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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당의 제작자로서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개화당의 제작자로서 開化黨의製作者로서
종    류 수기 手記
필    자 나운규 羅雲奎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2-07 昭和七年七月
면    수 44 44
기사
[사진] 戰況을報告하는 李圭完(羅雲奎)과 命令하는 金玉均(左)
[사진] 郵政局門前으로 突進直前의 壯士패들
[사진] 春外春
滿一年만에 開化黨異聞이라는 作品이 完成되엿다.
어느作品에서나 늣기는바이지만 着手할에 가지엿든希望은 製作中에 사러저버리고만다. 이作品도 처음準備할는 完全한史劇을 만드러서 일홈을 「開化黨」이라고만 붓치려던것이 여러가지 形便으로 完全한史劇으로는 될수업섯고 그러타고 미여낸 이야기도아님으로 開化黨이라는밋헤 怪異하게글字들을붓처서 開化黨異聞이라는일홈으로 發表할수밧게업섯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理由가잇스니
첫재로는 政府가박귀이는 大事件을 그대로그려내기에는 우리들의財力이 넘어도貧弱하엿고 더군다나 그것이 지내간時代의 이야기기문에 이問題는 한층더하다
둘재로는 事實의 記錄만으로는 도모지 一篇의劇이 될수업섯다. 劇的으로 連結이되지못한記錄은 엇던一部分의 觀客以外에는 興味를 지못하겟슴으로 興行物로 價値가업스니 興行價値가업는作品은 만들 勇氣가 업섯고
셋제로는 事件이멀지안은過去의 일임으로 事件에綰繫된 사람들中에 生存한사람도잇고  其親戚들도 만키문에 本名을써서 事件그대로 一一이日記처럼그려노키 어려운事情이 만햇든것이다. 그런여러가지理由로 開化黨은 開化黨異聞이되여서 世上에나아가게되엿다 그러타고 開化黨이라고 일홈붓치는以上 事實에서 넘어날수업슴으로 實情을 本位로하랴니 여기에 큰問題가生긴다. 正史上에나타난것만은 그대로밋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各各다른說이잇지만 大同小異하니) 裏面史 (이것은 大槪本人들과 그에直接본사람의이야기) 에잇서서는 一一히다른說이만키문에 어느것을 主體로 잡을수가업고 어데지가事實인지 알길이업스며 事實만그대로가지고는 너무無味하다.例를들면 李圭完의 膽力을 試驗하기爲해서 徐載弼이가自己집에불너칼을내주며 XXX를죽이라고말햇다 그에圭完이가그칼을 얼는 바더들고나가려하엿다 그것을보고 비로소 圭完이를 밋을수잇섯다는 것과 一說은 載弼이가아니요 金玉均이가 直接 이試驗을햇다는것이다. 누가 이試驗을햇든지 그것은 아모라도 상관이업지만 이것만으로는 事實이너머도 無味하다. 그래서 여기에 좀加味해가지고 試驗한것이 金玉均이라고 斷定해버리고 (事實은 載弼이라는 便이 올흔것갓지만 試驗하는目的이 膽力試驗만이 아니라 意志試驗지兼하야 XXX를 죽여달나는것이아니라 大勢를보아 開化는當分間不可能하다는것을力說하고 開化黨便의 主要한人物몃사람의목을버혀 守舊黨便에밧치고 그便으로붓자는것을 議論햇다고 만드러노앗다.
그다음 郵政局압개천에 숨어잇다가 第一먼저칼을것이 日本人塚戶라고 되여잇는것을 圭完으로곳첫고 그날에쓴칼이 朴泳孝가가저온 日本刀엿스나 金玉均이가準備한 朝鮮칼로곳첫고 圭完이가 當日前夜 (十六日) 에 中林들에게最後의 斷判을하엿다는것을보면 分明히 서울에서잇섯던것인대 劇으로는 廣州에에잇다가 當日에 오도록 만드럿다. 이러케 곳치여가며해나아가는동안에 連結를 식혀노흐려니 事實과는 距里가 멀니러진 이야기가되엿슴으로 開化黨이라고 붓칠勇氣좃차 업서젓든것이다.
