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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열전(1) 국창 이동백 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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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표준화 정보 |
원문정보 |
기사제목 |
명인열전(1) 국창 이동백 옹 |
名人列傳(其一) 國唱李東伯翁 |
종 류 |
좌담 |
座談 |
필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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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정보 |
삼천리 |
三千里 |
연 도 |
1929-12 |
昭和四年十二月 |
면 수 |
2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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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男性的의豪放한 藝風으로 一世를울니든 名唱李東伯翁을 서울鳳翼洞의 自宅에찻고 朝鮮歌曲을中心으로한 座談을試하다. 실로翁가치春香歌한대목심청가한대묵을넘길에萬人을驚喜식키는이가드물어서確實히氏의存在는 朝鮮古藝術上의光彩에틀님이업다. 이제우리의갑가는 □날의歌舞가漸漸退하여가는이에翁의 健在를알니는것이 無意味한일이아니리라 本誌는압흐로도 藝術에 精進하는여러名人의列傳을 揭載할터인바 다만今番에紹介하는李東伯翁에 이르러는氏의傳記보다도 오히려그意見과 風貌를傳함이더조흘듯십허 座談을그냥筆記하여 내어놋는바이노라.
×
○記者, 朝鮮에서 名唱이라고 부를만한이가 누구누구임니
○翁, 世上에서는 金昌元과宋萬甲과李東伯이를치는모양입데다만은 金昌元어룬도이제는 일흔다섯을먹엇고 小人도예순여섯을 먹엇스니 이러케 늙어지고도 소리 잘하는名唱이란말을듯는지오
○記者 그런데 세분의 뒤를 이을만한분은 누구누구서요? 개중에도 졂은이들로요…….
○翁 孔昌植이 낫슴넨다. 그리고 女唱으로는李花中仙과 裴雪香과 朴綠珠 韓弄珠 좀러서 金秋月을치지요 그중에도 李花中仙이와 朴綠珠가 낫다할가요…… 아무튼뒤를 이어줄만한사람이업는것이심히쓸쓸하여요 소리란 이상한것이되어서 하는사람에게는 쉬운물건이되나 배우는사람에게는 무척어려운것인모양이니요
○記者 先生은 누구에게서歌曲을배우섯슴니
○翁 나는 원래 忠南舒川에나서 早失父母하고 스물두살지 집에곱다라케 드러안저 농사질을하고잇섯지요 그리다가무슨바람이부럿든지난봉이나서 서울과 舒川을오르나리며 豪蕩하기를시작하엿는데 그 嶺南에활잘쏘고 風采조코 文章이 有餘할더러 歌曲를 정말히하는 金永根이라는 선비가 잇섯슴넨다 그래서 그어룬압헤가서 소리를배워가지고 少年豪氣에 忠淸道일다 慶尙道일다 江原道일다하고 여러고을을 틈잇는대로 쏘다니며 興에겨워노래를 부르고단녓담니다
○記者 그러시고는?
○翁 그러케 한참 八道를도라다니다가 서울로올라와선영성문안에 집을잡고 잇섯지요. 그리는사이에 세도재상들이 엇지엇지 알고서나를큰잔채마다자조부르기에 각금대가집大廳과사랑출입을 하엿지요 그리는동안에 마츰 高宗서 아시고 부르십데다그려 그래서 그뒤부터는 궁궐안 掌樂院에 因緣을 맷고잇섯담니다. 景福宮과 德壽宮으로 恒常드나들면서요……
○記者 그러면 官祿을 자섯슴니다. 그러니 그벼슬은 무엇이라고 하섯슴니
○翁 암요, 옥관자달고官服出仕하엿지요그런데우리나라의 소리한다는 사람들歷史를 보면 이전에는政府에서 만히歌曲을勸獎도하고 라서樂人들을 厚遇도하여주엇담니다. 즉 녯날 新羅에는 歌客들에게「榮官」이라는 벼슬을 주엇스며그러다가「花郞」이라고 는「俳優」라고도 사회에서 稱號를 밧다오다가 다시 花郞이 되엇다가 太祖大王에는倡夫라고일컷게되엇담니다. 이事實은 梅下崔永年어룬에게 가서무르면 잘아시지요. 그런데太祖서 위에오르실에 樂人樂工만 七百七十二名의 多數가엇섯다함니다.
