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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 부부의 생활 타진—안기영, 김현순 씨 가정—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동도 부부의 생활 타진—안기영, 김현순 씨 가정— 同道夫婦의 生活打診—安基永, 金顯順氏家庭—
종    류 대담 對談
필    자 A기자 A記者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39-02 昭和十四年二月
면    수 164 164
기사
安基永, 金顯順氏하면 그 藝術的인 音樂이 서로의 肺腑를 찔너 아니끌리랴 아니끌닐수없이 한개의 物體로 融合이되는듯 끌녀드러감을 어찌하는수 없이 必也엔 師弟의 分義임에도 눈이 어두와 悲戀의 사랑을 속삭이며 海外로 轉轉漂流하다 다시 古士로 돌아와 於今엔 法的儀式도 無視하고 오직 藝術과 사랑으로家庭을 얽어가고있는것은 누구나 다알고있는 事實이다. 그러면 이같은 길을 걷고있는이 音樂家庭은 얼마나 幸福스러운가 失婦同道의 藝術打診을 하여보기로 記者는 北阿峴町 그들의 家庭을 찾어갔다.
內外분을 다 모시고 한자리에서 말슴을 드러야할텐데 마침 때가 저녁때라 夫人께서는 저녁거리를 마련하러 外出을하신 모양, 쓸쓸하게도 安氏만이 혼자서 맞어주신다.

「夫人께서 언제쯤 드러오실가요」
「네 顯順이요 곧 드러올겝니다」
安氏의 對答에 記者는 安心하고 앉어서 한대의 담배를 부처들고 靜寂과 벗을 하며 있노라니 찌꿍하고 大門소리가 난다.
「드러옵니다」
大門소리를 내는데는 夫人獨特한 그 무엇이 있는듯이 斷定的으로 夫人의 歸意를 알닌다. 아니나 다르랴 그것은 夫人에 틀님없었다.
「엄마!
「엄마!」
애들이 마주달녀 나가는듯 콩콩콩 땅이 울니는 발자욱소리.

[사진] 사진은 첫사랑의첫선물을안은광경 (於上海)

그러나 애들이 엄마의 치마귀를 붓들고 느러질 여유도 없게 安氏 곧 달녀나가 記者의 來意를 傳한다. 安氏 뒤에 달녀 드러오시는 夫人, 언제나 悲哀의 表情은 짓지못할것같은 微笑 그대로된 明朗한 얼굴에 벙글벙글 웃는 웃음까지 明朗하시다.
「沈黙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웨 또 끄내둘추랴고 하세요」
「아니 머 그런意味로 오신것은 아니래」
記者 對答하기前 安氏곧 夫人의 말을 받어 安心하고 무름에 應하라는 뜻을 보인다.
「內外분이 같은 音樂의 길을 거르시며 지나시는 재미가 어떠하십니까?」
「네 勿論 理想이 맞고 藝術을 서로 理解하고 지나게되니까 재미 있는편이지요」
「우리야 머 어디 法에서 夫婦로 許하여줘야죠」
아무리 사랑과 藝術의 融合속에서 매친 夫婦라하여도 世上이 完全한 夫婦는 許하여 주지를 않는것 같은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놓이지를 못하는듯 한마디였는다.
「夫人께서도 聲樂을 專門으로 硏究하섰지요?」
「네 피아노도 할줄 압니다」
「安先生은 夫人의 聲樂을 어떻게 보십니까?」
記者의 무름에 安氏夫人의 聲樂評에 입을 열려는 瞬間
「저 暫間만 失禮하겠읍니다」
하고 夫人 椅子에서 허리를 편다.
「只今 安先生께서 金先生 聲樂評이 나오실텐데 못나가십니다. 드르시고 答辯을 하서야죠」
하고 記者 이러선 金氏을 붓드러 앉히려하나 종내 웃음으로 때고 나가버리신다.
