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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계 원로 김창룡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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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표준화 정보 |
원문정보 |
기사제목 |
창극계 원로 김창룡 씨 |
唱劇界 元老 金昌龍 氏 |
종 류 |
기사 |
記事 |
필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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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정보 |
매일신보 |
每日新報 |
연 도 |
1943-02-25 |
昭和十八年二月二十五日 |
면 수 |
2 |
(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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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창극계의 원노 김창룡(金昌龍) 씨는 二十四日 오전 一시 二十五분 부내 봉익정(鳳益町) 十四번지의 자택에서 뇌일혈로 七十二세를 일기로 별세하엿다 김씨는 리동백(李東伯) 씨와 함 조선 창극게의 쌍벽으로서 지칭되어 온 명창인데 충남 홍성(洪城)의 출신으로 十四세 에 이 길에 을 두고 상경한 후 정진을 게속하야 마츰내 통정(通政)의 사사를 밧고 일대를 명창으로서 이름을 날렷고 일즉이 구한국시대에 국립극장에 해당하는 원각사(圓覺寺) 초창기의 한 사람으로서 五十여 년 동안 조선창극사에 남긴 족적과 공로는 큰 바 잇서 그의 별세는 창극게는 물론 일반으로부터 크게 애석되고 잇다 발인은 二十六일 오전 十시로 되어 잇다
(사진은 고김창룡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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