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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음악가 언파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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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인기 음악가 언파레트 人氣音樂家 언파레-트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채규엽 蔡奎燁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2-06 昭和七年六月
면    수 36 36
기사
지난 二十四日三千里社 金東煥氏서 六月號三千里에 揭載하겟스니 音樂家언파레-트를써서 二十五日지 보내달 나는 付託이잇섯다 더욱 現行流行歌謠에對하여도 써달나는 말슴이엿스나 이는다음號에 밀기로하고 爲先音樂家언파 레-트도 一部만을 쓰게하여달나고 하여 가지고 이에몃분의 말삼을 실게되엿스니 評밧는 분이나 읽어주시는 여러분의넓으신 理解잇서 주기를바라는 바이다 爲先 時間이업서서 仔細한것을 쓰지못하고 생각나는 대로써가오니 눌너보아주십사는 말밧게아모것도 업다.
先進音樂家들도 數만흠에 後進으로도 오히려 不足을 늣기는 내가 이런글을씀을 양해하여 달나는것이다.
[사진] 蔡奎燁氏

玄濟明氏
[사진] 현제명
우리樂壇에 업지못할둘도 업는 테너- 歌手이다 그리고 朝鮮사람으로 처음된 音樂學士이다.
音樂家들中에서 키가 第一크고 얼골이 울퉁불퉁 하기는이이다. 말하자면 男性的으로 생기엿스나 美男과는 正反對이다 米國에서 修學한 發聲, 音量音色어느 것이나 나무릴데업는 것이 事實이다 音樂會마다 二拍三拍의 歡迎밧기는 으레이다 각금 音樂會에 피아노 獨奏지하여 意外의 歡迎을 바드며 半島의 人氣를 獨占하고잇다 今年四月에 日本콜넘비아 會社의 간청으로 筆者와함 大阪吹込所에가서 數枚의 레코-드를 吹込하엿는데 모다잘 吹込되여잇다 오는 六月콜럼비아 新譜에 發賣된다니 들으면 알것이다 더욱 吹込當時 玄氏의 實演을듯고잇던 有名한 指揮者 杉田良造氏며 카아이氏들도 玄氏를 가라처 日本에도 좀처럼 저런 훌융한 聲樂家는 업다고지 評하여주는것을 筆者는들고 매우반가웟다. 氏가 얼마전에 作曲集을 發刊하엿는데 모다 大衆的이엇다.
그中에도 「나물캐는 處女」 「니나」 「고향생각」 「가을」 等은 아조걸작이라고 본다 作詞亦是氏自信잇게지은것임으로 「멜로듸」에잘調和 (附合) 되여잇다 樂器치고이이가못하는 樂器는 하나도업다.
最近延禧專門學校 音樂部主催의 音樂演奏會가 公會堂에 열여슬 심포오니 오-게스트라에 指揮하는것을 보앗다 그만큼 그는 熱情的音樂家이다 하나섭々한 消息은 中央聲友會의 모임이 近日뵈이지아니 하는것은 氏의 責任如何에 잇다고 할가 그리고 玄氏의게 바라는것은 機會를 보아 音樂講習所갓흔것을 設立하여 가지고 延禧專門만 돌보지말고 좀더 一般後進學徒를 爲하여 活動하여 주기를 바란다 氏는 方今延禧專門學校 音樂敎援이요 朝鮮音樂家協會理事長이다.
압흐로 우리樂界를 곱게 장식하여줄 主人公이다.

