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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지 이인직―한국 기백년래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화용도등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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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표준화 정보 |
원문정보 |
기사제목 |
연극계지 이인직―한국 기백년래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화용도등의― |
演劇界之李人稙―韓國 幾百年來로 春香歌 沈淸歌 興夫歌 華容道等의― |
종 류 |
논설 |
論說 |
필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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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정보 |
대한매일신보 |
大韓每日申報 |
연 도 |
1908-11-08 |
隆熙二年十一月八日 |
면 수 |
0 |
면수 모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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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幾百年來로 春香歌 沈淸歌 興夫歌 華容道等의 淫蕩的황怪的演劇을
今日에 至야 李人稙氏가 臂를 揚고 改良을 自擔얏도다
今日에 至야 李人稙 그가 目을 瞋고 改良을 自期얏도다 嗚呼라 演劇의 改良은 吾軰도 曾往의 絕叫 라 此 改良여야 國民의 純粹 德性을 陶鑄지며 此를 改良여야 國民의 高尙 感情을 皷吹지라 是以로 壹般有人心이 莫不曰演劇改良던 々々々々던 次에 李人稙氏가 圓覺社를 設고 演劇을 改良다 기에 耳 傾여 曰
今日演劇에 東國先民의 愚 溫達 乙支文德을 仰謄더니 嗟乎異哉라 依舊是 月梅의 罵女聲만 尼喃며
明日演劇에 泰西近代의 華盛頓 拿破倫을 快都 하더니
嗟乎快哉라 依舊是 놀보의 妬弟語만 爛熳며
然別又明月에나 忠臣義婦 或快男烈俠의 歷史 壹聞 新世界冒險的人物을 壹見 더니 嗚乎라 依舊是 春香歌 沈淸歌 華容道이로다
嗚乎라 李人稙氏여 君의 口를 依하면 改良이 已久나 衆人의 眼으로 看면 改良이 都無니 嗚乎라 李人稙氏여
盖世의 心膓은 路人이 皆知라 氏가 已往 日本留學하던 時에 大段히 小說에 留意야 遽然히 韓國內 第壹等小說家로 自命 者이니 彼가 萬壹社會及國家에 對야 壹半分公盖上思想이 有진대 羅賓孫漂流記와 如 奇文을 譯야 國民의 冒險心을 皷발도 可며 若 安貞德救國傳과 如 壹小史를 著야 民國의 愛國性을 鑄造도 可거날 今也에 不然하야 彼도 不爲며 此도 不爲고 只是 牟利的起見으로 爲妾辨護의 「鬼의 聲」과 如 小說을 著야 社會上의 道德만 破壞며 讀者諸君을 媚倒고 册價 其百圜으로 其下著費만 充얏도다
吾輩가 此一節을 推야 李人稙氏의 五臟을 洞見바니 彼가 演劇改良의 名을 借야 此等孽業造出을 又何足怪며 又何足怪리오만은 今也에 又壹可驚 事 卽該氏가 演劇觀察次로 日本에 渡往얏다 하니 噫라 其魔術이 愈長야 益々히 其奇怪황誕淫蕩的의 演劇으로 國民의 心志를 蕩면 其害가 豈小
嗚乎라 氏여 作孽이 已深커날 又何樣禍坑을 造야 同胞에게 流毒코 지
書籍을 著佈던지 演劇을 設行던지 斯民의 利됨과 害됨은 不問고 但只 紙幣 百千圜만 自家手中에 入면 此 爲야 歌며 此 爲야 舞 李人稙氏여
海外에 遊覽야 文明新空氣 吸收 人의 心法이 乃此에 止가 噫々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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