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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의 금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최승희의 금후 崔承喜の今後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즉무삼웅 則武三雄
출처정보 삼천리개제대동아 三千里改題大東亞
연    도 1942-07 昭和十七年七月
면    수 80 (80)
기사
[사진] 半島의 舞姬 崔承喜
최승희의 무용에 대해서는 신문 등에서 상당한 감상이 서술되었고, 또 그것을 칭찬하는 것은 지금까지 수다히 발표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것을 논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최승희의 기억을 찾아보면, 그녀가 일찍이 石井漠의 허락으로 떠나서 경성에 돌아간 것은 지금부터 십 년에 가까운 과거의 일이지만, 연구생들과 조선의 각지를 공연하며 돈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것이 비상하게 다이나믹하였기 때문에, 나 자신의 연령이 아직 젊은 탓도 있지만 감동한 것이었다. 혹 하나는 체조같다는 등 말했지만, 나는 그 즈음의 그녀가 훨씬 감동할만한 것을 가져, 춤 춘다는 것에 격렬한 욕망을 품고있던 때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聲譽라고 하기보다도, 생활 자신에 대해서 심하게 투쟁하고 있던 시대였을 것이다.
그 수년 후이지만 「文藝」가 「わがユ―トピア」라고 하는 앙케이트를 했을 때, 村山知義 등과 함께 그녀도 대답했는데, 거기에는 「나의 마음에 제3제국도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단지 춤추는 순간 가운데만 피어오르는 것이 있다」고 하는 의미의 것이 서술되어 있다. 그녀의 부군이 대신 기록했던 것에서도, 거기에는 확실히 그녀의 苦節의 시기의 심정이 표현되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화려한 현재에도 그렇다고 한다. 그것은 보다 복잡해져 陰翳도 있지만, 그녀가 돌아간 것은 역시 그 순간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무용 이외의 것에서부터 생겨나는 괴로움, 그녀가 일부의 사이에서 불평이 있는 이유를 물으면, 과거의 恩怨에 抱泥하지 않고, 昴인 체하고 있는 등 말하는 것이, 공격받는 것이 오히려 그녀가 과거를 지나서 새롭게 나가려고 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해야만 하고, 그런 사람들은 예술가에 대한 도를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는 이제껏 「변하기 쉬운 무지개의 장난으로 가득한 세계」는 없고, 무용하는 순간 속에, 美와 진실과 황홀과 평안한 세계로 향하는 永遠의 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나의 기억에 깊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녀는 상당한 연령에 달하였다.
前回의 2월 16일부터의 경성 공연을 기회로 하여 나는 2번 정도 그녀를 보았다. 군사보급회의 사람들과 인사하러 다닐 때와 府民舘의 복도에서 한숨을 내쉬어 그 면모를 언뜻 보게 되었는데, 그 여성을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이 드문 일이라 잠시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유럽으로부터 돌아왔을 때와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
「너가 지난해 돌아왔을 때에는, 고국의 샘(泉)의 가장자리에서 또 네 집의 안방에서 가족의 앞에서 춰 보이는 듯한 편안함이 있었다. 人口의 무지개를 배후로 하여 너는 누군가를 찾아내고 있는 듯이 어깨 모양 느긋하게 자랑스럽게 미소 짓고 누군가의 호흡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역시 고국을 찾은 편안함이 있었던 것일까」라고.
또 「이번 너의 곡목에는 能樂이나 舞樂의 일본무용의 그것을 취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그리고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고. 그렇지만 나는 최승희의 존재를 그것밖에 드물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싶지 않은 정도라고. 그 노력을 매우 일찍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좋은 점뿐만 보지 않고 있을지도...」 그러나 말하지 않고 가만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그 일부를 기록해 보았다.
그리고 무용을 보고 글을 더하려고 예정했었지만, 「모든 魂을 육체의 움직임의 흐름 속으로 변형할 때, 처음으로 영혼의 자유로움이 있다. 큰 행복은 불행을 불행하다 하고, 懷疑하고, 춤의 형식 속에 확인할 때에 있다고」말하고 있던 것을, 절대로 잊지 않고 있기를 희망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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