安基永氏
[사진] 안기영
安基永氏라면 누구를 勿論하고 키가적고 아담스러히 생긴 梨花女專音樂科敎援 인줄알 것이다 年前米國의 音樂學校를 맛치고 돌아와슬엔 獨唱會도열고 各地方巡囘演奏會도 相當하여서 人氣를 集中하고잇더니 얼마전에 李尙俊氏와의 問題가 이슨후어지 좀처럼 스테-지에선 아조보기드물다 聲友會도 그동안 指揮하고잇섯드니 무슨事情인지 聲友會의公演조차 드물어진 模樣이다 音樂家를 數만히갓지못한 우리樂界에 섭々한 消息이다.
氏의作品中레코-드로서는 무엇へ하여도 歌劇「女子의마음」(리고렛트) 과 「나」이라 하겟다. 그리고 作曲集도 벌서 두囘를거듭하여 發行하엿는데 大衆歌謠曲이라 할만한 曲이적고 筆者로서는 「그리운江南」 「麻衣太子」 「우리아기날」等이 나은 便이라고보앗다 다음安氏가 노래불을에 언제나 한가지 クセ이스니 이는 安氏의 노래들은 사람이면 알것이고 레코-드를 들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것이다 安氏自身도 알것이니 이에略한다 마지막 부탁이잇노니 그는 李尙俊氏間의 問題이다 이러한 問題는 하루 急히 解決짓기를 바란다 一般後進 學徒를 爲하거나 貧弱한 朝鮮樂壇에 큰損失이니만치 나는 하로밧비 解決을 짓기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여전히 樂界를 爲하여 활약하며 聲友會의 指揮도 하여 주기를 바라는바이다.

蔡東鮮氏
蔡東鮮氏라면 누구를 勿論하고 얌전한 提琴家인것은 알것이라고 밋는다 氏는 朝鮮에서 第一몬저 「바요링」을 사가지고 工夫를 始作한이다 얼마동안 京城에서 中學時代 (第一高普當時) 에 熱心으로 바요링을 工夫하다가 中學을 맛치고 東京으로 건너가서 早大文科에 通學하는 一便亦是 그길을 닥그며 硏究하다가 早大도 맛치고 獨逸로 遊學을 가섯다 獨逸遊學을 四五年동안 할지음 全혀 提琴을 專攻 하엿든것이다 그곳에서 만흔 天才라는 말을듯다가 年前朝鮮에 돌아와서 公會堂에 二三囘의 提琴獨奏會를 열어 半島樂壇에 큰 센세이슌을이르키엿다 그리고 提琴으로 이이를 지나칠사람은 업다고들 한동안 야단이엿스며 들엇든것이 事實이다 그後梨專을맛친 金孃과結婚하여 東大門밧게서 滋味잇는新婚生活에 억매엿슴인지 近日獨奏會컨영 音樂會지 좀처럼 나오지 아니한다.
말하자면 熱이 식어젓나 하고이심할이다 하로밧비 獨逸에서多年間修學한 技巧으로 後進을 爲하여 힘써주기를 바랄이다.
氏의 演奏會曲目을 보면 大體는 古典樂을 매우조화하는것 □다 그리고 녯날선배 모양으로 音樂會에 求景 다닐엔 반다시 朝鮮衣服을 잘입는다 사치와 가장을실혀하는 우리의 提琴家이다

金永煥氏
朝鮮사람으로 東京上野音樂學校本科를 卒業하기는 처음이요 朝鮮樂壇에서 피아노로 이이를 지나칠 사람은 업슬것이다 平壤出生으로 京城와서 樂界에 만-흔도음을준 先배이다.
現在淑明女高에 잇스면서 흔□日本人側 個人敎援와 日本人側 主催의 音樂會에 잘 出演한다 朝鮮人音樂家中 돈도相當히 모은이라고한다 피아노칠에 머리는 건판에 대이다십히 손은 空中에 춤추듯 한다 이리하여 再拍이□다지고야 만다 좀처럼 出演하□아니 하는것이 特色! 朝鮮音樂會某氏와 感情이잇슴인지 會議□도 잘 出席치안는다고 들엇다 아무튼 先輩 金永煥氏는 우리樂壇에 업지못할 분인즉 압흐로 더 朝鮮사람을 爲하여 엇던 □動이 잇서주기를 바랄이다.

