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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 뉴스—히포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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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예원 뉴스—히포크린— 藝苑뉴-스—히포크린—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아려송 雅麗松
출처정보 신세기 新世紀
연    도 1939-01 昭和十四年一月
면    수 116 〔116〕
기사
◎宣傳大王(?)인 提琴家 洪蘭坡氏
[사진] 洪蘭坡氏
조선 음악계에서 활약하고있는 음악가(音樂家) 중 특(特)히 『봐이올인』으로서는 가장 오란 역사(歷史)를 갖이고있는 홍난파(洪蘭坡)씨!
씨가 금번 연구여가(硏究餘暇)의 수집으로써 음악만필『音樂漫筆』이라는 책(冊)을 만들었다.
조선같이 단행본(單行本)이 결핍한데가 없고 더욱이 음악서적(音樂書籍)은 문자그대로 긔아(飢餓)상태인 금일에 저윽히 반가운 소식이다.
씨는 현재 자택(自宅)에서 음악 개인교수를 하는 한편 시내 모음악학교(某音樂學校)에서 음악강좌(講座)의 시간을 맡고 있는중인데 교수시간에 종종 씨의 저서(著書)인 『음악만필』은 누구나 필독(必讀)할 가치(價値)가 있는것이라고 말한다고.
『도모지 책 사(買)라는 선전광고(宣傳廣告)에 공부할수 있어야지……』
하고 투덜 거리는것은 어떤 험구(險口)제자의 말!
낮(晝)에는 교수 밤에는 밥송(放送) 등 극히 분주한 생활의 여가를 타가지고 일신의 정열(情熱)을 기울인 물건이라 넘처나는 애착심(愛着心)과 누구에게나 읽히고 싶은 마음에 간간히 악의없는 선전(?)을 하시는 모양이나 여하튼 음악서적이 왕성하게 나와(發行)서 예술조선을 아름답게 수(繡)놓아야할 시절(時節)!

◎洋裝에 庭球靴의 珍客 쏘푸라노劉芙蓉孃!
[사진] 劉芙蓉孃
함흥(咸興) 영생여고(永生女高)를 졸업하고 북미(北米)에 건너가『카나다』『알마칼레지』음악과(音樂科)를 마치고 다시『토론토』대학음악과에서 연구를 쌓은후 재작년九월에 금의환영(錦衣還鄕)한후 서울 부민관(府民館)대호—ㄹ에서 독창회(獨唱會)를 열어 절대의인기로 시정을뒤 흔들어놓든 신진『쏘푸라노』유부용(劉芙蓉)양은 그간 이화여전(梨花女專) 음악과 강사로 활약하는 중이다.
헌대 양은 간간히 날아갈듯이 경쾌한 양장(洋裝)을 한후 종로(鐘路) 통 이나 본정(本町)통을 만보(漫步?)함을 종종 보게된다.



연구와 교편(敎鞭)에 피로를 회복코저 신촌(新村)에서일부러 종로통까지 나오는 모양인데 거리를 거러가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씩 뒤 돌아보게 된다.
경쾌한 양장에 황홀(恍惚)해짐에 돌아보는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視線)은 전부가 양의 움즉이는 밤(足)에 집중(集中)한다.
따는 이상한것은 미국까지 갔다왔음으로 양풍이 질질흐는 양장일턴데 웬일인지 날신한 모던화(靴)가 아니라 보기에도 흉(?)한 황토색(黃土色)이 도는 넢테데한 정구화(庭球靴)다.
양화(洋靴)제한의 국책(國策)에 순응(順應)하는 때문인지는 몰나도 양장에 정구화는 아모리 보아도 어울리지 안는다.
글애도 시원한게 네거리를 만보함이 서양처녀(處女)의 オデンバ(轉婆)를 연상시켜 저윽히 미국유학의 기픔이 엿뵌다.

