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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 연구초(1)―가사「토끼화상」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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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조선문학 연구초(1)―가사「토끼화상」의 해설― 朝鮮文學研究鈔(一)―歌詞「토끼화상」의解說―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이희승 李煕昇
출처정보 문장 文章
연    도 1939-01 昭和十四年一月
면    수 152 152
기사
一, 開 題
朝鮮의 古典文學 (特히 高麗朝 以後의것)이 漢文學의 影響을 착실히 받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甚하게 말하야 漢文學의 糟粕이라고 酷評하는 사람까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亦是 朝鮮固有의 情調와 香薰이 보다더 濃厚하게 배어 있음을 누구나 否認할수 없을 것이다. 卽 朝鮮 사람의 生活과 感情이 基調가 되어가지고 그우에 支那式 詞華와 誇張와 修飾이 입히어 있을뿐이다. 小說과 詩歌를通하야 모다 그러하나, 더욱이 詩詞에 그러하다. 그리하야 甚至於 樵童牧竪의 입에서 無心히 흘러 나오는 俗歌民謠 中에서도 漢文學的 詞彩와 故事를 찾어 볼수 있게 되는 것이 그리 드믄 일이 아니다. 勿論 그들이 그 語句의 原典이라든지 正確한 意味를 아지못할 것도 當然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口口傳誦하여 가는동안에 自然 意義의 轉用과 音韻의 訛■이 많이 생기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原形이 어떠한 것인지 全然 아지 못하고, 다만 機械的으로 傳唱되는 것이 非一非再다.
이에 筆者는 試驗삼아 歌詞 「토끼화상」을 解釋하야 同好者의 參考에 供하는 同時에 또한 大方의 敎示를 빌고자 하는바이다.

二, 토끼傳과의 關係
이 노래는 小說「토끼傳」中의 一節을 歌詞化한 것이다. 토끼傳은「兎生員傳」「鱉注薄傳」等의 이름으로 같은 內容의 異本이 數三種 있느니, 그中에서 이 노래와 關聯되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南海國 龍王이 偶然히 炳을 얻어 가진 手段을 다하야 治療하야 보았으나, 百藥이 無効하야 南海一國이 크게 근심하는中, 하로는 吳나라 忠信 伍子胥를 맞나 疹察을 받어본 結果, 그의 말이, 龍王의 이 病患은 千萬가지 藥이 모다 소용 없고, 다만 토끼의 生肝을 먹어야만 나으리라 하였다. 龍王이 滿朝百官을 모아 놓고 토끼肝 求할 일을 議論하야 보았으나, 누구 하나 나서서 제가 求해오겠다고 하는이가 없는지라, 正히 답답해할 지음에, 자라가 龍王께 아뢰기를, 「제가 陸地에 나아가 토끼를 꼬여 데려오려하오나, 水宮에서 生長한 몸이라, 토끼의 모양을 아지못하오니 그 일이 답답하오이다.」한대, 龍王이 크게 기꺼하야 자라의 忠誠을 칭찬하고, 곧 畵工을 불러 토끼의 畵像을 그리어 자라를 주어 그것을 가지고 陸地에 나아가 토끼를 잡아 오게 하였나니, 그 토끼畵像 그리는 光景을 歌曲化한 것이 곧 이「토끼화상」이란 歌詞다.
이 歌詞뿐 아니라, 토끼傳 全體가 唱劇調로 되어 長篇의 歌詞인 것은 春香傳이나 沈淸傳이 一篇의 歌劇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特히 그中의 一節이 或은 執杖歌도 되고, 十杖歌도 되고, 또는 박석티 離別歌도 된 것 모양으로, 「토끼傳」의 一部分인 토끼화상 그리는 場面이 特히 別個로 一篇의 歌詞를 이루었다. 그리고 어느때부터 이 노래가 불리게 되었는지는 아즉 考據할 材料를 찾지 못하였다.