「顯順이야 音色이 이쁘지요. 音色이 肺腑를 찌르는 맛이 있읍니다. 저 梨專있을때도 顯順이는 이音色 이쁘기로 有名하였죠 그때도 꽤 불녀다녔읍니다. 聲樂엔 무엇보다 音聲이 重要하거던요」
하는데 夫人 문을 방싯이 열고 드러오신다. 그의 손에는 차장반이 들니었다. 커피다.
「나 당신 辱했오」
安氏 夫人을 보고 웃으니
「저 듣지않을땐 辱해도 좋와요」
같이 웃음으로 받으신다
「金先生께선 安先生의 聲樂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安基永氏 安先生님이야 머 그게 生命이니까 저같은게 어떻게 評價를 하겠어요. 아이참 그저 音樂밖엔 아무것두 몰나요 못을 하나 박을줄 압니까 조일 하나 붙일줄 압니까 저걸 다 제가 붙였답니다」
하고 벽을 가르친다.
「金先生게서 피아노도 썩 잘하신다는데 安先生이 노래를 부르실때 伴奏를 해보신일이 있읍니까?」
「한번 있죠 라디오放送할때 해봤죠」
「그때 氣分이 어떠해섰어요?」
「호호 氣分이 좋지요」
「男便이 노래를 부르실때 자꾸 伴奏해주고 싶지 않으십니까?」
「왜 하고싶지 않어요 하고싶어요 그러나 제 피아노는 安先生의 伴奏를 充分히 해드리기에는 技術이 不足합니다. 언젠가는 한번 하다가 되지를않어서 그만두고 말었어요」
하고 夫人은 男便의 그 聲樂程度의水準이 어떻게 높은것인가를 그語感으로 나타내 보이기에 애쓰신다.
「安先生께서는 夫人이 伴奏를 하실때 氣分이 어떠세요」
「허—」
한번 웃으시고 나서
「싫지야 않지요」
「좋으실테지 멀」
「뉘가 싫댓나 그려기」
아— 이 사랑의 희롱, 이렇게 사랑에겨운 희롱을 한번 해볼수없는 記者는 自身의 살림을 생각하고 은근이 부러움을 참을수 없었다.
「內外분이 그 聲樂에 있어 서로 잘 해보겠다고 은근이 內心으로 競爭心을 이르키지 않습니까?」
「顯順이 저야 아마 나보다 잘해보겠다는 그런慾心이 있겠지요 나는 先生이였고 전 弟子였으니까 그래서 내게서 배운 聲樂이니까 언제든지 나만 못할줄로 아를겝니다. 그러나 나는 顯順일 가르처서 만든 사람이니까 나는 別로 그런마음을 먹어본일이 없읍니다만………」
「事實이십니까? 安先生보다 잘해보시겠다는 競爭心이 은근이 나는것이 事實입니까?」
오직 明朗한 웃음으로 對할뿐 沈黙을 지키시더니
「잘해보겠다는 마음이야 있지요 그러나 어디 우리 安先生이야 따르겠어요 지금도 머 배우는데요」
하고 무슨 譜表인지를 써붙인듯한 壁에붙은 조이 조각을 가르치더니「배우고 싶으면ㅅ도 결을이 없어 못배우죠」
「결을은 무슨 결을이 없어 제가 나타해서 안배이지」
「아이 참 생각하면 저 때문에 梨專에선 큰損害이에요 安先生이 그대로 梨專에 계섰드면 훌륭한 聲樂家들을 많이 培養해 내실것을 나때문에 참……」
하고 夫人은 그 옛날의 詩節로 도라가 그때의 그일을 懐想이나 하는듯 머리를 숙이신다.