◎新進 通譯官의 俳優 朱仁奎君!
조선에 통역관(通譯官)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몰으나 새로히 유명(有名)한 통역관이 극난(極難)의 관문(關門)을『파스』하였으니 다시 장부에 기입해야 할 일!
더욱이 현역(現役)이 배우(俳優)라 하니 조선의 예원계(藝苑界)는 재사(才士)만모힌 반가운 증거!
글어면 누구인가?
놀라지마라! 조선영화계(映畵界) 개척자(開拓者)의 한사람이며 또한 지금도 생명을 받처 종사하고있는 주인규(朱仁奎)군이다.
색다른 직업(職業)과 색다른 사람에 누구나 의아할것이다.
조선영화사상에서 아즉까지 계획(計劃)조차못하는 일약 십만원의 자금으로 대작(大作) 복지만리『福地萬里』를 촬영(撮影)차로 함경도 무산(茂山)을거처 멀리 만주까지 로—케에 떠났든 고려영화협회 (高麗映畵協會)의 일원인 주인규군이 만주에서 만주어와 중국어를 몰라 망지소저하는 동단원을 대표하야 척척 무보수(無報酬)로 통역을하여 겨우 땀을씻고 로—케를 마추었다한다.
동단원이 뜻하지 않은 반가움에
『여보게 아니 언제 그렇게 외국어를 다——배와두었든가?』
하고 질문하매
『수업료(授業料)않내고 배운것은 이것뿐일세——.』
하고 미남(美男)의 호안(好顔)에 미소(微笑)를 담드라고.
과거 삼년동안 모(某)사건(事件)으로 영오(囹圄)의 몸이 되었을때 그곳에서 자습(自習)한 탓이라하니 재사(才士)는 어데를가도 재사인모양!

◎눈물의 名役 嚴美花孃의 收人은?
[사진] 嚴美花孃
조선의 연극전당(演劇殿堂)이라는 시내 동양극장(東洋劇場)에는 매일밤 초만원(超滿員)의 대성황을 일우는 극계의 호화판을 전개하고 있으니 과연 엇더한 극단(劇團)이 공연(公演)을 하기에 그와같이 밀치락 뒤치락의 성황을 일우는가?
이극장에는 지금 청춘좌(靑春座)와 호화선(豪華船)의 두극단이 전속(專屬)이 되어 번가러가며 서울공연을하고있다.
그중에도 특히 호화선의 인기(人氣)는 절정에 달하여 호화선만 서울에오면 초저녁부터 만원이라는 긔헌상을 나타내고있다.
글어면 호화선에는 과연 어떠한 배우(俳優)들이 진(陣)을 치고있기에 이렇게도 인기가 드높나?
알고보니 이극단에는 올에 아홉 살의 엄미화(嚴美花)라는 소녀가있어 어떻게나 연극을 잘하는지 극만필하면 관객은 눈물속에서 헤엄을처 나온다한다.
글어면 조선의『새리․템풀』아니 그이상의 재질을갖인 천재명역(天才名役)인 엄미화양의 한달 수입(收入)은 과연 얼마나되나? 이호화선이 인기를회복(回復)한것도 오로지 엄미화양의 출연에 의함이라는 설(設)이 있느니만치 그만큼 엄미화의 존제(存在)는 극단 호화선과 동양극장의 운명(運命)을 좌우(左右)한다고도 할수있을것이다. 그만큼 그의 존재는 크다.
글어면 그의 수입은? 놀라지 마라! 한달에 겨우 월급이 이십원(圓)이라한다. 다른배우들도 한달에 칠팔십원의 월급을 탄다고 호언(豪言)하는 이극단에서 가장주역인 엄미화의 수입이 겨우 이십원(!)
여기에 우리는 부합잔은 모순(?)을 늣긴다. 아니 불쾌감을 늣긴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언니의 단세식구인탓에 밧는보수일가? 여하튼 너머나 지나친 과로(過勞)에 극계를 물너슬려고한다하니 새해의 조선극계도 어수선한 정월!

◎新 副 業 가 진 테—니權泰浩氏
한때 조선음악게에서 『테—너』로써 가장 촉망을 받든 권태호(權泰浩)씨가 그후 뜻한바있어 평양(平壤)으로 나려가 광성중학(光成中學)에서 교편(敎鞭)을 잡고있는 한편 꾸준히 연구(硏究)에 정렬(情熱)을 기울이고 있드니 이번 다시 후진양성(後進養成)의 아량(雅量)을 베풀고저 평양 신양리(新陽里)七一의七호에 권태호음악연구소『權泰浩音樂硏究所』의 간판을 걸고 평양음악협회『平壤音樂協會』의 분주한 지도(指導)를 보는한편 틈틈이 후진양성에 치중하는 중이라한다.
지도과목(科目)은 기악과(器樂科)와 음악학교입학시험준비과(音樂學校入學試驗準備科)라 하니 어데까지나 후진의 앞길을 깐깐히 보살펴줄 모양!
금일같이 음악렬(音樂熱)이 왕성하면서도 완전한 지도기관(指導機關)이 없어 허덕이고있든 음악도(音樂徒)에게는 실로 헤성적인 행복을 늣길것이다.
특히 지방(地方)일사록 더욱 지도기관의 빈곤(貧困)을 늣기는 이때 저윽히 반가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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