그리고 더군다나 今番撮影中에 第一머리압프게한것은 劒法이다. 그에留學生들이라고 일홈만日本留學生이지 士官學校몃달동안에 무슨劒法이라고 배웟슬理가업고 배웟다고하드래도 寫眞에日本劒法그대로하는것이보히면 日本舊劇숭내를낸다고 觀客이 그대로보아줄理가업다. 事實李圭完이갓흔 사람의이야기를들으면 劒法도아무것도 업섯다고한다.自己가 가지고쓴칼이 日本刀中에도 第一크고긴것이엿스며 다른사람보담 기운이만키 문에 크고긴日本刀를 함부로내저어서 누구보다도 有利하게썻다고한다. 그에쓰던칼은 도망해갈에 千歲丸船中에서 日本人某 에게주엇다니 實物을볼수도업고 더구나 朝鮮서는 처음寫眞에長劒을 쓰는것이기문에 事實과는 좀틀니드래도 純朝鮮式劒法을 써보랴고 各方面으로 차저보앗스나 우리들에게 劒法을가르처줄만한사람은 차저낼수가업섯다. 이問題문에 아조落望이되여잇슬에 누가 이런말을 傳해준다. 朝鮮에劒術이라고 로잇슬理가업다. 다른모든것과갓치 淸國것을 본온것이리라는것이다. 歷史가 四千餘年이라면 적어도칼이 必要햇던것은 누구나아랏슬것인대 劒法이 업섯다는것은 밋어지지 아니하는 말이나 쩗은時日에는 求할길이업고해서 그말을좃차 中國人劍客이 太平通近處에잇다고 하기문에 차저다니다가 三四日만에야 만나서 이야기햇더니 最後의希望지도어지고만다. 적어도 三年은배워야 비슷한숭내라도 내겟다고한다. 그럴理가업다고 力說햇더니 絶對로 될수업는일이라고 一笑로돌려버린다. 事實그런사람의눈으로는 그러케보는것이 當然한것갓다. 첫재로 體質 衣服 忍耐力갓흔것을보아서 그러케 生覺하는것이 當然한일이다. 柔道 拳鬪에 比할것이아니라한다. 日本劍術과도달너서 벌거벗은 알몸으로 鐵鎚를 두르며 배호는일이니 短時日에는 도모지될수업스리라는것을 닷고도 死體에注射놋는格으로 마지막으로 가르처줄수업스면 當身네가와서 朝鮮옷을입고 우리代身해달나고 請햇더니 前年萬寶山事件以後로는 警察에서 自己네武道館에 集會를禁止햇기문에 사람을 모힐수업고 或잇드래도 四五人에不過하며 그것도 一一히무러보아야알겟고 日當에는 一人에三十圓밧은例가잇다니 하는것이 해주기실흔모양이다 時日은急하고 그것문에 四五日을 空費할수업서서 할수업시 우리들리 모혀하자니 칼은朝鮮칼을 한손에쥐고 日本武士式으로덤비는사람 洋式으로 휘두르는사람 別別우수운일이 다만햇다. 그러느라니 作品은우수운物件이 되는수밧게업다. 이劍法에對한것은 다음 機會를기다리는 수밧게업다.
한가지는 圭完이가 廣州에서 馬를타고 오는塲面이잇는대 勿論朝鮮馬라야되겟기에 여러곳으로求하여보앗더니 東大門外에잇다기에 西江으로만나기 約束을하고가서 終日기다렷더니 다저녁에야 말하나가오는대 아조말이아님니다. 말이라면 西部劇에나오는 白銀갓흔 名馬等에 눈이익은 觀客에게 탈사람보담도 더적은말이 거북처럼 엉기엉기 기여가는것을 보면 腰絶大笑를 免할수업다. 그래할수업시 도로보내고 달니차젓더니 往十里에 白馬로크고 잘가는것이 잇다고하기에 나는 北間島地方으로 단닐에 타던말이 生覺나서 적어도 달니기는잘하려니밋고 모든準備를 다-해가지고 往十里로 나갓더니 말이 섬에서 올터인대 아직아니왓스니 기다리라기에 기다렷더니 두時間이나 지난뒤에 白馬하나가왓는대 굉장함니다. 馬主가말이사나우니 갓가히오지말나고 소래를지르며 밧줄로 四面을얽어서 말이머리도 못돌니게 드러노앗다. 크기는 우에말한 西江말보다도 적으나 그러나 적은대신 달니기는잘하려니하고 타볼터이니 줄을러달나고햇더니 危險하니 그대로타라고한다 타보니달니지못한다. 왜이러냐고 무른즉붓잡어맷기문에 그럿타고한다. 그래 할수업서서 뱃장을한번내밀엇다. 말이달니지도못하니 못쓰겟다고하고 도로오랴고車를 불넛더니 그에야 할수업다는듯이 馬主어룬이 내가탈것이니보라면서 매노앗든줄을어 타고나서더니 名馬에加鞭하야내닷는데 엇지도른지 군벵이와競走하면 百메-돌에 三尺이나 먼저갈가말가 할수업시 先金준것도 곱게날니고 도라오며 生覺해보니 옛날이야기에는 千里馬萬里馬가잇섯다는대 아모리생각하여보아도 강아지보담 조곰더큰 말이 至今사람보담도 더컷다는옛날사람을 등에지고 千里길을하로에갓슬理가업다. 옛사람이입던옷이나칼을보면 반다시지금사람보다는 기운도세고 몸도컷슬터이니 馬도 옛날에는 큰것이잇섯슬터이지 이러케 혼자서斷定하야버리고 乘馬俱樂部로가서 洋馬中에 其中第一 적고 잘나가는말을골나내노흐니 맛는 朝鮮안장이업다. 할수업시 담요를두르고 벼로줄을돌여서 假設해가지고 겨우말이라고 달니는을보게되엿다.
이러한平坦치못한길을 것처서된 怪物 開化黨異聞이 한 檢閱이란難關에서 엇더한 가위洗禮를밧을는지?
이러케써노코보니 自己辨明만 느러노코말앗슴니다. 妄言多謝

一九三二, 六, 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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