「있었읍니다. 그런데 있긴 있었는데 그게 우리가 뭣으로 다퉜던가?」
하고 安氏는 그것이 무엇이던가 창졸간 생각이 나지않어 夫人에게 묻는다. 그러나 夫人 또한 그것이 무엇이었든가를 記憶못한다. 이에 記者는 그것이 대위치 않었던 論爭이었던것임을 알고 話題를 돌녀
「藝術上見地에서 비위에 틀리는 點이 있으면 서로 勸告도 하십니까」
「네 합니다」
「그럼 하죠」
記者의 말이 떠러지기가 바쁘게 이 夫婦 一時에 對答하는품이 그것을 물을 必要도 없다는 對答인상깊다.
「子弟들도 將來 音聲을 가르처 주시겠읍니까? 內外분이 다 聲樂家시니까 子弟도 相當이 그런素質을 타고 났었음즉한데……」
「네 그런 뭣도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 애들은 萬一 將來에 音聲을 志望한다면 하고 미리 注意는 시켜 기름니다. 기침을 통 못깃게 하죠. 기침을 하면 帶聲가 나뻐지니까요 그래서 感氣같은것이 들니지 않도록 합니다. 우리집에 심부름하는사람들은 그래 원 이집엔 四철 두루가야 기침소리 한번 드러볼수 없다고 그래요. 朝鮮家庭에선 대개 이런것을 注意안하지만 外國서들은 如干 注意하는 것이 아니외다」
「収入은 어느분이 많으십니까?」
「부끄럽습니다. 저야 머 그저 이사람의 德으로………」
하고 安氏는 夫人을 한번 돌아보고 웃으시더니
「一定칠 않어요 한 白圓 넘을때도 있고 단 五拾圓에 그칠때도 있읍니다」
「참 朝鮮藝術家의 生活이란 悲慘한것이에요 이것이 어찌 音樂뿐이겠어요 文學方面이나 모든것이 안그래요」
하고 夫人은 참 이래서야 어떻게 朝鮮서 藝術方面에 精進하겠느냐는 意味로 자못 그 一般의 沒理解에 마음깊이 痛嘆을 하신다.
「貯金할게 있게해요」
夫人 웃으시며 하는 對答을 安氏 가로 채며
「貯金이 뭡니까 이 집도 저 사람이………」
하는데 夫人이
「아이 그런말슴은 마세요 空然이 또………」
하고 男便의 입을 막으신다.
「아니 머 이先生껜 해도 괜찮어……」
하고 웬까닭인지 재미없는 文句는 아니적으리라는 意味로 記者의 붓끝을 信用하여 말하신다. 그러면서 氏는 그대로 말을 繼續하랴는데 夫人 다시 그말을 막는 手䟝으로
「저 말슴 드리겠어요 安先生은 통 돈에는 關心이 없는 양반이에요」
하고 上海로 두루 放浪하며 지나던 이야기를한바탕 푸러놓으시며 없는 돈을 濫費하던 이야기를 하신다. 드르니 그 속에 숨은 意味는 安氏가 그렇게 돈에 關心을 못가저도 그것은 藝術家의 타고난 素質로 그이를 탓할것이 아니라 藝術에 責任을 돌닐것으로 오직 藝術을 生命으로 삼는것만이 고맙다는, 또는 그래야 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繼續해야하는말이 아모리 살림은 어려워도 오직 音樂, 그래서 그것의 힘이 둘의 마음을 서로 얽어, 얽기는속에 뗄수없는 사랑이 다만 우리의 生命인 同時에 또한 家庭이니 우리들에 對한 世評에는 조금도 關心치 않는다는 意味로 아니解釋할수없는 記者는 오직 藝術을 生命과 같이 이렇게 아는 이 두분은 이런關係를 아니맺고는 견딀수가 없었으리라 생각을하며 자리를 일어섰다.
「가끔 놀너오세요」
「또 놀너 오시죠 나가지 못합니다」
內外분이 번가라 하시는 말슴을 뒤로드르며 門밖에 나와 帽子를 벗어 作別을 하며 돌아다보니 大門 설주에도 「安基永」「金顯順」요렇게 門碑좇아 藝術의 魂이 불었는지 바싹다거저 그리고 情답게 붙어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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