三, 原 歌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 才人歌姫의 입에 많이 오르나리나, 사람을 따라 一定하지 못하다. 또 「新舊雜家」, 「流行雜歌」와 其他 數種의 印本, 寫本에 記錄되어 있으나, 책을 따라 多少 文句의 異同이 있고, 先後가 바뀐 것이 있다. 지금 그 標準이 될만한 것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토끼 畵像을 그린다. 토끼 畵像을 그린다. 畵工을 불러라. 畵工을 불러라. 畵工을 불럿오. 토끼畵像을 그린다. 이리 저리 그린다. 燕和王의 (一)黃金臺, 美人 그리는 환쟁이. 李謫仙 (二)鳳凰臺, 鳳 그리는 환쟁이. 南國天子 (三)凌虛臺上 日月 그리든 환쟁이. (四)동정 유리 청홍硯, 금수추파 (五)거북추파, 오징어로 먹 갈리고. (六)양두화筆 담불풀어, (七)백능 설화 簡紙 上에, 이리저리 그린다. 天下名山 勝地間에 景槪보든 눈 그리고. 蘭草 芝草 온갖 花草, 꽃 따 먹든 입. 그리고. (八)蓬萊方丈 雲霧中에 내 잘 맡든 코. 그리고. 鸚鵡孔雀이 짖어 울제 소리 듣든 귀. 그리고. 萬和方暢花林中에 펄펄 뛰든 발. 그리고. 嚴冬大寒 雪寒中에 白雪이 펄펄 휘날릴제, 防風하든 털. 그리고. (九)神農氏 百草野에 이슬 떨든 꼬리그려. 두 귀는 쫑긋, 두 눈은 도리도리. 꽁지는 모똑. 앞발은 잘룩, 뒷발은 강충. 허리는 날신하고. 左便에는 靑山이요, 右便에는 綠水로다. 綠水靑山 깊은 곳에, 桂樹나무 그늘 속에, 들락 날락 오락 가락, 앙금조츰 섰는 모양. 山中兎, 花中兎, (十)峨嵋山月半輪兎」를, 이에서 더할소냐. 솰솰 그려 내던지며, 아나였다 鱉主薄야, 네 가지고 나가거라.

四, 文 句 解 釋
一, 黃金臺……周末 戰國時代에 諸侯되는 燕나라의 名君 昭王이 臺를 짓고, 그臺 우에 黃金 千斤을貯藏하야 두고, 天下의 어진 선비를 널리 求한 故로 세상 사람들이 그臺를 黃金臺라 일컬었다. 그리고 어떤 책에는 「美人」대신에「면」이라고 記錄되어 있고 광대 妓生들도「면 그리든 환쟁이」로 노래 부른다. 그런데 이「면」이란 말은, 昭王이 黃金臺에 賢士를 모아 놓고, 燕나라가 어떻게해야 諸侯의 覇가 될까, 항상 그 일을 圖謀하고 있었으므로, 「覇燕」의 音이 變하야「미인」이 되고, 「미인」이란 말이 한번 더 變하야 「면」으로 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린다」는 말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圖謀」란 말의「圖」字를 그 訓으로 읽어서, 「그린다」고 한것이 아닐까. 左右間 名手의 畵工을 주어 셍길 적에, 燕昭王 의 故事 를 그와 같이 間會하야 쓴것이라 생각한다.
二, 鳳凰臺………李謫仙은 李太白이니, 李太白이 「登金陵鳳凰臺」란 詩를 지어
鳳凰臺土鳳凰遊 鳳去臺空江自流
吳宮花草埋幽徑 晉代衣冠成古丘
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
摠爲浮雲能蔽日 長安不見使人愁
라고 歎息한 일은 있었으나, 鳳凰臺에서 鳳을 그리었다는 事蹟은 찾어 볼수 없다.
三, 凌虚臺………唐나라 사람 陳希亮이 嘉祐年中에 鳳翔府 知事로 있을 때에 南山 아래에 樓臺를 지어 놓고, 이름을 凌虚臺라하야, 蘇東坡에게「凌虚臺記」를 짓게한 일은 있으나, 이 노래의 凌虚臺는 陳希亮의 凌虚臺와는 關聯 없는듯하다. 어떤 책에는「릉화대」라고 적히어 있으나, 이 歌詞의 內容과 合致되는 由緖를 가진「릉화대」도 文獻上 容易히 찾어 볼수 없다. 南國天子라하야「南國」부터 實在하였든 나라는 아니오, 해와 달을 그린다고하였으니 더욱 典故를 찾을 性質의 것이 못된다. 想像的 나라의 임금이 想像的 樓臺 우에서 해와달을 그리었다 하야, 마침「凌虚臺」의 名稱이 虛構的 事象에 適合한 까닭으로 이 臺의이름을 引用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四, 동정 유리 청홍硯………동정은 銅雀의 訛音인듯하다. 「學範」이란 책에,
「銅雀硯 銅雀臺瓦也, 以其入水久故, 滋潤發墨………」
이라 하였고, 「硯譜」에
「魏銅雀遺址, 人掘地得古瓦, 以爲硯, 貯水數日不滲……」
이란 句가 있으며, 같은 「硯譜」에 또
「銅雀硯瓦出銅雀臺. 多玅浙閒得之以爲硯.」
이라고 있으니, 「銅雀臺」란 것은 魏王曹操가 鄴城西方에 築造한 臺의 이름이다. 그 臺의 기와가 後世에 硯石으로 愛用되였으며, 그 質이 대단히 좋았든 모양이다. 그리하야 梅聖兪의「龍尾硯」에 對한 詩도 있다. 무엇이든지 有名한 것을 모아 놓으려고 하는 이 노래에, 좋은 硯石 中의 하나로 「銅雀硯」을 끌어 온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유리」란 말은 「龍尾」의 訛音인듯하다 范至能의 「跋婺源硯譜」에 據하면
「龍尾, 刷絲, 秀潤玉質, 天下硯石第一.」云云. 이라하야 「龍尾硯」「刷絲硯」이 모다 硯石으로 絶等인것을 말하였으며, 또 東坡도 「龍尾石硯銘」을 지어 그것을 讚揚하였다. 이 벼루는 安徽省婺源縣龍尾山에서 産出하는 돌로 만든다는 말이 「文房肆考」란 책에 보인다.