安柄昭君
[사진] 안병소
極히 貧寒한 家庭에서 태여나 오날지 열아홉번의 여름을마지하여도 亦是提琴하나 조흔것을 갓지못하고 熱情으로 싸워나오는 年少한 提琴家가 잇스니 卽그가 安柄昭君이다 養正高普도 學資關係로 中途에서 退學하고 이래몃年동안 돈이라는 물건에 시달니여가며 그나마 提琴한개 조흔것을 가지지못하고 남모를 긴-한숨을 쉬엿든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겨우 提琴이라고 변々치못한것 하나 어든君은 貞洞에서 바요링 敎援하는 『훗쓰』氏에게서 個人敎授를 밧엇든것이다 훗쓰氏에게 敎授밧은지 不過二年半 이 못되여 「훗쓰」氏는 自己의 技術로는 이安君을 가라치지 못하겟다고 言明한후 米國으로가서 그天才를 發揮하라고 몃번이나 권하엿스나 物質의 힘은 結局安君의 재조와 理想을 여지업시 막어버리 엿든것이다 그래도 그는 홀노겨을 눈보라치는 차듸찬방에서 입김으로 손을녹여가며 硏究에 硏究를 거듭한 結果年前中央基督敎靑年會館에서 渡美送別提琴獨奏會를 열엇든것이다.
이演奏會의 入場料라도 얼마되며 同情金이라도 얼마들어오면 곳 米國으로 出發할여고 作定이되엿든것이다 그러나 當夜同情金은 勿論업섯거니와 入場料도 極히 적엇다고 한다 이리하여 渡美送別 獨奏會는 도리혀 安君으로하여금 몹씨어린 가삼을 압흐게 하엿고 피가케하엿다 그후 그는 每日과갓치 집에누어 눌물을흘니며 이社會制度와 自己의 環境을 삷히여 업시 설어하엿고 눈에 이는 모-든 萬相의 敵이되여 보이엿다 그럴사록 그는 더욱 싸워가며 그에 天才的技術을 發揮하고야말 決心으로 今年二月에 長谷川町公會堂에서 朝鮮音樂家協會主催下에 提琴獨奏會를 열엇다 當夜曲目은 大部分이 近代樂으로 技巧本位의 푸로크람이엿다 舞台에 나선 그는 번々히 二拍三拍의 歡迎을 밧엇다 그푸로 臺台曲目中에서도 크라이스러作 支那皷曲과 사라사-데作 西班牙舞曲(자파테아도)等은 筆者가 東京이슬 大家들이 흔히하는 曲인데 그가 그大曲을 조곰도 힘안드리여 함에는 놀나지안을 수업다 단지 解釋이조곰 不足할름 이라고 하겟다.
압흐로 君은 世界的으로 有名한 提琴家가 될줄안다 갓가운 東洋日本에 가령 이런天才가 잇다고하면 벌서 資産家의 손에것처서 遊學의 길을가슬줄안다 마지막 安君의 임업는 硏究를바라는 同時渡美못하는 것을 可석히 생각하며 마음으로 라도 同情의눈물을 금치못하는 바이다.

