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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음악학교 설치론―조선아악과도 설치―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조선음악학교 설치론―조선아악과도 설치― 朝鮮音樂學校設置論―朝鮮雅樂科도設置―
종    류 논설 論說
필    자 김영환 金永煥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41-04 昭和十六年四月
면    수 51 (51)
기사
朝鮮雅樂科도設置
—難點은 資本과 人材—
京城淑明高等女學校 金永煥
藝術을 專攻하는 機關으로서 美術學校와 함께 朝鮮에도 完全한 音樂學校가 創建되여야할 필요를 只今새삼스러이 痛感하는바는 아니지만 如何튼 이 音樂學校創設問題는 等閑視할것이 아니고 吾人에게 賦與된 時急한 課題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藝術의 어느部門이나 다 그러하겠지만 特히 文學과 音樂은 藝術中에서도 가장 人間과의 密接한關聯을 맺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緊張과 努力을 무엇보다 生活의 第一義로 하는 戰時下일쑤록 그 緊張과 疲勞를 慰瘉하고 民家의 感情을 音樂藝術로 潤澤케 하여 써 銃後國民生活을 明朗케 해야 할것이다. 이러한 點에서도 音樂學校의 創立必要를 더욱 喫緊히 要望하는바이오 나도 이 運動의 實現을 爲해서 過去에 여러 角度에서 硏究와 檢討를 거듭했었으나 結局 뒤따르는 가장 큰 難問題는 資本과人材問題였었다.
塩原學務局長도 百萬圓程度로 音樂學校와 美術學校를 設立함이 如何하냐고 하며 資金만을 얻어놓으라 한일이 있다. 그러나 그뒤 이 問題는 다시 論議되여서 人材가 무엇보다 더큰 問題로 되였었다. 아무리 學校의 機構가 整備되였다 할지라도 그 學校의 權威라는것이 무엇보다 緊要한데 그 權威를 爲해서는 權威있는 敎授를 두어야 할것이다.
내가 東京上野音樂學校에 通學하던 時代만해도 學校의 權威라는것을 爲해서 獨逸서 有名한 獨逸人 音樂敎授六名을 초빙해서 敎授시컸는데 每人이 各各 一個月俸給이 千圓이였고 집세까지 合하면 一千七十五圓이였었다. 이것이 꼭 三十年前 일이니 三十年前의 千圓이란金額은 지금돈의 三千圓이나 五千圓에 該當하다해도 可할 程度의 巨金이였었다. 그리하여 音樂學校의 一年間 經費가 無慮 三十八萬圓이라는 巨額에 達했었는데 一年間 三十八萬圓을 消毫하면서 길러내여 卒原시키는 學生의 數는 겨우 一百五十名에 不過하다. 그러니까 結局 一百五十名을 爲해서 三十八萬圓이 없어지는 이 엄청난 經營이朝鮮서 이루어지기가 매우 難事中의 하나요, 그리고 權威있는 敎授가 京城에 오지 않을 첫 條件은 自己의 活動舞臺가 좁아지는것과 및 副收入이 別로 없는것이다. 東京만 해도 個人敎授 (京城서도 個人敎授할수 없는것은 아니로되 그 數가적고 또한 배우려는 사람이 廉價主義를 쓰기때문에)와 獨唱會, 學校主催音樂會(學校主催라고해도 報酬를 받는다)等으로 그 收入이 많기 때문에 이름을 드날리는 敎授를 京城에 모셔오기가 매우 困難하다. 그外에도 音樂學校는 機樂이면 個人個人이 다 한 피아노를 차지하고 배우기때문에 다른 學校보다 經費가 더한것은 周知의 事實일것이다.
그렇다고 資本이나 人材를 無視한 二流, 三流의 音樂學校를 設立한다는것은 나는 그리 贊成하고 싶지않다. 차라리 못세울망정 세울바엔 內地人이나 外國人까지도 와서 배우려고 志望하게 되는 그러한 權威있는 學校의 誕生을 보고 싶은것이다. 無論 이 點에서 나는 私立보다 公立이나 官立을 希望하는者이다. 그것은 내가 東京時代에 東洋音樂學校라는 私立學校를 卒業했고 다시 上野音樂學校라는 官立學校를 卒業했기 때문에 私立, 官立의 두 맛을 다 맛본 나의 體驗으로는 亦是 音樂學校는 朝鮮에 있어서는 官立이여야겠다고 느낀다.
그리고 上野音樂學校의 權威있는 音樂敎授를 時間敎授로 모시자해도 같은 東京市內라면 몰라도 京城서는 飛行機로 왔다갔다 할수도 없고 그러니까 亦是 問題는 人材요 資本이다.
萬一 以上의 諸問題가 解決될수가 있다면 그 位置는 亦是 京城이오 科目은 東京 上野音樂學校를準하되 特히 朝鮮音樂科라는것을 設置하고싶다. 在來 朝鮮의 音樂이라는것은 「노자 노자 젊어서 놀자」는 式으로 怠慢을 意味한다든가 或은 에로틱한것이 太半이여서 이러한 內容의 音樂으로서는 健全한 國民의 感情을 振作시키기가 어렵고 따라서 現時局에 鑑해서도 讚成할수 없는데 그렇다고 朝鮮의 固有音樂을 버려서는 안될것이다. 西洋사람의 입에는 빵과 빠다가 맛들고 朝鮮사람의 입에는 김치와 된장국이 맛들듯이 우리의 音樂的情緖(或은 情操)를 無視할수가 없다 이 點에서 在來의 朝鮮音樂을 藝術的인것으로 改良해서 敎授시키는 朝鮮音樂科의 設置를 主張한다. 無論 이 點은 當局에서도 李王職雅樂部라는 것을 두어서 朝鮮의 古典音樂의 繼承과 및 奬勵를 積極的으로 하고 있기때문에 우리보다도 當局이 더 率先해서 支持할것이라 믿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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