그러니 그나라에서 禮樂을얼마나所重하게 녁인것을 알수잇지안슴니. 그런데 李朝初頭의 聲樂家라하는것은 開城杜門洞의 不服之臣七十二人의 子孫들이 大部分이엇지요 즉 그네둘은얼골잘생기고 글을잘하지만 科擧에을일코한갓몸을 風流에 던지어 聲樂을 工夫하엿드래요 그럴에 太祖서는 그들을불너 宮廷의 樂人들을만드섯담니다 그래도不服之臣의 子弟들임으로 혹은 을품지안을가 겁을내시어 그네들은 宮闕밧게두게하시고 王의侍側에는 兒童侍樂所라고 나어린兒孩들만 敎練식혀서聲樂隊을組織식혀두섯드람니다. 드른즉 그 그러케도 音樂과歌曲을몹시 獎勵한닭은 太祖서 내을어드시고 松都로부터서울로 遷都하게되어茫茫草原가튼漢陽에 터를잡고 北岳山밋헤景福宮을짓고 들기는하섯스나 朝廷에잇는 百官들이도모지 서울에 마음이 붓지아녀함으로不得已 그마음을 진정식혀주기爲하시어松都로얼마 내려가 계시다가다시 數年后면 率百官하고서울로올라오시군 올나오섯다가는 내려가시군……엇잿든 三十餘年間을 東西兩京으로오르내리시며게섯담니다 그래서 도모지 安堵를엇지못하는신하의마음을 진정식히기위하야 그마음을늣추어줄 音樂에 모든힘을 쓰섯드람니다.
×
○記者 엇더케 朝鮮古聲樂을時代사람의 가슴에 어울니게 多少곤처서 크게 復興식힐 道理가 업사오리
○翁 할수도잇겟지요. 지금 생각나는일은몃해천에 市內엇든 高等學校學生셋이 내집을 차저와서 朝鮮古聲樂의 復興에힘을쓸터이니 聲樂울 가르처달나고 熱心히 請하기에 그나는 여러가지일로直接 배워줄수는업스나 光武臺에잇는 白点鳳어룬에게 가보라고하엿더니 그뒤에 드른즉 그學生셋은 約二個年동안이나熱心히 白氏에게 師事하며 노래를 배우드래요. 누구든지 新體音樂의 素養이잇는분으로 이方面에着眼하고힘을써주섯스면 古歌謠의復興이란대단히쉬울줄알어요
○記者 그方法으로는?
○翁 爲先돈잇는이들이 劇場한개만 지어주면 그것을維持하여가면서 聲樂아니라 춤이라든지 其他 녯날 藝術에 對한것을硏究하여나가는한편 新式藝術家들과손을맛잡고 硏究하여낸 그藝術을널니普及시켜보고십슴니다.
○記者 先生의 藝術에對하야 或 西洋사람들이 무에라고 批評하는 말슴을드른적이업슴니
○翁 年前에 어느舞臺에 올나서서 「새타령」을한일이잇지요「저벅국새가 나라든다, 이산에가도 국국저산에가도 국국」하면서……그랫드니 梨花學堂과 培材學堂을 設立한 무에라고하는 西洋사람이와서 자긔나라에도 국새우름을 우는 노래가락이잇는데조선의노래가대단히조타고하면서한편 自己나라로 가사고 熱心히 勸하는말을 드럿슴니다. 그러고 再昨年가을에는 布哇에잇는 우리七千同胞가 종로靑年會館의某氏와 某團體의某氏를通하여 布哇로 期於히 와달라는招請을밧엇슴니다 더구나 그는 布哇에 잇는 우리나라의 有名한富者 朴某라는 분의 回甲잔채가 림박하여서 그富豪로부터 再三懇請이 잇섯슴니다. 이늙은李東伯을 萬里박게서 알아주고 동포가부른다하니 아니갈수가잇사오릿 分外의 榮光으로 생각하고 즉시 나려하엿스나 드른즉 너무 뱃길이 오래어서 날가치 배에약한사람은生命을건저쥐기어려울지경이라합데다. 醫師의말에도 그런먼곳으로가자면 六味먹든사람은 몃칠 病院에 入院하여그지름를 아야한다한즉 엇더케갈수가잇겟슴니 그것이지금 생각하면 엇더케 遺憾스러웟는지 몰으겟슴니다. 歌客四十年에 世界에한번나가 조선노래라고 우렁차게불너보고 죽는다면 엇더케 痛快한일이겟슴니
○記者 네 大端히 유감스러윗슴니다 그런데 조선서는 어느곳사람들이 可히 소리를 알아듯는다고나할가요?.
○翁 全羅道와 慶尙道가낫지요忠淸道사람도 괜찬치요 그러나大體로 술취한사람의거름거리모양으로 헤둘헤둘하며 정작聲樂에는 건달들이大部分임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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