崔虎永氏
[사진] 최호영
東京音樂學校 本科提琴科를 卒業하고 곳 朝鮮에 돌아와서 後進을 爲하야 第一애썻기는 이이이라하겟다 多年間코리안 쓰드에서 만히 活動하다가 무슨 事情이 잇섯슴인지 消息이 돈절하엿다가 近日미나도 座樂士분들이 다시 녯코리안 쓰드를 復活식혀 進行中에잇는바 亦是 崔虎永氏의 指揮라한다 年前에 崔氏는 女子商業學校도 가르치고 잇섯다. 얼골은 美男이 아니나 朝鮮樂界에 提琴家로 이 崔虎永氏가 업섯다면 이야말노 유성긔에 소리판 업는 格이 엿을것이다.
얌전하기로도 有名하거니와 우는것갓흔 얼골노 웃기도 잘하는 이다 그리고 마조이약이 할사록 滋味잇는분이 音樂家中에 崔氏라하겟다 朝鮮樂界巨星들이 모다 이崔氏와 갓치後進養成에 힘쓰며 活動해준다면 明日의 半島樂壇은 果然공게 장식 하여질것이다.
바라노니 今後더욱へ 後進養成에 努力하여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獨孤璇氏
氏는 現在中央保育에서 만흔 秀才들로 하여금 音樂을 普及식히는 일편 硏究를 쉬지아니 하는 熱情的 피아니스트에 한사람이다 音樂學校도 맛치지아닌 이로 이만치 技術이 상당한이도 드믈다 四五年前지는 演奏會지 氏의 얼골이 나타낫스니 지금은 가라친 生徒들이 오히려 나은 便이라고 하겟다 각금校內音樂會에 나와 피아노 獨奏 는 伴奏하여 줄름이다.
半島樂壇에서 힘을만히 써주며 音樂家協會事務도 준히하여 나가는이가 卽이 獨孤氏이다 氏가 敎育界에 從事한지도 벌서 多年間이다 學校事務後에는 피아노 硏究도 준히한다니 音樂會에 자조 나와주기를 바랄이다 學生들의 말에依하면 獨孤先生은 音樂家들中에 第一마음이 싹々하여 배우기에 氣分이 조타고하니 얌전하고 熱이잇는 敎育家이라 하겟다 音樂家들中 眼銀쓴이가 이獨孤氏이다.

新進音樂家몃분消息

高中立氏
今年四月大阪音樂學校 本科聲樂科를 卒業한 新進테너-歌手이다 在學當時 校長以下여러 先生서만흔 칭찬을 밧어왓슴을 筆者는 잘안다 筆者와 同窓인 關係로 그만큼 그는 期待된다 六月에 朝鮮에 온다고하니 와서만흔 活動이 이슬줄안다.

千逸森君
[사진] 천일삼
大阪音樂學校 本科三年에서 日本에 提琴家로 일홈놉흔 田中平三郞氏의 愛弟子이다.
卒業을 압두고 聲樂敎援橋本氏와 敎援方法이 올타거니 그르다거니 하다가 싸홈하고 中途退學하고 東京가서 一年提琴을 硏究하고 今春京城와서 잠잣코이스니 君의 演技도 언제한번 들어보앗스면한다 들으니 요지음 安柄昭君하고 함라듸오 放送이잇다고 한다 期待하는 바이다.

毛隱泉氏
中學時代부터 音樂에 熱中하다가 이래 四五年間硏究를 거듭한 結果인지 요지음 滋味잇는 作曲이만히 나온다 最近콜럼비아 레코-드 吹込曲 「첫봄의님」 「이에도」 等이 氏의 作品이다 作歌亦是氏自身의 노래이다 咸興에서 中央合唱隊의 指揮로 活動한다고 들엇다 小學校敎員으로 이만큼 音樂을 硏究하고 普及식히는이도 드믈다 하겟다 거침업시 硏究에 硏究를 싸아주기를 바라며 中央合唱隊의 完成을 비는바이다.

裵正三氏
小學校訓導로 「체로니」 四十番을치기도 어려운 일이다 下學後면 반다시 音樂室에서 처량한 피아노 소래가 흘너나오나니 이는裴氏의 練習時間이다 압흐로 만히 硏究하여 만흔 活動이 이슬줄안다.

安聖敎氏
日本音樂學校 本科提琴科를 昨年卒業한이다 長谷川町公會堂에서 李女史獨唱會이밤 賛助出演하여 만흔 歡迎을 밧엇다 提琴家가 드믄 朝鮮에서 氏를 엇게된것이 한분이엿스나 그는 순간이엿고 어느새 시골가서 普校女敎員李玉星孃과 結婚하여 단을 는지 좀처럼 서울舞臺에서 볼수업는것이 한섭々한 消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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