이니, 이 맛이 一種의 論理性이다——한生命을 貫通하는 힘이란 意味로서의 論理性이여기있다. 맛! 이것이 또한 우리네의 古典文學에 있어서 퍽 異常한 存在(?)이다. 맛! 읽다기 보담 읊을때, 아니, 노래할때의 맛! 그것을 듣고 흥청하는때의 心境的맛! 이것도 作者와 享受者와의 非限界性에서 釀成되는것이니 眞實로 이 맛이란 엄벙하는 寬傲性, 生活的論理性, 非知性的感動, 글字와의 關係를 떠난氣分的의것이다. 이러한 맛을지닌 무늬는 朝鮮말의넓은意味로 말하는 象徵性을 指向하고있다. 이象徵性은 조선말의 意味의 對立에 依한 語彙發生을 보히고 있나니 數多한 擬聲擬語는 돋 이것들이다. 또 이對立은 反復의 一樣式이니 이 反復은 바로 律語的表現의 한 모습이다. 春香歌에 이對立的語句와 反復的修辭가 그얼마나 많은 가를 보라. 이러히 보아할진댄 文學은 노래됨을 通해서 이따겨래의 骨髓에 숨여있는 點이 퍽으나 많어 참으로 文學에선 이따겨래는 非貴族的이면서도, 오히려 非貴族的이었음을 古典은 보혀준다. 이에서 非單春香傳 뿐만이 아니라 朝鮮의 古典은 口誦性을 퍽으나 많이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항용 意味시키는 그대로의 風流의 文學을 數多하게 搆成하고있다. 그리하야 드듸어 이는 散文에의 發展을 머뭇거리게 하고 말었다. 形式의崩壞없이는 進展은 어렵다.
所謂諺文의 發生도 이에 關聯된다. 勿論 한분帝王의 明鑿으로 말미암은 欽定이다. 그러나 上流階級들이 흔전만전 쓰던 漢字로는 그래도 數多한 語感의 表示가不完全하였을 程度로 言語의 生命으로서의 傳統을 힘있게 全民衆이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그들의 言語를 可及的 옹굿하게 실을수 있고 또 그네들 全般에 쉽사리 通用될수있는 文字의 存在要求를 世宗께서 代辯하섰던것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야 비록 처음엔 이러히 우에서 制定한것이나 保守的인 支配層의 感傷的追慕로 漢字漢文漢詩들만 찾고 짓고 읽고 함에 곧一般民衆의 潜在意議的欲求의 强靭한 힘으로 反撥하야 손쉽게 新制定의 글字를 自己네손아귀에 넣었으며 그리면서도 그들이얻은 글字의 文字性보담 言語性의 强力을 言語傳統 그도 오히려 脈膊뛰는 산傳統의 힘으로 그냥 支撑아니, 비로소 正常하게 용소슴 치게 하였던것이다. 이러한 지음이라 그는 必然的으로 이미 成形固定된 文學形態조차도 不得已한 變容을 自己네 脾胃에맞도록 敢爲하면서 그것을 口誦으로 成長시키는 推進力이 되었던것이다. 眞實로 이곳에 純朝鮮文學이 諺文文學에서 出發된 所因도 潜在하며 따라 漢語가 朝鮮的意味로 變質하는 傾向의 强化가 招來되었으며 一面 自己에 固有言語와 漢語的外來語와 사이의 區別을 체 잘 못하던터이라 어째뜬 벌서 骨髓에까지 들고만지 己久임을 奈何오 漢語的이오 漢語的인 꼴로 歪曲될줄도 모르게 自己네것視하고 있었던것이다. 社會的歷史的諸因에 因襲되어온 不可避의 일이었다. 問題는 事實의 眞否에 있고 推理의 正否에 있지않다. 하물며 推理의 正確조차 期待못함에랴. 그러나 誤論이면 溯源적으로 再出發하려는 意圖는 먼저 말한바와같이 작만하여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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