청홍은 靑紅인듯하다. 蘇易簡 硯譜中에 적히기를「硯譜, 以靑州紅絲石, 爲第一」云云이라 하였으니「靑州紅絲石」을 約하야 靑紅이라 한것이 아닐까. 또 어떤 책에는 「청황연」이라고도 쓰여있으니, 그것이「청홍」의 訛轉인지, 或은「柳公權論硯以靑州石爲第一, 絳州者次之」云云
이라한 記錄을 보면 「靑州石」,「絳州石」이 모다 벼루로 貴品인데, 이「靑州」,「絳州」를 約하야 「靑絳」(音=청강)이라 한것이 어느듯 청항으로, 다시 청황으로 變한것이 아닐까.
어쨋든 이「동정유리청홍연」이란 文句에 對하여는 疑心할 餘地가 아즉도 많으나, 우선 이만큼하여두고 考證의 붓을 멈추려한다. 어떤 寫本에는 바로 漢字로「洞庭琉璃靑紅硯」이라 明記한 것이 있으나 「洞庭琉璃」란 考據할수 없는 强作의 文句다. 차라리「銅雀, 龍尾 靑紅硯」이라한것이 無識한 사람의 입에 口口傳唱되어 가는 동안에 音韻便宜上「동정유리청홍연」이 되여 버린 것이 아닐가 생각한다.
五, 거북硯滴………硯滴에 對하야 傳云이란 사람의「水龜銘」이 있으니, 그것과 一脈의 變係가 있는듯하다. 「水龜銘」은 이러하다.
「鑄玆靈龜 體象自然, 含出源水 有似淸泉, 潤彼玄墨 染此弱翰, 申情寫素 經緯群言.」
六, 양두화筆………「양두」는 잠깐 떼어 놓고, 「화筆」은 그림 그리는 場面이기 때문에 畵筆로 알기 쉬우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붓의 種類로 「羊毫筆」과 「兎毫筆」을 치는데, 이 「羊毫, 兎毫」를 한데 合하야 (歌謠의 口調上) 「羊兎毫筆」이라 한것이 不知不識中 「양두화筆」이 된것이니, 이것은 거위 疑心할 餘地도 없다고 생각한다.
七, 백릉 설화 간지………朝鮮産 上品 白紙로 白綿紙, 雪花紙, 簡紙가 있으니, 그것을 한꺼번에 주어 섬기느라고 「白綿雪花簡紙上에」로 된것이다. 「백릉」은「白綾」으로 알기 쉬우나, 白綾紙란 종이는 없었뜬 것을 보아 「白綿」의 訛音인 것을 짐작 할수 있다.
八, 蓬萊 方丈………三神山 中의 두 山 이름이다. 瀛洲山과 合하야 三神山이 된다.
九, 神農氏 百草野………捜神記에
「神農以赭鞭鞭百草, 盡知其平毒寒溫之性, 臭味所主, 以播百穀, 故天下號神農也.」란 말이 있고 또는 神農氏가 百草를 맛보아 醫藥을 創始하였다는 記錄도 있어서 이러한 語句를 引用한것이다.
十, 峨嵋山月半輪兎」들………李白의 詩
「峨嵋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水流
夜發淸溪向三峡 思君不見不渝州」
에서 떼어 온 詩句로서 「秋」字를「兎」로 變改하야 引用한 것이다. 本來 이 詩는 峨嵋山月歌로서 달을 中心삼아 읊은 것이오, 또 토끼와 달은 같이보는 境遇가 많아서 「달」을「主兎」라고 別名 불인일도 있는이 만큼, 그저 有名한 詩句로소 조금이라도 關係 있는듯 한것을 떼어다 쓴 것이다. 月宮 桂樹아래에는 藥방아 찧는 토끼가 있다는 傳說도 이文句에 影響을 주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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